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말벌족
“부대원을 모집한다! 사냥 개미들은 내게 와라!”
웅성웅성.
메가피르와 게르피아는 모여든 개미 중 최정예를 자신의 부대원으로 받았지만, 부대원을 소집하는 건 그들만이 아니었다.
열 마리가 넘는 자이언트 솔져가 동시에 부대원을 모집하자, 치열한 구인 쟁탈전이 벌어졌다.
내게는 피어레스가 이끄는 150마리 규모의 사냥대가 있지만.
“안전한 사냥으로 만족하느냐? 강해지고 싶다면 우리 부대로 와라! 우린 위험 가득한 험지에서 사냥한다!”
놈들이 험지 사냥을 미끼로 피어레스의 산하 개미들을 꼬드기더니 50마리를 빼갔다.
‘그래도 이 정도면 다행이야. 자칫하면 부대가 붕괴할 뻔 했어.’
메가피르와 게르피아는 부관으로 자이언트 솔져 두세 마리를 거느리고 있고, 부대원으로 스무 마리의 자이언트 워커와 80마리의 빅 워커를 이끌고 서쪽 지역에서 고블린 세력과 맞붙었다.
나머지 열 마리의 자이언트 솔져들은 자이언트 워커 열 마리와 빅 워커 40마리를 이끌고서 서쪽, 혹은 남쪽을 사냥터 삼아 전공을 쌓았다.
물론 내게도 무력 부대가 있다.
피어레스의 사냥 부대와 그를 보조하는 페스트의 정찰 부대, 그리고 아직 준비 중인 포룸의 포병대가 있었다.
피어레스의 사냥 부대는 자이언트 워커 스무 마리와 빅 워커 80마리로 구성됐고, 페스트의 정찰 부대는 플라이 워커 열 마리와 빅 워커 40마리로 구성됐다.
“다크 님, 저희도 출격하겠습니다!”
“그래, 피어레스. 조심히 다녀와라.”
피어레스와 페스트는 나를 대신해 전공을 쌓았다.
그들은 북쪽 숲을 사냥터로 삼았는데, 한번 토벌을 끝낸 장소인 만큼 부대 규모만큼의 사냥감이 없어 전공 쌓기가 힘들었다.
이는 내가 사전에 북쪽 지역을 떠맡아 부하들을 안전한 곳으로 보낸 것이었다.
‘고블린 산맥은 피해 없이 사냥할 수 없는 곳이야.’
서쪽 고블린 산맥은 사냥이 아니라 적어도 수백 단위가 맞붙는 전쟁을 벌이는 곳이었다.
남쪽 숲은 맹수들이 많으며 먹이 가치가 떨어지는 식물형 몬스터와 개미족의 천적이라 할 수 있는 거미 몬스터가 있어 위험천만한 곳이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서쪽과 남쪽 숲은 위험한 만큼 얻을 것도 많았다.
‘남쪽 숲에는 야자수가 있었지.’
수백의 개미가 밖에서 영양을 벌어 오는 동안, 나는 부하들의 일거리를 만들어 주며 각종 자원으로 차곡차곡 쌓이는 창고를 구경했다.
‘지하 5층 공동에 심을 나무가 필요한데 말이지…….’
가끔 간부들과 함께 지하 5층 공동에 심을 나무를 물색하러 밖으로 나갔다.
‘흠.’
목적을 이루진 못했지만, 둥지에 옮겨 심을 약초는 잔뜩 발견했다.
봄꽃들이 만개할 무렵, 아카시아 숲 개미족이 날 찾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다크!”
“들러리!”
서로를 알아본 우리는 거래할 시기와 장소를 정한 후 헤어졌다.
꿀의 거래가 다시금 시작되자, 전공 쌓기에 열중하던 자이언트 솔져들 사이에서 내 이름이 거론됐다.
“저 녀석이 블러리와 여덟 번째 장로직을 두고 경쟁한 다크인가? 그리 강해보이진 않는군.”
“아카시아 숲 녀석들에게 꿀을 받아 와? 블러리를 잠시나마 앞선 건 운이 아니었군. 그래도 상대는 워커, 지금 이상의 공적을 쌓진 못하겠지.”
“자이언트 솔져인 피어레스와 블레이드 솔져인 나우피어를 거느린 워커라… 워커 주제에 유망한 솔져들을 부리다니. 내가 장로가 되면 질서부터 바로잡아야겠어.”
반수 정도의 자이언트 솔져는 날 대견해 했고, 나머지는 내가 워커인 걸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솔져들의 평가가 어떻든 나는 그저 내 할 일을 하며 수련할 뿐이었다.
체내의 흑마력을 순환시켜 신체 곳곳에 퍼져 있는 흑마력을 모으고, 제어할 수 없는 불순 마력을 몰아냈다.
마력 수련을 통해 제어 능력과 기감이 다듬어졌고, 마석이 가득 차면 신체 강화로 흑마력을 모두 소진하여 한계를 확장해 갔다.
“다크 님! 이번에도 암컷 고블린 두 마리를 생포해 왔어요!”
“그래? 잘했다, 피어레스.”
피어레스가 고블린 촌락을 토벌해 암컷 고블린과 새끼 고블린을 생포해 왔고, 간혹 인간 여자를 잡아 오기도 했다.
고블린이야 충분한 영양만 지원해 주면 키카를 중심으로 잘 적응했지만, 인간들은 그렇지 않았다.
이곳에 온 인간 대부분은 고블린 새끼를 배에 품고 있어 심신이 망가진 상태.
그녀들에게 살아갈 길을 충분히 제시해도 절반은 죽음을 택했다.
그나마 내가 틈틈이 흑마력을 흡수해 부정적인 감정을 가라앉히고, 적절한 압박과 할 일을 제공해서 이 정도였지.
내가 신경 쓰지 않았다면, 잡혀 온 인간은 모두 죽음을 택했을지도 모른다.
다시 시작된 꿀의 거래도 예전만큼 순조롭지 않았다.
이제는 버섯 영양과 15대 1의 비율로 교환하는 꿀.
그럼에도 들러리는 거래할 양을 차츰 줄여 갔다.
“오늘은 이게 전부다.”
“좀 더 가져올 수 없어? 우리 쪽에서 버섯을 더 내줄게.”
“얼마나 늘려 줄 거지?”
나는 거래량을 늘리는 조건으로 꿀의 가치를 올려 줬다.
하지만 그런 보람도 없이 거래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아카시아 숲 개미족의 사정이 안 좋아졌는지, 거래 장소에 나오지 못했다.
거기다 최근 들어 말벌족의 자이언트 킬러비가 영역을 침범해 왔다.
자이언트 워커와 동급인 자이언트 킬러비.
날아다니며 홀로 떨어진 빅 워커를 노렸기에 여간 까다로운 상대가 아니었다.
‘동쪽 숲의 제공권을 뺏겼어!’
자이언트 킬러비의 출몰로 동쪽 숲은 위험해졌다.
채집 활동을 주로 하던 빅 워커들은 동쪽 숲에서 물러나야만 했다.
‘과일, 약초, 동물 사체를 줍기 좋은 곳이었는데…….’
둥지에는 영양이 넘쳤고, 필요한 약초는 둥지 내에서 재배 중이라 큰 문제는 없지만, 활동 영역이 줄어든다는 건 위험한 법.
“다크 님, 북쪽 고블린을 모두 처리했습니다!”
피어레스와 페스트가 고블린을 몰아낸 북쪽은 거대 쥐, 뿔 토끼, 사슴 무리, 멧돼지 정도의 사냥감이 남았다.
“하루정도 떨어진 거리에 인간 마을이 있어요.”
정찰 개미인 페스트가 북쪽 숲에서 인간 마을 세 곳을 발견했다.
‘날아다니는 페스트의 기준으로 하루 거리면… 우리 영역 밖의 일이야.’
거리상 신경 쓸 필요가 없음에도 몹시 신경 쓰였다.
‘인간 마을이라니. 규모는 어떻게 되지?’
궁금했던 나는 페스트의 정찰 부대를 보내 봤다.
며칠 후 페스트가 돌아왔다.
스무 마리나 되는 정찰 개미를 잃었지만, 수확은 있었다.
“나무 기둥을 땅에 박아 벽을 만들고, 나무로 둥지를 지어 살고 있었어요.”
주 소재가 나무인 걸 보아 기술력 자체는 낮아 보였다.
“주로 낮에 움직였어요. 밤에는 소수의 경비만이 돌아다니고요.”
주행성인 건 당연한 거고.
“불빛은?”
“경비병으로 보이는 수컷 두 마리가 횃불을 지켰어요.”
경비와 불빛 규모로 보면 작은 마을인 듯했다,
“수컷은 사냥과 경비를 맡고, 암컷이 작물을 기르고 채집 활동을 했어요.”
이곳 세계에선 중세 때의 지구처럼 남자와 여자의 역할이 확연히 나뉜 것 같았다.
“수컷이 서른 명 정도고 암컷이 50명 정도였어요.”
남자 쪽 사망률이 높은지 성비가 안 맞았다.
“피어레스의 부대로 새벽에 습격하면 세 곳 다 큰 피해 없이 토벌할 수 있을 거예요.”
전력 분석까지 해온 페스트에게 브레이크를 걸었다.
“아니야. 거리도 멀고, 토벌할 생각은 없어.”
고블린도 열기에 약한 편이라 불을 다루진 않았는데, 이곳의 인간 문명이 철기 수준만 되어도 개미족에겐 큰 위협이었다.
‘이쪽도 철기를 다룰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인간 여자들과 고블린을 이용한다면 철기를 만들 수 있다.
‘둥지엔 철광석도 많아.’
기술이야 생산 공정에 빠삭한 내가 알려줄 수 있지만, 문제는 손과 성대가 없어 전수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내가 스마트 워커만 됐어도…….’
진화 트리를 잘못 잡은 것 같아 슬퍼졌다.
***
“뭐 말벌족이 동쪽 영역을 침범했다고!”
“비겁한 녀석들이! 우리가 간다!”
동쪽 숲의 상황이 전해지며 자이언트 솔져 몇 마리가 부대를 이끌고 말벌족 토벌에 나섰다.
“부대 출격! 말벌족을 몰아내자!”
“말벌족 따위에게 영역을 내줄 수 없다! 진군!”
그러나 자이언트 킬러비를 상대로 그동안 고블린에게 써먹던 포위 섬멸 전법은 통하지 않았다.
“비겁한 놈들, 땅으로 내려와라! 상대해 주마!”
자이언트 킬러비는 자이언트 솔져와 워커를 경계하며 산성 공격을 퍼부었고, 기회를 보다가 손쉽게 사냥할 수 있는 빅 워커만을 노렸다.
“이익! 네놈이 안 내려오면 내가 올라가겠다!”
화가 난 자이언트급 개미 하나가 나무를 타고 올라갔지만, 기회를 엿보던 자이언트 킬러비가 공격해 와 지상으로 떨어트려 버렸다.
기껏해야 1g 정도인 지구 곤충의 세계에선 개미가 아무리 높은 곳에서 떨어져 봐야 죽지 않을 테지만, 단단한 자이언트급 솔져와 워커는 낙하 충격을 버텨 내지 못했다.
“컥!”
수많은 자이언트급 개미가 말벌족을 사냥하려다 낙사했다.
그렇게 말벌족 토벌에 나선 자이언트 솔져들은 제대로 된 성과 없이 무너져 갔다.
서쪽과 남쪽으로 사냥 간 개미들의 숫자도 차츰 줄었다.
산란할 여왕들도 없는데, 개미들이 자꾸 줄자 위기감을 느낀 일리아나가 장로들을 소집했다.
여덟 마리가 된 장로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아시다시피 여왕들이 깨어날 때까지 사냥 개미의 보충은 없어. 거기다 유충도 없는 상황이라 영양도 남아돌고 있지. 그런데 지금 솔져들이 전공 쌓기에 눈이 멀어 영역을 무작정 확장하고 있어! 이대론…….”
일리아나가 현 상황을 말해 주며 영역의 축소를 제안했다.
신참 장로인 블러리는 회의에 관심이 없는지 아무런 발언도 하지 않았다.
주로 스마트 워커인 일리아나와 트라이가 의견을 냈고, 회의를 주도하여 결론이 나왔다.
“그럼 각 전선에 저지선을 구축하는 걸로 하자.”
결정 사항은 포메온을 통해 부대장급 자이언트 솔져들에게 전해졌다.
“뭐? 저지선? 지금 우리보고 사냥하지 말라는 거야?”
결정 사항에 불만을 표출한 솔져도 있지만, 따르지 않는 솔져는 없었다.
“가자! 우린 고블린 산맥 아래 저지선을 구축한다!”
“메가피르와 게르피아가 서쪽이면 우린 남쪽으로 간다!”
자신들 때문에 둥지의 영역이 줄었는데도 자이언트 솔져들은 정신을 못 차리고 계속해서 경쟁을 반복했다.
이때, 피어레스는 다크의 지시로 북쪽으로 진군했다.
다크는 장로들의 결정에 찬사를 보내면서도 우려를 표했다.
“일리아나 님, 동쪽 하늘이 완전히 말벌족에게 넘어갔는데, 저지선이 의미가 있을까요?”
“괜찮아. 자이언트 솔져와 워커가 방어에 전념한다면, 말벌족 따위에게 손쉽게 당하진 않을 거야.”
“흠… 그러면 좋겠는데.”
다크의 우려대로 동쪽 저지선은 서서히 무너져 내렸고, 일리아나가 상황을 파악했을 때는 이미 동쪽 영역 전부가 말벌족에게 넘어간 후였다.
블러리, 제르다코, 포메온 같은 무투파 장로들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지만, 일리아나, 트라이 같은 지능파 장로는 초조해했다.
“말벌족이 생각보다 강해…….”
“일라이나, 블러리를 투입하는 게 좋지 않을까?”
“블러리를?”
“녀석의 움직임이라면 날아다니는 말벌족도 썰어 버릴 수 있을 거야,”
장로들보다 한발 앞서 메가피르와 게르피아가 먼저 대처에 나섰다.
“말벌족부터 처리한다!”
“이동 개시다!”
서쪽 저지선을 다른 부대장급 솔져에게 맡긴 둘은 부대를 이끌고 동쪽으로 이동했다.
그때, 막 이동하던 개미들이 뭔가를 느끼고서 멈칫했다.
어리둥절해 하는 개미들에게 급보가 전해졌다.
“급보! 케어 님과 페르 님이 깨어났다고 합니다!”
“두 분 모두 진화에 성공했어요!”
케어와 페르의 소식을 듣게 된 둘은 급히 둥지로 회군했다.
산란방에는 장로들과 부대장급 솔져들이 모였고, 거기엔 다크와 간부들도 있었다.
무한자원 개미군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