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426화 (426/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426화

마지막 이야기(5)

“○○초등학교 입학식을 시작하겠습니다.”

단상 앞에 선 남자 선생님이 입학식의 시작을 알렸다. 강당 안에 웅성거림이 약간 줄어들었다.

뒤에서 입학식을 지켜보는 가족들의 표정에 많은 감정이 드러났다.

기쁜 표정을 짓기도 하고, 흐뭇하게 바라보거나, 조금 감정이 격해져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자리에 앉아있는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마냥 신나서 싱글벙글한 아이, 바짝 긴장해서 얼어붙은 아이, 불안해서 계속 가족들이 있는 쪽을 힐긋힐긋 바라보는 아이.

그중에서 은율이는 정말 의젓한 모습으로 단상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은율이를 지켜보던 카네프가 흡족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우리 은율이가 제일 의젓하네.”

“맞아요. 거기다 제일 예쁘고 귀여운 것 같아요.”

리아네에 이어서 안드라스도 맞장구쳤다.

“저 총명함이 가득한 눈 좀 보십시오. 다른 아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어떤 시험이든 전교 1등은 은율이 차지일 것 같군요.”

“전교 1등 뿐만아니라. 반장, 학생회장까지 쭉쭉 은율이가 해야죠.”

“예린 선배. 반장, 학생회장이 뭐예요?”

엘프리드의 물음에 서예린이 반장과 학생회장을 짧게 설명했다. 카네프는 그 설명을 듣자마자 살짝 흥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한마디로 이 학교의 대장이라는 말이지? 어떻게 하면 학생회장이 될 수 있지?”

“보통은 투표로 결정하죠.”

“투표? 으음…… 정치력을 시험하는 건가. 조금 번거롭네. 무력으로 결정하는 거였으면 내가 직접 수련을 도와줄 생각이었는데.”

이제 입학식에 참석한 아이를 두고 벌써 거하게 김칫국을 들이키는 농장 식구들과 서예린. 나 못지않은 팔불출 행동에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상한 소리 좀 그만하세요. 다른 가족분들이 들을까 무섭네.”

“무슨 소리야? 앞으로 은율이의 학교생활이 걸린 중요한 이야기인데!”

“저는 그런 거 신경 안 썼으면 좋겠어요, 사장님. 괜히 은율이에게 부담 주기 싫거든요. 제가 바라는 건. 농장에서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많이 배우고, 또래 친구들과 즐겁게 학교생활 하는 것뿐이에요.”

부드러우면서 단호함이 깃든 말투에 모두 움찔했다.

“으음…… 네가 그렇다면야 뭐…….”

카네프를 비롯한 일행은 일단 물러서는 태도를 보이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자기들끼리 쑥덕쑥덕 이야기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아직 은율이를 학교 최강자로 만드는 계획을 포기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따끔하게 한소리 할까 하다가, 그냥 픽! 웃어버리고 말았다.

조금 억지스럽게 보여도 그들 나름대로 은율이를 응원하고 아끼는 방식일 테니까.

시선을 돌려 은율이가 앉아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의젓한 모습으로 입학식에 귀기울이고 있었다. 나는 준비한 카메라를 꺼내 은율이 쪽으로 초점을 맞췄다.

다른 건 몰라도.

우리 딸이 제일 귀엽고 사랑스러운 건 확실하네.

은율이를 담고 있던 카메라 화면 속으로 누군가 불쑥 끼어들었다. 옆자리에 앉아있던 여자아이가 은율이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두 아이는 귓속말로 속닥속닥 이야기를 나누더니, 금세 친해져서 함께 소리죽여 웃었다.

이야기를 주고받던 은율이가 갑자기 이쪽을 가리켰다. 아마 여자아이에게 우리를 소개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최대한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줬다. 다음에는 여자아이도 어딘가를 가리켰다. 마찬가지로 여자아이의 가족이 손을 흔들어줬다.

새로 생긴 친구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에 뿌듯한 마음이 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살짝 씁쓸해졌다.

내가 해주던 일 중 하나를 벌써 친구에게 뺏긴 느낌이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교장 선생님의 환영한다는 말과 함께 입학식이 마무리되었다.

“학부모님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본관 건물로 이동해 주세요. 지금부터는 교실에서 각 반의 담임 선생님과 첫 만남 시간이 있을 거예요.”

선생님들의 안내에 따라 우리는 은율이를 데리고 본관 건물로 향했다.

인원이 많아 혼잡해지지 않게 다른 일행들은 밖에서 기다리게 하고, 나와 은율이만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1학년 2반.

은율이가 앞으로 지내게 될 교실 앞에는 담임으로 보이는 여자 선생님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안녕하세요. 안녕?”

은율이가 꾸벅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담임 선생님이신가요?”

“네, 맞습니다.”

이 사람이 1년 동안 은율이를 돌봐주실 분…….

담임 선생님을 만나면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것 같은데. 막상 앞에 서니 선뜻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저 깊숙이 고개를 숙이며 딱 한마디를 건넸다.

“제 딸……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아버님. 따님이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할게요.”

은율이는 내 손을 놓고 여자 선생님 쪽으로 걸어갔다.

“아빠, 나 갔다 올게.”

“응. 잘 갔다 와.”

그리고 선생님과 함께 교실로 들어갔다.

나는 은율이가 자리에 앉는 것까지 지켜보다가, 멍한 표정으로 일행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기다리고 있던 일행들은 내를 보자마자 질문을 쏟아냈다.

“은율이 교실에 들어갔어?”

“담임 선생님은 어땠어요?”

“아…… 네. 교실에 잘 들어갔어요. 담임 선생님도 좋으신 분 같았어요.”

“…….”

“…….”

“왜, 왜요?”

잠시 말없이 바라보던 카네프가 내 머리를 가볍게 두드리며 한마디 툭 내뱉었다.

“고생했어.”

“예? 제가 무슨 고생을…….”

내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리아네가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안드라스, 엘프리드, 서예린도. 모두 따뜻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순간 감정이 울컥하며 눈밑이 뜨거워졌다.

아…… 여기서 울면 안 되는데. 이 사람들 평생 놀릴 텐데…….

평소 같았으면 놀릴 생각에 싱글벙글했을 카네프인데. 오늘은 어찌된 일인지 빠르게 분위기를 바꾸며 화제를 돌렸다.

“오늘 수업은 금방 끝나는 거지? 은율이 나오면 모두 다 같이 맛있는 거나 먹으러 가자.”

“그럴까요?”

“나중에 리안도 늦게 합류한다고 했으니. 같이 식사하면 될 것 같군요.”

서예린이 번쩍 손을 들며 앞으로 나섰다.

“나도! 나도 같이 가도 돼?”

“예린 선배도 같이 가세요. 시현 선배 괜찮죠?”

“…….”

모두 환하게 웃으며 내 쪽을 바라봤다.

너무 목이 메여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던 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여 물음에 대답했다.

* * *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평온한 오후.

나는 오랜만에 아기 야쿰 삼남매. 큰뿔이, 얌꿍이, 아꿍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커다란 고양이 치즈가 배를 벌러덩 보이고 따스한 햇볕을 즐겼다.

예전에는 삼남매가 나에게 기댔었는데 지금은 상황이 뒤집혀서 내가 녀석들에게 기대고 있었다.

“큰뿔아. 엉덩이 좀 그만 들썩거려. 나 머리 흔들리잖아.”

-무우우! 무우!

“어허! 내가 너 요만했을 때, 얼마나 품어주고 보듬어줬는데. 겨우 이 정도도 못 해줘?”

-무우우…….

답답하다고 짜증을 부리던 큰뿔이가 금방 얌전해졌다.

이제 힘으로는 나를 충분히 압도할 만큼 자라났어도 녀석들은 여전히 내 말이라면 순순히 따라줬다.

귀여운 녀석들.

엘프리드는 또 아니라고 하겠지만, 내 눈에는 한없이 귀엽고 착한 아이들이었다.

그때 머리 위에서 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삐이이이익!!

-삐이이이익!!

하늘 높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그리핀의 울음소리.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낼 수 있는 가장 큰 목소리로 하늘을 향해 외쳤다.

“그리, 피니!”

날개 퍼덕이는 소리가 빠르게 가까워졌다. 풀밭 위에 생겨난 두 개의 그림자가 내 앞에 멈춰 섰다. 그림자의 주인공들은 땅에 내려서자마자 나에게 달려들었다.

“어이쿠! 녀석들. 오랜만이네. 밖에서 잘 놀다왔어?”

-삐익.

-삐익.

야쿰 삼남매 못지않게 많이 성장한 그리와 피니.

예전에 그 깨발랄하고 장난기 넘치는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

이제는 최상위 마수의 위엄이 물씬 느껴졌다.

아, 물론 내 눈에는 여전히 귀여운 아기 그리핀으로 보이지만.

“이번에는 돌아오는 데 오래 걸렸네? 한 보름 정도 걸렸나?”

-삐익!

-삐익!

그리와 피니의 몸집이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활동량도 엄청나게 늘어났다.

농장에서 먹이를 받아먹는 일이 거의 없어졌고, 사냥을 위해 아주 먼 곳까지 날아가는 일이 잦아졌다.

나는 언제나처럼 둘을 맞아주었는데 오늘은 평소와는 달리 분위기가 이상했다.

한참 동안 내 눈치를 살피던 두 녀석이 천천히 울음소리를 냈다.

-삐이이. 삐익.

“…….”

-삐익! 삐익!

“아…….”

나는 금방 울음소리의 의미를 이해했다.

“이제 진짜 떠나려는 거구나?”

목소리에 숨기지 못한 아쉬움이 잔뜩 묻어나왔다.

언젠가 이런 순간이 찾아올 거라고 예상했는데도 감정이 쉽게 조절되지 않았다.

「…….」

-무우우?

옆에 있던 치즈와 삼남매가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내 뒤편에 모여들었다.

“그냥 이렇게 가버리면 은율이가 많이 아쉬워할 텐데…….”

-삐이이.

-삐익. 삐익.

그리와 피니 눈동자에 잠시 망설임이 일렁였지만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두 녀석은 확고한 뜻을 다시 내게 전했다.

“후우…… 알았어. 그럼 잠시만 기다려줄래?”

나는 얼른 농장 건물로 뛰어가 큰 주머니 하나를 가지고 나왔다. 주머니 안에는 둘이 제일 좋아하는 육포 간식이 잔뜩 들어 있었다.

주머니에서 직접 육포를 꺼내 그리핀에게 먹여주었다. 만만찮게 육포를 좋아하는 치즈도 이번만큼은 욕심내지 않고 얌전히 지켜보기만 했다.

주머니를 다 비워낸 두 녀석은 나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평범한 애정표현 속에서 나를 위로하려는 둘의 마음이 느껴졌다.

“기특하네. 맨날 간식 달라고 애교만 부리던 녀석들이 이제 위로도 해줄 줄 알고.”

-삐이익!

-삐이익!

나는 밝게 웃으며 작별인사를 준비했다.

“그리. 피니! 몸 건강히 잘 지내야 해. 나는 언제든지 농장에서 기다릴 테니까, 힘든 일 있으면 잠시 쉬러 와도 돼.”

그리핀과 꽤 많은 시간을 보냈던 치즈도 무심하게 말 건넸다.

「야생에서의 생활은 험난하다냥. 항상 긴장하고 경계를 늦추지말라냥.」

야쿰 삼남매와도 짧게 인사를 끝낸 그리핀들은 커다란 날개를 활짝 펼쳤다. 두 쌍의 날개가 움직이면서 천천히 하늘로 날아올랐다.

-삐이이이익!

-삐이이이익!

그리와 피니는 우렁찬 울음소리를 내며 한참 동안 내 머리 위를 빙글빙글 맴돌았다.

점처럼 작게 보일 정도로 높게 올라간 둘은 빠르게 하늘 저편으로 사라졌다.

나는 아쉬움에 한참동안 둘이 사라진 하늘을 멍하니 바라봤다.

-무우우…….

-무우우…….

얌꿍이와 아꿍이가 내 다리에 몸을 비비며 애교를 부렸다. 나는 아쉬운 마음을 털어내며 둘을 품 안에 껴안았다.

“너희들은 농장 안 떠날 거지? 나랑 평생 여기서 살 거지?”

-무우우! 무우!

-무우우!

둘은 행복한 울음소리로 내 질문에 대답했다. 나 역시 행복하게 웃으며 부드럽게 털을 쓰다듬었다.

“큰뿔이는?”

-……무우!

큰뿔이는 ‘옛다, 대답.’이라는 느낌으로 짧게 울음소리를 내더니 혼자 풀을 뜯으러 가버렸다. 그 모습조차 나에게는 너무 사랑스러워 보였다.

“치즈는 여기서 계속 함께 지낼 거야?”

「그런 거 물어보기 전에…….」

-툭. 툭.

치즈는 땅바닥에 떨어진 주머니를 앞발로 툭툭 건드리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간식 주머니부터 채워놔라냥!」

“아, 알았어.”

아까 줄 때는 아무 말도 안 하더니…….

치즈에게 말로는 못 하고 속으로 궁시렁대고 있던 그때.

-부우우우우!

-부우우우우!

멀리서 우렁찬 야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경계나 위협이 아니라 환영의 의미가 담긴 울음소리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농장 건물 쪽으로 향했다.

건물 앞에는 막 초등학교에서 돌아온 은율이를 둘러싼 식구들이 연신 감탄을 터뜨리는 중이었다.

“받아쓰기 100점이면 높은 거야?”

“전부 다 정답이면 100점인데. 반에서 은율이만 혼자 100점이래요.”

“와아! 그럼 대단한 거네요?”

“흠흠. 제가 평소에 은율이의 공부를 열심히 봐준 덕분에 이런 성과가…….”

“뭔 소리야! 은율이가 똑똑해서 100점 받은 거지. 저리 나와!”

“커헉!”

쏟아지는 칭찬과 감탄 속에 부끄러워하던 은율이가 천천히 걸어오는 나를 발견했다.

“아빠!”

은율이는 농장 식구들에게서 빠져나와 쪼르르 나에게 달려왔다. 그리고 한 손에는 받아쓰기를 한 노트가 꼭 쥐어져 있었다.

얼른 자랑하고 싶어서 얼굴은 이미 싱글벙글.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따스한 행복감이 차올랐다.

혹시 넘어질까 얼른 팔을 뻗어 은율이를 번쩍 안아들었다.

“아빠! 아빠! 오늘 학교에서 받아쓰기를 했는데. 엄청 어려워서 많이 틀릴 뻔했거든. 그런데 아빠랑 같이 읽었던 책 생각하면서 쓰니까…….”

은율이는 숨이 넘어갈 정도로 빠르게 받아쓰기 무용담을 쏟아냈다.

중간에는 이해가 힘들 정도로 말이 뒤죽박죽이었지만, 내 얼굴에는 더 없이 행복한 미소가 걸렸다.

그 미소는 점점 번져 나가 농장 식구들에게 옮겨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농장에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게 됐다.

멀리서 보면 평범해 보일지 몰라도.

내게는 너무나 특별하고 소중한 하루하루.

아무래도.

마계 농장에서 나의 행복한 나날은 조금 더 오래 이어질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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