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자원 개미군단-2화 (2/189)

2화. 페르, 포스, 케어

물론 개미를 좋아했고, 그동안 개미처럼 살아오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내가 개미라니…….

이렇게 한탄하고 있을 시간에 주변 상황을 파악하는 게 우선이었다.

‘일단 어떤 종인지 알아내야 해’

이곳의 개미가 어떤 종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언어는 몸짓, 페로몬, 신체 접촉 등 복합적으로 구성돼 있었고, 내가 알던 개미들의 신호 체계보다 훨씬 정교했다.

‘내가 아는 종이 아니야.’

나는 선배 개미에게서 부족한 어휘를 배운 후, 주변 개미와 페로몬을 교환하는 신고식을 치렀다.

이윽고 더듬이의 감각이 익숙해지면서 개미들의 생김새를 파악할 수 있었다.

나와 비슷한 크기의 개미들도 있고, 나보다 훨씬 큰 개미들도 많았다.

작은 개미들의 외골격은 회색이었고, 큰 개미들의 외골격 색은 검정색이다.

배 쪽 무늬는 다들 갈색이었지만, 이곳의 관리자로 보이는 개미만이 분홍 무늬의 큰 배를 지니고 있었다.

개미들이 식량을 가져와 분홍 무늬 개미에게 전했고, 배가 큰 개미는 공급받은 식량을 진득한 액체로 만들어 나처럼 작은 개미들에게 주입해 줬다.

‘여긴 애벌레와 고치가 있는 유충방이야.’

“아이야. 너도 와서 영양을 받거라.”

“저요?”

“그래, 너.”

이곳의 장으로 여겨지는 개미에게 불려간 나는 마우스 투 마우스로 진득한 액체를 주입받았다.

개미에겐 두 개의 위가 있다.

하나는 보관 역할을 하는 사회적 위이고, 다른 하나는 먹이를 소화하는 소화 위다.

사회적 위는 사교위라고도 하는데, 진득한 액체가 사교위에 듬뿍 담기는 동안 딱히 불쾌한 감각은 없었고, 오히려 상대가 정겹게 느껴졌다.

‘정신이 개조됐어.’

차분하게 가라앉은 정신은 인간이라면 징그러워했을 행동을 징그럽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마우스 투 마우스로 진행되는 개미의 습성 또한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이거 참.’

나는 다른 개미들처럼 사교위에 담긴 영양을 유충들에게 먹이며 입으로는 특수한 액체를 생성해 냈다.

‘이건 균과 이물질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액체야.’

다른 개미들이 보호액이라 칭하는 액체를 다리와 더듬이에 바른 후, 유충을 비롯한 동료 개미들을 닦아 줬다.

‘갓 태어난 개미들의 역할은 유충을 돌보는 거군.’

개미로 환생한 뒤, 당황은 순간이었고, 빠르게 적응해 갔다.

***

대륙의 남단, 클라우드 왕국 변경 지역인 남부 대산림.

대산림 초입을 살짝 벗어난 오크나무 숲 지하에 개미족의 둥지가 있었다.

개미족은 소형견 정도의 크기로 태어나 진화를 거쳐 강해지는 사회성 몬스터였다.

그러한 개미족 둥지에선 신생 개미들이 각자의 일을 찾아다녔다.

유충방의 총책임자라 할 수 있는 팩토리 워커 네트리.

네트리의 역할은 유충방의 위치 지정과 유충에게 주어질 영양을 생성하여 배급하는 것이었다.

‘습도와 온도가 나쁘지 않아. 한동안 이곳에 있어도 되겠어.’

역할에 충실하던 그녀는 갓 태어난 스몰 워커 한 마리를 주목했다.

‘적응이 빨라. 보호액 생성도 바로 터득했어.’

보통 군체원이 된 스몰 워커는 유충방에 잠시 머물며 보모 일을 맡다가 산란방으로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여왕에게 인사를 하고 임시 이름을 받게 된다.

네트리는 유망한 스몰 워커를 남겨 고정 보모로 삼아 임시 보모 개미의 관리 감독을 맡겼는데, 최근 고정 보모 몇이 수명을 다하여 새로운 고정 보모가 필요하던 차였다.

때마침 눈에 띈 스몰 워커가 있어 그를 고정 보모로 삼으려 했으나…….

‘왜 일을 안 하려 하지? 어디가 아픈가?’

눈여겨보던 개미는 똘똘했지만, 체력에 하자가 있는 것 같아 관심을 접게 됐다.

***

나는 며칠간 개미로 지내며 신체적 특성을 파악할 수 있었다.

첫 번째, 다리에 있는 털들 덕에 벽을 잘 탄다는 점.

두 번째, 입에서 보호액, 소화액, 접착액 등을 생성할 수 있다는 점.

세 번째, 엉덩이로 산성액을 뿌릴 수 있다는 점.

네 번째, 컴퓨터를 재부팅 하듯 잠시 선잠을 자는 것만으로 개운해진다는 점.

마지막으로 무수한 낱눈이 모인 겉눈 한 쌍과 이마 위쪽에 홑눈 세 개가 있다는 점.

‘눈은 왜 있는 거지?’

홑눈으로는 빛의 유무 정도만 파악할 수 있었고, 곁눈은 코앞에 있는 물체만 겨우 보일 정도라 장식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눈은 장식이나 다름없더라도, 더듬이의 감각을 통해 들어오는 무수한 정보가 시각화되어 인식됐기에 불편함은 없었다.

‘더듬이의 감각도 익숙해졌어.’

주변 사물을 인식하면서 내가 그리 작은 개미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흙의 입자와 이끼 식물, 물방울 크기를 보면 내가 아는 곤충의 세계와는 거리가 멀어…….’

추측해 보건대 나는 소형견 사이즈의 개미였고, 동족 중에는 중형견, 대형견, 심지어는 호랑이 정도 사이즈가 될 법한 존재도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생태계가 아니야…….’

통상적으로 개미는 크기가 클수록 수명이 긴 편이긴 하지만, 일개미의 수명이 1년 이상의 종은 많지 않았다.

‘시한부 개미생인가?’

개미의 세계에서는 활동량이 많을수록 빨리 죽는다.

‘일단 움직임부터 최소화하자.’

수명을 보존하기 위해 변태를 마친 신입 개미에게 인수인계를 해 줬다.

“영양 받아서 애벌레 먹여. 보호액 만들어 발라 주고.”

“네.”

인수인계를 마친 나는 컴퓨터가 절전 모드에 들어가듯 에너지 출력을 낮춘 채 영양이 떨어질 때마다 이곳의 수장 격인 네트리에게 접근하여 구걸했다.

“영양 주세요~”

“애벌레를 위한 영양이다. 더는 네게 줄 영양은 없어.”

이곳 개미 사회에선 일하지 않는 자에게 주어지는 무료 급식이 없었다.

“너도 게으름 피우지 말고 하루 빨리 다른 일을 알아보렴.”

“네…….”

영양을 공급받기 위해 돌봐 줄 애벌레를 찾아봤지만, 이미 애벌레마다 담당이 정해진 상태라 내가 낄 자리가 없었다.

‘망했네.’

뒤늦게 후회가 몰려왔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가 한참이나 겉돌자 네트리가 답답한지 말을 걸어왔다.

“이제 떠나서 일을 찾아보렴.”

“네…….”

나는 어쩔 수 없이 유충방을 떠났다.

유충방을 나오니 나와 같은 이유로 떠나간 선배 개미들의 흔적이 보였다.

‘페로몬 길이야. 날 위해 남겨둔 표식 같은걸… 이걸 따라가면 되려나?’

그동안 개미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개미의 삶을 겪어 보니 차이가 컸다.

‘대단하네.’

무수한 갈림길이 있음에도 페로몬 표식이 남겨져 있어 헤맬 일이 없었다.

‘밖으로 나가는 길은 왼쪽이고, 배고픈 신입 개미는 오른쪽이야.’

표식을 따라 이동하여 도착한 곳은 산란방이었다.

산란방은 좁지 않은 공간임에도 다양한 개미들이 밀집해 있어 비좁게 느껴졌다.

‘흠…….’

형태에 따라 느껴지는 페로몬이 달랐다.

머리와 턱이 큰 개미들에게서는 강렬한 페로몬이 풍겼고, 엉덩이가 발달한 개미에게서는 매혹적인 페로몬이 풍겼다.

‘병정과 여왕이군.’

여왕개미는 한 마리가 아니었다.

‘셋이잖아?’

단수 군체가 아닌 복수 군체.

복수 군체란 여러 여왕이 함께 군체를 형성하거나 이미 형성된 군체에서 신 여왕을 받아들이는 경우로 나뉘는데, 어느 쪽이든 단수 군체보단 생존에 유리한 편이다.

‘내분만 안 일어나면 말이지.’

하지만 나를 진정으로 놀라게 한 건 따로 있었다.

‘개미가 이족 보행이라니!’

일부 개미들이 직립보행을 하며 앞다리와 중간 다리를 손처럼 썼고, 엉덩이가 커 보이는 여왕 중 하나도 직립보행 하는 개미들과 같은 형태였다.

그동안 쌓아온 상식이 무너지며 상당한 충격을 받았지만, 개미가 되면서 변화된 정신은 신속히 냉정함을 되찾았다.

‘거대 개미, 엉덩이가 굉장히 큰 개미, 직립보행 하는 개미, 조금 큰 개미, 나와 같은 종류의 개미…….’

산란방에는 대략 다섯 가지 형태의 개미가 어우러져 있었는데, 세 여왕 중 하나는 네트리처럼 엉덩이가 굉장히 컸고, 나머지 둘은 거대 개미와 직립보행 개미였다.

여왕의 형태에 따라 각기 다른 페로몬이 느껴졌는데, 엉덩이 큰 여왕에게선 매력이, 거대 여왕에게선 무력이, 직립보행 여왕에게선 지성이 느껴졌다.

나보다 조금 일찍 산란방에 오게 된 선배 개미들이 나에게 관심을 보였다.

“신입, 저기 가서 시녀님에게 교육받고 와.”

“어… 알겠어.”

선배 개미가 말해준 곳에는 직립보행 하는 일개미가 모여 있었다.

“신입이야?”

“네.”

“귀엽네.”

나를 만져보고 더듬어 보던 직립보행 개미 중 한 마리가 날 담당하기로 했다.

“난 주로 하녀 개미들의 교육과 관리를 담당하는 시녀 개미야. 티아벨 시녀님이라 부르면 돼.”

“네, 티아벨 시녀님.”

산란방에는 여왕을 지키는 친위대, 여왕의 수발을 드는 시녀 개미, 잡일을 처리하는 하녀 개미로 나뉘어 있었고, 페로몬이 짙은 개미들은 티아벨처럼 자신을 지칭하는 이름과 직책이 있었다.

“이제 넌 하녀 일을 하면 돼.”

하녀 개미는 산란방 청소, 친위대 개미와 시녀 개미의 수발, 식량 관리, 영양액 제조 등 다양한 일을 했다.

“설명은 여기까지 할게. 그럼 여왕님들께 인사하러 가자.”

“네.”

여왕들에게 인사하러 가던 중 티아벨의 상사인 일리아나를 만났다.

“난 시녀장 일리아나란다.”

“그렇군요.”

시녀장은 여왕들의 최측근으로 둥지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조율한다고 했다.

‘총괄실장인가?’

일리아나와 나는 서로를 더듬어 페로몬을 교환했다.

‘뭔가 달라.’

그동안 봐 온 개미들은 기계적이고 무미건조한 느낌이 강했는데, 일리아나 시녀장의 페로몬은 다른 개미들에 비해 상냥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개미들도 각자 개성이 있어.’

일리아나에게서 기본적인 인사법을 배운 나는 엉덩이가 매우 큰 여왕, 페르를 만났다.

“안녕하세요. 신입 하녀에요.”

“신입이야? 그럼 영양도 안 가져왔겠네.”

“죄송해요.”

“죄송하다고 영양이 생기는 건 아니잖아.”

“그렇죠.”

“난 팩토리 퀸 페르. 둥지에 있는 알의 80%는 내가 낳고 있지. 무슨 말인지 알겠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 것 같지만, 모른 척했다.

“날 1순위로 챙기란 말이야!”

“그럴게요.”

인사와 함께 여왕과 나는 서로를 더듬어 페로몬을 교환했다.

“넌 페로몬이 평범해… 잠재력이 낮다고 해야 하나? 그래도 열심히 하면 빅 워커로 진화할 수 있을 테니, 날 위해 노력해 봐.”

“앗… 네.”

첫 번째 여왕 페르는 매혹적인 페로몬을 보유했지만, 까칠하면서도 자신을 내세우길 좋아했다.

무사히 인사를 마친 나는 티아벨의 안내를 받아 거대 여왕 포스가 있는 곳으로 갔다.

“안녕하세요. 신입 하녀에요.”

포스는 강렬한 페로몬의 소유자였다.

“난 자이언트 퀸 포스다. 넌 허약하구나.”

“그런가요?”

포스는 병정개미들을 병풍 삼고 있었고, 절로 위축되는 페로몬을 풍겼다.

‘여왕이라기보다는… 무장 같잖아!’

포스에게 인사를 마치자 티아벨이 세 번째 여왕 케어에게 안내해 줬다.

“안녕하세요. 신입 하녀에요.”

케어는 직립보행 하는 개미로 일리아나 시녀장처럼 온화한 페로몬이 느껴졌다.

“난 스마트 퀸 케어란다. 내게는 감정 능력이 있지. 넌 신체 능력은 낮지만, 지능이 매우 높구나…….”

다른 여왕들과 달리 케어는 내게 관심을 보였다.

“네 임시 이름은 48,726이란다.”

4만 8천 대의 숫자가 이름이라니.

개미들에게 숫자 개념이 있다는 것에 놀랐다.

“우린 진화하는 개미족이고, 너는 스몰 워커란다.”

“진화요?”

“그래. 우린 특정한 조건을 만족시키면 일정 확률로 진화를 하지.”

여왕 케어의 설명이 이어졌다.

“스몰 워커는 빅 워커로 진화하고, 빅 워커는 자이언트 워커, 스마트 워커, 팩토리 워커 중 하나로 진화한단다.”

개미족은 애벌레 때의 육성 환경과 먹이에 따라 일개미, 병정개미, 공주 개미가 정해졌고, 각각 워커, 솔져, 공주란 명칭이 붙었다.

“너도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면, 높은 확률로 빅 워커로 진화할 수 있단다.”

케어의 설명을 듣고 나서 확신했다.

여기는 내가 살아온 세상이 아니었다.

무한자원 개미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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