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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자원 개미군단-8화 (8/189)

8화. 회복실과 치료소

낮에는 팔팔이를 출입구 근처에 대기시켰다.

“여기서 내가 가져온 걸 받아서 처리해 줘.”

“네!”

밖으로 나온 나는 출입구 인근과 둥지를 오가며 식량이 될 만한 걸 옮겨 왔고, 밤에는 늘어난 시체를 처리하며 지냈다.

일상 속에서 비축된 영양을 차츰 늘려 가던 중, 배가 찢어진 빅 워커가 대량 발생하여 무덤에 버려졌다.

채집, 사냥, 공사, 해체, 운반 등 1선에서 일하는 빅 워커.

그들이 이대로 죽어 주면 고기, 마석, 외골격을 얻을 수 있었다.

고기는 하급 영양액의 재료고, 마석은 최하급 마력 강화액, 외골격은 하급 외골격 강화액의 재료가 된다.

동족의 해체와 동족 고기의 영양화는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나만의 영역이었지만, 강화액 제조는 팔팔이에게 인계한 지 오래였다.

“오늘도 부탁해!”

“네!”

내가 채집해 온 곤충과 식물을 팔팔이가 영양화한 후 수분을 제거하여 보존용 영양환으로 제조했다.

영양환의 제조에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팔팔이 혼자선 나의 채집 속도를 따라오지 못했다.

‘효율이 좋지 못해.’

나무 물통의 법칙.

여러 개의 나무판을 잇대어 만든 물통에 물을 부으면, 제일 낮은 높이의 판자 길이만큼만 물이 찬다.

생물도 마찬가지로 가장 부족한 영양소만큼만 성장하고, 물건의 생산 속도는 제일 느린 공정에서 결정된다는…….

‘효율을 중심으로 풀어 가는 관리학의 핵심 이론이었지.’

거기다 1선에서 활약하는 빅 워커들이 무덤으로 오는 만큼, 식량 수급량에 차질이 생겨 굶어 죽는 스몰 워커도 늘었다.

죽어 가는 개미가 많아지면 내가 할 일도 늘어날 테고, 당연히 부하인 팔팔이도 바빠질 게 뻔했다.

내 창고에는 영양과 강화액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지만, 다른 개미들처럼 군체에 공헌하는 건 아니었다.

내가 속한 군체가 철옹성 마냥 굳건했다면 지금처럼 나의 안락함만 생각해도 무방하겠지만, 아무리 봐도 지금 상황은 철옹성은커녕 모래성조차 아니었다.

‘식량 부족 때문에 진화율도 낮고, 각 개체의 사망률도 너무 높아. 그리고 1선에서 일하는 개미가 부족해지니 둥지에서 처리할 일감이 줄어 잉여 개미가 늘고 있어.’

이대론 2차 진화는커녕 군체와 함께 공멸하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

‘살릴 수 있는 애들은 살려서 보내야겠어.’

무덤에서 장의사 역할을 하던 나는 의료 행위를 시작했다.

“팔팔아, 부상자들을 분류해 둘 테니까 같이 옮기자.”

“네!”

나는 급히 움직여 부상자들을 두 부류로 나눴다.

도저히 손 쓸 수 없는 개미와 회복이 가능한 개미.

“스몰 워커는 저 혼자서도 옮길 수 있겠어요!”

팔팔이는 아직 어린 스몰 워커라 힘이 약했지만, 그동안 잘 먹여 둔 덕에 웬만한 스몰 워커보다 힘도 좋고 머리도 좋았다.

똑똑한 녀석이라 내 의도를 금방 파악하여 곧잘 질문해 왔다.

“이렇게 다친 개미들을 살릴 수 있나요? 그동안 영양을 쌓아 둔 건 이렇게 쓰기 위해서였군요! 약초를 채집한 것도 오늘을 예상해서…….”

그냥 남 주기 아까워 챙겨 둔 거지만, 그로 인해 팔팔이를 비롯한 많은 개미에게 존경을 받게 됐다.

작은 오해가 있는 것 같았지만, 긴급 상황이라 정정해 줄 여유가 없었다,

아사 직전인 잉여 개미들에게는 영양을 공급하고 충분히 쉬게 했다.

“저 따위가…….”

“이런 귀한 영양을…….”

“전 잉여인데…….”

아사 직전인 개미들은 개미족의 정신병인지 무기력증을 앓고 있어 영양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았다.

“됐으니까! 먹고 쉬어!”

영양을 거부하는 녀석들은 1차 진화종의 위엄으로 강제로 영양을 먹이고, 쉬게 했다.

“여긴 회복실로 삼을 테니, 부상자들은 저쪽 치료실로 옮기자.”

“네!”

혹시 모를 감염을 막기 위해 산을 뿌려 깨끗하게 소독한 곳을 치료실 삼아 부상자들의 상처를 살폈다.

전쟁이라도 났는지 부상자 대부분은 배 쪽이 터졌거나 찢어져 있었다.

“여기, 벌어진 곳 좀 잡아 봐.”

“네!”

팔팔이를 시켜 벌어진 살점을 닫게 하고 접착액으로 붙였다.

‘지혈을 잘하고 감염만 막으면 어떻게든 될 거야!’

조치를 끝내면 다음 부상자에게 이동했다.

그렇게 십여 마리의 부상자를 빠르게 처리했다.

‘남은 건 회복인가?’

외골격 강화액, 마력 강화액, 잡다한 영양액, 그리고 다친 동물이 뜯어 먹던 약초를 섞어 종합 영양액을 만들어 먹였다.

“고마워, 다크. 난 일하러 가 봐야겠어.”

“다크, 네 덕에 정찰에 나갈 수 있겠어.”

회복세를 보이는 빅 워커들이 일중독 증세를 보이며 치료실을 벗어나려 했지만, 허락해 줄 수 없었다.

“팔팔아, 이놈들 접착액으로 묶어 두자.”

“네!”

영양이 아깝다며 치료를 거부하는 녀석들도 많았지만, 내 치료에 상대의 동의는 중요하지 않았다.

“자살 희망자야? 아까운 영양까지 줬으면 살아서 보답할 생각이나 해!”

여유가 없어 무심코 막말이 튀어나왔다.

뒤늦게 실수를 깨닫고 수습하려 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분위기가 왜 이리 훈훈하지?’

내 말에 상처받은 개미는 없었고, 오히려 감명이라도 받았는지 회복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크… 내 생각이 짧았다. 회복해서 죽을 때까지 공헌해야지. 벌써 죽어 버리면 그동안 먹은 영양이 아깝다!”

“나도… 회복해서 더 멀리 정찰을 가 볼게!”

정찰 간다는 말은 죽으러 간다는 말과 같은 건데.

굳이 회복해서 죽으러 가야 하는 건가?

전생에 사람인 나는 개미족의 감성을 완벽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도 회복할 의지가 생겼으니 좋은 일이라 여기기로 했다.

‘그래, 단순하게 생각하자.’

난 무덤에 찾아오는 개미들의 치료와 회복을 도왔다.

며칠이 지나며 어느 정도 익숙해진 팔팔이가 혼자서도 잘하자, 나는 무덤 구석으로 이동했다.

무덤 구석에선 싸늘한 사체들과 가망이 없는 중상자들이 쌓여 있었다.

짙은 죽음의 페로몬이 풍겼지만, 이젠 익숙한 향취에 불과했다.

‘많이도 죽었네.’

한 마리씩 꺼내 해체 작업에 들어갔다.

간혹 살아 있는 녀석도 있었지만, 도저히 손쓸 수 없는 상태였다.

“블랙 워커… 다크… 군체를 부탁…….”

“알았다.”

고통이라도 덜어 주자는 심정으로 숨통을 끊어 줬다.

숨통을 끊고, 끊고, 계속해서 끊고…….

개미들은 죽어가며 군체에 좀 더 공헌하지 못한 걸 아쉬워했고, 자신들의 고통을 덜어 주는 내게 감사 인사를 남겼다.

“고맙다. 다크.”

“고마워요. 다크 님.”

대체 왜 고마운 건지는 모르겠지만, 동족을 죽인다는 죄책감을 덜고 싶어 제문을 읊어 주다 보니 그들의 감성에 맞게 추모할 수 있었다.

“다음 생에는 죽을 때까지 혹사당하길…….”

그런데 동족의 목숨을 거두다 보니 마력이 조금씩 늘어났다.

‘죽일수록 늘어난다는 게 이런 거였나?’

미미한 양이지만, 티끌 모아 태산이란 명언을 떠올린 나는 부지런히 움직여 죽기 직전의 개미들의 고통을 덜어 줬다.

밤을 지새워 할 일을 끝낸 나는 잠깐 밖으로 나와 쓸 만한 약초와 식량을 채집했다.

내가 자리를 비워도 무덤의 손님은 끊이지 않았다.

채집을 마치고 돌아오니 옅어진 죽음의 페로몬이 다시금 가득 차 있었고, 팔팔이 혼자서 스몰 워커를 회복실로 옮기느라 고생하는 중이었다.

“다크 님! 오늘도 할 일이 넘쳐요!”

“조금 쉬어야 하지 않아?”

“네? 아니에요. 쉰다니요! 더 일해야죠! 해야 할 일이 이렇게나 많은데!”

일감이 늘어도 불만은커녕 기뻐하기만 하는 팔팔이.

개미족은 이런 면에서 다루기가 참 편했다.

통로를 오가던 스몰 워커들 중, 팔팔이가 과로한다는 상황을 알게 된 녀석들이 날 찾아왔다.

“일이 없을까요?”

“열심히 할 테니 일할 수 있게 해주세요!”

밥보다 일이 먼저인 개미들이 일감을 구걸하기 위해 날 찾았지만, 팔팔이가 나서서 쫓아 버렸다.

“나 혼자서도 충분하니까 다른 일 찾으러 가!”

‘팔팔아… 너 혼자서 안 괜찮아! 나는 더 안 괜찮고!’

다행히도 팔팔이의 철벽 가드를 뚫고서 내게 도달한 잉여 개미들이 있었다.

“저기… 혹시 사냥 외에 시킬 일이 있으실까요?”

스몰 워커와 달리 머리와 턱이 발달한 스몰 솔져가 날 찾아왔다.

“어라? 넌 스몰 솔져잖아?”

“네… 솔져이긴 한데… 사냥은 적성에 안 맞아서…….”

병정개미로 태어난 스몰 솔져들은 태어난 즉시 사냥에 투입되기 때문에 잉여 병력이 있을 수 없다.

임무를 가지고 태어난 그들은 워커들에게 있어 닿을 수 없는 선망의 대상임과 동시에 받들어 모셔야 할 존재였다.

그런 스몰 솔져가 잉여가 돼서 내게 일감을 구걸하다니…….

이는 귀족이 평민에게 빵을 구걸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일손도 부족했는데 잘 됐어. 두 번째 직속 부하로 삼아야겠다.’

내게 기회가 온 이상, 유망주를 놓칠 순 없었다.

나의 더듬이가 아직 이름도 모르는 솔져의 더듬이를 단단히 휘감았다.

상당한 시간을 들여서 의식을 마쳤다.

“감사해요, 다크 님! 직속 관계까지 맺어 주시고!”

“너, 이름이 뭐야?”

“스몰 솔져 나우피어에요.”

병정개미는 스몰 워커 때부터 이름이 있었다.

“나우피어, 좋네.”

솔져들은 힘이 좋아 힘쓰는 일은 대체로 잘했다.

“내가 표시한 개미들을 팔팔이가 있는 치료실로 옮겨 줘.”

“네, 맡겨주세요.”

나우피어에게 부상자 이송을 맡긴 나는 치료가 늦어버린 개미들을 따로 모아 해체에 들어갔다.

숙련된 해체 기술로 개미 사체를 빠르게 분리하며 생각했다.

‘이대로 영양을 퍼 주다 보면 내 창고가 텅 비겠지.’

아무리 내 채집 능력이 일반적인 개미족보다 대여섯 배는 뛰어나다지만, 이대론 오래 버틸 수 없었다,

‘인근에서만 채집한다고 해도, 리스크가 없는 것도 아니야.’

나를 대신해 외부에서 식량과 약초를 채집할 부하가 필요했다.

때마침 스몰 워커 한 마리가 무덤 깊숙이 들어와 날 찾았다.

“다크 님! 다크 님!”

본능을 이겨 내고 무덤 깊숙이 발을 들인 것부터가 특별함의 증거!

일단 더듬이를 내밀어 직속 관계로 묶는 걸 우선했다.

의식을 끝내고 이름과 날 찾은 이유를 물어봤다.

“전 48,899에요. 고정 하녀 후보였지만, 거절하고 여기로 왔어요.”

“고정 하녀 후보를 거절했다고?”

일단 임시 이름이 길어 구구라 부르기로 했다.

고정 보모와 고정 하녀는 스몰 워커 중 특별한 개체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보직인데. 그걸 거절하고 날 찾아왔다는 건 조금 이상한 이야기였다.

“날 찾아온 이유라도 있어?”

“그게… 둥지 일은 모두 정해져 있잖아요…….”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구구는 다른 개미들보다 머리가 잘 돌아갔다고 한다.

녀석은 둥지 내의 직업을 빠르게 파악했다.

보모, 하녀, 청소, 공사, 운반, 채집, 사냥, 해체, 정찰.

“잉여가 될 수는 없으니 이 중에서 골라야 했어요.”

여러 직업의 장단점을 따져 가며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던 구구는 무덤지기란 새 직업이 탄생하면서 큰 충격을 받게 됐다.

“궁금했어요.”

둥지에서 내게 주어지는 식량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던 구구는 이곳을 찾아오게 됐고, 오던 길에 치료실에서 배급되는 영양을 맛봤다고 한다.

“확신했어요! 여기다!”

구구의 눈에선 개미들에게 보이지 않던 탐욕이 보였다.

‘이런 놈은 키웠다가 뒤통수 맞는데…….’

그의 욕심이 걱정됐지만, 불안감은 금세 가셨다.

“영양이 많다는 건 그만큼 힘들다는 증거! 그래서 다크 님을 찾아온 거예요. 제게도 어려운 일을 주세요!”

‘맞아, 이놈들은 사람이 아니라 개미였지?’

굶겨 죽이더라도 일감만 물어다 주면 만족할 놈들.

선량한 나를 악덕으로 물들일 법한 존재들이었다.

‘일 욕심이었구나…….’

팔팔이에게 치료실을 전담시켰고, 나우피어에게 분류와 운반을 맡긴 나는 구구를 출입구 인근에 대기시켰다.

“나갔다 올 테니까 대기하고 있어.‘

나는 밖으로 오가며 개미족이 취급하지 않는 채집품을 가져와 어디서 어떻게 채집하는지 구구에게 가르쳤다.

곤충, 식용 뿌리, 식용 버섯, 약초 등…….

구구는 무언가 알려 줄 때마다 감탄했다.

“정말이에요? 식량 구하기가 그렇게 쉬웠나요?”

내게서 많은 걸 배운 구구가 진지한 분위기의 페로몬을 풍기며 중얼거렸다.

“그럼 식량이 부족하다는 건… 다들 채집 능력이 떨어져서인 게…….”

식량 사정의 진실을 알게 된 구구가 내게 물었다.

“이걸 다른 개미들에게 가르쳐주면 식량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요?”

“흠… 너무 이른데 말이지…….”

채집 노하우가 공개되면 인근 지역의 자원은 깨끗하게 털릴 것이고, 지금처럼 꿀을 빨 수 없게 된 나는 좀 더 먼 곳으로 채집을 떠나야 할 게 분명했다.

이동 거리가 늘어날수록 감수해야 할 위험이 커질 터.

“지금 알려 준다 해도 식량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거야.”

리스크 계산을 마친 나는 한동안 채집 품목에 관한 건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렇군요.”

나는 구구가 엉뚱한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말을 덧붙였다.

“걱정하지 마. 식량 문제는 조만간 해결될 테니까.”

“역시 다크 님은 계획이 있으신 거군요!”

“응. 있지. 내겐 계획이 있어.”

인간이던 난 잔머리가 잘 굴러갔기에 일 중독자인 개미들을 이용해 군체를 키울 방법과 꿀 빨 계획이라면 세워 놓은 상태였다.

무한자원 개미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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