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포위 섬멸전
페르가 산란에 집중하는 동안 케어는 7장로 트라이와 대화 중이었다.
“버섯이 이렇게 잘 자라는지는 몰랐구나… 그동안 우린 왜 키워 먹을 생각을 안 했지? 지능은 다크보다 나와 네가 훨씬 높거늘…….”
“발상이 없던 건 아니었어요. 단지 둥지 환경 자체를 바꾸는 건 위험성이 커서…….”
일개 워커가 둥지 환경을 건드렸다는 말에 케어가 우려를 표했다.
“버섯은 일반적인 식물과는 조금 다르단다. 그중에는 위험한 독을 살포하는 종도 있지… 쉽게 영양을 얻을 수 있다지만, 위험성이 커 보이는구나.”
트라이는 앞발로 머리를 긁적이더니 말했다.
“쭉 지켜봤는데 괜찮지 않을까 싶어요.”
“근거가 있느냐?”
“농사 개미인 머쉬파는 톱밥의 변화만으로 어떤 버섯이 자랄지 아는 것 같았어요.”
머쉬파는 다크에게 교육을 받아 톱밥에 나타난 균을 보고 어떤 버섯이 자랄지 아는 것이었지만, 균이란 개념이 없었던 케어는 그것이 미니 워커가 가진 능력이라 생각했다.
‘농장을 만들려면 미니 워커가 있어야겠군.’
트라이를 통해 농장을 파악한 케어는 몹시 들떴다.
‘그동안의 개미족은 확장할수록 적이 많아졌기에 일정 이상 크기로 커지지 못했어. 이젠 아니야…….’
케어는 농장을 통해 더욱 거대해질 군체를 떠올리며 이러한 변화를 가져온 다크의 업적을 평가했다.
‘다크는 재앙이 아니었어!’
개미들 사이에서 치료실과 농장 이야기로 시끄러울 때, 여왕 포스는 불어날 고블린을 떠올리며 호흡을 더욱 깊이 했다.
“다크 녀석… 아까운 능력을 낭비하고 있군.”
***
“나우피어, 피어레스, 머쉬파, 영양은 충분하니까 직속 부하를 뽑아 둬.”
미니 워커인 머쉬파를 보조할 부하로는 부지런한 스몰 워커 위주로 뽑았다.
시절 솔져인 나우피어의 직속으론 스몰 솔져를 채우려 했지만, 병정급인 솔져 자체가 품귀 상태라 적당히 타협하여 나무를 잘 부수는 스몰 워커들로 채웠다.
그러고 나서 빅 솔져인 피어레스에게 빅 워커 다섯 마리를 붙여 줬지만, 이쪽은 출전만 하면 절반이 시체로 돌아왔다.
어쨌든 나는 스물다섯 마리의 부하의 부하가 있는 셈이었다.
‘다섯 개 부서나 운영하는 회사가 돼 버렸어.’
치료실, 버섯 농장, 톱밥 생산, 사냥, 나를 직접적으로 보조하는 하녀들까지.
한 부서 당 직속 부하를 포함해 여섯 마리가 일하고 있었다.
피어레스 휘하의 빅 워커 사냥 개미는 꾸준히 죽어났지만, 영양만 충분하면 포섭하기가 쉬웠다.
포션 워커, 미니 워커, 시절 워커, 이렇게 세 종류의 특수종을 키워낸 나는 1차 진화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하여 연구자의 마음가짐으로 부하의 부하를 육성해 봤다.
제일 보편적인 빅 워커와 빅 솔져 진화 규칙은 간단했다.
이들은 직업을 가진 개미들에게 단백질 영양만 충분히 제공하면 알아서 진화하니, 따로 육성할 필요가 없었다.
내게 필요한 건 빅 워커가 아닌 특수종의 육성이었다.
어떤 특수종이든 기본 전제 조건은 모두 같았다.
충분한 영양.
그 상태에서 턱을 많이 사용하면 시절 워커가 탄생했고, 회복초를 꾸준히 먹이면 포션 워커로 진화했다.
미니 워커는 더 쉬웠다.
그냥 목숨을 태워야 할 정도로 많은 일을 시키면…….
연비 좋은 미니 워커로 진화했다.
개미족의 진화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행동과 먹이에 따른 적응이었다.
그런 이론으로 접근했을 때 블랙 워커의 진화 조건은…….
‘동족 해체와 동족 포식이겠지.’
단순히 동족을 먹기만 해선 블랙 워커가 될 수 없다.
본능을 극복하고 무수한 동족을 해체하는 상황에서 동족의 고기까지 포식한다면.
자연히 마석이 형성되고 블랙 워커로 진화한다.
그렇게 진화하게 되면 기감도 자연히 따라온다.
아마 나 같은 경우는 진화와 기감의 순서가 반대로 됐다고 볼 수 있었다.
마력을 의식하게 된 내가 잡다한 마력을 흡수하게 되면서 자연 진화가 불가해진 경우였다.
‘그때는 힘들었지.’
불순한 마력을 제거하고, 내 속성에 맞는 마력만을 뭉쳐 마석을 만들어 진화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마력 강화액이 독으로 작용한 셈이지만…….
다른 개미들에게는 마력 강화액이 진화 촉진 작용을 톡톡히 하는 걸 보아 내 상황이 조금 특수한 것 같았다.
부하의 부하들까지 진화시키며 1차 진화에 관해선 어느 정도 간파했지만, 2차 진화는 아직 미지수였다.
‘듣기로는 마력 한계치에 도달한 빅 워커도 많다고 들었어.’
진화하지 못한 선배들의 상황으로 봐선 무작정 마력만 쌓는다고 진화하는 것도 아니었다.
‘다들 1차 진화를 했으니, 수를 좀 더 늘릴 수 있겠어.’
나는 둥지 안전 확보를 위해 고블린부터 토벌할 생각이었고, 토벌을 위한 전력 확보를 우선했다.
스물다섯 마리의 부하의 부하들에게 직속 부하를 받게 하여 총 125마리의 인력을 충원했다.
각 부서는 31마리의 개미로 구성할 수 있었다.
영양 생산과 밀접한 버섯 농장과 톱밥 생산 개미부터 충원하여 안정화가 이루어지면 순차적으로 인력을 채워줬다.
인력이 충원될수록 농장과 톱밥 창고가 확장됐고, 무덤 근처에 임의로 만든 하녀 휴게실과 사냥 개미의 휴게실 또한 커졌다.
치료실도 넓어졌지만, 부상자가 늘지 않아 불만이 많아졌다.
일이 없어서 불만이라니.
‘좋은 정신이야.’
치료실이 한가할 때는 메디를 제외한 의료 개미들을 밖으로 내보냈다.
의료 개미들은 밖에서 약초를 캐거나, 둥지 복귀가 힘든 부상 개미를 이송해 왔다.
의료 개미가 현장을 돌아다니자 사냥 개미의 사망률이 극적으로 줄었지만, 내 기준에선 여전히 높은 수준이었다.
‘개미족의 전투력은 그리 높지 않아…….’
숲의 사냥감을 살펴보면 뿔 토끼, 거대 쥐, 사슴, 멧돼지, 회색 늑대, 고블린 등이었는데, 하나같이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애초에 개미족은 영역 내의 시체 회수 전문이지, 사냥에 특화된 생물이 아니었다.
영역 밖에서야 약할지 모르나, 일단 출입구 근처에서 전투가 벌어지면 지원군을 쏟아내기 때문에 상대가 무엇이든 살아선 돌아갈 수 없었다.
침입자 한정 여포.
숲의 포식자들도 이를 알기에 출입구 근처로는 얼씬도 하지 않았고, 좀 더 영악한 포식자는 개미족을 영역 밖까지 유인하여 사냥했다.
‘개미는 전쟁이 특기인 곤충이야.’
미친 번식력과 성장 속도를 가진 고블린이 성비 불균형으로 무한정 증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단단한 외골격과 탁월한 집단 전투력을 갖춘 개미족 또한 통솔과 전략의 부재로 숲을 지배하지 못했다.
달리 말해, 통솔과 전략을 갖춘 개미 부대가 있다면?
‘기존의 먹이사슬이 뒤집히겠지.’
시간이 흘러 충원된 개미들이 1차 진화를 맞이했다.
때가 됐음을 인지한 나는 그동안 축적한 영양을 풀어 빅 워커 70마리를 추가로 모집하여 사냥 팀을 채웠다.
총원 101마리가 된 사냥 팀은 다섯 마리씩 짝지어 20팀을 만들었고, 그동안 무수한 사선을 넘어 튼튼해질 대로 튼튼해진 빅 솔져 피어레스가 총대장을 맡았다.
“난 강하다. 강한 내가 이끈다!”
빅 워커로 구성된 하녀 팀은 날 호위했고, 포션 워커로 이루어진 의료 팀은 후위에서 사냥 팀을 지원했다.
부족한 전력은 아니지만, 이대로 고블린 토벌에 나설 생각은 없었다.
나는 남은 영양을 모두 털어 발 빠른 빅 워커 50마리를 모았다.
이들은 임시 고용된 용병이었고, 나는 이들에게 단순 정찰만을 부탁했다.
“절대로 싸우지 마! 너희의 임무는 본대의 눈이 되어 주는 거니까!”
정찰병을 대규모로 운영하여 짧은 시야 범위에서 오는 약점을 보완했다.
이로써 기습, 암습, 추적 등이 가능해졌다.
“…그럼, 시작하자!”
50마리의 정찰병과 20개의 사냥 팀이 긴밀하게 상황을 주고받으며 진군했다.
무수한 페로몬 언어와 표식이 숲을 뒤덮었지만, 숲은 고요 그 자체였고, 고블린들은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키?”
그들이 이상함을 감지했을 때는 이미 101마리의 빅 워커 본대에 포위된 상황이었다.
그동안 개미로 살아오며 파악한 게 있다.
뛰어난 더듬이 감각을 갖춘 개미족은 상대의 움직임을 잘 읽었고, 전진과 후진이 신속하여 정면의 적에게는 강했지만, 좌우 기동이 느려 측면이나 뒤를 잡히면 약점인 배가 노출됐다.
그 말은, 측면과 뒤만 잡히지 않는다면 단단한 외골격을 앞세워 공격을 받아낼 수 있고, 강력한 턱으로 상대를 잡아 뜯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빅 워커라면 체급이 비슷한 고블린의 얇은 팔다리뼈 정도는 어렵지 않게 부술 수도 있었다.
“공격!”
나의 페로몬 외침에 101마리의 빅 워커가 열 마리가 채 되지 않는 소수의 고블린을 덮쳤다.
측면과 뒤에 공간을 두지 않는 포위 공격으로 약점 자체를 지운 전법.
고블린들은 반항할 틈도 없이 그저 당황하다 당했고, 사지가 뜯기며 푸른 피를 뿌렸다.
잔혹한 풍경이었지만, 개미족이 된 내게는 사냥감이 요리되고 있을 뿐인 모습으로 받아들여졌다.
“부상자 보고!”
시작과 함께 끝나버린 전투.
“1팀 이상 무.”
“2팀 이상 무.”
내 앞에 주르르 늘어선 빅 워커들이 보고를 시작했다.
“20팀 이상 무.”
부상자는 없었다.
“그럼 다음 장소로 이동하자.”
부산물은 그대로 두고 정찰대가 마킹한 타깃을 향해 이동했다.
페로몬만이 가득한 조용한 이동.
정찰대에 발각된 고블린을 차분히 쌈 싸 먹으며 이동했다.
가끔 뿔 토끼, 거대 쥐, 사슴, 멧돼지 무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사슴과 멧돼지는 덩치가 위협적이라 피하기로 했고, 뿔 토끼와 거대 쥐는 조용히 처리했다.
뿔 토끼의 몸에서 마석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뿔과 가죽은 쓸 만해 보였다.
거대 쥐도 마석은 나오지 않는 대신 먹을 부분이 많았고, 가죽 또한 나쁘지 않았다.
고블린을 죽였을 때와 마찬가지로 부산물은 챙기지 않았다.
나의 목적은 위험요소의 제거이지 자원 확보가 아니었고, 부산물은 가만히 둬도 뒤따라온 개미들이 알아서 챙겨 갔다.
정찰대는 시야 확보와 사냥감 선정을, 본대는 포위 섬멸을, 지휘부인 나는 지휘를, 후위는 응급 치료를, 뒤따라온 개미들은 부산물을 운반하거나 부상자를 이송했다.
철저한 분업으로 이루어진 효율적인 사냥이 이어졌다.
‘어? 미량이지만, 마력이 증가했어.’
나는 적과 직접적인 접촉이 없었지만, 사냥감의 단말마를 듣는 것만으로도 마력이 증가하고 있음을 느꼈다.
‘마력에 속성이 있다면, 내 마력은 어둠 속성이라 할 수 있어.’
나의 마력은 죽음이 가득한 무덤이나 전장에서 증가했고, 다른 속성의 잡다한 마력을 흡수할 수 있었다.
얼핏 보면 사기적인 속성처럼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효율이 좀 떨어진단 말이지.’
주변의 개미들과 비교해 봤더니, 흑마력은 호흡을 통한 마력 증가량 자체가 미미했고, 섭취를 통해 얻는 양도 적었다.
예를 들어 다른 녀석들은 호흡으로 1만큼 성장한다면 나는 0.1밖에 성장하지 못했고, 평균적으로 1의 영양을 0.5만큼 마력으로 변환할 때 0.1을 얻는 것도 힘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늦게 쌓이는 만큼 더 위력적이냐?
그것도 아니었다.
모든 개미들은 마력이 쌓일수록 신체가 강화되지만, 각자 특화된 부분에 따라 강화 방향성에 차이가 있었다.
빅 워커 같은 경우, 마력이 쌓이는 속도가 빠르고 신체 강화 비중이 제일 높았으며, 시절 워커의 마력은 턱 힘의 강화 비중이 높았다.
포션 워커의 마력은 치유액의 약성 강화와 치유액 생산량 강화에 집중되어 신체 강화 비중이 매우 떨어졌고, 미니 워커의 경우 체력 강화 비중이 높았다.
블랙 워커인 나의 마력은 속성 내성 강화 비중이 높아 신체 강화 부분이 떨어졌다.
정리하자면 평범한 보급종은 성장도 빠르고 강하기까지 한데, 유니크한 종으로 갈수록 성장도 느리고 약했다.
각 종은 특성이 두드러지는 만큼 역할이 명확했고, 블랙 워커 또한 마찬가지였다.
블랙 워커는 속성 내성이 강해 환경 적응력이 탁월했고, 마력이 쌓일수록 흡수 효율이 높아지는 특성이 있었다.
즉, 보급종 빅 워커가 초반 여포라면 유니크인 나는 대기만성형이라는 뜻이다.
뭐, 2차 진화를 통해 수명을 늘려야 대기만성의 혜택을 누릴 수 있겠지만…….
‘이제 겨우 2년밖에 남지 않았단 말이지.’
살고 싶으면 진화해야 한다.
고블린을 하루 빨리 몰아내고 군체가 안정된다면.
‘수련 시간을 늘려야겠어.’
무한자원 개미군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