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425화
마지막 이야기(4)
“끄응…… 으으음…….”
눈을 꼭 감은 채 무언가에 열중한 은율이.
앙증맞은 여우 귀는 쫑긋 세워지고, 복슬복슬한 꼬리는 아래로 착 내려가 있었다.
주변에 모인 농장 식구들은 약간의 초조함과 기대감이 담기 눈빛으로 바라봤다. 나 역시 간절한 마음으로 숨을 죽인 채 은율이의 도전을 응원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함은 점점 켜졌지만, 꼭 해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불안함을 억눌렀다.
잠시 후.
집중하고 있던 은율이의 주변에 신비로운 기운이 맴돌았다. 우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변화의 시작을 지켜봤다.
신비로운 기운이 점점 강렬해지더니.
샛별처럼 반짝반짝 빛을 내며 천천히 은율이의 몸으로 빨려 들어갔다.
-파아아앗…… 뿅!
모여든 기운은 살짝 눈이 부실 정도의 빛을 터뜨리며 스르륵 사라졌다. 나는 눈부심으로 감았던 눈을 뜨며 재빨리 은율이 쪽을 살폈다.
마침 동시에 눈을 뜬 은율이와 딱 시선이 마주쳤다. 은율이는 기대감과 불안감이 섞인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아빠, 나 성공했어?”
나는 잠시 말없이 바라보다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응. 성공이야.”
“정말? 정말 성공이야?”
“그래. 이번에는 완벽해.”
“와아아아아!!”
은율이는 기쁨의 환호성을 터뜨리며 방방 뛰기 시작했다. 지켜보고 있던 식구들의 입가에도 흐뭇한 미소가 생겨났다.
“잘했어, 은율아.”
“헤헤!”
“언니가 한 번 만져봐도 돼?”
“응. 만져봐.”
리아네의 손이 조심스럽게 은율이의 머리 쪽으로 향했다.
-스으윽.
그녀의 손을 따라 은빛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쓸렸다. 몇 차례 더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지만, 은빛 머리카락만이 찰랑거릴 뿐이었다.
“대단해. 완전 감쪽같아!”
리아네의 칭찬에 은율이의 얼굴이 더 싱글벙글해졌다.
뒤이어 카네프와 안드라스, 아슈미르까지 은율이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흐음…… 그 여우신이라는 녀석이 허튼소리를 한 건 아닌가 보네.”
“리아네 양의 말대로 정말 감쪽같군요.”
“이 정도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거예요.”
세 사람도 고개를 끄덕이며 완벽한 성공을 인정했다. 그리고 그들은 기특한 마음을 담아 은율이의 머리를 한 번씩 쓰다듬어줬다.
식구들의 칭찬을 듬뿍받은 은율이는 다시 내 앞으로 다가섰다.
“아빠. 나 진짜 괜찮아?”
아무래도 나에게 다시 확인을 받고 싶은 모양이었다.
얌전한 자세로 나를 올려다보는 은율이.
하지만 평소와는 다르게 조금 달라진 부분이 있었다.
바로!
은율이의 매력 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여우귀와 꼬리가 사라진 것이다.
쫑긋 세워진 여우귀, 살랑거리는 꼬리 모두 완벽히 모습을 감췄다.
흐음.
확실히 은율이의 매력 포인트 두 개가 사라지니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귀엽고 사랑스러운 건 여전하지만.
수치로 따지자면…….
귀여움 100%에서 99.8% 정도로 떨어진 느낌?
내 대답을 기다리는 은율이를 번쩍 안아들며 환하게 웃었다.
“괜찮아. 하나도 안 이상해. 아빠는 이 모습도 정말 예쁘고 마음에 들어.”
“헤헤헤.”
은율이가 헤벌쭉 웃으며 내 품에 안겨들었다. 한동안 얼굴을 비비적거리더니 다시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리고 기대감으로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이제 나 학교 가도 되는 거지?”
“응.”
올해 은율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 * *
은율이의 초등학교 입학은 하루 이틀 고민해서 결정하지 않았다.
농장 식구들, 어머니와 충분히 이야기를 나눴고. 주변에 전문가와 학교 선생님도 직접 만나서 수차례 상담을 진행했다.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 건 본인의 의지였다.
학교에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스스로 말 할 정도로, 은율이는 학교에 가고싶어 하는 열망이 컸다.
처음에는 걱정이 먼저 앞섰다.
아직도 내 눈에는 너무 어리고, 보호가 필요해 보였다.
항상 지내던 농장에서 떠나, 내 손이 닿지 않는다는 학교로 간다니…… 너무나도 불안할 것 같았다.
“호호! 나도 너 처음에 학교 보낼 때는 그랬어. 혹시 나쁜 친구들이 괴롭히지는 않을까, 선생님 말이 너무 어려워서 적응 못 하지는 않을까. 하면서 말이야.”
“엄마도?”
어머니는 확신이 가득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모든 부모 마음은 다 똑같을걸?”
“…….”
“다 그런 불안함을 이겨내고 자식을 학교에 보내는 거야. 그래야 아이들이 집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것들을 경험하고 성장하니까. 언제까지 너를 끼고 살 수 없잖니.”
나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대꾸했다.
“나는 은율이 평생 데리고 살 건데?”
“으이구! 주책이야. 주책! 사람들한테 그런 말 하고 다니면 욕먹어.”
“아, 아아! 아파. 엄마.”
다른 사람들도 나에게 비슷한 조언을 해줬다.
그때부터 나는 마음을 고쳐먹고. 은율이가 학교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이것저것 준비를 시작했다.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호적에 은율이를 올리는 것이었다.
미혼부. 거기다 생물학적 아버지도 아닌지라 은율이를 내 호적에 올리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평범한 경우에는 아주 복잡하고 껄끄러운 절차를 거쳐야 했겠지만, 나는 생각보다 쉽게 이 문제를 해결했다.
어떻게 했냐고?
그냥 발레리안이 알아서 처리해 줬다. 정확히는 내가 가진 영향력으로, 복잡한 절차가 무마됐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마왕의 인정을 받은 귀족, 천족의 전임 집정관.
거기에 더해 2년 동안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거대 균열을 봉인한 성과까지.
일반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을뿐, 알게 모르게 나는 꽤 큰 영향력이 있는 존재가 됐다.
아이 한 명을 호적에 올리는 일?
동사무소에서 등본을 떼는 것보다 더 간단하게 해결됐다.
‘임은율’
가족관계 증명서에 적힌 저 이름을 봤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질 뻔했다. 소식을 들은 어머니도 정말 많이 기뻐하셨다.
그렇게 하나하나 준비를 하다 보니, 어느새 은율이의 입학식 날이 되었다.
원래는 나만 가려고 했었는데 억지로 농장 식구들이 따라붙었다. 농장을 비울 수는 없었기에 가위바위보로 한 명 남기로 했다.
결과는 아슈미르의 패배.
그녀가 농장에 남게 됐다.
“으으…… 사진 꼭 찍어 오셔야 해요.”
아쉬워하는 아슈미르를 뒤로한 채.
우리는 앞으로 은율이가 다닐 학교로 향했다.
“왜 이렇게 늦게 와!”
“여기에요, 시현 선배!”
먼저 온 서예린과 엘프리드가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뭐야? 둘은 어떻게 알고 왔어?”
“우리 귀염둥이 입학식에 당연히 와야지. 아유! 은율아, 입학 너무너무 축하해! 언니가 선물로 사준 가방 들고 왔네?”
“응. 가방 고마워, 언니.”
“필요한 게 생기면 언제든지 말하렴. 언니가 제일 예쁘고 좋을 거로 선물해 줄게.”
오랜만에 은율이를 만난 서예린은 한참 동안 품에 안고 놓아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사이 엘프리드는 농장 식구들과 인사를 나눴다.
“모두 오랜만이네요.”
“잘 지냈어요? 못 보는 사이에 조금 늠름해진 것 같네요.”
“소식은 잘 전해 듣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활약이 대단하다고 하더군요.”
리아네와 안드라스의 칭찬에 엘프리드는 쑥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니에요. 소문이 퍼지면서 많이 과장된 거예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시현 말 들어보니까 인기도 장난 아니라던데.”
카네프의 말대로 엘프리드는 지금 전세계적인 유명인이었다.
거대 균열 사태가 거의 정리되던 즈음.
엘프리드는 마계 농장으로 돌아가지 않을 거라 선언했다.
“조금 더 이곳에서 경험을 쌓고 싶어요. 마계에서는 얻을 수 없는 경험을 여기서는 할 수 있으니까요. 제가 가진 부족함을 새로운 경험으로 채워보고 싶어요.”
모두 아쉬워하기는 했지만, 엘프리드의 새로운 도전을 응원해 주기로 했다.
그 뒤로. 엘프리드는 가디언즈 길드에 소속되어 활약하기 시작했다.
뛰어난 실력과 귀족적인 외모가 인기를 얻으면서, 순식간에 인기 스타가 되었다.
웬만한 연예인 부럽지 않을 팬클럽도 생겨났다고…….
은율이를 안고 있던 서예린도 한마디 거들었다.
“어휴! 쟤 때문에 나도 얼마나 귀찮은데.”
“그 정도야?”
“가끔 해외로 원정 나가면 여자 팬들이 산처럼 몰려들어서. 길드원 전원이 막아야 할 정도라니까? 길드 본부에도 어찌나 많이 찾아오는지.”
“그, 그건 정말 죄송해요. 예린 선배.”
미안해하는 엘프리드를 보고 서예린은 피식 웃어버렸다. 나도 가볍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하하. 그래도 용케 여기까지 몰래 나왔네?”
“네. 은율이 입학식에는 꼭 오고 싶어서 일정을 철저하게 숨기고 찾아왔어요.”
“둘 다 일부러 시간 내줘서 고마워.”
“뭘요.”
“당연히 와야지. 앞으로 은율이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입학식까지 다 올 거다.”
교문 앞에서 짧게 인사를 마친 우리는 은율이를 데리고 학교 안으로 향했다.
중간에 안내를 해주던 선생님이 우리를 보고 흠칫 놀라기는 했지만, 오늘 입학하는 아이 가족이라고 하니 친절히 안내를 해줬다.
안내를 따라 도착한 곳은 학교 건물 왼편에 있는 커다란 강당.
입구에는 ‘입학을 환영합니다!’라는 현수막이 크게 걸려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인상 좋은 여자 선생님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안녕하세요. 안으로 들어가시기 전에 여기서 이름 확인 한 번 해주시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나는 은율이의 손을 잡고 여자 선생님 앞쪽으로 향했다.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물었다.
“이름이?”
“임은율이요.”
은율이가 살짝 부끄러워하며 이름을 말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여자 선생님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예쁜 이름이네요? 잠깐만…… 으음. 찾았다. 여기 이름표. 선생님이 목에 걸어줄게요.”
그녀는 ‘임은율’ 이름이 적힌 이름표를 목에 걸어주었다.
“아버님이시죠?”
“네. 맞아요.”
“은율이는 1학년 2반이에요. 저쪽에 팻말 보이시죠? 2반 팻말 앞쪽 의자에 은율이 이름이 붙어 있을 거예요. 입학식 진행되는 동안에 아이가 앉아 있을 수 있도록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거 받아가세요. 학교에서 준비한 입학 선물이에요.”
여자 선생님은 봉투에 담긴 무언가를 건넸다.
그 안에는 노트와 아기자기한 학용품이 담겨 있었다. 은율이가 두 손으로 봉투를 받아 들었다.
“입학 축하해요.”
“감사합니다.”
은율이는 웃으며 선생님과 인사를 나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