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자원 개미군단-13화 (12/189)

13화. 해체 자동화

“크악! 내 더듬이!”

선봉대의 빅 워커 하나가 더듬이를 다쳤다.

“3팀 중상 하나!”

개미족은 머리 쪽 외골격이 깨지거나 앞다리가 뜯겨도 경상이지만, 더듬이를 살짝이라도 다치면 중상이었다.

이는 더듬이가 눈, 코, 귀, 혀의 역할을 겸하고 있어 다치게 되면 한동안 정상적인 활동이 불가능하고, 회복이 늦어지면 목숨을 잃기 때문이었다.

붙어 있는 눈은… 그냥 없어도 되는 장식이다.

중상자와 부산물은 뒤따라온 개미들에게 맡기고 다음 타깃을 향해 이동했다.

이동을 마치면 다시 한번 섬멸전이 시작됐다.

개미족은 움직임을 가속할수록 뇌가 가열되고 수명이 줄어들었기에 전투 지속력이 그리 좋지 못했다.

“부상자는 치료실로 보내고, 휴식을 취한다!”

틈틈이 휴식을 취해가며 사냥을 이어갔지만, 반나절 채 지나지 않아 뒤처지는 빅 워커가 발생했다.

“피어레스, 몇 마리나 뒤처졌는지 확인해 줘!”

“다섯 개 팀이 못 따라오고 있다.”

때가 됐음을 인지한 나는 사냥을 마쳤다.

“대승이다! 돌아간다! 돌아가는 길에 고블린 부산물을 챙겨라!”

“와와!”

반나절 동안 20회의 전투를 치르며 약 백여 마리의 고블린을 죽였다.

백여 마리를 죽이는 동안 사망자는 없었고, 중상자는 스무 마리 정도 나왔다.

비록 정찰대의 빅 워커 열 마리 정도가 실종됐지만, 오늘 사냥한 고블린만으로도 빅 워커 50마리를 육성하고도 남았다.

나는 둥지에 돌아오자마자 부대를 재정비했다.

다친 개미는 치료실로 보내고, 휴식이 필요한 개미는 휴게실로 보냈다.

수 시간 휴식을 취한 후 다시금 부대를 소집했다.

본대의 101마리 빅 워커 중 60마리만이 모였고, 정찰병도 서른 마리 정도 부족했다.

[사냥대원 모집! 정찰대원 모집! 조건 빅 워커!]

고블린 사체를 해체하느라 바쁜 빅 워커들에게 막대한 배당을 제시하여 새롭게 부대를 편성했다.

포위 섬멸 경험이 있는 빅 워커와 신입 빅 워커를 적절히 섞어 다시 20개 팀을 만들었다.

“가자!”

전과 같이 호위로는 세크리의 하녀 팀 31마리를 대동했다.

“우와아아!”

어째서인지 사기가 매우 높아진 개미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고블린은 둥지를 중심으로 서쪽과 북쪽에 있었지만, 북쪽 고블린이 규모가 작은 편이었다.

“북쪽으로 간다!”

만만한 규모의 고블린을 처리하며 경험을 쌓았다.

20회의 전투를 마치면 다시금 돌아와 정비했다.

부대를 이끌고 나가 보니, 현재 개미족의 체력으론 20회의 전투가 한계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아침, 점심, 저녁, 새벽 등등 시간을 가리지 않으며 정비가 되는 대로 출전했다.

하루에 서너 번의 출전만으로 둥지의 모든 잉여 개미가 달려들 정도로 많은 고블린 사체를 얻었다.

그렇게 잃어버린 영역을 회복해 가는 중, 나뭇가지와 넓적한 잎으로 만들어진 엉성한 움막들을 발견했다.

널려 있는 식물, 돌, 나뭇가지 등을 보면 원시적인 문명의 흔적 같았다.

‘고블린 촌락이다!’

정찰병을 보내 확인해 보니 무장한 고블린은 여섯 마리뿐이었고, 나머지는 암컷과 새끼들이었다.

‘빈집이군.’

경비 중이던 고블린 여섯 마리를 다구리를 놓아 찢어 버렸고, 숨어있던 암컷 한 마리와 새끼 열 마리를 끌어냈다.

암컷은 수컷과 달리 머리가 크지 않았고, 대머리도 아니었으며 위협적이지도 않았다.

‘생각보다 순하네.’

초록 피부에 길쭉한 귀, 초록 머리카락에 동글동글한 얼굴과 평평한 가슴.

전체적인 비율 자체가 어린아이와 비슷하니 자세히 보면 귀엽기도 했지만, 내게는 먹이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확실히 개미의 감각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어.’

새끼 중에는 암컷이 없었고, 괴팍한 녀석이 일부 섞여 있었지만, 절반 정도의 머리를 뽑고 나니 매우 온순해졌다.

‘키울 수 있으려나…….’

둥지에는 해체 대기 중인 고블린 사체가 널려 있어 위협적이지 않다면, 보존식 삼아 생포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세크리, 이들은 생포한다.”

호위로 따라다니던 빅 워커 하녀들에게 지시하여 접착액으로 팔을 묶게 했다.

하녀들의 움직임을 읽은 암컷 고블린이 양손을 공손히 내밀어 속박을 받아들였다.

‘눈치가 빨라.’

눈치 없이 발버둥 치던 새끼 고블린은 머리가 뽑혔기에 눈치 있는 녀석만 산 채로 옮겨졌다.

“출입구 근처는 좀 그렇고 어디가 좋을까…….”

지하 2층 쓰레기장 인근에 감옥을 만들어 고블린을 가두기로 한 나는 세크리에게 생포한 고블린의 처우를 자세히 말해 줬다.

“넵! 알겠어요.”

세크리를 보낼 때 고블린들이 모아 둔 가죽과 마석도 챙기게끔 했다.

개미족이 자원으로 여기지 않는 가죽과 마석은 내가 따로 모으고 있었고, 개미들은 나의 창고를 가죽과 마석을 버리는 쓰레기장으로 여겼다.

후속으로 따라온 개미들을 시켜 움막을 부수게 한 후 다음 사냥감을 찾아 이동했다.

주변의 고블린을 깨끗이 치우며 고블린 촌락 두 곳을 더 토벌했다.

둘 다 빈집이나 마찬가지라 토벌은 어렵지 않았고, 순종적인 암컷 고블린과 반항하지 않은 새끼 고블린을 생포해 보냈다.

작은 규모의 촌락에는 평균적으로 암컷 한 마리, 새끼 열 마리 정도가 있었다.

사냥을 이어 가던 중 고블린이 사는 동굴을 발견했지만, 80마리가 넘는 무장 고블린이 있어 감시병 다섯 마리 정도만 남겨 둔 채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부지런히 20회의 전투를 채우고 둥지로 돌아왔다.

둥지 내에선 나를 비롯한 사냥팀의 실적이 실시간으로 갱신되며 지하 깊숙한 곳까지 전달되고 있었다.

“다크 님이다!”

“저도 사냥 팀에 넣어주세요!”

1차 진화종까지는 모두 날 우러러봤고, 2차 진화종인 자이언트와 스마트들은 나를 기특해했다.

“대단하구나! 무덤지기. 경비대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날 찾아라.”

“네, 그럴게요.”

출입구 인근에 상주하는 경비대장 포메온이 호의를 보였고, 둥지 내에서 고블린 사체를 처리해 주는 운반 대장 캐리와도 좋은 관계를 맺게 됐다.

“요즘 네 덕에 일이 늘었다. 고맙게 생각한다.”

“저도 운반 개미들이 사체를 처리해 줘서 편해요.”

요즘 바빠서 산란방에 들리지는 않았지만, 세크리가 산란방의 시녀장 일리아나와 긴밀히 교류하고 있어 가끔 그쪽 상황을 보고해 왔다.

“요즘 페르 님이 기분이 매우 좋으신지 산란량을 늘렸어요.”

여왕 페르는 단순했다.

영양만 벌어 오면 앞뒤 사정 관계없이 무조건 좋아한다.

“케어님은 걱정이 많으신지 산란량을 줄이셨고, 버섯 농장을 확장하길 바라셨어요.”

현왕이라 불리는 케어는 쓸데없는 걱정이 많았다.

사냥으로 벌어 오는 영양이 많아지는 만큼 영역이 넓어질 것이고, 넓어진 영역만큼 사냥 개미의 실종률이 높아지니 대대적인 고블린 토벌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아직까지 대승이 이어지고 있다지만, 케어는 혹시 모를 대패 상황을 대비하여 버섯 농장 쪽 미니 워커를 빼 가서 농장 건설을 지원하고자 했다.

‘안 가려 할 텐데.’

미니 워커들에게는 과도한 노동량이 제공되고 있어 나를 넘어서는 악덕 개미가 아닌 이상 빼 가긴 힘들었다.

설령 케어에게 넘어간다 해도 머쉬파를 제외하면 버섯 농장을 설계할 능력이 없었다.

“포스 님은 최근 친위대가 아닌 워커들에게도 전투 요령을 알려 주고 계세요.”

무왕이라 불리는 포스는 둥지 일에 관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최근에는 전투 요령 전파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뭘 가르치는 거야?”

“음… 잘 피하는 요령하고 턱에 힘주는 법이랑… 전투 페로몬 뿌리는 기술 같은 걸 알려 주나 봐요.”

여왕들이 각자 성향에 맞게 바쁘게 보내고 있다는 건 매우 좋은 현상이었다.

다만… 내가 밖으로 나돌수록 무덤에 처리되지 않은 동족 시체가 쌓여가는 게 문제였다.

‘이걸 나 혼자 언제 다 해체하지?’

혼자 감당하기에는 조금 많은 양.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데, 둥지의 개미족 중에 동족을 해체할 수 있는 개미가 없다.

‘걔들을 써볼까?’

비상식량으로 가둬둔 고블린들이 떠올랐다.

감옥에는 여러 촌락에서 잡아 온 암컷 고블린 세 마리와 수컷 새끼 고블린 열다섯 마리가 있었다.

온순한 암컷은 속박을 풀어 뒀지만, 새끼들은 배가 고프면 쇠약한 동족을 잡아먹으려 해서 양손을 접착액으로 꽁꽁 묶었고, 그러고도 안심할 수 없어 나무토막과 접착액을 이용해 입까지 막았다.

포악한 새끼 고블린은 먹을 부위도 없고 마석도 작아서 죽지 않을 정도의 최하급 영양만 제공하여 성체가 되는 즉시 식량 창고로 보내 버릴 생각이었다.

그러나 암컷 고블린의 처우는 조금 고민이 됐다.

‘눈치도 빠르고, 온순하단 말이지…….’

예전에 둥지 곳곳에 자생하는 검은 이끼인 흑태를 모아 두는 곳으로 쓰인 감옥이라 구석에 흑태가 한가득 쌓여 있었다.

“쩝쩝, 꿀꺽.”

썩은 음식도 잘 해치우는 개미들조차 맛이 너무 없어 먹기를 포기한 흑태를 암컷 고블린들이 허겁지겁 먹었다.

무엇을 얼마나 먹을까 걱정했는데, 이들의 식성을 보니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

‘둥지 안에 널리고 널린 게 흑태니까. 먹이 걱정도 없겠어.’

어느새 나를 발견한 암컷 고블린들이 먹는 걸 멈추고서 불안한 눈으로 날 주시했다.

나는 한 마리를 선택해 턱으로 잡아끌었고, 잡힌 고블린은 반항 없이 날 따라왔다.

암컷 고블린을 무덤으로 데려온 나는 빅 워커를 해체했다.

내장을 빼내 구석에 버리고, 살, 외골격, 마석을 분리해 보관하는 모습을 수차례 보여 준 후 자리를 비켜 줬다.

한참이나 눈치를 살피던 암컷 고블린이 뭔가 깨닫고서 빅 워커를 해체하려 했지만, 개미족처럼 강력한 턱이 없어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도 일단 내 의도를 파악한 셈이니 바닥에 영양을 뱉어 주자 암컷 고블린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허겁지겁 먹었다.

‘도구가 필요하겠는데…….’

고블린이 영양을 먹는 동안 무덤 옆 쓰레기장에서 칼 모양에 가까운 광물과 거친 광물을 챙겨 무덤으로 돌아왔다.

식사를 마치고 무덤을 둘러보던 고블린이 나를 보자 재빨리 바닥에 엎드려 눈치를 살폈다.

나는 고블린이 보는 앞에서 광물의 날을 갈아 줬다.

“키?”

잘 갈린 광물을 받게 된 고블린은 감사하다며 머리를 조아리더니 빅 워커 해체에 다시금 도전했다.

“결을 잘 찾아야 해. 단단한 외골격을 피해, 여기부터 여기까지가 결이야!”

“키… 카!”

시행착오를 겪던 암컷 고블린은 나의 지도로 개미족 해체 기술을 습득할 수 있었다.

쓰레기장에서 도구 제작에 필요한 광물과 돌을 가져와 제공한 후 무덤에 남아 있던 두 마리의 암컷 고블린을 데려왔다.

최초로 교육받은 한 마리가 새로 온 암컷 고블린에게 도구 만드는 방법부터 해체 방법까지 자세히 알려 줬다.

그렇게 동족 시체의 해체 공장이 완성됐다.

‘쟤가 대장 노릇을 하는 것 같으니. 적당한 이름이라도 정해줘야겠다’

최초로 교육받은 암컷 고블린을 키카라 부르기로 정했고, 나머지는 적당히 숫자를 붙였다.

키카 2, 키카 3…….

개미족의 페로몬 언어는 고블린들에게 통하지 않았지만, 보디랭귀지는 은근히 통했다.

며칠이 지나 적응을 마친 키카가 애처로운 눈으로 날 바라보며 버려진 내장을 가리켰다.

개미가 먹지 못하는 내장은 충분히 썩힌 후 소화액과 산성액을 잔뜩 뿌려 죽음의 냄새를 완화시키고 조금씩 영양화 해야 먹을 수 있지만, 시간과 정성이 너무 많이 들어서 그동안은 적당히 묻어 버리고 있었다.

‘일일이 묻는 건 힘들단 말이지.’

방 하나가 음식물 쓰레기장으로 쓰는 것도 썩 효율적이진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키카가 내장을 가리키니, 적당히 고개를 끄덕여 줬다.

“먹을 수 있으면 먹어 봐,”

긍정의 끄덕임을 본 키카는 조심스럽게 내장을 한 움큼 가져와 입에 넣고서 내 반응을 살폈다.

수차례 같은 행동을 반복하며 나의 반응을 살피던 키카.

개미 내장을 먹어도 된다는 걸 파악한 암컷 고블린들은 버려진 내장을 처리해 주기 시작했다.

‘처리가 곤란했는데 잘 됐어.’

곤란한 문제 하나가 해결됐다.

주변 일대의 소규모 고블린 촌락을 모두 토벌한 나는 발견된 고블린 동굴 주변을 주기적으로 방문하여 사냥 나온 고블린을 처리했다.

수일간 괴롭히자 고블린들이 동굴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더듬이 감각으로 파악해 보면, 동굴 안쪽에는 아직도 서른 마리 이상의 무장 고블린이 있는 듯했다.

‘그래도 서른 마리 정도면 할 만하겠어.’

본대에 토벌을 명했다.

좁은 동굴에서의 싸움에선 포위 전술을 쓸 수 없지만, 벽과 천장을 탈 수 있어 오히려 개미족에게 유리했다.

고블린은 독 안에 든 쥐가 된 것처럼 몰려오는 빅 워커들에게 깔리고 말았다.

꽤 큰 고블린 동굴을 점령하니 암컷 세 마리, 새끼 서른 마리, 거기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 사람 한 명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무한자원 개미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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