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유인 섬멸
한동안 기병대를 이끌고 숲을 돌아다녔지만, 자이언트 킬러비가 습격해 오지 않으니 사냥할 방법이 없었다.
둥지를 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놈들의 둥지에는 킬러 퀸이 있다.
‘아직 직접 맞붙기에는 위험 부담이 커.’
말벌족의 군체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기껏해야 킬러 퀸 하나에 자이언트 킬러비 열 마리에서 마흔 마리 정도였고, 간혹 있는 대군체도 60마리 정도라 했다.
다만, 여러 군체가 서로 연계할 수 있는 거리에 자리 잡고 있고, 여왕인 킬러 퀸의 무력이 3차 진화종인 울트라급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울트라?’
울트라가 얼마나 강한지는 모른다.
듣기로는 모든 무투파 개미가 바라는 최종 형태가 울트라였다.
그래도 80기의 기의병이라면 킬러 퀸 한 마리 정도는 처리할 수 있을 듯한데…….
‘문제는 동시에 여러 마리의 킬러 퀸을 상대할 경우야.’
말벌 청소에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다.
대 킬러 퀸 전략은 따로 준비하기로 한 나는 동쪽 숲을 돌아다니며 자이언트 킬러비의 수를 줄여 볼 생각이었다.
‘오질 않는군.’
이대로 숲을 돌아다녀 봐야 몇 마리 못 잡을 것 같았다.
‘유인책이 필요하겠어.’
창고에서 설탕수를 가져오게 했다.
빅 워커들이 설탕수가 담긴 항아리를 가져와 공터 한곳에 뒀다.
“이걸로 놈들을 유인한다!”
“네!”
공터 주변에 매복한 뒤, 자이언트 킬러비를 기다렸다.
잠시 후, 냄새를 맡은 자이언트 킬러비 한 마리가 설탕수 항아리를 확인하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왔다.
“지금이다!”
매복해 있던 기의병들에게 투창을 명했다.
“날개를 노려!”
노린다고 정확히 꽂히는 무기가 아니었지만, 80마리가 동시에 던지니 피할 수 없는 광역기가 펼쳐졌다.
일대를 타격한 창의 비에 자이언트 킬러비의 날개와 배가 꿰뚫렸다.
가만히 둬도 죽겠지만, 아직 죽일 때가 아니었다.
“동작 그만! 접근하여 무력화시켜라!”
기의병들이 돌진하여 다리를 부러뜨렸다.
발악할 수단이 남지 않은 자이언트 킬러비.
나는 빅 워커들에게 지시하여 놈의 배에 접착액을 발라 출혈을 막았다.
죽어가는 적을 치료한 나의 행동에 의문을 품은 세크리가 물어왔다.
“다크 님, 왜 안 죽이시는 거죠? 둥지로 가져갈 건가요?”
“아니.”
그냥 죽이는 것보다 고통스럽게 죽이는 편이 흑마력 성장에 도움이 되지만, 그런 이유에서 자이언트 킬러비를 살려 둔 건 아니었다.
‘지구의 장수말벌을 닮았단 말이지.’
지구의 장수말벌은 위기에 처한 동료를 버리지 않는다.
그러한 습성 때문에 한 마리만 덫에 걸려도 주변 동료들이 몰려와 떼죽음을 당했는데…….
나는 죽어가는 자이언트 킬러비가 장수말벌처럼 동료를 불러와 주길 원했다.
“옵니다! 자이언트 킬러비들이 와요!”
“정답이었어!”
기대한 효과가 나타났다.
다섯 마리가 다친 동료를 구하기 위해 왔고, 모두 투창 공격에 당하여 무력화됐다.
다시 무력화시킨 말벌족을 미끼로 사용하자, 이번에는 열 마리가 몰려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매복이 들켜 전투가 벌어졌다.
“투창! 거리를 벌리면서 투창 공격으로 떨어뜨려!”
자이언트가 뒤로 물러나며 거리를 유지했고, 투창 공격을 퍼붓자 하나둘 땅으로 추락했다.
그렇게 열 마리를 떨어뜨린 나는 열 마리의 기의병을 돌격시켜 일대일 상황을 만들었다.
“한 마리씩 맡아서 처리해라! 나머지는 주변을 경계한다!”
날개 없는 자이언트 킬러비는 자이언트 워커의 하위 호환 수준이다.
자이언트 킬러비가 기의병의 창격을 막으려 하다 보면 아래의 자이언트 워커가 다리를 하나씩 뜯어 갔고, 그렇다고 자이언트를 경계하다 보면 스마트의 장창이 더듬이와 배를 공격했다.
상하로 이루어지는 합격술.
이러한 방식으로 인해 단독으로 사냥하는 자이언트 워커보다 기의병 쪽이 세 배는 더 효율적으로 상대를 처리할 수 있었다.
“또 옵니다! 이번에는 다른 군체 같아요! 열 마리예요!”
“다들 준비해!”
휴식할 틈은 없었지만,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잡아내서 좀 더 오랫동안 사냥을 지속할 수 있었고, 자이언트 킬러비의 고기로 현지 보급까지 이루어져 자이언트 솔져와 워커의 연비 문제도 없었다.
“슬슬 부산물 챙기자!”
무력화시킨 50마리의 자이언트 킬러비를 모두 죽인 후 빅 워커를 불렀다.
짐꾼으로 도착한 빅 워커들은 대량의 중급 식량을 보곤 한동안 움직일 줄 몰랐다.
“얘들아, 빅 워커들 좀 더 불러와라.”
공중에는 아직도 많은 자이언트 킬러비들이 날아다녔다.
‘저놈들 정말 잘 불어나네.’
부산물을 옮기는 빅 워커가 노려질 수 있어 함께 움직여야 했다.
평소 사냥을 마치고 둥지에 돌아오면 해체 개미들이 달려와 부산물을 받아갔는데, 오늘의 둥지는 왠지 모를 고요함이 흘렀다.
그리고 느껴지는 음울한 페로몬.
‘사냥 개미들인가?’
밖에서 한참 사냥 중이어야 할 개미들이 패잔병처럼 통로 곳곳에 널브러져 있었다.
포메온과 블러리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고블린 숲의 저지선이 완전히 무너졌다. 병력을 잃은 솔져들이 모두 복귀한 상황이지.”
“그런 상황에서 다크, 네가 스마트 워커와 게르피아의 자이언트 부대를 이끌고 말벌족을 학살하고 다녔으니… 크히히. 다들 워커인 네 무력이 궁금할 거야.”
초조해하는 포메온과 달리 블러리는 재밌는 일이라도 있다는 듯 즐거워했다.
“긴급회의다! 부대장급 솔져들이 모두 모였으니, 다크, 너도 부하들을 데리고 회의에 참여해라.”
복귀하자마자 산란방에 끌려갔다.
산란방에 내가 들어서자 모여 있던 솔져들과 스마트 워커 간에 페로몬 신호가 빠르게 오갔다.
“스마트 워커들을 데리고 어떻게 사냥한 거지?”
“말벌족 사냥에 특화된 부대를 만들었다는 게 사실인가?”
개미들의 의문 속에서 나는 페르와 케어의 환대를 받았다.
“왔구나, 다크! 많이 기다렸잖아! 일리아나, 찐한 거로 다크에게…….”
“다크여. 네가 동쪽으로 가 준 덕분에 많은 사냥 개미가 무사히 둥지로 돌아올 수 있었단다.”
금이 간 외골격으로 참석한 메가피르와 게르피아도 있었다.
“소식 들었다. 우리들의 복수를 위해 움직여 줬다지?”
“미안하지만, 제르피아와 헤르피아를 좀 더 맡아 줬으면 좋겠어. 보시다시피 움직이기도 힘든 상황이라.”
일리아나가 날 대접해 주며 내게만 들리도록 속삭였다.
“스마트 워커를 써 줘서 고마워.”
여왕들과 장로들 그리고 메가피르와 게르피아의 관심까지 내게 쏟아지자, 장내 모든 개미의 관심을 받게 됐다.
웅성웅성,
개미들의 지대한 관심 속에 회의가 시작됐다.
회의를 주관한 건 일리아나였다.
“말벌족의 폭주를 막지 못했다면 포스님이 깨어날 때까지 사냥을 멈출 생각이었어. 하지만 다크가 말벌족을 맡아 준다면 서쪽에 블러리를 보낼 생각이야.”
일리아나가 날 바라보며 물었다.
“어때 다크, 자이언트 워커 스무 마리와 빅 워커 80마리를 지원해줄 테니 말벌족 토벌을 맡아 줄 수 있겠어?”
지금 같이 사냥 개미가 귀한 시기에 자이언트 워커 스무 마리는 꽤 컸다.
“토벌은 무리지만, 자이언트 킬러비 숫자를 줄일 수는 있어요.”
“좋아! 그 정도만 해 줘도 나머지는 우리가 해결해 보겠어!”
어차피 하려던 일로 생색도 낼 수 있고, 일석이조였다.
내가 병력을 지원받은 만큼 누군가는 병력을 뺏겼다.
“서른 마리 이하의 부대는 다른 부대의 부관으로 가 줬으면 해.”
모여든 자이언트 솔져 절반이 부대장에서 부관으로 강등당하여 사냥 실적이 좋은 자이언트 솔져 아래로 흡수됐다.
그렇게 부대 정리가 이루어지더니 자이언트 솔져 세 마리, 자이언트 워커 스무 마리, 빅 워커 80마리로 구성된 100인대 여섯 개가 남게 됐다.
“두 개 부대는 남쪽을 정리해 줘! 나머지 부대 네 개는 서쪽에서 고블린을 사냥해 줘! 겨울까지만 버티면 돼! 진짜 승부는 포스 님이 깨어난 후야. 어때, 가능하겠어?”
남쪽을 맡게 된 개미들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서쪽을 맡게 된 솔져들이 일리아나에게 한마디씩 했다.
“네 개 부대론 턱없이 부족해!”
“놈들도 우리처럼 부대 단위의 전법을 사용한다고!”
“포위 섬멸 전법도 통하지 않아!”
“블러리가 와 줘도 겨울까지 못 버틸 거야!”
“요즘 스마트 워커로 진화하는 녀석들 때문에 병력이 줄고 있어!”
“자이언트도 한계는 있다고!”
일리아나가 난감해하자 페르가 나섰다.
“닥쳐! 불만 있으면 말벌족을 맡든가! 고블린조차 못 막으면 너희들도 부대장 때려치워!”
페르의 일침에 장내가 숙연해졌다.
조용해진 장내를 환기하듯 일리아나가 부드럽게 말했다.
“언더리페의 공사 부대와 트라이를 추가로 보내 줄게.”
“공사 개미들이야 빅 워커들이니 사냥에 투입할 수 있지만… 스마트 워커인 트라이는 왜 보내려는 거야?”
포메온의 질문에 게르피아가 말했다.
“내가 부탁했다.”
“뭐? 네가? 왜?”
게르피아는 앞발로 머리를 툭툭 치며 답했다.
“부하 개미가 50마리만 넘어가도 2차 진화종 혼자선 지휘할 수 없어. 과거 1천의 개미를 지휘할 때 확실히 느꼈지… 그래서 100인대로 쪼개고 100인대에 두세 마리의 부관을 뒀다. 그럼 나는 열 마리만 지휘하면 됐으니까…….”
정리하자면 게르피아의 경험상 이 정도 규모의 부대가 움직이면 지휘부가 필요했고, 그 지휘관으로 트라이를 천거한 것이었다.
“하지만, 트라이는 최약종인 스마트 워커야! 일리아나처럼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라고! 애당초 지휘 경험이 없잖아!”
포메온의 말에 게르피아가 웃음기를 머금고서 말했다.
“경험은 부족하지 않다. 천의 개미를 호령한 내 부관이었으니까.”
장내의 개미들이 트라이의 경력을 듣고는 매우 놀랐다.
“트라이가 게르피아님의 부관이었다고? 난 처음 듣는 일이라고!”
포메온이 일리아나를 쳐다보자, 일리아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트라이가 게르피아의 부대에 있었다는 건 알았어. 하지만 부관이었다는 보고는 받은 적이 없고…….”
“말했다. 단지 누구도 스마트 워커인 트라이가 사냥 부대의 부관이란 걸 믿지 않더군. 너희들조차도 말이야.”
제르다코가 트라이에게 물었다.
“사실이냐?”
“사실이에요. 그때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지금은 충격적인 사실이 됐죠.”
트라이가 하녀들에게서 영양을 받아먹으며 조용히 찌그러져 있는 날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누구 덕에 말이죠.”
개미들의 관심이 또 한 번 내게 쏠려 머쓱해졌다.
“하하하, 제가 좀 대단한 워커이긴 하죠.”
회의는 그 후로도 한동안 이어졌지만, 결론은 일찍이 나와 있었다.
내가 말벌족을 담당하고, 나머지가 고블린을 전담한다.
겨울까지 이어지는 디펜스 게임이라 생각하면 쉬웠다.
‘고블린과의 소모전은 필패일 텐데.’
서쪽 전선이 무너지면 나도 뒤가 불안해지니, 출전 전에 트라이를 만나봤다.
“트라이 님이 총지휘관인가요?”
“반은 맞고 반은 틀렸어. 솔져들은 독립적으로 부대를 운영할 거야. 난 블러리의 해체 부대와 언더리페의 공사 부대를 예비대로 만들어 밀리는 곳에 투입할 거고.”
둥지 확장과 보수관리를 전담하는 언더리페.
그가 이끄는 공사 개미의 수는 적지 않다.
못해도 빅 워커 500마리.
전부 데리고 갈 건 아닐 테니…….
“몇 마리나 데려가죠?”
“절반 정도는 데려갈 거야. 그럼 겨울까지는 버틸 수 있겠지. 희생은 크겠지만.”
트라이는 공사 개미를 사냥 개미로 투입하여 고블린을 영역 밖으로 밀어내려 했다.
‘디펜스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닌데 말이지.’
“트라이 님, 제게 대 고블린 전략이 하나 있긴 해요.”
트라이가 더듬이를 바짝 세우고서 나의 말이 이어지길 기다렸다.
“그 작전에는 자이언트가 필요 없어요.”
“대체 어떤 작전이야?”
자이언트 워커를 넘겨 달라고 은근히 말해 봤는데, 트라이가 알아듣질 못해 직설적으로 요구했다.
“자이언트 워커 50마리만 주세요. 그럼 방법을 알려 드릴게요.”
“50마리라…….”
트라이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알겠어. 주도록 할게. 그래서… 방법은?”
“간단해요. 공사 개미를 사냥에 투입할 게 아니라, 공사에 투입하는 거죠.”
상세히 말해줄 필요는 없었다.
트라이가 바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확실히 좋은 작전이야.”
며칠 후 우린 각자의 전장에서 적들을 줄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지하 5층에 심을 나무를 정했다.
무한자원 개미군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