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자원 개미군단-20화 (19/189)

20화. 장로 후보 블러리

시절 워커인 나우피어는 여섯 개의 다리와 두 개의 턱이 칼날처럼 변한 블레이드 솔져로 진화했다.

날카롭게 벼려진 몸으로 날렵하게 움직일 수 있는 블레이드 솔져는 최강종이라 불릴 정도로 강력한 존재였다.

“다크 님, 다른 개미들이 절 피해요.”

“그야…….”

보는 것만으로 베일 것 같은 모습에서 동족마저 두려움을 느끼니까.

이유를 말해 주려 했지만, 슬픈 페로몬 때문에 차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개미들은 나우피어를 두려워하면서도 부러워했지만, 겁 많고 사냥이 싫은 녀석에게는 돼지 목의 진주 목걸이와 다르지 않았다.

“드디어 나도 진화했다!”

빅 솔져인 피어레스는 모두의 예상대로 보급종인 자이언트 솔져로 진화했다.

단단한 외골격과 큰 덩치.

자이언트 계열은 흔한 보급종 개미지만, 블레이드 솔져 같은 살상 특화 종을 제외하면 최강이었다.

“자이언트로 진화했다! 흐하하하하!”

“축하한다, 피어레스.”

당연히 생존에 특화된 종인 나보다도 훨씬 강했다.

‘남은 녀석들은 좀 특수종으로 진화해 주겠지.’

개미들은 자이언트 계열을 최고로 취급했지만, 나로서는 특이 개체를 원했다.

정찰 개미인 빅 워커 페스트는 푸른 무늬의 날개가 달린 개미로 진화했다.

‘특이 개체다!’

위이잉!

플라이 워커로 진화한 페스트는 페어리 워커의 우아한 부유 비행과 달리 모기 같은 소리를 냈다.

“탐색과 추적은 제게 맡겨 주세요!”

더듬이도 한층 더 길어진 페스트는 인지 범위도 확대됐다고 했다.

“그래, 앞으로 정찰을 부탁할게.”

개미 부대의 포위 섬멸 전법은 정찰 능력이 받쳐 줘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플라이 워커는 개미 부대의 사냥 능력을 비약적으로 상승시킬 수 있는 존재였다.

‘간부로 삼길 잘했어.’

페스트를 포함해 공을 들여 둔 개미가 두 마리나 더 있었다.

한 마리는 산성액을 활용한 포병 부대를 육성하던 포룸이었는데, 그는 나의 기대대로 산성액 특화종인 액시드 워커로 진화했다.

엉덩이가 대포 같은 형태로 변한 포룸은 산성 내성과 독 내성을 갖췄고, 산성액을 분사하는 산성 연막과 대포처럼 쏘아내는 산성포를 쓸 수 있게 됐다.

특화종인 만큼 육탄전에 취약했지만, 쓰기에 따라선 매우 강력한 무기였다.

“포룸, 지금처럼 포병 개미를 육성해 줘.”

“하던 일. 한다.”

포룸은 2차 진화종임에도 페로몬 언어가 매끄럽지 못했다.

간부 중 마지막으로 진화한 건 요리 개미들을 이끄는 쿠쿠였다.

쿠쿠는 분홍 무늬의 팩토리 워커로 진화했다.

‘떴다! 생산에 특화된 팩토리 워커야!’

주로 영양화에 동원되는 빅 워커의 영양 생산 속도가 1이라면, 스몰 워커의 경우 0.3정도다.

미니 워커의 경우 생산 속도가 기준치 1을 살짝 넘는 수준이었고, 자이언트 워커는 기준치의 3배에 달하는 생산력을 보유했으나, 이놈들은 3을 생산하고 5를 먹어치우는 녀석들이었다.

둥지에서는 스마트 워커의 생산성이 0.2정도라 모두가 자이언트 계열로 진화하길 바라는데, 군체의 자이언트가 늘면 망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었다.

그동안 내가 미니 워커를 늘려 둥지의 생산성을 개선해 왔으나, 둥지의 영양 사정이 풍족해지는 만큼 연비 최악의 자이언트 계열과 생산성이 0에 가까운 스마트 워커가 늘어나니 발전에 한계를 느끼던 참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영양 생산에 특화한 팩토리 워커의 등장은 매우 반가웠다.

팩토리 워커의 생산력은 5에 달했고, 같은 원료임에도 20% 정도 좋은 품질의 영양이 생산됐다.

‘대박이야!’

움직임이 느리고 힘도 약하여 다른 일을 못 하는 대신 영양화 만큼은 다섯 마리 일을 혼자서 해내는 팩토리 워커.

팩토리 워커가 늘면 영양의 생산량이 폭증할 것이다.

“저기 봐, 다크 워커이신 다크 님이야.”

간부들이 2차 진화를 이루면서 나 또한 영향을 받는지 미세하게 강해졌고, 둥지 내의 영향력 또한 커졌다.

지금에 와선 장로 후보인 해체 개미 블러리와 동급으로 여겨지는 듯했다.

‘장로의 바로 아래 서열까지 왔나.’

개미들의 서열 관계에 관여할 생각은 없었다.

나는 3차 진화를 노리고 수련 중이었고, 군체를 무너지지 않는 철옹성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 좀 더 많은 상위종 개미가 필요했다.

“너희에게 2차 진화종 육성을 맡긴다!”

간부들에게 명해 부하 육성을 맡겼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산란방에 불려 가게 됐다.

***

다크의 직속 부하 열 명이 2차 진화를 이뤘다는 소식은 여왕들의 이목을 끌기 충분했다.

“일리아나! 대체 어떻게 진화했는지 알아 와!”

페르가 일리아나에게 명했고, 케어는 트라이를 찾았다.

“트라이! 아이들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알아 봐 다오.”

여러 경로로 다크가 휘하 부하들에게 전수한 수련법이 여왕들에게 전해졌다.

“마력을 비웠다가 채우길 반복해 마력 총량을 늘린다니… 재밌는 발상이군.”

포스는 흥미로워했지만, 다크의 수련법이 사실이라면 새로운 발견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다크가 진화의 법칙을 정확히 알아냈다는 거잖아!”

“나도 어렴풋이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마력을 그렇게 키울 수 있었다니!”

페르와 케어는 일리아나를 시켜 다크를 불러 오게 했다.

산란방에 도착한 다크는 여왕들과 장로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다크, 사실대로 말해 다오. 네가 진화의 법칙을 확실히 알아낸 것이냐?”

케어의 물음에 다크는 주위를 둘러봤다.

다크는 페르가 거짓말을 구별해 낼 수 있다는 걸 알기에 그동안 자신이 깨달은 진화의 법칙에 대해 순순히 털어놓았다.

***

“1차 진화는 특정한 조건을 갖춰야 해요.”

내가 알고 있는 건 빅, 미니, 시절, 포션 정도.

빅 워커로 진화하기 위해선 충분한 영양과 일자리가 필요했고, 미니 워커가 되려면 충분한 영양과 쓰러져 죽을 정도로 많은 일감이 필요했다.

포션 워커가 되려면 약초를 다룰 수 있어야 하고, 시절 워커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턱을 많이 써야 한다.

설명을 들은 여왕들과 장로들은 납득하는 눈치였다.

“우리도 그 부분은 어느 정도 알고 있단다. 단지… 주어진 일에 전념하느라 스몰 워커들이 진화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데 신경을 쓰지 못했단다.”

케어가 장내 개미들의 대표로 변명하듯 말했다.

“그럼 궁금하신 건 2차 진화에 관한 건가요?”

“그래.”

“2차 진화는 더 단순합니다.”

내가 발견한 2차 진화에 대한 비밀과 마력 수련법이 공개됐다.

장내의 개미들은 큰 충격을 받았는지 한참이나 굳어 있었다.

침묵을 깬 건 여왕 페르였다.

“그럼, 이 방식으로 3차 진화도 가능할까?”

내게 물어 본 것이지만, 나는 그 답을 알지 못했다.

페르의 질문은 포스가 대신 답해 줬다.

“3차 진화는 그리 단순하지 않아. 분명 1차 진화처럼 어떤 조건이 있을 거다.”

여왕들과 장로들이 3차 진화에 대한 토론을 시작했다.

그들의 말을 들어 보니, 3차 진화는 2차 진화처럼 간단하진 않은 듯했다.

답을 알 수 없는 토론이 이어져 양해를 구하고 빠져나왔다.

이번 일로 군체의 개미들이 질적 변화를 맞이할 거라곤 예상했지만, 내가 장로로 추대될 것이라곤 생각지 못했다.

“다크 님! 여덟 번째 장로 후보로 블러리 님과 다크 님이 추대됐어요!”

세크리가 가져온 소식에 의하면 나와 해체 팀 수장 격인 블레이드 솔져 블러리가 장로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사이가 돼 있었다.

케어, 일리아나, 트라이 등 머리 좀 쓴다는 개미들은 날 지지했고, 포스, 제르다코, 포메온 등 무투파들은 블러리를 지지하는 상황.

결론적으로 중립이었던 페르의 주장이 통과됐다.

“장로 선출 시험이 개최됐어요!”

“그게 뭔데.”

참가자는 나와 블러리.

“30일간 더 많은 식량을 구해오는 쪽을 여덟 번째 장로로 결정하겠다고 했어요.”

영양 창고를 열면 내가 가뿐히 이기는 게 아닌가 싶지만, 지금 시점부터 외부에서 취득한 식량만 평가될 것이며, 함께 다닐 수 있는 파티원은 열두 마리로 한정한다고 했다.

딱히 장로직을 원하는 건 아니기에 신경 쓰지 않으려 했지만, 블러리가 직접 날 찾아왔다.

“크히히, 네놈이 다크군! 소식은 들었겠지? 모른다고 하면 갈기갈기 썰어 주마!”

짙은 살기를 머금고 있는 블러리.

그를 마주하니 온몸이 저절로 위축됐다.

‘미친놈이다… 저놈은 그냥 미친놈이야!’

“다크 워커씩이나 되는 놈이 내가 두려운 거냐? 그런 거야? 정말 그렇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갈기갈기 썰어 주마!”

날카로운 턱을 마구 들이미니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다.

‘살기에 짓눌려 말도 못하겠어…….’

흑마력으로 신체를 강화해 살기의 압박을 이겨냈다.

“저희 둘 중 하나를 여덟 번째 장로로 추대한다고 들었어요.”

“크히히! 역시 알고 있었잖아!”

놈은 뭐가 그리 좋은지 혼자 히히덕거리더니 내게 말했다.

“네놈의 머리가 비상하다고는 들었다!”

“저도 당신이 강하다고는 들었습니다.”

“네놈의 두뇌와 내 무력… 어느 쪽이 우위에 있는지 승부다!”

“저…….”

기권한다고 했다가 바로 달려들 것 같아 얼떨결에 선전포고를 받아들이게 됐다.

“정정당당한 승부! 지는 쪽이 갈기갈기 썰리는 거다!”

블러리는 할 말만 하고 가버렸다.

‘저 녀석 뭐야… 정말 날 썰어 버리려는 건가? 같은 군체원 끼리는 가족 같은 관계인데? 그래, 농담일 거야. 그럴 리가 없어!’

그러나 세크리를 통해 들려오는 블러리의 소문은 하나같이 껄끄러운 것뿐이었다.

“장로들이 블러리 님을 못 건드리는 건 무력도 무력이지만, 동족이라도 수틀리면 썰어 버리는 더러운 성격 때문에 그래요. 예전에 포메온 님이 해체 팀을 흡수하려다가 블러리 님에게 당할 뻔한 적이 있다고 해요. 당시에 포스 님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칠 장로가 육 장로로 바뀌었을 거라고…….”

“내가 기권하면 어떻게 될 것 같아?”

“자기를 얕본다는 핑계로 썰어 버리려 하지 않을까요?”

살짝 쫄린 나는 일리아나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말했다.

“걱정하지 마. 그놈이 습관처럼 하는 말이니까. 어느 개미가 유망주인 널 죽이겠니?”

“그럼 져도 상관없는 거 맞죠?”

“당연하지! 오히려 이기면… 아니야.”

일리아나가 말끝을 흐리는 걸 듣고서 상황을 알아차렸다.

“제가 이기면 보복하려고 할까요?”

“그게, 확신할 수는 없지만… 놈도 장로가 되기 위해 오랫동안 준비했으니. 이번 기회를 놓치면 상심이 클 거야.”

“그렇군요.”

“뭐, 걱정하지 마. 네가 위험할 것 같으면 포스 님이 나설 테니까.”

블러리는 일리아나 선에서 해결할 수 없는 놈이었다.

‘어쩌라는 거지?’

정정당당한 승부는 무슨, 패배하면 억울해서 복수할 수도 있는 놈이라니!

고민 끝에 이번 장로 선발전에는 대충 들러리 역할만 해 주기로 했다.

‘놈은 장로직을 간절히 원하는 놈이야. 굳이 그런 미친놈을 방해할 필요는 없어.’

나의 고민도 무색하게 어느새 장로 선발 시험이 시작됐다.

지금부터 밖으로 나가서 채집이든 사냥이든 뭐라도 성과를 내야 했다.

나는 메디와 함께 비교적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동쪽의 숲을 오가며 약초를 채집했다.

“다크 님, 여기 봐요. 회복초예요!”

“메디, 저건 마황이잖아!”

식량조차 되지 않는 약초를 채집해 봐야 아무런 성과가 될 수 없지만, 나로서는 꽤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래, 이대로 평화롭게 장로 선발 시험을 넘기는 거야!’

나는 공을 쌓지 않으려 최선을 다했지만, 굴러 들어오는 성과까지 쳐 낼 수는 없었다.

무한자원 개미군단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