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자원 개미군단
프롤로그
과연 인간이 지구의 주인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지구의 생명체 중 곤충의 비율이 포유류보다 훨씬 높고 생존해 온 시간 또한 길다.
만약 외계의 누군가가 내게 지구의 주인을 묻는다면, 이렇게 답할지도 모른다.
“사회성 곤충… 개미가 아닐까요?”
지표 생물체량 중 55%~85%를 점하는 사회성 곤충, 개미.
나는 개미를 좋아했다.
그래서일까?
죽었다고 생각한 나는 갓 태어난 개미가 돼 있었다.
‘개미로 환생한 건가? 아니면 빙의?’
낯선 더듬이 감각으로 주변 물질과 신체를 살펴보니 내가 알던 일반적인 개미가 아니었다.
‘흙이 만져지는 감촉으로 봐선…….’
물리적 상식을 거부한 듯한 거대한 개미로 환생한 것 같다.무한자원 개미군단
1화. 악덕 엘리트의 환생
나는 어릴 적부터 개미를 좋아했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탐구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개미에 대해 깊게 알아 갈수록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사람에게 공산주의, 자본주의, 사회주의가 있듯 개미에게도 종의 수만큼이나 다채로운 사회가 존재했다.
또, 번식 전략도 다양하다.
무성생식으로 수개미를 낳는 종이 있는가 하면, 여왕개미를 낳는 종도 있었고, 여왕 없이 일개미가 알을 낳는 종도 있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내가 흥미롭게 느낀 건 따로 있었다.
이타적 행위.
일개미들이 소속 군체를 위해 희생하는 모습이 고결해 보였다.
과학자들은 개미들의 이타적 행위 또한 유전자 존속을 위한 전략이라고 말했지만, 어른이 되어 이기심 가득한 사람들과 함께 일하다 보니 개미가 더 좋아졌다.
학창 시절에 성실했던 나는 나름 알아주는 대학의 회계학과를 나와 코로나가 만연한 사회에서 구직 활동을 시작했다.
세상은 만만치 않았다.
괜찮은 대학을 나왔음에도 취업에 번번이 실패했고, 결국 눈높이를 최대한 낮춰 다이어트 선식을 유통하는 작은 회사에 입사하게 됐다.
비록 기대한 만큼 큰 회사는 아니었지만, 개미에게서 사회성을 배운 나는 언제나 집단의 이익을 생각했고, 이는 회사에서 이야기하는 주인 의식과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회사와 대표를 위해 개미처럼 열심히 일하다 보니 어느새 회사는 성장해 있었다.
소속 회사의 성장과 더불어 나의 연봉과 직급도 높아졌다.
문어발식으로 확장하여 건강 기능 식품, 유리 공예품, 통조림, 동물 사료 등등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게 된 회사의 재무실장.
직함은 재무실장이었지만, 사실상 회사를 키운 1등 공신으로 대표의 최측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규모가 커진 만큼 업무량도 많아졌어.’
회사가 커지니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일하는 게 어려워진 나는 업무 전산화에 힘썼다.
‘종이부터 줄여야 해. 고객 관리 프로그램을 도입하자.’
업무가 하나둘 전산화되니 연세가 많은 창업 공신들이 힘들어했다.
“전기 끊기고! 컴퓨터 고장 나면! 재무실장, 자네가 다 책임질 거야?”
종이로 이루어지는 서류 업무를 없애니 함께 회사를 키운 장 이사가 날 찾아왔다.
“물론 이사님 말씀도 이해는 합니다. 그래도 일일이 종이 뒤져 가며 일하긴 어렵잖아요. 제가 프로그램 사용법을 알려 드릴 테니 적응해 보시죠.”
“내가 그깟 프로그램 하나 사용할 줄 몰라서 이러는 것 같아? 새파랗게 어린놈이 날 무시해! 너, 다음 회의 때 두고 보겠어!”
노쇠한 개미는 위험한 정찰 일에 지원하여 길을 개척하는데, 연로한 창업 공신들은 잠깐의 불편함도 싫다며 개척자들을 온몸으로 막아 세웠다.
‘과도기야. 저분들도 적응하는데 시간이 필요할 거야’
나 또한 그들과 함께한 공신이다.
개미가 군체를 키우듯 우린 회사를 키웠고, 회사가 성장할수록 우리의 연봉도 늘었다.
회사를 성장시켜 내 연봉을 함께 높이는 것.
그게 나의 목표였고, 이사들도 분명 같을 거라 생각했는데…….
“왜 그런 겁니까?”
“뭐가?”
“XX년도 VIP 고객 스물일곱 명의 담당자가 이사님 명의로 수정됐더군요.”
자신에게 부여된 권한을 남용해 전산 데이터를 조작하여 막대한 성과급을 챙겨간 장 이사에게 경고했다.
“뭐? 그, 그럴 리가… 자네가 잘못 안 거 아닌가?”
“이미 정황증거가 확보된 상황입니다. 그렇게 발뺌하셔 봐야…….”
그러자 장 이사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너, 너, 너… 이 새끼! 네가 지금 누구 때문에 그 자리에 와 있는데!”
“이사님 덕분에 이 자리까지 온 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키워 주신 은혜야 감사합니다만, 제가 하는 일이 이런 건데 어쩌겠습니까? 지금이라도…….”
“다, 닥쳐라! 나는 모르는 일이다!!”
“그렇게 끝까지 모른 체하셔 봐야…….”
정황증거가 명확함에도 장 이사의 부인(否認)으로 급여체계의 공정성이 무너졌다.
“대표님, 이대로 장 이사를 두고 보실 겁니까?”
“지금 상황에서 징계하기에는 부담이 커.”
명확한 증거가 있음에도 장 이사 파벌의 집단행동으로 징계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고용 해지나 인사이동과 같은 불이익을 주게 되면 장 이사가 어떻게 나올지 모를 상황이었다.
세금 문제만으로 할 일이 천지인데, 내부의 적이 있으니 회사가 제대로 돌아가질 않았다.
‘피곤하네…….’
“실장님! 이사들 때문에 퇴사한다는 직원이 한둘이 아니에요.”
나를 따라 개혁에 앞장서던 직원은 이사들의 부정행위가 싫어 퇴사했고, 장 이사에게 빌붙은 기생충들이 회사를 차츰 잠식해 갔다.
‘왜지? 왜 회사를 키울 생각은 하지 않고 뜯어먹으려고만 하는 거야! 회사가 무너지면 우린 직장을 잃는다고!’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사람은 개미처럼 이타적일 수 없다.
모두가 눈앞의 이익을 좇거나 손실을 떠넘기기 급급했다.
‘난 당신들과 끝까지 함께할 생각이었어!’
장 이사는 동료를 짓밟아 자신의 주머니를 채우려는 탐욕스러운 놈이었고, 그의 지지자는 강자에게 편승해 이익을 취하려는 하이에나 같은 자들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야. 당신들이 회사와 날 짓밟고 자기 주머니를 채우려 한다면… 난 온몸을 내던져서라도 너희를 제거하겠어!’
개미처럼 한목숨 바쳐 회사를 지키겠다고 결심했다.
“대표님, 제가 다 정리하겠습니다.”
“괜찮겠어?”
“모든 책임은 제가 질 테니, 회사에 불똥이 튈 것 같으면 절 쳐내십시오.”
“실장, 내가 그럴 사람으로 보이나? 나도 마음 단단히 먹을 테니 어디 한번 시원하게 질러 봐!”
“감사합니다!”
인생을 걸고 칼을 뽑았다.
그동안 동료를 공격해 봐야 회사에 이익이 되지 않을 거라 판단하여 참고 있었지만, 한번 마음을 먹으니 쉬운 일이었다.
데이터 로그를 분석하여 수집한 증거를 더해 법인 카드의 지출 내역, 재무 기록, 전산 기록을 샅샅이 뒤져 장 이사의 각종 비리를 수집했고, 사비로 사람을 붙여 증거까지 확보했다.
‘장 이사님, 당신은 약점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동안 당신을 못 쳐낸 건 당신이 무서워서가 아니에요.’
장 이사를 건드리면 그의 세력이 가만있지 않는다.
그럼 회사가 휘청일 테니 덮어둘 수밖에 없었다.
‘덮어도 휘청이고, 들쑤셔도 휘청이니… 더는 참을 필요가 없겠지.’
어차피 한 몸 불태우기로 한 이상,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장 이사 사람은 모조리 내보내야 해!’
성추행으로 엮어 내보내고,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어 가짜 스카우트로 사직하게 하고, 양아치를 고용해 괴롭혀 사직하게 하고, 이간질로 내보내고, 내부 자료 유출로 해고하고, 악질적인 소문을 흘려 사직하게 하고…….
뒤늦게 자신이 타깃이란 걸 깨달은 장 이사는 급급히 방어에 나섰지만, 아무도 그를 도우려 하지 않았다.
“최 이사, 자네마저 이렇게 발 뺄 거야? 우리가 뭉쳐야 놈도 경거망동 못할 거 아니야!”
“장 이사, 미안혀. 우리가 실장을 너무 얕봤데이…….”
그동안 장 이사와 붙어먹던 이사들이 나에게 힘을 실어 주기 시작했다.
“내가 이딴 회사 아쉬운 줄 알아! 어디 나 없이 잘해 봐!”
“배웅하지 않겠습니다. 조심히 가십시오.”
“이, 이 자식……!”
결국 동료들의 배신이 결정적이었는지, 장 이사는 설 자리를 잃고 회사를 그만뒀다.
장 이사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나는 완만히 진행되던 개혁을 앞당겼고, 재무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구조 조정도 서슴지 않았다.
“좌 팀장님이 실적은 부족해도 사람은 좋았는데…….”
“쉿! 실장님이 듣겠어요.”
누군가의 생계가 파탄 났지만, 고용 유동성을 높인 회사는 도약의 토대를 마련했다.
“난… 사람인가?”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잘 알기에 회의감이 들었지만, 회사를 지킨다는 사명 아래 더욱 가혹하게 채찍질했다.
“무능한 놈은 필요 없어! 제대로 실적을 못 내면 알아서 나가! 아니면… 내가 내보내 줘?”
직원을 뽑고 실적이 부족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내보내길 반복했다.
나의 악평이 높아질수록 회사는 도약을 거듭했다.
악덕 상사로 10년을 보냈더니 회사는 건실한 중견 기업 반열에 올라 있었다.
직원들의 연봉도 몇 배나 오르고, 상여금도 빵빵해졌다.
개미는 군체가 커지면 먹이 경쟁이 치열해지고, 전쟁이 잦아진다.
기업도 마찬가지였다.
규모가 커질수록 적대 기업이 많아지고, 경쟁도 치열했다.
개미가 군체를 먹여 살리기 위해 먹이를 구하러 다니듯, 나 또한 살아남기 위해 쉬지 않고 싸워야 했다.
‘지면 죽는 거야!’
나 홀로 싸웠다면 회사는 일찍이 무너졌을지도 모르지만, 날 믿어 주는 대표가 있었고, 내 이상을 따라 주는 부하들이 하나둘 늘어나며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다.
“실장님, 저희도 돕겠습니다!”
“이건 제가 처리할게요!”
위기에 맞설수록 단단해지는 동료들과의 관계.
말로 표현한 적은 없었지만, 그들과 함께라면 언젠가 업계를 평정할 수 있을 듯했다.
‘지지 않아!’
집에 키우는 개미들에게 젤리를 넣어 준 나는 오늘도 전쟁을 위해 검은 슈트로 무장한 채 집을 나섰다.
회사 건물이 가까이 있어 차는 꺼내지 않았다.
건널목에서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릴 때, 섬뜩한 무언가가 내 옆구리를 헤집었다.
푹!
“직장도, 가족도… 너 때문에! 너 때문에! 난 모든 걸 잃었어!”
푹! 푹! 푹!
간신히 고개를 돌려 뒤를 보니, 목에 핏대를 세운 채 강렬한 눈초리로 쏘아보는 누추한 대머리가 나를 향해 칼을 찔러 대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예전에 전산 데이터 조작을 비롯한 각종 비리를 일으켜 회사에 막대한 피해를 안겨준 장 이사였다.
‘직장을 잃은 건 당신 주머니를 채우려고 회사를 이용했기 때문이고! 가족을 잃은 건 당신이 상습적으로 가정 폭력을 일삼았기 때문이잖아!’
무언가 말해 주고 싶었지만, 과다 출혈로 인해 머리가 핑 돌며, 서 있다고 생각한 나의 눈에 푸른 하늘이 비쳤다.
‘쓰러진 건가? 오늘 농장주들과 미팅 있을 텐데….’
사람들이 모여들며 웅성거렸지만, 나는 상황에 맞지 않게 오늘 중으로 처리해야 할 일들을 떠올렸다.
‘이대로 가면 회사에 민폐겠지…….’
마지막 순간까지 일 생각이라니.
어이가 없어 그만 웃음이 나왔다.
‘아… 이렇게 죽는 건가?’
죽음이 두렵거나 무섭진 않았다.
치열한 경쟁 속에 무수히 많은 적을 짓밟으며 살아왔다.
언젠가 화가 되어 돌아올 거라곤 예상했다.
‘장 이사에게 당할 줄은 몰랐지만…….’
깨끗하게 살아온 인생이 아니라 스마트폰 속에 들키면 안 될 비밀이 산재해 있었다.
‘가기 전에… 할 일은 해야지…….’
일생을 바쳐 키워 낸 회사를 위해서 마지막 힘을 짜내 버튼을 꾸역꾸역 누르고 공장 초기화를 진행했다.
‘노트북은… 알아서들 처리하겠지.’
수년간 누적된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내 손으로 최고의 기업을 일구고 싶었는데…….’
날 믿어 준 상사와 부하들이 떠올랐다.
‘너희들과 함께라면…….’
우리 회사가 자본으로 세상을 집어삼키는 허황된 꿈.
언젠가 닿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손을 뻗어 왔는데, 마지막 순간 아쉬움을 삼키며 손을 접었다.
‘뒤는 너희들에게 맡기마…….’
그렇게 난 죽었다.
***
확실히 죽었을 텐데.
‘이게 뭐야?!’
눈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고, 팔다리가 몸에 붙어 움직여지지 않았다.
생소한 감각이 진동, 냄새, 열 등을 감지하여 현재 상황을 알려 주었다.
‘더듬이?’
생소한 감각의 정체가 더듬이라는 걸 깨닫고서 매우 놀랐는데, 당황스러운 감정이 빠르게 가라앉으며 이성이 뇌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상해. 이상할 정도로 차분해. 마치 감정 없는 기계가 된 기분이야.’
덕분에 내 몸과 정신의 변화를 인지할 수 있었다.
‘개미? 내가 개미가 됐다고?’
믿을 수 없는 사실에 다시금 의문이 솟구쳤다.
그때, 개미 하나가 나의 몸 구석구석을 핥아 주며 팔다리를 떼어 줬다.
그러고 나서 마우스 투 마우스로 영양 교환까지.
‘흡!’
개미가 페로몬을 방출하자 나는 그가 뿌린 페로몬을 자연스럽게 해석했고, 금방 똑같이 흉내 낼 수 있었다.
“나. 너의 선배. 페로몬 언어. 익숙해져야 해.”
“페로몬 언어. 알겠어. 노력. 한다.”
무한자원 개미군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