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물물 거래
고블린을 쓸어버리기로 결정한 나는 세크리를 시켜 개미들이 채집하지 않던 품목을 알리도록 했다.
그러자 영역이 축소됐음에도 채집 품목이 다양화되어 식량 수급이 원활해졌다.
인구는 줄고 식량 수급량이 늘어난 덕에 스몰 워커들은 일자리를 구하기 쉬워졌고, 진화율 또한 50%에서 70%로 높아졌다.
여왕들의 산란량 또한 증가했지만, 이는 일시적인 현상일 뿐.
인구가 늘어나면 좁아진 영역으로 인한 식량난이 찾아올 것이며, 다시금 고블린과의 전쟁이 시작될 게 뻔했다.
‘전쟁이란… 승리를 확인하는 과정일 뿐이지.’
영역전이 발발하기 전에 승리할 준비를 마쳐야 했다.
‘농장부터 빨리 만들어야겠어.’
수렵으로 연명하던 원시시대.
인류는 농경의 시작으로 식량을 비축할 수 있게 됐고, 도시에서 왕국으로 발전했다.
지구에선 농장을 운영하여 천만이 넘는 규모의 왕국을 형성한 개미 종도 있었으니… 개미는 검증된 탁월한 농사꾼이었다.
나는 둥지의 환경과 개미족의 특성을 분석해 식물 농사보다 버섯 농사 쪽의 효율이 더 높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공기가 잘 통하는 출입구 인근에 버섯 농장을 만들려고 했지만, 환경을 조성하는데 투입할 인력이 부족했다.
‘이대론 너무 오래 걸릴 거란 말이지…….’
개미족이 되어 가장 좋은 점은 영양만 있으면 남아도는 인력의 도움을 언제든지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지하 4층으로 내려간 나는 공사 개미들을 만났다.
“일 좀 맡기고 싶은데.”
빛나는 광물을 캐내기 위해 힘쓰고 있던 빅 워커들이 내게 반응해 줬다.
“일? 무슨 일?”
“출입구 주변에 공간을 만들어 뒀어. 그곳에 바람이 잘 통하도록 많은 통로를 만들고, 언제든 물을 얻을 수 있도록 수원을 만들고 싶어.”
“통로를 뚫는 건 쉬운데, 수원은 가 봐야 알 수 있어.”
많은 빅 워커가 내게 관심을 보이자 멀찍이서 지켜보던 자이언트 워커 한 마리가 다가와 페로몬 교환을 요청했다.
페로몬을 교환하면서 서로의 정보가 오갔고, 그가 이곳의 책임자란 걸 알 수 있었다.
“난 공사 대장 언더리페다.”
“전 무덤지기 다크입니다.”
“요즘 식량 사정이 좋아져서 4층 공사에 가속이 붙었어. 많은 개미를 내줄 수는 없으니, 빅 워커 다섯 마리만 지원해 주마.”
전문 인력 다섯 마리의 지원이면 만족할 수준이었다.
‘사실 더 데려가도 문제긴 하지…….’
요즘 독점적으로 채집하던 품목들을 모두 공개하면서 둥지의 식량 사정은 좋아졌지만, 내 개인의 식량 사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언더리페의 적당한 지원에 만족한 나는 다섯 마리의 공사 개미를 데리고서 1층 농장을 찾았다.
“이쯤에 수원이 있었으면 좋겠고, 열고 닫을 수 있는 통로가 많았으면 좋겠어.”
“알겠다.”
빅 워커들은 프로다운 분위기를 물씬 풍기며 작업에 착수했다.
채집 활동 중이던 세크리의 직속 부하 다섯 마리와 스몰 워커인 사칠이도 투입하여 농장 조성을 돕게 했다.
버섯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살아 있는 나무와 공생하는 균근성 버섯과 죽어가는 나무와 낙엽에서 양분을 얻는 부후성 버섯이 있다.
균근성 버섯은 재배가 어렵고, 죽은 나무에서 자라는 부후성 버섯은 재배가 가능한 종류였다.
버섯 재배에는 썩은 나무로 만들어진 톱밥이 대량으로 쓰일 예정이었는데, 깔끔한 개미족은 둥지에 들어온 나무를 보면 밖으로 내다 버리기 일쑤였다.
‘이대로 가면 톱밥 수급에도 차질이 생길 거야.’
나는 농장이 만들어지는 동안 둥지 전역에 식량을 배송해 주는 운반 개미들을 만났다.
“저기 농장이라 표시된 곳. 나무가 많이 필요해. 나무 들어오면 버리지 말고, 저기로 옮겨 줘.”
“알겠다.”
“고마워. 동료들에게도 말해 줘.”
“알겠다.”
돌아다니는 운반 개미들에게 영양을 찔러주며 말해 두니, 나무 자원이 버려지는 일이 차츰 줄어들었다.
시간이 흘러 농장으로 쓰일 공간이 완성됐다.
점검해 보니 수원도 있고, 통기 상황도 나쁘지 않았다.
천장과 벽에 빛나는 광석을 박아 둬서 토양만 제대로 갖춘다면 버섯뿐만 아니라 식물도 자랄 수 있을 듯했다.
‘버섯 농장이 안정되면 지렁이 사육이나 해볼까?’
식물 재배에 필요한 토양은 지렁이 분변토로 확보하면 될 것 같았다.
생각을 마치고 만들어진 공간에 그동안 모은 썩은 나무를 채워 넣었다.
그러고 나서 스몰 솔져인 나우피어를 통해 분쇄하여 톱밥으로 만들었다.
구역을 정해 톱밥을 깔자 어엿한 버섯 농장이 완성됐다.
“사칠아, 여기 관리는 너한테 맡길 거야.”
“네!”
“지금은 습도가 좀 낮은 것 같으니까 통기구는 세 개만 남기고 막아 두자.”
“네!”
나는 사칠이에게 톱밥이 발효되면서 발생하는 열과 가스에 어떻게 대처하면 되는지 꼼꼼히 알려 줬다.
“다 기억할 수 있겠어?”
“네, 기억할 수 있어요!”
개미족은 기억력이 좋은 편이었고, 페로몬 표식을 메모처럼 쓸 수 있었다.
다행히 환경이 좋았는지 며칠 지나지 않아 톱밥에서 각종 균사가 피어나며 다양한 버섯이 자라기 시작했다.
개미족에게 독이 될 균사나 버섯이 발견되면 사칠이가 신속히 제거했고, 식용이 가능한 버섯은 여왕 케어에게 가져갔다.
“혹시 영양 정보를 알 수 있을까요?”
더듬이를 통해 대략적인 영양 등급은 알 수 있었지만, 구체적인 정보를 알기 위해선 케어의 도움이 필요했다.
“버섯의 감정은 오랜만이구나……”
케어는 감정 능력을 사용하는지 잠시 말이 없었다.
“이 중에서 저게 제일 좋은 영양이 될 거란다.”
케어를 통해 우수한 버섯을 가려낸 나는 성장 속도와 재배 난이도를 고려하여 주력으로 기를 재배품을 정했다.
‘양송이를 닮았어. 그냥 양송이라 불러야겠다.’
채택되지 않은 식용 버섯은 영양화하여 나의 개인 영양 창고에 보관했다.
끝없는 솎아 내기로 양송이를 제외한 균사는 모두 제거하여 버섯 농장에선 거대 양송이만이 자생하게 됐다.
“다크 님! 양송이 영양이에요!”
“벌써?”
버섯 농장이 안정되자 나는 영양 부자가 됐다.
회복실과 치료실에 영양을 보급하며 약초를 가져오는 개미에게 일정량의 영양을 지급했다.
남는 물자를 필요한 물자로 바꾸는 건 개미족에게 있어 생소한 일이었지만, 내게는 너무도 익숙한 거래법이었다.
거래가 활성화될수록 나의 입지가 공고해 졌고, 가끔 트라이란 스마트 워커가 버섯 농장을 찾아오곤 했다.
“넌 정말 대단해! 어떻게 버섯을 키울 생각을 했지?”
“안정적인 식량원이 필요했으니까요.”
트라이가 버섯 농장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면 성실히 답해줬다.
톱밥 관리, 균에 대한 방비, 습도, 온도, 광량의 조절 등등.
무엇 하나 쉽지 않기 때문에 따라 만들 수 있다곤 생각하지 않았다.
‘뭐, 따라 할 수 있다면 대단한 거고. 난 다른 거로 벌어먹으면 되니까.’
2회차 삶에서 오는 여유라 할 수 있었다.
부족한 약초를 영양으로 교환해 주며 재미를 쏠쏠히 본 나는 둥지 곳곳에 페로몬 표식을 남겼다.
[공지! 썩은 나무 가져오면 버섯 영양 제공!]
페로몬 표식을 본 개미들이 나무를 가져오면 세크리의 부하 하나가 영양으로 교환해 줬다.
획득한 나무는 스몰 솔져인 나우피어가 분쇄하여 톱밥으로 만들었고, 사칠이가 톱밥을 가져가 버섯 농사에 사용했다.
나무가 수급되는 만큼 버섯 농장도 확장됐고, 영양 수급량이 늘어났다.
개미족은 영양이 풍족해 질수록 1차 진화율이 상승했고, 최하급 마력 강화액과 하급 외골격 강화액까지 복용하면 진화율이 더욱 상승했다.
‘요즘 보면 스몰 워커들의 80%는 빅 워커로 진화한단 말이지…….’
일반 개미들도 80% 확률로 진화하는데, 나와 직속 관계를 맺은 사칠과 나우피어는 진화를 못 이룬 채 수명을 다해가고 있었다.
‘영양은 충분히 섭취하고 있으니 걱정 없을 거야…….’
일말의 불안감은 있었지만, 믿고 기다렸다.
당연하게도 둘은 수명을 다하기 전에 진화했다.
“축하해, 나우피어. 드디어 진화했네.”
“감사합니다!”
나우피어는 탈피하듯 진화했고, 사칠이는 다른 개미들과 달리 고치를 틀었다.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고치에서 나온 사칠이는 체구가 반쪽이 됐다.
나우피어와 사칠이가 진화하자, 그들의 직속 상사인 내가 미세하게 강해진 걸 느꼈다.
‘몸이 살짝 가벼운걸….’
산란방에서 페로몬 교환을 위해 진화한 둘을 불렀고, 나 또한 따라갔다.
“미니 워커로 진화했구나. 미니 워커는 작은 만큼 적게 먹으면서 지구력이 좋단다. 사냥을 제외한 모든 일에서 뛰어나지.”
미니 워커는 전투력이 없는 대신 모든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만능 일꾼 같은 종이었다.
미니 워커에 대한 설명을 마친 케어가 가위를 연상시키는 길고 날카로운 턱을 같게 된 나우피어에게 말해줬다.
“넌 시절 솔져가 됐구나. 시절 솔져는 공격 특화라 빅 솔져 만큼 외골격이 단단하지 못하단다. 선봉으로 싸우기보단 뒤에서 적의 빈틈을 노리는 게 좋지. 해체 일을 맡는 것도 나쁘지 않단다.”
나우피어는 나무만 온종일 부수더니 성격과 반대되는 공격 특화종으로 진화했다.
케어가 종에 대한 설명을 마치자 페르가 새 이름과 직책을 정해줬다.
“넌 버섯 농사를 지으니 농사 개미 머쉬파, 넌 항상 나무를 부수고 있으니 파목 개미 나우피어야.”
메디, 세크리, 머쉬파, 나우피어, 피어레스…….
모두 1차 진화종이 되면서 나의 직속 부하 다섯 명 모두 죽음의 그림자에서 한 발 벗어났다.
“다크, 네 수명은 절반 정도가 남았으니, 앞으로 750일 정도 살 수 있을 거란다.”
묻지도 않았는데, 케어가 남은 수명을 알려 줬다.
‘2년밖에 안 남았잖아!’
***
고블린과의 세력전으로 인구와 영역이 줄어든 개미족 둥지는 영양 호황기에 들어서 있었다.
“영역이 줄었는데 식량이 풍족하다고?”
페르의 질문에 일리아나가 답했다.
“요즘 취급하는 식량의 종류가 늘면서 수급량이 늘었어요.”
“뭐? 취급 식량이 늘었다고?”
“그동안 사냥팀이 놓치던 식량이 발견됐거든요.”
“누가 발견한 거야?”
“세크리가 발견해서 알려줬는데… 저는 다크가 관여돼 있다고 생각해요.”
놀라워하던 페르는 다크의 이름을 듣고 묘한 흥미를 보였다.
“무덤지기 다크가?”
“네…….”
페르는 며칠 전 일을 떠올렸다.
‘치료실에 약초를 가져가면 양송이 영양을 줘요.’
‘뭐? 약초를 줘야 식량을 준다고?’
원래 워커가 구해 온 영양은 운반 개미에게 맡겨지고, 운반 개미가 우선순위에 따라 배급하는 게 둥지의 규칙이었다.
그러한 둥지의 규칙은 불변의 법칙처럼 여겨졌는데…….
페르는 이 법칙이 어그러지자 화들짝 놀랐다.
어떻게 된 일인지 상황을 파악해 본 페르는 모두 무덤지기 다크를 중심으로 벌어졌다는 걸 알게 됐다.
‘이래도 되는 건가?’
당시 불안감을 느낀 페르는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장로급 개미들을 소집했지만, 케어의 한마디에 회의가 무산되고 말았다.
“다크는 스마트 워커 수준으로 지능이 높아.”
지능이 높은 개미는 둥지에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게 개미족의 상식이었기 때문이다.
“모르겠다. 일단 두고 봐야겠어…….”
이미 다크가 개미족의 상식 하나를 부쉈지만, 아직 둥지에 해가 되는 행동을 한 건 아니었으니 말이다.
풍족한 둥지 상황에 기분이 좋아진 페르는 상념을 지우고서 산란량을 더욱 늘렸다.
무한자원 개미군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