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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자원 개미군단-5화 (5/189)

5화. 첫 진화

“네 수명은 30일 정도 남았단다.”

여왕 케어에게 2연격을 맞았다.

‘30일밖에 안 남았다니!’

“경비병들도 네가 밖에 나가는 걸 막진 않을 거란다. 그러니 사냥과 채집으로 시간으로 보내도 되고, 정찰을 나가도 되니, 하고 싶은 일을 하렴…….”

“저… 사냥과 채집을 하면 30일은 살 수 있는 건가요?”

“아니, 활동량에 따라 수명이 단축될 거야.”

“아…….”

“조금 무리하더라도 7일은 충분히 살 수 있을 거란다.”

나는 벼랑 끝에 몰린 심정 그대로 우울감 가득한 페로몬을 풍기며 무덤으로 돌아왔다.

이제 남은 시간은 7일에서 30일.

죽음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도 부족한 시간이었다.

‘이대로 죽을 순 없어. 마석을 만들어야 해!’

내가 살 수 있는 길은 이제 하나뿐이었다.

호흡과 명상을 통해 마력이라고 불리는 기운에 집중했다.

‘내면에 집중해야 해.’

몸속에 떠도는 마력에 집중하다 보니, 마력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빠른 놈, 느린 놈, 가벼운 놈, 무거운 놈, 착한 놈, 칙칙한 놈…….

같은 놈들끼리는 뭉쳐서 하나가 되는 경우가 많았고, 다른 놈들끼리는 서로를 밀어내거나 충돌하여 소멸하는 경우가 많았다.

‘규칙이 있어.’

서로 다른 성질의 마력끼리는 뭉치질 못하니, 아무리 많은 마력을 지니고 있어도 마석을 형성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해!’

나는 제일 많이 흡수되는 칙칙하면서도 진득한 마력에 의식을 집중했다.

‘칙칙한 놈, 너로 정했다!’

며칠간 노력 끝에 칙칙하면서도 진득한 마력을 조금씩 제어할 수 있게 된 나는 가슴 쪽으로 모아 하나의 덩어리를 만들려 했지만, 집중이 끊어질 때마다 마력이 흩어지는 바람에 일정 이상 크기로 만들 수 없었다.

‘대충 알겠어. 의식을 마력과 연결하는 거야.’

마력은 몸속을 움직이면서 같은 계열의 마력과 만나 덩치를 키우고 다른 계열의 마력과 만나 상쇄되어 줄어들기를 반복했다.

‘마력이 움직일 수 있는 길을 만들어야 해.’

제어된 마력을 움직여 신체 내에 흩어져 있는 같은 계열 마력을 모으는 것과 동시에 타 계열 마력을 몰아내거나 없앴다.

타 계열의 마력이 줄어들수록 마력이 다닐 수 있는 길이 넓어졌고, 집중이 끊어질 때까지 모을 수 있는 마력의 최대치도 증가했다.

‘검은색인가?’

각기 다른 성질을 가진 마력에 색이 있다면, 내가 선택한 마력은 짙은 흑색이 아닐까 싶었다.

일시적으로 모을 수 있는 마력이 늘어갈수록 담아둘 수 있는 저장소가 없다는 게 아쉬웠다.

‘작아도 좋으니 마력을 저장할 기관이 필요해.’

끌어모은 마력을 젖 먹던 힘을 다해 가슴 쪽에 잡아 뒀지만, 집중이 끊길 때마다 금세 흩어지는 게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같았다.

그나마 도전 횟수가 늘어 갈수록 마력이 흩어지는데 걸리는 시간이 조금씩 늦어지고 있다는 걸 감지했다.

‘된다! 미량이지만 가슴에 담아둘 수 있겠어!’

작은 가능성을 확인한 나는 남은 시간 전부를 쏟아부었다.

무아지경에 빠진 난 가슴 주변의 흑색 마력을 끌어모아 하나의 알갱이로 압축해 갔다.

뭔가가 만들어지려던 찰나, 뇌리가 번쩍이더니 의식을 잃었다.

***

산란방의 여왕들은 각자 특별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팩토리 퀸인 페르는 탁월한 페로몬 제어력과 많은 산란량으로 매혹왕이라고 불렸다.

“오늘도 둥지 내의 페로몬은 정상이네~”

자이언트 퀸인 포스는 뛰어난 무력을 가져 무왕이라 불렸다.

“제르다코 친위대의 훈련을 봐 주마!”

“감사합니다. 포스님!”

스마트 퀸인 케어는 감정 능력이 있어 상대의 능력치와 수명을 알아볼 수 있었고, 그 능력을 활용해 어린 개미들에게 천직을 알려주기도 하여 지혜로운 현왕이라 불렸다.

“넌 땅을 잘 파니 공사 일을 해 보렴.”

“네! 감사합니다. 케어님!”

케어가 무덤에서 지낸다는 48,726을 신기해 할 무렵.

‘어떻게 된 거지? 무덤에 지내는 게 쉽지 않을 텐데?’

그러던 어느 날 케어는 48,726과 어린 스몰 워커들의 대화를 듣게 됐다.

“무덤 청소는 어렵지 않아. 거부감만 저항하면 돼. 영양을 구하는 것도 마찬가지야.”

48,726이 스몰 워커들에게 본능을 저항하는 방법을 알려 줬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

케어는 48,726의 이야기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걸 알면서도 실제로 48,726이 해낸 일이라 혼란스러워졌다.

‘저놈, 도대체 뭐지? 특수 개체인가?’

케어는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48,726을 감정해 봤다.

그의 능력치를 확인한 케어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능력치가!’

며칠 사이에 급성장한 48,726은 이미 빅 워커 수준의 신체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도대체 그동안 뭘 한 거야?’

48,726을 본 케어는 무왕이라 불리는 포스의 과거 모습을 떠올렸다.

‘녀석도 이 정도는 아니었을 텐데…….’

거기다 지능과 정신력만큼은 2차 진화종인 스마트 워커들과 비견될 수준.

‘대단해! 이런 아이는 처음이야.’

그러나 케어는 너무나 뛰어난 48,726의 능력치에 중요한 사실을 잊고 말았다.

상대가 페르 공인 불량 개미라는 것을…….

‘아! 수명이 30일밖에 남지 않았어.’

20년간 축적된 케어의 경험상 이만큼 성장했음에도 진화하지 못했다는 건, 애초에 진화할 수 없다는 걸 의미했다.

‘안타까워…….’

케어는 48,726에게 현실을 알려 줬다.

현실을 알게 된 48,726은 우울해하며 산란방을 떠났다.

‘남은 시간을 유익하게 보내거라.’

“불량이 녀석, 조만간 진화할 것 같은데?”

페르의 말에 케어가 고개를 저었다.

“어려울 거야.”

“어? 진짜? 내가 불량이라고 하긴 했지만, 지금은 좀 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마도…….”

“페로몬만 봐도 성장한 게 느껴지는데… 진화할 수 없다니 아쉽네.”

케어를 비롯한 산란방의 개미들은 현실을 알게 된 48,726이 정찰 같은 위험한 일로 마지막 생을 불태울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생을 불태우기는커녕 무덤에 틀어박혀 움직임을 최소화했다.

‘이상하군… 이런 개미는 처음이야.’

조금이라도 오래 살기 위한 발버둥.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개미족에게서는 보기 드문 반응이었다.

며칠이 지나고 48,726의 기행이 잊혀 갔다.

“왜 영양이 이것밖에 없는 거냐고! 너희들, 제대로 일하는 거 맞아? 사냥 개미들 다 불러와! 한마디 해야겠어!”

둥지의 식량난이 극심해지며 페르의 히스테리도 차츰 심해졌다.

“페르님, 잠시만 참아 주세요. 제가 상황을 알아볼게요!”

일리아나가 하녀 개미들을 보내 바깥의 상황을 파악했다.

“인근 고블린 촌락과 먹이 경쟁을 하면서 식량 수급에 차질이 생긴 것 같아요.”

일리아나의 보고에 세 여왕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고블린? 그거 쓸어버리면 되지 않아?”

“고블린의 수는 어떻게 되지? 홉고블린은? 주술사는 몇이나 되지?”

페르는 빅 워커 수준의 고블린을 가볍게 생각했고, 포스는 상대 전력을 파악하려 했다.

고블린 촌락을 토벌하려는 두 여왕과 달리 케어는 다른 주장을 했다.

“고블린이 문제가 아니야…….”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럼 뭐가 문제라는 거지?”

페르와 포스가 동시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표정으로 케어를 주시하자, 케어가 바닥에 선을 그으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식량 수급량은 꾸준히 늘었어. 지금 식량이 부족한 건 수급량이 부족해서가 아니야.”

케어가 페르를 지목하며 말했다.

“소비량이 급증해서지.”

“지금 내 탓이라는 거야?”

“이대로 무작정 수를 불린다면, 채집과 사냥만으로 너의 산란량을 감당할 수 없어!”

케어의 말에 페르가 격분했다.

“그러니까… 네 말은 내가 알을 많이 낳아서 식량이 부족해졌다는 거야? 식량을 제대로 못 구해 온 워커들을 탓해야지! 여왕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나 때문이라고!”

페르의 분노에 맞서서 케어 또한 물러서지 않았다.

“고블린 토벌보다 시급한 건, 페르! 너의 무리한 산란을 멈추는 일이야! 그렇지 못하면 아무리 많은 식량이 있어도 네 배를 채울 수 없어!”

잠시 흥분한 케어가 페로몬을 차분히 가라앉히고서 말을 이었다.

“네가 배고픈 만큼 아이들이 굶주릴 거고, 식량을 조달해 올 아이들이 약해진다는 걸 알아 줘.”

“하지만… 난 여왕의 의무를…….”

“그 잘난 여왕의 의무가 둥지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고!”

말로써 현왕 케어를 이길 수 있는 개미는 둥지 내에선 없었다.

언쟁의 승패가 갈리면서 케어에게 동조하는 워커들이 늘어났다.

원치 않은 상황에 몰린 페르.

케어와 대치를 이어가던 페르는 뭔가를 느끼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네?”

“끝까지 고집부릴 거야?”

“고집? 아니. 애초에 날 따르는 워커들이 훨씬 많아. 내가 승복하지 않으면 네 주장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지.”

페르가 승복하지 않을 거라는 건 케어도 예상했다.

케어는 이대로 워커들을 선동해 페르의 산란량을 억제할 생각이었는데…….

이어진 페르의 엉뚱한 말에 케어가 당황하고 말았다.

“너, 48,726이 진화할 수 없다고 하지 않았어?”

“갑자기 그건 왜?”

“그 녀석, 페로몬이 변했는데?”

“그게 무슨 말이야?”

“불량이의 페로몬이 변했다고.”

페르의 지시로 하녀 개미 하나가 48,726을 무덤에서 데려왔다.

평범한 빅 워커들은 검은색 외골격에 갈색 무늬를 띄는데, 48,726은 검은색 외골격에 검은색 무늬를 가져 페르가 어리둥절해 했다.

“불량아! 너, 진화했구나!”

포스는 48,726의 특이한 형태에 관심을 보였고, 케어는 놀람 가득한 페로몬을 두른 채 굳어 버렸다.

장내의 개미들도 48,726의 특이한 모습에 의문을 표했다.

“그런데 뭐로 진화한 거야? 빅 워커도 아니고… 턱이 발달하지 않은 걸 보면 시절 워커도 아닌데…….”

한동안 48,726을 유심히 관찰하던 페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포스가 말했다.

“작게 진화했군. 배의 무늬 색도 갈색이 아니고…. 영양 부족인가?”

아무도 48,726가 무엇으로 진화했는지 모르자, 케어가 당황하며 말했다.

“다들 놀라지 말고 들어. 저건… 블랙 워커야!”

케어의 말에 장내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한동안 침묵이 흐르던 산란방.

페르가 산란방의 고요를 깨트렸다.

“블랙 워커? 그건 뭐야? 일리아나, 넌 아니? 친위대인 제르다코는?”

“저도 잘…….”

시녀, 하녀, 친위대 개미들도 모르는 눈치였지만, 케어는 여왕인 페르가 블랙 워커를 모른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설마 포스도 모르는 건 아니지? 블랙 워커라고! 공주 때 배웠을 거 아니야?”

“음… 생각날 것 같기도 한데…….”

케어는 자신의 실수를 깨우쳤다.

꽃밭뇌와 근육뇌가 여왕 수업을 기억하고 있을 리가 없었다.

사정상 알고 있는 모든 걸 말해 줄 수 없던 케어는 산란방의 개미들에게 블랙 워커에 대한 특징을 최소한으로 알려 줬다.

“블랙 워커는 능력치가 균형적으로 높고, 마법 내성과 속성 내성이 높아.”

블랙 워커는 내성이 높기에 상위종의 페로몬 제어가 통하지 않았고, 블랙 워커 출신은 동족을 죽이는 미친 개미가 많아 재앙종이라도 불렸다.

케어는 그러한 정보를 개미들에게 말해 주지 않았다.

감정으로 본 48,726의 능력치가 매우 높아 군체에 큰 이익을 가져다 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성이 있어 상위종의 페로몬 제어가 통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페르의 특출난 페로몬 능력이라면 제어할 수 있다고 봤다.

‘뭐… 미친 개미가 되더라도 포스와 제르다코가 있으니까.’

즉, 로우 리스크 하이 리턴.

케어는 블랙 워커의 장점만을 소개하여 48,726이 개미들의 환영을 받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서로가 몸을 비비는 페로몬 교환이 끝나고, 1차 진화 기념으로 새로운 이름과 무덤지기란 직책을 만들어 줬다.

“무늬도 새까만 색이니까. 다크!”

페르가 특징을 따서 이름을 지어 줬다.

그렇게 숫자로만 불리던 48,726은 무덤지기 다크가 됐다.

무한자원 개미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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