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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자원 개미군단-27화 (26/189)

27화. 킬러 퀸

부대장급 솔져들은 무수한 사선을 넘겨 와서인지 절로 섬뜩해지는 살기를 두르고 있었다.

게르피아도 예외는 아니었지만, 예전에 만난 블러리만큼 강렬하진 않았다.

거기다 3차 진화종인 케어와 페르를 마주한 후로 웬만한 압박은 어렵지 않게 받아넘길 수 있게 됐고, 애초에 2차 진화종이 조금 강해 봐야 거기서 거기란 생각도 들었다.

‘왜 날 찾았지?’

게르피아가 날 찾아온 용건을 말하며 어처구니없는 제안을 해왔다.

“난 포스 님의 직속 부하로 장로 바로 아래 서열에 있다. 페스트를 내게 넘겨주면 널 직속 부하로 받아 주지. 어때? 괜찮은 제안이지 않나?”

내가 말이 없자 그는 설명을 덧붙였다.

“블러리가 장로가 된 지금, 장로와 제일 가까운 개미는 나와 메가피르다. 우리 다음으로 거론되는 후보는 무수히 많지. 만약 열한 번째 장로직을 노린다면 날 뒷배 삼도록 해.”

나의 눈이 되어주는 페스트를 데려가는 것도 모자라 날 부하 삼겠다니.

게르피아는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

“거절합니다.”

내가 거절하자 게르피아가 페로몬을 한껏 일으켜 날 굴복시키려 했다.

2차 진화종 솔져들이 가진 일종의 정신 공격이었지만…….

‘유치한 장난을!’

여러 가지 속성 내성을 가진 내겐 이러한 정신 간섭은 통하지 않았다.

“네게 유리한 제안일 텐데, 왜 거절하는 거지?”

놈의 페로몬 정신 공격을 흡수하듯 이겨 낸 나 역시 페로몬 출력을 최대치로 높이고서 말했다.

“틀렸어요.”

기세에 밀려 한발 물러선 게르피아.

녀석은 내 말에 놀랐는지, 아니면 기세에 눌렸는지 모를 의문을 내뱉었다.

“무슨 말이지?”

“…….”

그동안 군체를 먹여 살린 것도 나였고.

앞으로 군체를 철옹성으로 만들려는 것도 나다.

그러니 군체의 누구도 나의 뒷배가 될 수 없다.

오히려 군체 뒤에 내가 있는 것이지.

“지금 게르피아 님과 메가피르 님이 처한 상황은 잘 알겠습니다.”

조금 기분이 나빴지만, 게르피아가 나름대로 최고의 조건을 제시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페스트는 빌려주죠.”

그러니 2회차 삶을 사는 내가 이해해 주기로 했다.

“만약 다음에 또 요청할 게 생긴다면, 제가 좋아할 법한 선물을 가져와 주시면 좋겠네요.”

나를 한참이나 내려다보던 게르피아가 돌아서며 말했다.

“모르겠군. 수많은 개미를 봤지만… 까망이, 너 같은 녀석은 처음이다.”

“전… 많이는 못 봤지만, 게르피아 님 같은 개미가 많을 까봐 걱정이네요.”

떠나는 게르피아의 페로몬은 웃음기를 머금고 있었다.

* * *

메가피르와 게르피아.

둘은 다크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블러리와 어깨를 나란히 한 부대장급 사냥 개미였고, 개미들의 우상이자 영웅인 존재였다.

둥지의 영양 사정으로 인해 한동안 모습을 감췄다지만, 세 개미의 이야기는 전설처럼 내려오고 있었다.

둥지에 침입해 온 300마리의 고블린을 홀로 썰어 버린 블러리.

영역에서 날뛰던 갑각충을 격퇴한 메가피르.

1천의 사냥 개미를 지휘하여 서쪽 고블린을 몰아낸 게르피아.

전설의 삼인방 중 하나인 게르피아가 다크에게 도움을 청했다는 소식이 개미들 사이에 퍼져나갈 무렵, 페스트가 정찰대를 이끌고 게르피아를 찾았다.

“게르피아 님! 다크 님이 보내서 왔습니다!”

“잘 왔다! 임무는 알고 있겠지?”

“네! 추적과 탐색은 제 특기 분야에요!”

게르피아는 페스트를 데리고 동쪽 전선에 돌아가 메가피르의 부대와 합류했다.

“저 녀석이 플라이 워커 페스트인가? 처음 보는 종이군.”

날아다니는 페스트를 본 메가피르가 신기해했다.

“우리가 활동할 때는 없던 종이니까.”

메가피르는 게르피아가 평소 이상으로 들떠 보여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

“있었지. 섬뜩할 정도로 좋은 일이…….”

“무슨 의미지?”

게르피아는 웃음기 머금으며 답했다.

“새로운 전설의 탄생이 기대된다는 의미였어.”

게르피아의 말에 장내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내가 건재할 동안 더 이상 새로운 전설은 없다.”

전설은 언제나 군체의 생사기로에서 탄생했다.

그걸 아는 메가피르는 전설도 위기도 원치 않던 것이다.

“그러니… 말벌족을 토벌하면 서쪽 고블린 산맥을 평정한다! 우리 힘으로!”

활활 타오르는 듯한 분위기의 메가피르를 보며 게르피아는 씁쓸해했다.

“그래, 우리 힘으로 해 보자!”

메가피르와 게르피아의 부대는 정찰대가 남긴 페로몬 표식을 따라 이동하여 말벌족 둥지가 있는 곳에 도달할 수 있었다.

임무를 다한 페스트는 멀찍이 떨어져 경계를 섰다.

사냥 개미들은 말벌족 둥지가 있을 거대 나무를 올려다봤다.

“크군.”

거대 나무의 꼭대기는 평평한 공터였고, 그곳 중앙에 말벌족 둥지가 있었다.

주변이 그런 나무들로 가득해 말벌족 둥지도 여럿 있을 거라 짐작했다.

“한둘 정도가 아닌데… 정찰대가 확인한 것만 네 곳이야.”

게르피아의 말에 메가피르가 화를 냈다.

“다른 녀석들은 이 꼴이 날 때까지 그동안 뭘 한 거야!”

“진정해. 위치가 너무 높아. 우리도 플라이 워커가 없었다면 찾아내지 못했을 거야.”

“…그렇겠군.”

언제 화를 냈냐는 듯 순식간에 진정된 메가피르에게 게르피아가 물었다.

“작전은?”

“제일 큰 군체부터 토벌한다! 전군 돌격!”

두 부대장을 포함하여 자이언트 솔져 8마리, 자이언트 워커 40마리, 빅 워커 160마리가 기세 좋게 나무를 탔다.

그러자 20여 마리의 킬러비들이 방해에 나섰다.

“뒤돌아보지 마라! 꼭대기에 올라가 둥지만 장악하면 우리의 승리다!”

방해 공작에 당한 자이언트 워커와 빅 워커들이 하나둘 떨어졌지만, 개미들은 멈추지 않았다.

“무시해라! 돌격이다!”

자이언트 솔져 하나가 꼭대기에 도착하자, 개미족은 자신들의 승리를 의심치 않았다.

휘이익! 쾅!!

순간 공기가 터져나가는 굉음과 함께 꼭대기에 도착한 자이언트 솔져가 멀찍이 날아가더니 땅으로 추락했다.

퍽! 퍽! 퍽!

다른 개미들도 올라가는 족족 뭔가에 당해 날아갔다.

뒤늦게 도착한 게르피아가 개미족을 가볍게 날려 버린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저건…….”

금색 동공과 검은 흰자위.

하얀 피부와 붉은 입술.

노란색과 검은색이 섞인 말벌족의 외골격.

날개 뼈에 자리한 두 쌍의 날개.

꼬리뼈와 연결된 곤충의 배.

상대는 워커 퀸과 흡사한 모습의 인간형 몬스터였지만, 신장은 10cm 정도 더 컸다.

“말벌족의 여왕, 킬러 퀸이다!”

킬러 퀸은 2m에 달하는 창을 휘둘렀다.

휘이익! 퍽! 휘이익! 퍽!

기병들이 돌격할 때 사용하는 랜스 형태의 창은 양 끝에 서로 다른 크기의 원뿔형 창날이 달려 있었다.

“포위해라! 외골격이 없는 곳을 노려! 놈만 죽이면 끝이야!”

자이언트 솔져가 하나둘 올라오며 킬러 퀸을 포위했다.

자이언트 킬러비들이 킬러 퀸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려들었지만, 자이언트 솔져들 중에서도 최정예로 꼽히는 일곱 마리가 포진해 있어, 달려드는 족족 턱으로 잡아 패대기쳤다.

그러나 고립된 킬러 퀸은 위기에 몰린 상황임에도 섬뜩하게 웃었다.

“하하하! 날 죽이겠다고? 너희들은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팟!

나무 바닥을 박차고 돌진한 킬러 퀸이 자이언트 솔져 두 마리를 상대로 창을 휘둘렀다.

“흥! 그 정도에 당할 우리가…….”

자이언트 솔져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퍽!

두개골이 부서지며 나무 꼭대기 밖으로 날아갔기 때문이다.

“날 잡으려면 울트라 정도는 데려왔어야지!”

킬러 퀸의 압도적인 무력에 경악한 개미족들이 주춤거렸다.

“이럴 수가… 자이언트 솔져들이 한 방에…….”

게르피아와 메가피르 또한 경악했지만, 무수한 사선을 넘겨온 둘은 본능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있었다.

“게르피아! 지휘는 네게 맡긴다! 기회를 봐서 끝장내라!”

“무운을!!”

다음 상대에게 돌진하려던 킬러 퀸을 향해 메가피르가 뛰어들었다.

휘이익! 퍽!

“호… 내 창을 막아?”

킬러 퀸이 휘두른 창을 메가피르가 멈춰 세웠다.

“나에게 잡힌 이상, 이제 창을 휘두를 수 없다! 거기다 네 형태를 보아 방어력은 높지 않겠지!”

메가피르의 말대로 창이 잡힌 킬러 퀸은 덮쳐 오는 자이언트 워커와 빅 워커를 쳐낼 수단이 없었고, 외골격이 없는 부위는 취약했다.

그러나 킬러 퀸은 하품까지 해가며 여유를 부렸다.

“하… 유언은 다 남겼느냐?”

퍽!

킬러 퀸이 어퍼컷으로 메가피르의 머리를 쳐 올려 턱 힘을 풀어 버렸다.

“너에겐 약점이 없는 줄 알았느냐?”

창을 다시금 휘두를 수 있게 된 킬러 퀸은 자신을 덮친 개미들을 날려 버렸다.

“내 창을 막아낸 건… 그래, 확실히 대단했어. 하지만 그뿐이야. 너희들과 나 사이에는 절대 넘을 수 없는 격의 차이가 있지. 그러니 포기하고 얌전히 죽어라!”

일방적인 살육.

하지만 개미족은 물러서지 않았다.

왜냐면 그들을 이끄는 건 무패를 자랑하는 메가피르와 게르피아였기 때문이었다.

개미족을 학살하며 나아가던 킬러 퀸의 발걸음이 멈췄다.

꼭대기 끝부분에 도달한 킬러 퀸이 몸을 돌리자, 게르피아가 빈틈을 파고들어 오른쪽 다리를 잡은 게 보였다..

“방심했구나! 킬러 퀸!”

회심의 일격이라는 듯 게르피아가 여러 차례 힘을 가했지만, 외골격으로 보호된 부분을 잡았기에 킬러 퀸에게 별다른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

“방심? 그럴 리가.”

킬러 퀸은 우습다는 듯 창을 휘둘러 게르피아를 꼭대기 밖으로 쳐 냈다.

그 순간, 킬러 퀸의 시야가 뒤집히며 추락할 위기에 처했다.

두 눈에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붙잡은 게르피아가 보였다.

“어?”

분명 턱이 버틸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일격이었는데…….

킬러 퀸은 의문 가득한 표정으로 게르피아를 봤다.

그때, 턱과 다리에 묻은 하얀 액체를 발견한 킬러 퀸.

“접착액?”

개미족의 작전에 당했다는 생각도 잠시, 킬러 퀸은 날개를 펼쳐 중심을 잡고 놈을 박살 내려 했다.

“땅이나 기는 버러지 같은 개미 놈! 이 정도에 내가 당할 것 같으냐!”

게르피아는 웃음기 머금은 페로몬으로 물었다.

“킬러 퀸… 넌 얼마나 튼튼하지?”

“동귀어진을 노렸겠지만, 오산이다! 떨어지는 건 네놈뿐이야!”

“동귀어진? 아니야. 넌 우리들과 함께 간다!”

킬러 퀸이 날개를 펼쳐 중심을 잡았을 때, 메가피르를 비롯한 자이언트 워커들이 한꺼번에 몸을 날려 킬러 퀸을 붙들었다.

“놔라! 놓으란 말이다!”

개미들과 한 뭉치가 된 킬러 퀸이 땅으로 추락했다.

쾅!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맨 아래에 깔린 개미는 온몸이 터졌고, 위에 있던 개미들도 무사하진 못했다.

중간에 깔린 킬러 퀸은 전신 골절로 죽었다.

나무 꼭대기에 있던 개미들이 내려와 킬러 퀸의 죽음을 확인한 후 살아 있는 부상자를 수습했다.

게르피아와 메가피르, 둘 다 의식불명이라 부관인 자이언트 솔져들이 부대를 지휘하였다.

“피해는?”

“절반 정도 당했어요,”

“둥지를 파괴하고 부산물을 챙겨. 그리고 별동대를 꾸려 게르피아 님과 메가피르 님을 치료실의 메디에게 보내라!”

말벌족 둥지를 파괴하기 위해 다가간 개미들은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녀석, 언젠가 당할 줄 알았어!”

“그래도 구조 요청을 했으면… 뭐, 그래도 안 도와줬겠지만.”

“자자, 한 놈 죽었으니 사이좋게 나누자고. 아니면 여기서 두 놈 더 죽어날 테니까.”

킬러 퀸의 죽음을 목격한 이웃 킬러 퀸 셋이 날아오더니, 조금 전까지만 해도 치열하게 싸우던 나무 꼭대기에 착륙했다.

셋은 죽은 킬러 퀸의 둥지를 두고 다투기 시작했고, 개미족은 그 틈에 나무 밑으로 도주할 수밖에 없었다.

“위쪽에 킬러 퀸 세 마리가 나타났습니다. 지금 이 자리를 벗어나야 해요!”

“부산물은 포기한다!”

위에서 내려온 자이언트 워커의 보고를 들은 솔져들은 부상자들만 챙겨 급히 회군했다.

킬러 퀸 한 마리를 처치하여 말벌족 군체 하나를 멸망시킨 메가피르와 게르피아.

두 개미가 의식불명 상태에 빠지면서 그들의 부대는 붕괴했고, 킬러 퀸의 압도적인 무력이 개미들에게 전해졌다.

그 소식을 들게 된 여왕들과 장로들은 차가운 분노를 느꼈고, 다크는 페스트가 가져온 정보를 토대로 말벌족 토벌 특화 부대를 꾸렸다.

무한자원 개미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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