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자원 개미군단-10화 (10/189)

10화. 고블린

내가 환생한 개미족의 스몰 워커가 소형견 크기라면, 빅 워커는 중형견 정도로 컸다.

그리고 자이언트 워커와 솔져는 호랑이만 했다.

한 마리의 자이언트 워커를 잠깐이라도 견제하려면 적어도 세 마리의 고블린이 필요했고, 전투 계급인 자이언트 솔져를 견제하려면 다섯 마리로도 부족했다.

거기다 개미족은 뭉치면 뭉칠수록 강해져서 전투 규모가 커질수록 유리했다.

자이언트 다수가 투입되고 하루도 지나지 않아 개미족은 빼앗긴 영역을 되찾을 수 있었다.

개미족은 이 기세를 몰아 고블린을 완전히 토벌하려 했지만, 영악한 고블린은 개미족과의 대규모 충돌을 피해가며 게릴라전을 펼쳤다.

그러다 보니 개미족이 도망 다니는 고블린을 추격하다 각개격파 당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했다.

아무리 단단한 외골격을 가져 웬만한 공격이 통하지 않는 자이언트 솔져라 해도 홀로 고립된 채 십여 마리의 고블린에게 포위되면 약점이 노출되어 당할 수밖에 없었다.

함정에 빠져 하나둘 각개격파 당하던 개미족.

비록 잃어버린 영역은 되찾았으나, 그들의 고블린 토벌은 실패하고 말았다.

다수의 자이언트 워커와 솔져를 잃게 된 개미족 내부에선 다시금 장로 회의가 열렸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총력으로 놈들의 본진을 밀어 버리자!”

5장로 경비대장 포메온이 총력전을 원했으나, 7장로인 트라이가 반대했다.

“고블린은 촌락의 형태로 광범위하게 퍼져 있어 본진이라 할 만한 곳이 없다고!”

“그럼 놈들이 활개 치도록 놔두자는 거야?”

포메온을 제외한 장로들은 대량으로 확보된 고블린 시체와 줄어든 인구로 인해 식량 문제가 다소 해결된 상황이라 굳이 총력전의 리스크를 감수하기 싫어했다.

“사냥 개미가 충원될 때까지 영역을 줄이자. 영역을 줄이는 데 동의하면 찬성. 아니면 반대해줘.”

일리아나의 제안에 찬성 여섯 표, 반대 한 표의 결과가 나오며 개미족은 영역의 반을 포기하여 일시적인 평화를 되찾았다.

***

나는 마광석의 가능성과 개미족의 능력을 살려 지하 1층 구석에 버섯 농지를 만들고 있었다.

개미족의 감각으로 지하 수원의 위치를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다.

‘농사에 쓰일 수원을 확보해야 해.’

밖으로 통하는 통기구로 농지의 습도와 온도를 조절할 수 있었다.

‘대공사가 되겠는데…….’

그때.

[사냥 개미 충원 중! 일이 없는 빅 워커, 빅 솔져, 자이언트 워커, 자이언트 솔져는 고블린 토벌에 동참해라!]

둥지 전체로 퍼져 나가는 페로몬 공지를 감지하게 됐다.

페로몬 공지에 노출된 상위종 개미들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스몰 워커들이 술렁대기 시작했다.

고인물인 상위종들이 둥지 밖으로 나가게 되면 그들이 하던 일에 공백이 생길 테니 뉴비들에겐 일감이 생겨나는 셈이었다.

‘잘 돌아가네…….’

영양이 오가는 둥지 경제가 활성화된 건 좋았지만, 그 이유가 고블린 토벌이니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많이들 죽어 나가겠지. 부상자도 대량으로 실려 올 거고…….’

앞으로 일어날 상황을 예측한 나는 지하 농지를 개설 중인 사칠과 나우피어를 불렀다.

“지금 고블린과 전쟁 중이래.”

“제가 빅 워커였다면 다크 님과 함께 참전했을 텐데… 죄송해요.”

스몰 워커 중에서도 작게 태어난 사칠이가 분위기를 요상하게 몰아갔다.

‘이 녀석, 지금 날 전쟁터로 보내려는 건가?’

다행히도 솔져 같지 않게 소심하여 사냥 조에서 도망 온 나우피어가 있었다.

“다크 님, 전… 사냥은 좀…….”

“걱정하지 마. 고블린 토벌 말고도 할 일은 많으니까.”

실망하려던 사칠이에게 좀 더 많은 일을 지시했다.

‘좀… 심했나?’

사칠이는 높은 업무 강도에 매우 만족해했지만, 정말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앞으로 더 바빠질 메디와 사칠이의 과로사가 걱정됐던 나는 나우피어를 데리고 무덤과 치료실을 오가며 일을 도왔다.

‘수련할 시간이 없네.’

세크리는 밖에서 약초와 식량을 채집해 왔고, 피어레스는 고블린 토벌에 참여해 전공을 쌓고 있었다.

치료실에 부상 개미가 몰릴 걸 대비했으나, 몰려오는 부상자의 수가 내 예상을 가볍게 넘어섰다.

치료실에 공급하던 영양의 소진을 늦추기 위해 동족으로 만든 영양까지 제공하며 버텼다.

죽은 자이언트 워커와 솔져로 만든 중급 영양, 중급 외골격 강화액, 하급 마력 강화액은 그동안 취급해 온 스몰, 빅 계급의 영양과 강화액보다 월등히 뛰어나 나와 측근만이 복용하고 있었다.

“메디야, 너 직속 관계로 다섯 마리 받을 수 있지 않아?”

“그렇죠…….”

메디도 나와 같은 1차 진화종.

나처럼 부하 다섯 마리를 거느릴 수 있을 텐데.

“넌 왜 직속 부하를 안 만드는 거야? 일손이 모자라지 않아?”

“그게…….”

메디는 일을 나눠 주길 꺼려 부하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어쩐지…….’

나는 메디에게 부하를 관리하고 육성하는 것 또한 엄연한 일임을 주지시켰다.

“잡일을 맡기면 더 많은 부상자를 치료할 수 있고, 거기다 부하들에게 경상자를 데려오게 할 수도 있어.”

더 많은 일!

더 많은 공헌!

“그렇군요! 부하가 늘수록 할 일이 많아지는 거였어요!”

“…음, 그렇지.”

메디가 스몰 워커 다섯 마리를 직속 관계로 받아 회복실과 치료실의 부족한 인력을 채웠지만, 부상자는 줄지 않았다.

기껏 회복시켜도 개미들이 다시 고블린 토벌에 참여하고 다친 채 돌아오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일단 다치면 무덤부터 찾아오던 개미가 치료실을 1차적으로 방문하게 된 것이려나?

‘흠… 영양이 떨어졌어.’

결국 세크리의 채집과 무덤에서 얻는 영양만으로 회복실과 치료실의 수요를 감당할 수 없었는지, 영양이 떨어지고 말았다.

‘어쩌지…….’

나는 지하 1층에서 해체 대기 중인 고블린 사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건 내가 해체할 거다!”

턱이 가위같이 생긴 1차 진화종인 시절 워커가 고블린 사체를 지키고 있었다.

“사체가 엄청 많은데 하나만 가져갈게.”

“안 된다.”

개미들도 뇌물을 좋아하는지 영양을 주입하니 일이 잘 풀렸다.

“알겠다!”

메디의 부하들을 불러 고블린 사체를 운반하게 했다.

“영양화해서 회복실의 개미들에게 공급해 줘.”

“네!”

개미족 몸에선 붉은색 알갱이 같은 마석이 나오는 반면, 고블린의 사체에선 초록빛 알갱이인 최하급 마석이 나오고, 고블린 고기로 만든 영양은 하급 영양이 됐다.

‘고블린의 사체는 대충 빅 워커, 솔져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되겠어.’

사실 둥지에서 유통되는 영양은 대부분이 최하급이라 하급도 나름 고품질 영양이었다.

“다크 님, 동료를 모집해도 될까요?”

세크리가 찾아와 허락을 구했다.

“확실히 채집 인력이 부족하긴 했어. 빅 워커 위주로 채집 인력을 늘려 봐.”

“네!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세크리는 친분 있는 빅 워커 다섯 마리와 상하가 분명한 직속 관계를 맺고서 채집 품목을 가르쳤다.

동등한 계급이면 상하 관계를 맺기 힘드나, 세크리가 알려 주는 게 워낙 많아 별 불만이 없는 듯했다.

다단계처럼 부하들이 새끼 치듯 늘어나니, 나 또한 강해진 느낌이 들었다.

‘미세하지만, 분명 강해진 것 같단 말이지…….’

채집 품목에 대해 충분히 가르친 세크리는 부하들에게 채집 일을 맡기고서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영양도 먹여 주고, 몸도 닦아 주고, 짐도 들어 주고…….

나의 손발이 되어 비서 역을 자처하는 건 좋은데, 무덤에서의 일은 일정 부분 숨기고 있어 행동에 제약이 걸렸다.

‘난감하네…….’

동족 사체가 쌓여 가서 비밀리에 처리하려 했으나 철저하지 못했다.

결국 세크리에게 비밀을 들키게 됐지만, 우려하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죄송해요. 동족의 영양화는 다크 님이 블랙 워커여서 가능한 것 같아요. 저로서는 도울 수가 없네요.”

개미족이 동족을 먹지 않는 건 본능적인 거부감 때문에 영양화를 할 수 없어서였지, 그것을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알면 알수록 희한한 종족이야.’

전생의 기준으로 개미족을 판단하면 안 된다는 걸 다시금 되새겼다.

고블린과의 전투 양상은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대체 어떤 놈들이길래.’

세크리에게 지시하여 고블린에 대한 정보를 모아 오게 했다.

“1대 1의 전투력은 빅 워커보다 높지만, 다섯 마리 이상인 집단전에선 빅 워커가 우세하다고 해요.”

해체하면 빅 워커와 비슷한 수준의 최하급 마석이 나오더니 전투력도 빅 워커와 같은 급이었다.

“빅 솔져들은 빅 워커보다 두 배는 강해서… 서너 마리는 쉽사리 찢어 버릴 수 있다고 해요.”

턱이 커서 워커들이 영양을 먹여 줘야 하는 솔져.

워커들의 지원이 있다면 강한 턱 힘으로 손쉽게 사냥하지만, 찢어발기기 전에 집중 공략당하는 경우가 많아 운영에 필요한 자원에 비해 효율이 떨어졌다.

‘생산력도 없고 말이야.’

자이언트 워커와 자이언트 솔져도 위력적인 만큼 연비가 나빠서 둥지 밖으로 나돌지 않았다.

그런 고급 병종을 대거 투입한 상황에서 고전하고 있다니…….

‘정예들만 따지면 개미족이 밀릴 이유가 없어.’

고전 중인 원인은 고블린들의 성장 속도와 번식력에 있었다.

“먹이에 따라서는 성체가 되기까지 30일도 걸리지 않아요. 임신 기간은 10일이고 한 번에 세 마리에서 아홉 마리가 태어나요.”

“뭐? 10일?”

성장 속도는 인간의 240배, 임신 기간은 인간의 28분의 1.

한 번에 최대 아홉 마리가 태어난다는 것까지 고려하면…….

‘고블린의 번식력은 인간의 4,000배 이상!’

그에 비해 개미족의 번식력은 그리 대단치 못했다.

소속된 일개미들은 알을 낳지 않으니, 알을 낳는 건 세 여왕뿐.

여왕 셋이서 낳는 알은 한 달에 50에서 100개.

부화에는 30일이 필요하고, 애벌레로 30일을 보낸 후 번데기가 되어 30일…….

거기다 군체의 30%를 차지하는 스몰 워커는 특별한 이유가 없는 이상 밖으로 내보내지 않기에 생산력이 떨어지고 병력으로 쓰지도 못한다.

충분한 먹이가 제공됐을 때의 자연 진화률은 50% 정도였고, 최소 100일은 살아야 진화했다.

식량이 넉넉하다는 상황을 가정하면 월평균 50마리의 빅 워커가 충원된다.

‘승산이 없어.’

번식력에 몰빵한 종족과 싸우는 건 아무리 봐도 자멸 행위였다.

‘아냐… 고블린의 번식력이 진정으로 인간의 4,000배였다면, 개미족은 일찍이 먹혀 사라졌을 거야.’

이어진 세크리의 이야기를 듣고 납득할 수 있었다.

“고블린족은 암컷이 매우 적다네요. 스무 마리의 수컷이 태어나야 암컷 한 마리가 태어날까 말까고, 먹이가 부족하면 새끼를 낳는 중에 죽는다고 했어요.”

“성비가 심각하네. 거기다 출산 위험까지 심하면…….”

여성체의 전멸은 고블린 촌락의 멸망과도 같을 테니, 운 나쁜 촌락은 가만히 둬도 자멸할 것이다.

심각한 성비 불균형이란 억제 장치를 지닌 고블린에게는 괴이한 습성이 있었다.

“이종교배?”

“네. 특정 종족의 암컷을 잡아 와 고블린을 낳게 해요. 그래서 고블린 촌락을 토벌하다 보면 다른 종족의 암컷 고기를 얻기도 하죠.”

이곳 세계의 고블린이 어떤 종족인지 감이 왔다.

‘놈들과의 소모전은 불리해.’

며칠 지나지 않아 영역전이 마무리됐다.

나의 예측대로 개미족은 고블린과의 영역 다툼에서 패배하여 둥지 분위기가 침울해졌다.

“하…….”

판타지 세계관의 대표적인 최약체, 고블린 따위와의 생존경쟁에서 밀려 버리다니….

‘개미생은 편하게 먹고 살려 했더니만…….’

아무래도 고블린을 쓸어버려야 안심하고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아냐… 고블린을 물리쳐도 영역이 확대되면 더 강한 적을 마주하겠지…….’

아무리 생태계에서 최강이 없다고 하지만.

이대로 군체가 생존경쟁에서 밀리는 걸 지켜보고만 있을 순 없었다.

‘고블린부터 처리해야 해!’

내게는 고블린을 쓸어버릴 무력은 없지만, 지력은 충분했다.

무한자원 개미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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