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달이 두 개였다
의식을 잃은 나는 깨어난 순간, 가슴에 형성된 마석을 느꼈다.
‘진화했어!’
진화의 기쁨으로 북받치던 흥분은 오래가지 않았다.
개미족이 된 후로 격한 감정은 금세 가라앉고, 차가운 이성이 그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살았다…….’
차분해진 나는 본능적으로 마력에 집중했다.
텅 빈 마석을 채우기 시작한 나는 진화 전과는 차원이 다른 제어력에 살짝 놀랐다.
‘표피 근처에 떠도는 흑색 마력이 느껴져.’
나는 편의상 흑색 마력을 흑마력이라 지칭하기로 했다.
감각이 확장되면서 호흡을 통한 흡수 능력도 좋아졌지만, 가장 발전한 부분은 예전처럼 무작위로 마력을 흡수하는 게 아니라 선택 흡수가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그동안 불필요한 마력까지 함께 흡수하는 바람에 상당한 시간과 마력을 소모해 가며 처리해야 했는데, 선택 흡수가 가능해지면서 체내로 흡수된 마력을 나의 마력으로 변환하는 공정이 간소화됐다.
이는 마력 제어의 혁신과 다르지 않았고, 효율로 치면 스무 배… 아니, 그 이상의 결과를 보여 줬다.
‘마석이란 기관도 있고 없고가 천지 차이야.’
마석이 생긴 이후로는 집중이 끊길 때마다 흩어지던 마력을 보관할 수 있게 됐다.
보관이 가능해지니 틈틈이 마력을 체내에 굴리는 것만으로 마력 총량이 증가했다.
‘몸도 좀 커졌고 날렵해졌어. 외골격도 검게 변하며 단단해졌고, 더듬이도 길어진 것 같아… 어, 무늬가 흑색인걸?’
진화한 자신에 대해 파악해 가던 중, 스몰 워커 하나가 날 찾아왔다.
“축하해요, 48,726님. 진화하셨군요! 페로몬이 전보다 멋져졌어요.”
“엇, 그래?”
스몰 워커가 인사해 오며 더듬이를 내밀곤 페로몬 교환을 요청했다.
페로몬 교환을 통해 상대가 산란방의 임시 하녀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작은 게 귀엽네…….’
회색에 갈색 무늬의 스몰 워커가 귀여운 여동생처럼 느껴졌다.
‘이것도 개미족의 감각인가?’
페로몬 교환을 통해 상대도 나에 대해 파악이 끝냈을 테지만, 고개를 한참이나 갸웃거리더니 생각하길 포기한 채 본연의 임무를 수행했다.
“전 임시로 하녀 일을 맡은 48,877이에요. 페르 님의 지시로 48,726님을 데리러 왔어요.”
“알았어.”
굳이 안내가 필요 없음에도 앞장서는 스몰 워커.
꼬마 개미의 귀여운 뒷모습을 쫓다 보니 산란방에 도착했다.
페르가 날 보며 어리둥절해 했고, 케어는 매우 놀란 눈치였다.
다들 내가 무슨 종으로 진화했는지 모르는 듯했는데, 여왕 케어가 블랙 워커라고 알려 주며 간략한 설명을 해 줬다.
내가 진화한 블랙 워커는 균형적으로 높은 신체 능력과 속성 내성을 가지고 있었다.
‘나쁘진 않아.’
개미족은 물리적으로는 튼튼하고 강하지만, 열기, 냉기, 전기, 독… 등등 약점이 많았다.
그런 면에서 속성 내성이 강하다는 건 약점이 없다는 말이었으니.
바퀴벌레 이상의 생존력을 갖춘 것과 다르지 않았다.
‘어둠 속성의 생존 특화종이라니.’
1차 진화를 하게 되면 여왕들이 직책과 정식 이름을 지어 줬다.
무덤지기 다크.
내가 받은 직책과 이름이었다.
마무리로 산란방 개미들과 페로몬을 교환했고, 하녀들이 주입하는 영양을 조금씩 받아먹었다.
이렇게 특수 개체로 진화한 나를 위한 행사가 끝나자, 여왕 페르와 케어가 식량 부족 문제로 다투기 시작했다.
“솔져들이 고블린만 처리해 주면 아이들이 알아서 식량 문제를 해결해 줄 거야! 그러니 더는 내 산란에 관여하지 마!”
“그렇지 않아. 지금 상태로 가다간… 멸망할 거라고!”
“케어, 다크를 봐. 쟤는 식량도 부족한 지금 같은 상황에서 진화까지 했어. 다크의 존재가 네가 틀릴 수 있음을 증명한 거야!”
나는 왜?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듯 내 등이 터지게 생겼다.
무슨 상황인지 궁금하여 티아벨을 톡톡 두드려 불렀다.
“식량은 부족한데 페르 님의 산란량이 많아져서 그래. 페르 님이 산란하는 만큼 워커들에게 갈 식량이 줄거든…….”
소비량이 생산량을 초과하면서 긴축을 원하는 케어와 과감한 영역 확장을 통해 식량 확보량을 늘리고자 하는 페르가 대치한 상황이었다.
“티아벨 시녀님은 어떻게 생각해요?”
“음… 잘 모르겠어. 굶어 죽는 워커를 줄이는 것과 새 워커를 늘리는 것 중에 뭐가 더 이익일까?”
“네?”
티아벨의 기계적인 답변에선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았다.
‘개미들은 목숨을 단순한 숫자로 여기고 있어.’
그들은 동족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았다.
1을 버려 5를 얻는다면 기꺼이 1을 버리는 사고방식.
‘집단주의인가?’
극단적인 집단주의인 개미족은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인권조차 신경 써줄 필요가 없어 경영자 입장에서 보면 굉장한 자원이었다.
‘유용한 친구들이야.’
어찌 됐든 영향력이랄 게 없는 내가 산란방에 있어 봐야 식량난을 해결해 줄 순 없으니, 불똥이 튀기 전에 빠져나왔다.
무덤으로 돌아온 나는 한동안 평소와 같은 일상을 이어가며 체내에 마력을 순환시키는 길을 만들었다.
일정한 루틴으로 순환시키다 보면 마력의 이동속도가 높아지면서 마력의 증가 속도도 빨라졌다.
그렇게 마력을 순환시켜 텅 비어 있던 마석을 빠르게 채웠다.
한참을 마력 운용에 빠져 있다 보니, 허기짐이 느껴졌다.
“다크 님! 먹을 거 챙겨 왔어요!”
“음… 너도 허약해 보이는데, 잘 먹고 다니냐?”
“전… 괜찮아요! 어차피 오래 못 살 거라… 이렇게 1차 진화종님의 식사를 챙겨 줄 수 있어 영광이에요.”
“그래…….”
“더 안 드세요?”
“아니… 배가 불러서. 나머지는 네가 먹어.”
“아니에요. 남은 건 여왕님 가져다 드려야죠.”
가끔 무덤지기인 날 챙기려는 어린 워커들이 있었지만, 날 챙겨 주던 워커들은 하나둘 굶어 죽었고, 군체의 식량 사정이 안 좋아지면서 내게 오는 보급도 끊겨 버렸다.
뭐, 사실 보급이 안 와도 상관없었다.
굶어 죽은 스몰 워커를 주식으로 삼아 배를 채우고 있으니까.
‘다음 생에는 오래오래 살아라.’
나는 스몰 워커의 외골격과 애벌레 소화액을 활용하여 최하급 외골격 강화액을 만들 수 있었는데, 블랙 워커가 되고 나니 강화액의 효과가 이전 같지 않았다.
‘이제는 빅 워커 사체를 써서 만들어야 효과를 볼 수 있겠어.’
쓸모가 없어진 최하급 외골격 강화액의 수분을 빨아들여 장기 보존이 가능한 환 형태로 만들었다.
‘말 잘 듣는 귀여운 꼬마들에게 하나씩 줘야겠다.’
내가 1차 진화종이라지만 둥지의 모든 스몰 워커가 귀여운 건 아니었다.
“다크 님, 왜 무덤에서 일해요? 1차 진화종인데 일감을 못 찾으신 건가요? 혹시 잉여세요?”
“저리 가라. 휙! 휙!”
개미족에게도 직업의 귀천이 있는지, 무덤지기인 날 무시하는 스몰 워커들이 많았다.
꼬마 개미에게 무시 받아 봐야 상처가 되진 않는다.
‘어휴, 바보들아… 나한테 잘 보여야 떡이라도 하나 더 줄 텐데.’
그저 귀엽게 생긴 녀석들의 귀엽지 않은 행동이 안타까울 뿐.
먹이 걱정이 없어 살아가는데 아무런 불편이 없었지만, 한 가지 아쉬운 건 1차 진화종의 수명이었다.
‘1500일이란 말이지…….’
약 4년 남짓한 수명.
4년 동안 무덤에 틀어박혀 동족 시체나 뜯어먹고 살기에는 내가 전생에 쌓아온 스펙이 아까웠다.
‘한 번 더 진화하면 20년은 살 수 있다고 했어.’
만약 운 좋게 3차 진화까지 이루면 100년도 넘게 살 수 있다고 했다.
한동안 진화를 목표로 살아야겠지만, 일단 미뤄둔 일부터 처리하기로 했다.
‘밖의 상황을 파악해 둬야 해. 그래야 내가 처한 상황을 알 수 있을 테니까.’
미로와도 같은 통로를 지나 출입구에 도착했다.
출입구 근처에선 늙은 빅 워커들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경비들은 어린 스몰 워커들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막거나 침입자와 맞서 싸우는 역할이었다.
난 스몰 워커에서 벗어난 지 한참이라 외부 출입이 자유로웠다.
“너는?”
“다크.”
“1차 진화종이군. 바깥으로 나가려고 하나?”
“어.”
“그럼, 좋은 성과 있길 바라네.”
출입구를 통해 밖으로 나왔다.
푸른빛으로 빛나는 광물이 은은히 비치는 지하 밖의 세상은 너무도 눈부셨다.
‘앗! 내 눈!’
눈부신데 눈을 감을 수 없다니.
전생의 눈이 그리워졌다.
빛에 어느 정도 적응하고 주변을 살펴봤다.
‘아무것도 안 보이잖아!’
시야 범위가 짧은 개미의 눈은 장식과 다르지 않다.
빛에도 민감해서 없느니만 못한 기관이었다.
눈은 장식이니 더듬이 감각에 의존하여 사물을 파악해야 하는데, 탁 트인 공간에선 더듬이의 성능이 떨어졌다.
‘희미해! 희미하다고!’
바람까지 불어오면… 세상을 희미하게 보는 근시가 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근시라도 눈앞에 뭐가 있는지 정도는 알 수 있었다.
‘흙은 제대로 쌓아 뒀네.’
출입구에 해당하는 개미굴은 빗물이 들어오지 못하게 개미들이 흙을 쌓아 언덕으로 만들어 뒀다.
떨어진 이파리들을 보면 활엽수도 있고 침엽수도 있었지만, 활엽수가 좀 더 많은 편이었다.
습도가 높고, 온도 역시 후덥지근한 게 여름의 초입쯤으로 느껴졌다.
‘물론 여기가 아열대 기후라면 말이지.’
저하된 더듬이 감각과 장식품인 눈으로 세상을 탐험하면 매우 위험할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페로몬 만만세다!’
먼저 외부에서 활동하던 개미들이 페로몬 표식을 곳곳에 남겨 뒀고, 더듬이는 먼 거리에 남겨진 페로몬 표식도 쉽사리 인식할 수 있었다.
[돌] [나무] [먹이] [사냥했던 곳] [먹을 수 있는 풀] [먹을 수 없는 풀] [안전한 길] [위험한 길] [위험한 토끼 잡았던 곳] [위험한 쥐 잡았던 곳] [위험한 멧돼지 다니는 곳]
주변에 가득한 페로몬 표식을 주의하면 위험할 일도 없었다.
표식에 신경 쓰며 주변을 돌아다녀 봤다.
전생 때 개미 채집으로 각지의 숲을 돌아다녔고, 20년간 문어발식으로 확장해 간 선식 회사를 경영하며 산업에 활용되는 동식물은 빠삭하게 알고 있었다.
‘문제는 내가 사람이 아니라는 거야.’
사람에게 유용하다고 해서 개미족인 내게 유용할 거란 보장은 없었다.
벌레나 동물이 먹는다고 식용인 줄 알고 먹었다가 위기에 처한 등산객들도 꽤 많았다.
게다가 지구의 개미가 무엇을 먹고, 무엇을 피해야 하는지는 알지만, 거대 개미의 섭취 메커니즘상 내가 알던 개미와 같다고 볼 수 없었다.
‘어떻게 구별하지?’
숲에서 내게 유용하게 쓰일 자원을 어떻게 구분해야 할지 고민했는데, 기우에 불과했다.
‘다행이야. 뭘 채집해야 할지 바로 알겠어.’
더듬이로 살펴보면 개미족인 내가 먹을 수 있는지 없는지 판단됐고, 어느 정도 영양 가치가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먹을 수 있는 식물들은 영양적으로 가치가 떨어지는 게 대다수였고, 개미족의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되지 않았는지 아무리 더듬어도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도 많았다.
‘이건 참나무인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전생에 쌓아 온 지식이 있어 대부분의 식물을 구분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알고 있는 식물보다 생소한 식물이 더 많았다.
‘지하의 빛나는 광물도 그렇고 아직 모르는 게 많구나…….’
돌아다니며 페로몬 표식 수준이 아쉬웠던 나는 페로몬 덧칠로 주석을 달았다.
[쓸모없는 돌] [단단한 돌] [비싼 돌] [모르는 풀] [잡초] [독초] [약초] [색깔 있는 풀] [큰 나무] [아주 큰 나무] [이럴 수가… 이건 너무 크잖아! 나무] [잘 썩은 나무] [먹을 수 있는 버섯] [먹을 수 없는 버섯]
눈부신 햇살을 피해 탐색하다 보니, 어느덧 해가 지고 달이 나왔다.
‘흠… 두 개네. 아무리 봐도 두 개야.’
희미하게 보이지만, 확실히 두 개였다.
‘달이 두 개니까… 이족보행 돼지인 오크도 있으려나? 그러고 보니 쓰레기장에 고블린 뼈다귀 같은 게 많던데… 개미족 주식이 고블린인가?’
하늘에는 달이 두 개고 지하에는 빛나는 광물이 있고, 땅 위에는 생소한 동식물로 가득하다.
‘생물의 몸에 마석이란 돌멩이가 있고 말이지.’
아무래도 나는 판타지 풍 세계의 개미 몬스터로 환생한 듯하다.
[위험] [위험] [위험]
밤이 되니 위험 표식이 많아졌다.
‘일단 둥지로 돌아가자.’
인근 출입구를 찾아 들어갔다.
둥지로 들어가니 해체 개미와 운반 개미들이 날 반겨 줬다.
“해체할 게 있나요?”
“운반할 게 있나요?”
“미안! 빈손이야.”
빈손이라 말해 주니 시무룩해 하며 흩어졌다.
무덤으로 돌아와 늘어난 시체를 살피던 중, 미약하게 살아있는 스몰 워커를 발견했다.
“더 일할 수 있어요…….”
죽기 직전의 개미는 많이 봤지만, 삶에 미련을 보이는 개미는 처음이었다.
무한자원 개미군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