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부하 그리고 고블린
죽어가는 스몰 워커를 더듬이로 확인해 봤다.
외상이 없는 걸 보아 아사 직전인 것 같았다.
영양만 충분히 나눠 준다면 살릴 수 있다고 판단한 나는 사교위에 저장해 둔 영양을 스몰 워커에게 주입했다.
“먹어 둬.”
한 입 받아먹은 스몰워커가 화들짝 놀라더니 영양을 돌려주기 시작했다.
“저… 죄송해요. 몸이 말을 듣질 않아요. 제게 영양을 주셔도 운반해 드릴 수 없어요.”
일하지 않으면 밥도 주지 않는 곳이라, 대가 없는 영양은 처음 받나 보다.
“너, 살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
“네. 하지만… 저 같은 건 살아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이름은?”
“48,888입니다…….”
팔이 많아 팔팔이라고 부르기로 한 나는 그의 의사와 상관없이 영양을 주입했다.
“마침 나도 조수가 필요하던 차야. 나랑 같이 일해 볼래?”
나의 제안에 팔팔이의 페로몬이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저… 잉여 개미인데… 도움이 될까요?”
“조금 전까지는 잉여였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내가 널 필요로 해. 그러니 네가 승낙하면 잉여에서 내 조수가 되는 거야.”
팔팔이의 페로몬이 격하게 요동쳤다.
이는 개미족의 감정이 격해질 때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할게요! 조수! 뭐든 시켜 주세요!”
혼자서 심심하던 차에 공짜 일꾼을 획득했다.
“그럼 주는 것 좀 잘 받아먹어!”
“네!”
제대로 받아먹지도 못하던 팔팔이가 최선을 다해 영양을 받아 넘겼다.
“네가 첫 번째로 할 일은 몸을 회복하는 거야. 그래야 내 일을 도울 수 있을 테니까.”
“네!”
시간이 흐르고, 기력을 회복한 팔팔이가 물었다.
“저! 뭐부터 하면 될까요?”
“넌 아직 회복된 지 얼마 안 됐어. 조금 더 쉬어 둬, 이거 먹어 두고.”
“네…….”
처음부터 너무 강도 높게 굴리면 견디지 못할 것 같아 회복에 집중시켰다.
개미족은 쉬는 만큼 자존감이 떨어지는 것인지 팔팔이는 놀고먹는 걸 괴로워했다.
‘신기하네…….’
팔팔이는 내가 하는 무덤 정리 일을 해 보려 했지만, 본능을 극복하지 못하여 무덤 일을 할 수 없었다.
“흑흑…….”
개미족도 울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신기하네…….’
슬슬 일을 시켜볼까 하던 때에는 이미 팔팔이의 자존감이 바닥을 뚫고서 지하 암반에 도달해 있었다.
“죄송해요. 저 때문에 귀한 영양이 낭비돼서… 그냥 조용히 죽었어야 했는데…….”
“그럼 이제 몸도 회복됐을 테니, 슬슬 일해 볼까?”
“정말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인가요?”
며칠 전 밖에 나가 보니, 개미들이 취급하지 않는 채집품들이 꽤 많았다.
‘노다지였단 말이지.’
한동안 채집에 전념하고 싶었지만, 무덤과 밖을 오가며 채집한 식량의 영양화를 해야 하고, 동족의 마석 가루와 외골격 가루를 애벌레 소화액으로 녹여야 해서…….
‘시간이 부족했지.’
만약 팔팔이가 둥지 입구와 무덤을 오가며 내가 채집한 식량을 영양화해 준다면 효율이 네 배 이상 오른다.
거기다 마석 가루와 외골격 가루의 영양화까지 도와준다면, 내가 할 일이 대폭 줄어드니 활동 반경을 확대할 수 있었다.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하나씩 알려 주자, 팔팔이가 조심스럽게 더듬이를 내밀었다.
“…다크 님, 밖에 다녀오실 거라면… 직속 관계를 맺어 주시면 안 될까요?”
“그게 뭐야?”
“그게… 저야 다크 님이 다크 님이란 걸 잊을 리가 없지만, 저는 스몰 워커라 상위종 언니들과 인사하다 보면 페로몬이 섞여서 다크 님이 절 못 알아보실 수도 있고… 저와의 연결을 돈독히 해 주신다면… 아니에요. 저 같은 거랑 직속 관계를 맺어 봐야…….”
우물쭈물.
그러니까 내 부하가 되고 싶다는 말을 빙글빙글 돌려 말하는 것 같았다.
“넌 이미 내 부하야!”
나는 본능적으로 팔팔이의 더듬이를 내 더듬이와 엮어 페로몬을 긴밀히 나눴다.
한참이나 페로몬을 나누자 서로의 관계가 명확히 정립됐음을 느꼈다.
‘이게 개미식 고용계약인가?’
의식이 끝나자 팔팔이의 상태가 페르몬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해졌고, 서로가 긴밀히 연결됐음 느꼈다.
“고마워요, 다크님! 이 은혜 절대 잊지 않을게요!”
팔팔이는 뭐가 그리 좋은지 뛸 듯이 기뻐했다.
‘나와 팔팔이가 뭔가로 연결돼 있단 말이지…….’
직속 관계가 무엇인지 상세히 알고 싶었던 나는 산란방의 티아벨을 찾았다.
타이밍이 안 맞았는지 티아벨이 친위대인 자이언트 솔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 다른 시녀 개미에게 물어봤다.
“직속 관계? 그거야…….”
시녀 개미의 설명에 따르면, 1차 진화종은 다섯 마리와 직속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한다.
“스마트 워커인 나는 2차 진화종이라 열 마리와 맺을 수 있어.”
상위종일수록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대상의 숫자가 많았다.
“보통은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맺지만, 가끔 어린 스몰 워커를 가르칠 때 맺어 주기도 해.”
동급과 맺으면 파티 관계, 하위종과 맺으면 사제 관계 혹은 주종 관계가 된다.
“그리고 맺은 대상과 정신적으로 연결되고 카르마 일부가 공유된다고 해.”
“카르마요?”
“음… 호흡하거나, 먹거나, 죽이거나, 일할 때 마력이 쌓이는 건 알지?”
“네.”
“카르마도 우리의 모든 행동에서 쌓이게 되고, 신체가 아닌 영혼에 쌓인다고 들었어.”
“경험치 같은 건가요?”
“경험치? 재밌는 표현이네. 그래, 경험치 비슷한 거라고 생각해.”
RPG 게임 속 세상인가?
“그럼 카르마를 쌓으면 강해지나요?”
통상적인 RPG 게임은 경험치를 쌓아 레벨을 올리고, 레벨이 일정 구간에 도달하면 승급 같은 걸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곳 세상은 진화가 있음에도 레벨이란 개념이 없어 카르마가 경험치처럼 작용하진 않았다.
“마력이야 쌓이면 강해지겠지만, 카르마는 그렇지 않아.”
“그럼 필요 없지 않아요?”
“필요 없나? 아닌데… 분명 높으면 좋을 거야!”
내 질문에 답해 주던 시녀 개미가 생각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자, 시녀장 일리아나가 시녀 개미를 구출하기 위해 나섰다.
“카르마에 대해 궁금한 거라면 케어님에게 물어보렴.”
일리아나가 날 여왕 케어에게 안내해 줬다.
“카르마는 마신에게 바쳐지는 제물과도 같단다. 카르마를 많이 쌓을수록 마신께서 좋아하시지.”
‘신앙 포인트인가?’
내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 관심을 끄려던 순간 케어가 말을 이었다.
“또 카르마를 쌓을수록 영혼의 격이 높아진단다. 영격이 높아지면 정신력이 높아지지. 정신력은 마력과 진화에 큰 영향을 미친단다. 그러니 카르마를 많이 쌓을수록 강한 존재가 될 수 있지.”
“그렇군요.”
정리하자면 카르마란 정신력과 마력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였다.
“카르마는 어떻게 쌓는 거죠?”
“네가 하는 모든 행동에서 카르마는 쌓인단다.”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에서 쌓이는 거죠?”
“다크는 궁금한 게 많구나…….”
케어는 자상한 페로몬을 풍기며 말을 이었다.
“개미족이 카르마를 쌓는 방식은 단순하단다. 군체에 공헌하여 카르마를 쌓지.”
“그렇군요.”
“최선을 다해 공헌하거라. 네가 쌓는 카르마가 나를 비롯한 여왕들과 장로들에게도 큰 힘이 된단다.”
“제가 쌓는 게 여왕과 장로들에게 힘이 되나요?”
“그래. 우린 가족이지 않니.”
카르마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한 나는 케어와의 대화를 마쳤다.
‘결국, 카르마는 활동 점수 같은 거야. 내가 열심히 일할수록 직속 관계인 팔팔이와 여왕들의 활동 점수도 오르는 거지. 일종의 길드, 파티, 사제 시스템의 혼합이라 생각하면 되겠어.’
피라미드 꼭대기에는 여왕들이 있고, 그 밑에 있는 상위종들이 다수의 직속 부하를 부려 카르마를 착취하는 그림이 떠올랐다.
‘카르마 무임승차를 위해서라도 팔팔이를 잘 키워 봐야겠어.’
첫 부하에 대한 애정 아닌 애정을 불태우며 무덤으로 돌아왔다.
무덤에 돌아오니 팔팔이가 마석과 외골격을 단단한 바위에 갈아 가루를 얻어내고 있었다.
‘성실하네.’
이런 부하를 네 명이나 더 얻을 수 있다니…….
‘나쁘지 않아.’
팔팔이와 내가 직속 관계를 맺었다는 소문이 퍼지자, 스몰 워커들이 날 찾아왔다.
“저 운반해 봤어요!”
“저는 공사해 봤어요!”
“전 고정 하녀 후보였어요!”
다들 1차 진화종인 나와 직속 관계를 맺고 싶어 했다.
“진정들 해! 다음에 필요하면 찾을 테니까.”
“네…….”
포식자가 적은 낮, 팔팔이를 출입구 근처에 배치한 나는 둥지 주변을 탐색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눈부시네.’
거대 활엽수가 즐비한 울창한 숲.
내가 주로 탐색한 장소는 개미들이 여러 차례 오간 곳이라 채집 나온 빅 워커들은 주위를 잠시 둘러보다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여긴 없어!”
“멀리 가야 해.”
다들 금방 이동했지만, 나는 그곳을 한참이나 둘러봤고, 더듬이가 쉽게 닿지 않는 위치를 집중적으로 살폈다.
“땅속에도 있고, 나무 위에도 있고, 돌 밑에도 있고, 나무 안에도 있고…….”
땅속을 보면 무, 감자, 당근 같은 식용 뿌리가 즐비했고, 나무를 위아래로 훑어보면 식용 버섯들이 넘쳐 났다.
그리고 돌을 들춰 보면 벌레들이 바글거렸고, 썩은 나무를 부숴 봐도 벌레들이 우글거렸다.
섬유질과 단백질.
숲에는 무엇 하나 부족함 없이 넘치는데…….
‘군체에 식량이 부족하다고 했나?’
아무래도 대다수 개미가 뻘짓 중인 듯했다.
***
숲에는 개미족과 먹이 경쟁을 하는 고블린이 많았다.
“키키! 카카!”
고블린의 체격은 유치원생 정도였고, 빼빼 마른 몸에 초록 피부를 지녔다.
머리와 입이 크고 이마 위쪽으로 작은 원뿔 모양의 회색 뿔이 한 개, 혹은 두 개가 있다.
고블린의 눈은 노란 동공에 가로로 선이 그어져 마치 양의 눈을 닮은 듯했다.
작은 도깨비, 소귀라고도 불리는 고블린은 강력한 치악력을 가졌지만, 힘이 약했고, 가죽으로 음부를 가리고서 원시적인 도구를 사용했다.
“적이다!”
빅 솔져 두 마리와 빅 워커 열 마리로 구성된 개미족 부대가 영역을 침범해 온 고블린 여섯 마리를 향해 돌진했다.
고블린은 야행성이며 시력이 좋지 않아 후각과 청각에 의존했고, 마찬가지로 시력이 좋지 않은 개미족은 뿌려 둔 페로몬을 통해 적을 인지했다.
“키?!”
여기가 개미족 영역 밖이었다면 고블린이 먼저 개미들을 발견했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이곳은 페로몬으로 가득한 개미족의 영역 안이었다.
뒤늦게 개미족의 돌진을 알아챈 고블린들은 화들짝 놀라며 조잡한 돌도끼와 돌칼을 고쳐 잡고서 개미족 부대를 맞이했다.
“키키! 카카!”
충돌한 두 부대의 체급은 비슷했다.
“우리가 수가 많다! 밀어붙여!!”
단단한 외골격을 앞세운 개미족 부대가 전투 페로몬을 뿌려가며 밀어붙이자, 수적으로 열세인 고블린의 진영이 급속도로 무너졌다.
여섯 마리의 고블린이 초록 피를 뿌리며 개미족의 먹이로 전락하기까지 채 5분이 걸리지 않았지만, 놈들도 얌전히 먹이가 되어 준 건 아니었다.
끝까지 전의를 잃지 않은 몇몇 고블린들이 옆으로 몸을 날려 바닥을 구르고는 개미들의 약점인 배 부분을 공략한 것이다.
고블린은 지니고 있던 돌 무기로 개미족의 물렁한 배를 타격하거나 찔러 상처를 입혔고, 죽는 순간까지 배를 물어뜯어 치명상을 입혔다.
전투가 끝났다.
열 마리였던 빅 워커 중 두 마리가 치명상을 입었고, 네 마리가 가벼운 상처를 입었다.
“대승이다!”
상처가 없더라도 급박한 전투 때문에 열이 오른 개미들은 상당히 지쳐 있었다.
이러한 사투는 개미족 영역 곳곳에서 일어났고, 수적으로 우세한 쪽이 승리를 가져갔다.
패배자는 식량이 되고, 승리자는 식량과 부상자를 얻는 소모전.
번식력이 더 강한 쪽이 유리한 승부로 보였다.
고블린은 동족 포식을 서슴지 않지만, 개미족은 동족을 먹지 않는다.
사냥한 고블린은 개미들의 식량이 됐고, 죽어가는 치명상을 입은 빅 워커는 무덤으로 보내졌다.
고블린과의 싸움에서 상처 입은 빅 워커들은 쉴 생각은커녕 더욱 무리하게 사냥하며 몸을 혹사했다.
작은 상처를 악화시켜 중상자가 되면 정찰 일에 지원했고, 정찰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악화하면 무덤을 찾아갔다.
무덤지기인 다크는 갑작스럽게 늘어난 무덤 일로 인해 주변 탐색이 힘들어졌다.
“여왕들의 산란량보다 사망자가 더 많아…….”
4만 8천 대의 임시 이름을 받았던 다크.
그동안 군체 규모가 2천 남짓이라고 파악한 그는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항상 이런 식이었나?’
다크는 생각했다.
이대론 발전은커녕, 언제 멸망해도 이상하지 않다고…….
무한자원 개미군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