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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자원 개미군단-17화 (16/189)

17화. 2차 진화

다들 내게 많은 영양이 있다는 건 알지만, 얼마나 있는지는 나조차도 몰랐다.

생산되는 버섯만으로도 군체의 절반을 먹여 살릴 수 있는데, 수백 마리에 달하는 거대 굼벵이 영양까지 확보한 상황.

“세크리, 모두를 불러와서 영양을 운반해 줘.”

“네!”

나는 창고를 채우고 있던 영양의 80%를 산란방으로 보내 버렸다.

너무 많은 양이라 수백의 개미가 열댓 번을 오가야 했다.

‘이 정도면 만족하겠지.’

내가 이만큼의 영양을 생산해 낼 능력이 있다는 걸 보여 줬으니, 협상도 원활하게 진행될 거라 생각했다.

***

다크가 여왕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보낸 영양은 그의 의도와 달리 대혼란을 초래했다.

“이게 대체 뭐야? 설마 다 영양이란 말이야?! 일리아나! 빨리 정리해! 이러다가는 우리가 파묻혀 버리겠어!”

갑작스러운 사태에 놀란 페르가 일리아나를 찾았고, 포스와 케어는 구석으로 이동해 상황이 진정되길 기다렸다.

“영양이 위협되긴 태어나 처음이군.”

“…나도 그래.”

페르에게 한 소리 들은 일리아나는 영양을 운반해 온 빅 워커 하나를 잡아 물었다.

“너희들 도대체 뭐야? 이건 어디서 난 영양이고?”

“다크 님이 산란방에 영양을 보내라고 해서 옮기는 중이에요.”

“뭐… 다크가?”

페르가 다크를 불러오라곤 했지만, 영양을 보내라곤 하지 않았는데…….

“왜 영양을 보낸 거야!”

“그게… 여왕님들에게 그동안의 감사 표시로 보내신다고…….”

귀중한 영양을 도로 가져가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던 일리아나는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공사 개미들과 운반 개미를 소집했고, 때마침 산란방에 있던 캐리도 불렀다.

“캐리! 영양에 묻히기 싫으면 너도 도와!”

“어… 알겠다!”

이미 수많은 개미가 영양을 가져오는 곳에 운반 개미와 공사 개미들까지 모여들자, 마치 전쟁 통을 방불케 했다.

“캐리 녀석… 이렇게 많다곤 하지 않았잖아!”

영양에 밀려 구석에 끼게 된 페르는 행복해하면서도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다들 움직여! 언더리페도 불러오고!”

일리아나가 모여든 개미들을 지휘하여 창고를 확장했다.

“빨리 옮겨! 야! 너희들, 우릴 묻어 버릴 생각이 아니라면 그만 옮겨!”

“다크 님이 산란방에 가져다 두라고…….”

평소 자신을 내세우지 않던 일리아나였으나 상황이 긴급해지자, 지위로 상대를 찍어 눌렀다.

“내가 누군지 몰라? 시녀장 겸 1장로 일리아나야!”

“하지만…….”

“내가 옮기지 말라고 하면 옮기지 않으면 되는 거라고!”

그렇게 모든 개미가 진땀을 빼며 사태를 진정시켰을 때, 다크가 찾아왔다.

***

산란방에 들어서니 여왕들을 제외한 개미들이 모두 탈진해있었다.

‘다들 영양 부족인가?’

그동안 너무 신경 쓰지 않았나 싶었지만, 그런 이유는 아닌 듯했다.

“다크… 너… 다음에 영양을 보낼 때는 꼭! 말하고 보내! 알겠어!”

“네.”

평소 상냥하던 일리아나가 오늘따라 매우 까칠했다.

일리아나의 안내를 받아 구석에 쉬고 있는 페르를 찾았다.

“페르 님, 부르셔서 왔어요.”

페르는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알 수 없는 오묘한 페로몬을 두르고 있었다.

“다크야… 그동안 잘 지냈느냐? 나는 조금 전에 죽을 위기를 넘겼단다. 이런 스릴은 오래간만이라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아.”

“네… 그러셨군요. 전 잘 지내고 있어요. 제가 보낸 영양은 잘 받으셨나요?”

“그래… 아주 잘 받았지. 케어와 포스도 좋아 죽으려 했어.”

“그럼 걱정 없이 산란할 수 있겠군요.”

“그렇지. 덕분에 걱정 없이 산란할 수 있겠어.”

그동안 영양 부족 문제로 케어와 종종 다투던 페르는 문제가 해결됐음을 깨닫고서 기뻐하기 시작했다.

“이제 케어와 다툴 일도 없겠구나.”

페르의 기분을 맞춰 주며 몇 마디 더 주고받자, 원하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다크, 네 공이 그동안 컸는데, 우리가 너무 무심했던 것 같구나. 내게 필요한 게 있으면 뭐든 말하렴.”

평소라면 겸양 떨며 사양하겠지만, 오늘은 여왕들에게서 얻어갈 게 있었다.

“그럼… 재산권을 받을 수 있을까요?”

“재산권?”

“네. 앞으로 제 부하들이 생산한 영양에 한해서는 제가 관리하고 싶어요.”

“그건…….”

잠시 망설이던 페르는 빵빵하게 가득 찬 영양 창고를 힐끔거리더니 흔쾌히 승낙했다.

“하긴… 그렇게 하도록 하렴.”

“감사합니다. 감사의 뜻으로 버섯 영양은 정기적으로 부족하지 않게 보내 드릴게요.”

그런데 탐욕의 화신이던 페르는 오늘따라 도를 깨우쳤는지 절제의 미덕을 보여 줬다.

“음… 정기적으로, 적당히 보내 주면 좋겠구나.”

“네! 정기적으로 넉넉하게 보내 드릴게요!”

“적당히 보내 주면 충분하단다.”

“충분히 말이죠?”

“아니… 적당히라고!”

페르에게서 재산권을 인정받았지만, 나머지 두 여왕의 인정이 없으면 반쪽짜리 권리나 마찬가지였다.

“네가 많은 영양을 가지고 있다곤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그런데 앞으로 산란방에는 얼마나 보내 줄 것이냐?”

여왕 케어와는 말이 잘 통하는 편이었다.

“생산량의 10%로 생각해요.”

“60%면 나도 재산권을 인정해 주마.”

부하들을 굴리는데 드는 비용은 무임금에 가까워 90%를 넘겨도 손해는 없지만, 내가 영양을 활용하는 쪽이 군체에 이익이 된다고 생각해 양보는 최소한으로 했다.

“산란방에 그 정도로 필요하지는 않잖아요.”

“넘치는 영양은 둥지 내의 개미들에게 나눠 줄 거란다.”

“페르 님은 나눠 줄 생각이 없으셨는데…….”

“페르와는 따로 합의할 테니 50%를 다오.”

“양보해서 20%를 드리는 대신, 내년 봄까지 농장 규모를 두 배로 키울게요.”

“세 배로 키운다면… 나쁘지 않겠구나.”

“좋아요!”

케어와 협상을 마무리하고 마지막 남은 여왕 포스를 찾았다.

“재산권? 재밌군…….”

포스는 흥미로워하며 날 한참이나 내려다보더니 말을 이었다.

“둥지 인근 고블린을 상대로 압도하고 이만한 영양을 산란방에 가져온 넌… 이미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그러니 내가 막아설 이유가 없지. 알아서 원하는 걸 가져가라.”

포스에게도 인정을 받았다.

캐리는 상황이 자신의 생각한 것과 다르게 흐르자 당황했다.

“재산권이라뇨! 개미족 역사상 그런 게…….”

오늘따라 특별히 까칠한 일리아나는 캐리가 맘에 안 들었는지 일침을 날렸다.

“야! 캐리! 아직 할 일 넘치는 거 안 보여! 끼어들 시간 있으면 영양이나 옮겨!”

“하지만……”

“하지만이고 뭐고! 너 때문에 몰살당할 뻔한 게 조금 전이야! 빨리 옮기지 못해!”

“큭…….”

세 여왕에게서 재산권을 승인받은 나는 당당하게 돌아가려는데, 어깨는 축 늘어트린 캐리가 날 붙잡았다.

“다크여… 사실 운반 개미들의 영양 사정이 그리 좋지 못하단다. 운반은 내가 맡아 줄 테니. 그 대가로 영양을 나눠 줄 수 없겠니? 이렇게 부탁하마…….”

6장로 캐리는 내게 운반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가로 영양을 달라고 했다.

‘하긴, 내 부하들은 생산만으로 벅차니 외주로 넘길 수 있는 건 넘기는 게 좋지.’

캐리는 내게 엿을 먹이려던 개미였기에 서비스 이용료를 강력히 후려쳤지만, 캐리는 일감을 따낸 것만으로 매우 만족해했다.

“고맙다, 고마워.”

캐리와의 협상으로 힌트를 얻은 나는 다른 장로 개미들을 찾아가 봤다.

“제 휘하 개미의 출입 허가와 창고 경비를 지원해 주면, 오갈 때마다 영양을 나눠 줄게요.”

“정말이냐?”

자이언트 솔져인 5장로 포메온에게서 경비 서비스를 제공받기로 했다.

“네트리 님, 괜찮은 아이들을 제게 보내 주면 일자리를 제공할게요.”

“고맙구나.”

4장로 네트리에게서도 유충방의 우수 졸업자를 넘겨받을 수 있었다.

“언더리페 님. 큰 공사가 필요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요? 영양은 충분히 제공할 생각이에요.”

“좋다!”

마지막으로 3장로 언더리페를 만나 협력 관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생산 라인이 안정되니 할 수 있는 것도 많아졌어.’

“다크, 언제든 절 의지해도 좋아요.”

산란방이 안정되면서 일리아나는 다시금 천사로 돌아왔다.

“둥지에 위협이 될만한 일은 삼가도록…….”

자이언트 솔져인 2장로 제르다코는 날 경계하는 듯했다.

스마트 워커인 7장로 트라이를 제외한 장로들과 적절한 관계를 맺게 된 나는 버섯 농장 확장을 위해 톱밥 생산처를 찾았다.

목공소 같은 곳에서 시절 솔져인 나우피어가 다수의 시절 워커와 함께 일하고 있었다.

“어… 다크 님, 어쩐 일이세요?”

“별거 아냐. 톱밥 생산량을 더 늘렸으면 해서.”

“그럼 장작을 줄일까요?”

“아니. 벌목 팀을 늘리고, 나무와 교환해 주는 영양을 1.5배 늘려.”

“1.5배요? 그럼 많이들 가져오겠네요!”

둥지의 문제는 대체로 영양을 풀면 해결이 됐다.

톱밥 생산처인 지하 1층까지 올라온 김에 사냥 개미들의 휴게실을 잠깐 들렀다.

그곳에선 빅 솔져인 피어레스와 빅 워커인 사냥 개미들이 겨울잠에 빠져 있었다.

날이 슬슬 풀리면서 깨어나는 개미도 있었지만, 피어레스는 요지부동이었다.

‘깨어나면 빡세게 굴려야겠어.’

무덤으로 돌아가던 나는 인간 숙소에 잠시 들렀다.

1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소녀가 좀 더 어려 보이는 소녀를 껴안고서 잠자고 있었다.

‘자매인가?’

두 소녀는 자면서도 눈물을 흘렸다.

그런 두 소녀를 보면서 내가 느낀 건 씁쓸하게도 공복감이었다.

‘맛있게들 생겨서는…….’

나는 두 소녀의 불행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고자 곁으로 다가갔다.

나의 호흡은 대기 중의 흑마력을 흡수하며 동시에 주변의 불행한 감정마저 흡수할 수 있었다.

이들이 불행은 꽤나 깊었는지 마석이 빠르게 채워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소녀는 눈물을 그치고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휴…….”

소녀들 덕분에 또 한차례 마력 한계치를 돌파한 나는 무덤으로 돌아가려다 통증을 느끼곤 멈칫했다.

‘큭!’

그동안 흑마력 최대량을 꾸준히 늘렸더니 신체의 수용량을 넘어선 지 오래였고, 그로 인해 정신과 신체의 부하가 가중되어 가끔 피곤해지곤 했다.

그러나 지금 느끼는 고통은 그 정도 수준이 아니었다.

마석이 갈라지는 듯한 감각과 함께 체내의 흑마력이 날뛰기 시작했다.

폭주하는 흑마력은 주변의 흑마력까지 몽땅 끌어와 신체 조직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젠장! 흑마력이 날뛰고 있어!’

이대로 두면 가슴 쪽에 형성된 마석이 깨지고, 폭주한 마력으로 인해 전신이 찢길 판이었다.

어떻게든 폭주한 흑마력을 가라앉히려 했지만, 몰아치는 흑마력은 거센 파도와도 같았다.

‘늦었어, 막을 수 없어!’

막을 수 없으니 순응해야 했다.

‘이대로 둔다!’

흑마력이 날뛸 수 있도록 내버려 두자, 차츰 고통을 잊을 수 있었다.

그러나 고통이 줄어도, 신체 조직이 파괴되고 있다는 건 변함이 없었다.

‘이대로 죽는 건가?’

의식이 마력에 휩쓸려 침몰해 갔다.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서 그동안 맺어온 인연이 떠올랐다.

까칠하면서도 날 좋아해 주는 페르, 약자를 싫어하면서 날 인정해 주는 듯한 포스, 언제나 걱정 가득한 케어…….

날 경계하면서도 필요할 때면 도움을 손길을 뻗어 주던 장로들과 맹목적으로 날 따라 주는 부하들…….

짧은 개미 생에서 얻은 값진 인연들이 떠오르자 절로 웃음이 나왔다.

‘나쁘지 않은 삶이었어.’

덤으로 얻은 수년의 삶.

아쉬울 것 없는 삶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나쁘진 않지만… 최고가 아니잖아!’

2회차라는 버프도 있는 마당에 고작 일개미로, 그것도 몇 년 동안 수명이나 걱정하다가 죽는다니.

꿈을 좇다 쓰러진 전생보다 못하지 않은가?

감정이 가열되며 희미해지던 의식을 붙잡았다.

‘이대론… 죽어도 눈감을 수 없어!’

개미는 원래 눈을 감지 않지만.

‘최고다! 바닥부터 최고를 쫓던 나야! 이런 곳에서 쓰러질 정도로 약하지 않다고! 내가 쓰러지는 건 군체를 최고의 자리에 올려둔 후란 말이다!’

마력의 파도에 정면으로 맞설 순 없지만, 파도에 휩쓸려가면서도 감정을 고조시며 정신을 곤두세웠다.

필사적으로 의식을 끈을 부여잡고 있을 때 뇌리가 번쩍였다.

그 후 파괴만을 일삼던 흑마력이 세포 분열을 도왔고, 나의 몸은 세포 단위로 교체되기 시작했다.

무협 소설에서 나올법한 환골탈태.

즉, 진화에 돌입한 것이다.

무한자원 개미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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