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자원 개미군단-3화 (3/189)

3화. 마석

“궁금한 게 있느냐?”

질문할 기회가 왔다.

난 망설임 없이 제일 궁금한 걸 물었다.

“스몰 워커의 수명은 어떻게 되나요?”

“최대 300일 정도란다.”

예상대로 스몰 워커의 수명은 그리 길지 못했다.

‘10개월이라니.’

최소치도 아니고 최대치가 10개월이었다.

만약 내가 태어난 종이 평범한 개미였다면 시한부 인생이라도 받아들이겠지만, 지금의 나는 평범한 개미와 거리가 멀었기에 수명을 늘릴 방법이 있을지도 몰랐다.

“수명을 늘릴 순 없나요?”

나의 질문에 케어가 기꺼워하며 답했다.

“스몰 워커의 수명은 짧지만, 빅 워커로 진화하면 수명이 1500일까지 늘어난단다. 2차 진화까지 한다면 수명이 7500일까지 늘어나지.”

한 번의 진화를 통해 10개월의 수명을 4년까지 늘릴 수 있고, 두 번의 진화를 거친다면 20년에 가까운 수명을 얻을 수 있다니…….

‘살길이 있어!’

개미생 첫 목표가 생겼다.

“48,726. 힘내거라.”

“네.”

여왕 케어와 인사를 마치자 티아벨이 축하해 줬다.

“축하해, 48,726. 그건 네 임시 이름이야. 빅 워커가 되면 정식 이름이 생길 테니. 노력해서 진화하도록 해.”

티아벨은 날 빅 워커인 하녀장에게 데려다줬다.

“그럼 하녀 일 열심히 해 봐. 잘하면 고정적으로 일할 수도 있으니까.”

“네.”

신입 하녀가 된 나는 산란방 청소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주로 하는 일은 산란방에서 발생한 쓰레기를 밖으로 버리는 일이었다.

식사는 영양액 생산을 맡은 하녀들이 제공해 줬다.

“이거 내가 해도 돼?”

가끔 내가 하던 일을 대신 하려는 스몰 워커들이 있었다.

“그래, 네가 해.”

나는 다른 일을 하면 되니 크게 신경 쓰진 않았지만, 내게 일을 양보받은 개미는 매우 행복해했다.

‘개미라 그런가? 일에 대한 집착이 심하네…….’

며칠 동안 산란방에서 지내며 다양한 일을 배웠다.

무거운 물건을 드는 방법, 흙먼지들을 모아 처리하는 방법, 벽과 천장을 접착액으로 보수하는 방법, 식량을 영양액으로 바꾸는 방법, 친위대를 먹이고 보호액으로 닦아 주는 방법까지…….

금세 하녀 개미가 하는 일 대부분을 숙지할 수 있던 나는 신입 개미에게 일을 가르치며 세 여왕 사이의 권력 구도를 알아봤다.

먼저 여왕 페르는 채집 팀과 공사 팀에 속한 개미와 가까이 지내서 식량 징발의 우선권과 둥지의 개발권을 가지고 있었고, 여왕 포스는 친위대를 비롯한 병정개미들과 친하여 상당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다.

스마트 퀸인 케어는 시녀장 일리아나를 비롯한 스마트 워커들이 극진히 챙겼지만, 팩토리 퀸과 자이언트 퀸에 비해 세력이 약했다.

셋의 관계는 나쁘지 않아 보였지만, 최근 들어 페르와 케어의 관계가 심상치 않았다.

“페르, 최근 둥지의 식량이 충분치 않아. 산란을 줄여 줘.”

“뭐? 산란을 줄이라고? 그게 여왕이 할 소리야?”

아직 임시 하녀 개미인 나는 식량을 분배하는 역할이라 허기짐을 느끼지 못했지만, 다른 개미들은 여왕을 우선적으로 먹이느라 배불리 먹지 못했다.

게다가 최근 들어 산란방으로 들어오는 식량이 줄고 있었다.

유입되는 식량이 줄어드니 산란량을 줄이자는 케어와 산란만큼은 절대로 멈출 수 없다는 페르.

두 여왕이 서로 대립하며 산란방의 분위기가 뒤숭숭해졌다.

‘파벌 싸움이라니.’

고래 싸움에 내 등이 터지지 않게 조심하며 새로 유입되는 신입 개미들에게 일을 가르쳤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내가 하던 일은 모두 신입 개미들에게 넘어가 있었다.

일을 모두 떨쳐 낸 나는 자유로운 백수가 됐지만, 먹이를 구하기 위해서 산란방을 떠나야 했다.

‘일단 둥지 내부를 확인하자.’

둥지 상황을 알고자 한 나는 사교위에 채운 식량으로 버티며 둥지를 탐험했다.

둥지의 통로 곳곳에선 천직을 얻지 못한 스몰 워커들이 굶주린 채 죽어 가고 있었다.

“일하고 싶어.”

“배고파.”

죽어가는 동족을 무시한 채 바깥으로 향하는 통로를 찾아 움직였다.

‘분명 위쪽에는 출입구가 있어.’

외부로 오가는 출입구와 가까워질수록 1차 진화종인 빅 워커가 많았다.

출입구에 도착하여 외부로 나가 보고자 했지만, 경비를 서던 빅 워커에게 제지당했다.

“아직 나가면 안 돼.”

“왜죠?”

“스몰 워커는 안전한 일부터 해야 해. 둥지 청소부터 시작해 봐.”

1차 진화종인 빅 워커가 되어야 나갈 수 있다니.

지금 둥지의 식량 사정상 둥지 청소만으로 충분한 식량을 분배받을 수 없었다.

‘어린 스몰 워커를 보호하려는 것 같은데. 이거 괜찮은 거 맞아?’

스몰 워커는 충분한 영양을 공급받지 못하면 진화할 수 없었다.

거기다 빅 워커로 진화하는 숫자가 적어지면 바깥으로 사냥 가는 인력이 줄어 식량 사정이 더 나빠질 것이고, 스몰 워커에게 분배되는 식량도 줄어들 게 뻔했다.

‘완전히 악순환의 고리에 빠졌구나.’

경비 개미도 그런 사실을 알고 있는지 오랫동안 굶주리거나 죽어가는 스몰 워커는 밖으로 나가게 해 줬지만…….

“저도 나가고 싶어요.”

“안 돼.”

“안에선 식량을 구할 수 없어요.”

“조금만 기다려 봐. 사냥하러 나간 개미들이 식량을 구해 올 거야.”

출입구를 바꿔 가며 경비 개미에게 요청해 봤지만, 내게서는 굶주려 지친 개미들이 풍기는 음습한 페로몬이 느껴지지 않아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밖에 나갈 방법이 없어.’

안 되는 것을 붙잡고 시간을 낭비할 만큼 나는 여유롭지 못했다.

‘이대론 굶어 죽는다!’

그러나 내가 어떤 상황에 빠져 있든지 시간은 멈추지 않았다.

이미 태어나서 지금까지 180일이 지났다.

스몰 워커가 가진 300일의 수명 중 절반 이상이 소진된 상황이었다.

아직 시간이 남아 있을 때 전에 빨리 진화해야 하는데…….

여왕 케어가 말하길, 충분한 식량을 섭취하면 높은 확률로 진화한다고 했지만, 지금 둥지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높은 확률이라.’

수명의 연장을 확률 같은 장난질에 기대야 한다니…….

물론 전생에 일할 때도 도박의 연속이었지만, 그저 확률에 기대기만 하는 건 내 방식이 아니었다.

일단 확률을 높일 방법을 찾아야 한다곤 생각하지만, 그전에 먹을 것부터 구하는 게 우선이었다.

‘더는 버틸 수 없어!’

그동안 파악해 둔 둥지의 구조를 떠올렸다.

지하 1층, 지하 2층, 지하 3층으로 나뉜 둥지.

지하 3층에는 산란방, 유충방이 있고, 지하 2층에는 넓은 통로와 창고, 쓰레기장, 무덤이 있었다.

지하 1층에는 총 7개의 출입구가 있고, 각 출입구 인근에는 식량 창고와 경비소가 있었다.

대략적인 둥지 내부 지도를 뇌리에 그린 나는 쓰레기장과 무덤이 있는 지하 2층으로 이동했다.

쓰레기장에는 개미족이 먹지 못하는 각종 광물과 뼈, 가죽이 쌓여 있었다.

내가 직립보행 개미였다면 이곳의 자원을 이용해 쓸 만한 도구를 만들 수도 있었을 텐데.

‘손이 없는 게 아쉬워.’

광물 중에는 푸른빛을 내는 것도 있었고, 간혹 붉은빛을 발산하는 보석도 있었다.

‘처음 보는 광물투성이야.’

이것저것 살펴보던 중, 붉은빛 광물이 들어 있는 괴생명체의 전신 해골을 발견했다.

‘이게 뭐지?’

큰 두개골과 작고 마른 신체의 뼈.

아무리 봐도 인간이 아닌 다른 이족보행 생물의 것이었다.

‘이거… 고블린은 아니겠지?’

쓰레기장의 물건들은 개미들이 먹지 못해 버려둔 것이지만, 21세기 인간의 관점으로 보면 쓰레기라 부를 만한 건 없었다.

‘보물창고가 따로 없네.’

철, 동, 은, 금과 같은 익숙한 광물도 보였다.

‘먹을 거… 먹을 거…….’

아무리 찾아봐도 식량이 될 만한 게 없어 다음 목적지인 무덤으로 이동했다.

‘이쪽인가?’

죽음의 페로몬이 짙게 풍기는 무덤은 개미들에게 꺼림칙한 느낌을 선사했고,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들었다.

‘어째서 다들 이곳을 피하는지 이유를 알겠어.’

치밀어 오르는 역겨운 기분을 무시하고서 무덤에 들어서니, 스몰 워커와 빅 워커의 사체로 가득한 공간이 나왔다.

상태가 온전한 사체도 있었지만, 검은 이끼와 균에 덮인 채 썩어 가는 사체가 대다수였다.

‘위생 관리가 전혀 안 되고 있네. 일단 정리부터 해야겠다.’

다행히 잠깐의 단잠만으로도 충분한 몸이라 밤낮없이 움직였다.

그러다 사체의 주변에서 자라는 검은 이끼를 찾아내서 더듬이로 탐색해 봤는데, 독성 물질은 느껴지지 않았다.

‘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독성이 없다는 건 알 수 있었지만, 둥지에서 아무도 검은 이끼를 먹지 않아 쉽게 입에 넣을 수 없었다.

‘확인해 보고 먹어야겠어.’

나는 검은 이끼를 긁어내 한곳에 모았고, 균사에 덮여 썩어 가는 사체를 땅에 묻었다.

썩은 사체를 묻어 준 후 이끼를 조금 떼어 내 산란방에 가져가 시녀 개미인 티아벨을 찾았다.

“저기, 이거. 먹을 수 있나요?”

“잠깐만…….”

이족보행 하는 스마트 워커인 티아벨은 한 쌍의 앞다리와 한 쌍의 중간 다리를 팔처럼 사용해 이끼를 요리조리 만져 보곤 말했다.

“이건 흑태야. 먹을 수 없으니 가져오지 않아도 돼.”

“먹으면 죽어요?”

“음… 죽진 않는데. 굉장히 맛이 없어. 궁금하면 한 번 먹어봐. 가끔 배고픈 개미들이 먹기도 해.”

지금은 맛을 가릴 형편이 안 돼서 흑태를 조금 먹어 봤다.

‘큭!’

충격적인 맛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맛이지?’

모래를 씹는 듯한 식감에 강렬한 악취까지 동반되니 몸이 절로 비틀어졌다.

‘독이 없을 뿐이지.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야!’

흑태로 배를 채우는 건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 둬야 했다.

다시금 무덤으로 돌아와 분류 작업에 힘썼다.

‘며칠이나 지났지? 이러다 굶어 죽겠는데…….’

한참 사체를 파묻으며 널려 있는 개미 사체도 단백질이란 생각이 들었다.

‘개미들도 타 군체의 개미는 먹으니까… 영양적인 문제는 없어.’

나는 곧바로 상태가 괜찮은 사체를 하나 골라 해부했다.

몸통을 가른 순간 물처럼 투명한 피가 흘렀고, 처음 무덤에 들어올 때 느낀 것처럼 강렬한 거부감이 들었다.

다행히 썩어가는 내장을 제거했더니 거부감이 반감됐다.

‘내장만 피하면 먹을 수 있겠어.’

동족 포식 행위는 전염병과 기생충에 감염될 위험에 노출되지만, 지금 나는 굶어 죽기 직전이라 뭐든 가릴 상황이 아니었다.

외골격에서 살점을 떼어 내고 먹어 보려 했지만, 입으로 가져갈 때마다 몸이 절로 멈췄다.

‘몸이 말을 안 듣잖아!’

거부감을 일으키는 죽음의 페로몬이 문제인 듯하여 살점을 따로 모아 소화액을 듬뿍 뿌렸다.

입안에 넣을 수 없다면 파리처럼 액화시켜 빨아 먹을 생각이었다.

‘이게 되네.’

계획은 성공적이었다.

액화한 동족의 살점을 섭취하여 영양을 보충할 수 있었다.

‘살았다!’

계속해서 동족들을 해부하다 보니, 빅 워커의 몸에 박혀 있는 붉은빛 돌멩이를 발견했다.

‘이건 뭐지? 쓰레기장에 있던 붉은빛 돌멩이와 비슷해.’

왠지 심상치 않은 느낌의 돌멩이를 들고서 다시 한번 산란방의 티아벨을 찾았다.

“이게 뭔지 아시나요?”

“이건 마석이야. 개미족은 1차 진화종부터 가슴에 품고 있어.”

“먹을 순 있나요?”

“절대 안 돼!”

티아벨의 반응에 흥미가 생긴 나는 마석을 먹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 물어봤다.

“죽어.”

티아벨이 겁을 주듯 말을 이었다.

“마석을 소화하면 강해진다는 괴소문이 있긴 하지만, 그건 평범한 알에서 자이언트 워커가 태어나는 수준의 기적이야!”

알에서는 스몰 워커만 태어날 뿐이지 자이언트 워커가 태어날 수는 없다.

그러니 마석을 먹고 강해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란 뜻이었다.

“그렇군요.”

활용 방안이 없기 때문에 마석도 쓰레기처럼 버려졌지만, 나는 이게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이건 에너지를 저장하는 건전지 역할일 거야.’

외골격을 가진 곤충은 같은 크기의 포유류보다 근육량이 적다.

게다가 기문 호흡을 하는 곤충은 몸이 커질수록 산소를 전신에 공급하는 게 어렵다.

즉, 거대한 개미가 움직이기 위해서는 이런 물리적인 문제를 극복해야 하는데, 이 마석이 해결책이 된 듯했다.

‘곤충인 개미는 똥을 싸지만, 개미족이 된 이후로 나는 똥을 싼 적이 없어. 소화 기능이 발달해 있다는 거지. 만약 신체 활동에 쓰이는 열량 이상을 섭취하면 잉여 에너지가 신체에 남게 될 거고, 그 에너지가 뭉친 형상이 마석일 거야.’

21세기 인간이었을 적의 상상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얻게 된 가설이었다.

‘확인해 봐야겠어.’

무한자원 개미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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