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워커 퀸과 서큐 퀸
부대장급 자이언트 계열이 대거 사냥에 나서며 영역이 급속히 확대됐고, 그에 따라 사망자가 급증하며 무덤이 바빠졌다.
‘여왕도 없고, 유충도 없는데 왜 영역을 넓히려는 거야… 다들 생각이 없는 건가?’
확실히 자이언트 계열은 생각 없는 녀석들이 대다수였다.
그나마 설탕수와 꿀을 듬뿍 먹이면 머리가 좋아지는 듯했지만, 바보의 지능을 올려 봐야 바보는 바보였다.
거기다 날아다니는 말벌족 상대로 땅개가 아무리 몰려가 봐야 각개격파만 당했으니.
‘이대론 안 돼!’
병력이 줄어가는 군체가 말벌족에게 털리기 전에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지금처럼 자이언트 워커와 빅 워커가 주축인 부대로는 말벌족을 상대할 수 없어.’
어차피 자이언트 솔져들의 경쟁으로 인해 내가 모집하기도 어려웠다.
‘남은 건… 스마트 워커 정도려나?’
설탕수와 꿀로 인해 진화 트리를 잘못 탄 사냥 개미들이 있다.
스마트 워커로 진화한 그들은 사냥 능력을 상실하여 부대에서 퇴출당한 뒤 실의에 빠져 있었다.
‘스마트 워커라면 얼마든지 있으니까.’
잉여가 된 스마트 워커를 어떻게 이용할지 고민할 때 잠시간 의식이 끊겼다.
‘어, 뭐였지?’
“다크 님, 둥지에 큰 변화가 있는 듯해요.”
세크리의 반응을 보니 나에게만 일어난 형상이 아니었다.
‘머리가 맑아졌어… 페로몬 능력도 강화된 것 같아.’
군체 전원의 지능과 페로몬 능력이 강화된 상황.
“급보! 케어 님과 페르 님이 깨어났어요!”
하녀 개미들이 둥지를 돌아다니며 2차 진화종 개미들에게 케어와 페르가 깨어났음을 알렸다.
“다크 님! 산란방에 가 봐요!”
“그래.”
치료실의 메디까지 챙겨 산란방으로 이동했다.
산란방을 찾은 건 우리만이 아니었다.
둥지에 퍼져 있던 2차 진화종들이 산란방으로 모여들었지만, 친위대인 제르다코의 허가를 받아야만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대부분의 2차 진화종이 입구 컷 당하는 와중 장로들과 솔져들은 통과됐다.
“다크인가. 넌 통과다. 네 직속 부하들도 마찬가지다.”
“감사합니다.”
나를 비롯한 간부들도 부대장급 개미로 인정받아 들어갈 수 있었다.
웅성웅성.
부대장급 개미들로 가득 찬 산란방.
케어와 페르가 달라진 페로몬으로 개미들을 맞이했다.
“다들 왔구나. 그동안 고생 많이 했어.”
“이 몸이 드디어 진화했는데, 아직도 안 온 녀석들은 뭐야?”
케어는 언제나처럼 상냥했고, 페르는 여전히 까칠했다.
‘말투는 변함없는데… 뭔가가 달라!’
두 여왕의 페로몬에선 2차 진화종에게 느껴 보지 못한 격의 차이가 느껴졌다.
‘이게 3차 진화종!’
거대 개미들의 장막을 뚫고, 여왕들에게 접근했다.
케어의 모습을 확인한 나는 놀람과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인간형이잖아!’
3차 진화를 이룬 케어는 인간 여성과 다를 바 없는 외형에 개미족의 특징이 더해진 느낌이었다.
“다크로구나. 네가 가져다 준 꿀 덕에 워커 퀸으로 진화할 수 있었단다.”
워커 퀸으로 진화한 케어는 뽀얀 피부와 잘 정돈된 금발 머리의 여인이었고, 이마에는 개미 더듬이와 붉은 보석 세 개가 박혀있었다.
이마에 살짝 돌출된 붉은 보석은 그리 크지 않아 반짝이는 점처럼 보였다.
그녀에겐 꼬리뼈 부근과 연결된 금색 무늬의 개미 엉덩이가 있었고, 발등, 손등, 가슴, 음부, 팔, 다리, 목 등을 부분적으로 보호하는 흑색 외골격이 피부에 부착돼 있었다.
‘페어리 워커와 비슷하지만… 몸집이 인간 정도의 크기야.’
눈동자는 대지의 기운을 품은듯한 황금색이었지만, 눈의 흰자위 부분이 검게 물들어 있었다.
‘분명 전체적으로 미형이긴 한데…….’
검은 흰자위와 황금색 눈동자만큼은 아름답다고 할 수 없었다.
‘우리야 괜찮지만, 다른 종족이 볼 때는 섬뜩하게 보이겠지.’
개미족은 외향보단 페로몬을 느꼈다.
지금의 케어는 기품 가득한 페로몬을 발산하니, 과거 진화 전 페르의 매력을 뛰어넘었다고 할 수 있었다.
“케어 님, 워커 퀸은 어떤 특징이 있나요?”
호기심 많은 7장로 트라이의 질문에 케어가 답했다.
“눈이 좋아졌구나. 멀리 있는 물건도 눈에 잘 보인단다.”
“눈이 보여요?”
장식품인 줄 알았던 눈의 개화.
개미족에게는 놀라운 일이었지만, 인간으로 살아본 내겐 놀랄 일이 아니었다.
케어가 몸을 움직여 보며 부드러운 살점에서 오는 촉감을 설명해 주자, 개미들이 매우 놀라워했다.
손가락, 발가락, 개미 엉덩이의 움직임, 머리카락 등 형태에 따른 설명이 이어졌지만, 신기할 게 없던 나는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 물어봤다.
“워커 퀸이 되면서 염화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단다.”
“염화요?”
“그리고 마신어도 쓸 수 있게 됐지.”
여왕의 능력인지 3차 진화종의 능력인지는 알 수 없지만, 케어는 원하는 상대에게 텔레파시를 보낼 수 있었고, ‘마신어’라고 불리는 언어도 습득했다.
“지금 내가 사용하고 있는 마신어는 마의 축복을 받은 존재와 소통할 수 있게 해 주는 언어란다.”
케어는 마신어 덕에 몬스터라 불리는 존재들과도 소통이 가능해졌다.
‘뭐야, 그럼 고블린과 말이 통한다는 거잖아?’
텔레파시도 대단했지만, 마신어는 나의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는 능력이었다.
‘어(語) 자가 붙어 있기는 한데, 정말 언어이긴 한 건가?’
케어는 2차 진화종들과 페로몬을 교환하며 달라진 자신을 재각인시켰다.
“다크! 넌 왜 거기 있어! 지금 날 무시하는 거야?”
케어와 페로몬 교환을 마친 나는 뿔이 잔뜩 난 페르에게 불려 갔다.
“생산에 특화된 자이언트 팩토리 퀸으로 진화하고 싶었는데, 너 때문에 서큐 퀸으로 진화했잖아!”
인간형으로 진화한 페르는 어째서인지 나를 탓했다.
“저 때문인가요?”
“그래! 너 때문이야!”
페로몬 특화종인 서큐 퀸으로 진화한 페르는 케어처럼 염화와 마신어를 쓸 수 있었다.
[이게 바로 염화라는 거다! 페로몬 언어와 또 다른 맛이 있지만… 상대와의 거리가 떨어져 있을수록 힘들어.]
워커 퀸과 마찬가지로 하얀 피부의 서큐 퀸은 머리카락, 눈동자, 배의 무늬 등 전체적인 색상이 핑크색이었고, 몸매의 볼륨감이 우월했다.
‘팔다리 쪽 외골격도 훨씬 적어. 몸을 지키려면 방어구를 착용해야겠는 걸…….’
“너희들, 지금 내가 케어보다 약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아닌가요?”
확실히 외골격 면적이 워커 퀸보다 적어 전투력이 낮아 보였다.
“난 페로몬 특화종이야! 지능만 높은 워커 퀸과는 격이 다르다고!”
“그렇군요.”
기품 가득한 케어와 매혹적인 페르.
둘을 보고 있으니 나 또한 인간형으로 진화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인간형으로 진화할 수 있다면…….’
도구를 쓸 수 있는 손만 주어진다면, 농경 사회에 갓 접어든 개미족의 문명을 1만 년쯤 앞당길 수 있다.
어느 정도 인사를 마칠 무렵 밖에 나가 있던 부대장급 자이언트 솔져들이 뒤늦게 합류했다.
솔져들은 제르다코의 지시에 따라 한쪽에 오와 열을 맞춰 서더니 케어와 페르를 향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솔져들 반대쪽에 서 있던 스마트 워커들도 자세를 낮추더니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나를 비롯한 특수종 워커들은 솔져들과 스마트 워커 사이에 껴 있었는데, 내가 눈치껏 자세를 취하자 간부들이 급급히 따라 했다.
엄숙한 현장에서 페르와 케어는 개미들을 내려다보다가 고치 상태인 포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케어, 포스는 실패한 걸까?”
“아니, 포스가 실패할 리 없어. 시간이 걸릴 뿐이야.”
엄숙한 의식이 끝나자, 시녀 개미들이 그동안 여왕들을 위해 준비해 둔 영양을 가져왔다.
“자! 파티다! 모두 마음껏 먹어라!”
“와아!”
페르의 선언으로 개미들이 환호하며 하녀 개미들이 먹여 주는 영양을 즐겼다.
나는 세크리의 시중을 받으며 영양 파티를 즐기며 여왕, 장로, 솔져들 사이에서 오가는 이야기에 집중했다.
동쪽의 말벌족, 서쪽의 고블린, 남쪽의 거미족.
지금 제일 위협이 되는 건 동쪽의 말벌족이고, 메가피르와 게르피아가 나서기로 한 상황이었다.
장로들과 여왕들은 둥지 최강 전력인 두 솔져가 나서 준다는 것에 안심하는 듯했지만…….
‘말벌족과의 전투는 무력의 문제가 아니야.’
자이언트 계열은 자신들이 강하다고 생각했으나, 내가 볼 땐 열기, 냉기, 전기, 독, 심지어 낙상에도 취약한 개복치에 불과했다.
‘나도 준비해야겠어.’
이번 토벌전의 실패를 예감한 나는 말벌족에게 대항할 수 있는 병종을 떠올렸다.
* * *
한동안 이어진 영양 파티가 끝나고, 메가피르와 게르피아는 부대를 이끌고 동쪽 숲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동쪽 숲에 들어서자 날아다니는 자이언트 킬러비가 보였고, 이동 중인 빅 워커를 노리기도 했다.
“빅 워커들은 5인장인 자이언트 워커를 따라라!”
두 부대 합계 200마리에 달하는 개미가 서로 유기적으로 협력하며 나아갔고, 자이언트 킬러비가 빅 워커를 공격해 오면 근처에 있던 자이언트 워커가 역공을 가했다.
“한 마리 처리했습니다!”
그렇게 자이언트 킬러비 몇 마리가 당하자 그들은 주변을 맴돌 뿐 더는 나서지 못했다.
“싱거운 녀석들이군. 이대로 놈들이 공격해 오길 기다려야 하나?”
메가피르의 물음의 게르피아가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듯 말했다.
“놈들은 기본적으로 열 마리에서 마흔 마리 규모의 둥지를 나무 위에 짓고, 주변을 돌아다니며 사냥한 먹이로 새 여왕을 육성해 분가시키지.”
자신의 질문과 맞지 않는 동문서답에 메가피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서?”
“몇 마리 죽였다는 건, 둥지가 이곳 어딘가에 있다는 말이야. 그리고 우리들의 손에 없어질 게 분명하고…….”
“그렇군. 꽤 긴 수색전이 되겠어.”
“꼭 그렇지만도 않아. 조금 전 한 놈에게 페로몬을 묻혀 뒀거든.”
“호… 그럼 쫓아가면 되나?”
“아니, 내 페로몬 감지력으론 날아다니는 놈들을 추적하긴 어려워.”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게르피아?”
게르피아는 플라이 워커 페스트와 다크를 떠올리며 말했다.
“나는 힘들지만, 추적이 가능한 개미가 있단 뜻이야. 그 녀석들이 도움을 줄진 모르겠지만…….”
“우리의 요청을 거절할 녀석이 있나?”
“그동안은 없었지만, 지금은 있어.”
메가피르는 잠들어 있는 동안 자신의 위상이 많이 달라졌음을 인식했다.
“둥지의 질서가 예전 같지 않군.”
“그만큼 우리의 영향력이 약해진 거지. 뭐, 이번 전투로 보여주자고. 왜 우리가 둥지 최강 전력 중 하나로 꼽히는지.”
“그렇군. 그럼 지금부터 수색하겠다.”
“그래? 그럼 수고해 줘. 난 까망이 좀 만나고 올 테니까.”
“결국 만나러 가는군.”
“그럼, 당연하지! 이 넓은 숲에서 어떻게 일일이 찾아!”
* * *
서큐 퀸으로 진화한 페르는 일반적인 영양을 먹지 않았고, 살아있는 생물의 정기를 흡수하는듯했다.
“생생한 걸 가져오라고!”
그동안 보존식으로 남겨 둔 고블린 새끼들이 페르에게 바쳐졌다.
바쳐진 고블린 새끼는 비쩍 말라버린 상태로 버려졌다.
‘정기와 마력을 함께 흡수하는 건가?’
페르의 식사를 맞추기 위해 부대장급 솔져들이 사냥감 생포에 열을 올렸다.
‘아니, 다 좋은데 왜 내 감옥을 쓰는 거야!’
내가 고블린 새끼를 키워 먹기 위해 만들어 둔 감옥에 각종 생물이 잡혀 들어왔다.
“디그파, 감옥을 확장해 줘!”
“네! 알겠습니다!”
감옥을 살피다 보면 가끔 솔져들이 잡아온 암컷 고블린도 있었다.
감옥 경비인 빅 워커들에게 말해 암컷 고블린은 내게 데려오게 했다.
‘페르의 괴상한 식성 때문에 걱정거리가 늘었어.’
나는 노동력으로 쓰이는 암컷 고블린과 인간이 페르의 식사로 바쳐지지 않도록 잘 보호해야 했다.
‘슬슬 스마트 워커를 모아 봐야겠어.’
스마트 워커를 모아 새로운 병종을 만들려는데, 게르피아가 날 찾아왔다.
무한자원 개미군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