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연막 그리고 외통수
사냥이 반복될수록 개미족 전체가 기의병에 놀라며 스마트 워커를 재평가했지만, 그들은 아직도 몰랐다.
도구를 만들고 다룰 수 있는 스마트 워커가 어떤 존재인지.
그걸 알고 있는 유일한 개미족인 나는 생태계의 균형 따윈 신경 쓰지 않는 효율충이었다.
‘좀 더 확실한 무기가 있어야겠지.’
둥지 최강 전력인 자이언트 솔져 두 마리가 도박의 수로 겨우 잡았다는 킬러 퀸.
그들의 무력은 놀라웠지만, 그뿐.
인간과 말벌의 생물적 특성을 보유한 킬러 퀸의 공략법이야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었다.
‘여기가 화학이 발달한 지구였으면 칙칙이면 충분한데 말이지.’
칙칙까지는 아니라도 모기향 정도는 만들 수 있을 듯했다.
그래서 수많은 식물을 둥지에 가져가 태워 보며 연기가 대량으로 발생하는 식물을 찾아봤다.
천 종에 가까운 식물을 태워 본 결과, 50종을 골라낼 수 있었다.
그 후, 나는 사로잡은 자이언트 킬러비로 생체 실험을 강행했고, 그들의 더듬이 감각을 급속히 마비시키는 풀을 발견했다.
당연히 개미족에게도 같은 작용을 했기에 사용에는 주의해야 했다.
마비초라고 불리게 된 풀은 희소한 편이라 구하기가 어려웠다.
“얘들아, 이걸 채집해 오면 영양으로 바꿔 줄게!”
“네! 다크 님!”
빅 워커들이 채집해 온 마비초의 일부를 약초밭에 심었다.
“메디, 이것도 재배해 봐.”
“네, 한 번 해 볼게요.”
채집된 마비초의 수분이 빠지면, 파목 개미들에게 가져가 분쇄하여 가루를 얻었다.
그리고 나는 스마트 워커들을 투입해 연막탄 제작에 들어갔다.
우선 넓적한 잎으로 마비초 가루를 공 모양으로 싸게 했고, 한쪽으로 구멍을 여럿 뚫게 했다.
구멍에 불씨만 던져 주면 안쪽에서 타들어 가며 독무를 피워 내는 연막탄이 완성된 것이다.
‘당장 쓰기엔 양이 부족해.’
위협적인 무기임은 분명하지만, 양이 그리 많지 않아 대량생산은 어려웠다.
‘재배가 잘 돼야 할 텐데.’
연막탄을 개발하는 동안, 인간의 도움을 조금 받았다.
인간들이 식물이나 밧줄을 엮어 만든 물건들을 본 나는 세크리 휘하의 스마트 워커 둘에게 배워 두도록 지시했다.
“다크 님, 어떻게 만드는지 알았어요!”
“저도 익혔습니다!”
개미족은 기억력이 좋다.
지능 특화종인 스마트 워커는 이해력도 좋아 완성된 물건을 뜯어보는 것만으로 제작 방법을 터득했다.
“그럼 밧줄로 이런 모양의 그물을 만들 수 있겠어?”
“시간은 걸리겠지만, 어렵지 않아요.”
스마트 워커 둘에게 던질 용도의 사각형 그물을 만들게 했고, 그물의 각 변에는 돌멩이를 달았다.
그렇게 상대의 발을 묶는 투척용 그물과 연막탄이 기의병의 기본 무장에 더해졌다.
기본 무장이 추가될 무렵, 자이언트 킬러비의 독낭을 섭취한 포병대 전원이 액시드 워커로 진화했다.
“다크 님! 포병대 준비됐다! 우리들도 출전 원한다!”
“그래. 슬슬 너희가 필요하던 차야.”
한 가지를 제외하면 준비가 끝났다.
그 한 가지는 불을 붙일 도구였는데…….
나무 판에 홈을 파고, 마른 잎을 넣은 후 막대를 비비는 원시적인 방법은 아무리 업그레이드해도 불씨를 얻는 과정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
‘보우 드릴도 펌프 드릴로도 부족해. 좀 더 신속히 불씨를 얻을 방법이 없을까?’
부싯돌도 써 봤지만, 만만치 않았다.
‘마찰열은 도저히 안 되겠어.’
예전 캠핑을 좋아하던 직원이 자랑하던 물건이 떠올랐다.
‘파이어 피스톤이라 했던가?’
통과 막대가 세트인 점화 도구 파이어 피스톤.
그 물건은 막대가 통 안으로 밀고 들어갈 때 공기가 압축되며 열을 발생시켰다.
‘고무 패킹은 없지만, 통의 구멍과 막대 크기가 잘 맞으면 공기를 압축시킬 수 있어.’
손재주 좋고 계산 능력이 뛰어난 녀석들에게 나무통과 막대 세트를 무수히 만들게 했고, 점화용으로 쓸 마른 잎 뭉치를 대량으로 준비하게 했다.
‘휴, 됐다.’
무수한 실패작 가운데 나온 성공작들을 추려 기의병의 기본 무장에 추가했다.
가을이 시작될 무렵, 마지막 퍼즐이 맞춰졌다.
그동안 자이언트 킬러비만 잡던 병력을 이끌고 동쪽 깊숙이 진군했다.
말벌족 둥지가 밀집된 지역과 가까워질수록 자이언트 킬러비의 습격이 잦아졌지만, 정예화된 기의병이 격퇴하며 전진했다.
“전방에 말벌족 둥지 일곱 개가 있어요!”
140마리가 넘는 자이언트 킬러비와 일곱 마리의 킬러 퀸이 기다리는 숲에 들어서니, 놈들이 뿜어내는 페로몬의 압박감이 만만치 않았다.
‘여기서부터가 진정한 적진이야!’
놈들의 둥지 바로 아래까지 도착한 나는 개미들을 넓게 포진시켰다.
“피어레스 부대는 연막탄을 설치해라! 제르피아, 헤르피아는 킬러비들의 습격을 대비해! 세크리는 날 호위하고, 페스트는 정찰대를 뒤로 물려!”
지시를 받은 개미들은 훈련한 대로 신속히 움직였다.
피어레스의 부대가 넓게 퍼져 바닥에 나무 막대를 박아 2미터 높이의 거치대를 만든 후 그 위에 연막탄을 고정했다.
“착화!”
파이어 피스톤이 쓰였다.
스마트 워커가 나무통에 막대를 끼워 왕복운동을 한 후, 막대를 꺼내 안에 넣어 둔 마른 잎 뭉치가 불씨로 변했는지 확인했다.
절반 정도가 성공적으로 불씨를 만들어 냈고, 나머지도 하나둘 불씨를 피우는데 성공했다.
그 직후, 스마트 워커들은 통을 털어 연막탄 구멍에 불씨를 털어 넣었고, 연막탄 내부가 타들어가며 자욱한 연기가 솟구쳤다.
거치대에서 피어오른 연기가 주변의 나무와 하늘을 덮었지만, 지상의 개미들에겐 닿지 않았다.
둥지 주변을 날아다니며 우리를 주시하던 자이언트 킬러비들은 더듬이 감각을 잃고 나무와 충돌하여 추락하거나 지상에 내려앉아야 했다.
“어때, 깜깜하지? 그게 너희들의 미래야.”
정신 못 차리는 놈들을 향해 기의병들이 돌진하여 장창으로 꿰어 버렸다.
일방적인 학살.
킬러 퀸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대에 둥지를 튼 일곱 마리의 킬러 퀸 중 다섯 마리가 둥지를 버리고 도주하려다 추락했다,
지상에 떨어져 비틀거리며 정신을 못 차리는 킬러 퀸.
“비겁한!”
“독을!”
“너희들, 용서하지 않겠…….”
“살아갈 생각은…….”
“죽여 주겠…….”
하나같이 분노하며 마신어를 내뱉었지만, 킬러 퀸의 외골격 비중은 워커 퀸 수준이었기에 방어력은 그리 대단치 못했다.
“접근하지 말고 한 마리씩 일점사로 처리한다.”
기의병들이 각자 내가 지정한 킬러 퀸을 향해 창을 쏘아내자 킬러 퀸 고슴도치가 만들어졌다.
푸푸푸푹!
마지막 킬러 퀸이 고슴도치가 되어 쓰러지자, 개미들은 모두 기뻐했다.
그러고 나서 나는 피어레스가 수거해온 온 창을 보게 됐다.
“킬러 퀸의 창입니다! 작은 촉에는 독도 있어요. 버릴까요?”
“버리긴 왜 버려! 일단 내 창고에 보관해야지!”
2미터 길이의 말벌 무늬가 새겨진 창은 찌르기와 타격에 특화된 무기 같았고, 무게가 상당하여 스마트 워커들은 휘두를 수 없었다.
‘이걸 어떻게 휘두른 거지?’
정면 승부였다면 웬만한 자이언트 솔져도 한 방 컷이었겠지만, 연막탄의 존재는 말벌족을 무력화하는 비대칭 전력이나 마찬가지였다.
다만 연막탄도 무적은 아니다.
‘지금이야 생소한 무기니까 먹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놈들도 대책을 세울 거야. 그전에 최대한 많은 킬러 퀸을 죽여야 해.’
개미족이 바보가 아니듯, 놈들도 어느 정도의 지능이 있을 테니, 겨울이 오기 전에 속전속결로 동쪽 영역을 되찾을 계획이었다.
끝내 나무에서 내려오지 않은 킬러 퀸 둘은 둥지에서 존버하여 연막에 노출되지 않았다.
“세크리, 연막탄 하나만 불씨를 넣어 줘.”
내성 특화종인 나는 흑마력을 소모하여 신체를 강화하면 내성도 함께 강화되어 연기 속에서도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었다.
그런 내가 친히 놈들의 둥지에 연막탄을 배달해 줬다.
결국, 존버하던 두 놈도 질식사했다.
연막탄의 효력이 다하자, 참혹한 현장이 드러났다.
“다크 님은 전설을 넘어섰군요.”
“새로운 전설과 함께 하다니… 영광입니다.”
그 순간, 제르피아와 헤르피아의 태도가 확연히 달라졌음을 느꼈다.
“좋아! 루팅 시간이다!”
“와아아!”
우린 중급 영양인 자이언트 킬러비 140마리, 상급 영양인 킬러 퀸 일곱 마리, 중급 영양인 유충 70마리의 사체를 전리품으로 챙겼고, 거대 말벌집 일곱 개도 분해하여 한쪽에 쌓았다.
킬러 퀸 영양은 피어레스, 제르피아, 헤르피아, 포룸, 페스트, 세크리, 여섯 명에게 지급했고, 남은 한 마리는 내 차지였다.
한참 동안 먹고 쉬는데, 영역 페로몬을 감지한 채집 개미들이 도착했다.
“이게… 대체…….”
세크리가 나서서 놀란 빅 워커들을 진정시킨 후, 사체들을 둥지로 옮겨가게 했다.
“다크 님, 저쪽 방향에 말벌족 둥지 세 개를 발견했어요!”
“바로 이동한다!”
나는 기세를 몰아 말벌족 둥지를 털었고, 밀집지 두 곳을 더 털어 킬러 퀸 아홉 마리를 더 잡을 수 있었다.
이로써 동쪽 영역을 20% 가량 되찾은 나는 연막탄을 모두 소진하여 둥지로 복귀해야 했다.
둥지에 도착해 보니, 나는 메가피르와 게르피아 이상의 영웅이 돼 있었다.
“다크, 해냈구나! 난 네가 해낼 줄 알았어!”
“다크, 네 공을 생각해 이렇게 직접 나왔으니 기뻐하도록!”
산란방에서 움직이지 않던 두 여왕이 직접 지하 1층까지 마중 나와 있었고, 장로들과 부대장급 개미들까지 모두 날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들의 환대에서 거대한 파장을 느낀 나는 군체에서의 지위가 급상승했음을 직감했다.
“다크여, 킬러 퀸 영양은 3차 진화에 근접한 장로들과 자이언트 솔져들에게 우선적으로 배급하고 싶은데, 괜찮겠느냐?”
케어가 조심스럽게 물어올 때, 메디가 다가와 속삭였다.
“다크 님, 마비초 재배에 성공하여 연막탄 양산에 들어갔어요.”
연막탄 양산이 시작됐으니, 쪼잔하게 굴 필요는 없다.
첫 일곱 마리는 이미 개미들의 뱃속에 들어간 후고, 나중에 잡은 열두 마리는 케어에게 넘겨주기로 했다.
대가 없이 잘 내주지 않던 내가 흔쾌히 승낙한 게 예상외였는지 케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웃으며 날 쓰다듬었다.
“고맙구나, 다크. 넌 아직 장로는 아니나… 부대장급 개미를 넘어섰단다. 포스가 깨어나는 대로 널 아홉 번째 장로로 올릴 테니, 그렇게 알거라.”
아홉 번째 장로 후보인 메가피르와 게르피아도 씁쓸해하며 날 인정해 주자, 간부 개미들이 평생의 꿈이라도 이루었는지 감동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피식.
개미족이 돼서 감투라니.
원한 건 아니었지만, 부하들이 좋아해 주니 함께 기쁨을 만끽하기로 했다.
* * *
서쪽 전선에서 적진 깊숙이 침투하여 홀로 무쌍을 찍던 블러리에게 다크가 아홉 번째 장로로 확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크히히, 그 녀석… 결국 메가피르와 게르피아를 제쳤어!”
서쪽 기지에 있던 트라이와 언더리페도 다크의 소식을 듣게 됐다.
“말벌족 상대로 어떤 수를 썼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대단해!”
“아직 어린 개미 주제에 벌써 장로라니… 뭐 공사 개미에게 지원도 빵빵하게 해 주는 녀석이니까 괜찮겠지.”
장로들은 꽤 기뻐하는 눈치였지만, 백인대 대장인 솔져들은 잠시 놀라워하더니 자신들의 순위가 더욱 밀렸다는 걸 깨닫고서 씁쓸해했다.
* * *
“작년보다 30%나 많은 굼벵이 알을 확보했어요. 쿠쿠가 이끄는 팩토리 워커가 늘어나며 영양 생산에도 차질 없고요.”
연막탄이 확보되는 동안 둥지에서 잠시간 휴식 시간을 가지며 세크리의 보고를 받았다.
주력 생산품인 버섯, 지렁이, 설탕수는 모두 차질 없이 생산되고 있었고, 지하 5층에서 뽕나무의 삽목에도 성공했다고 한다.
겨울이 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기에 연막탄이 보충되는 대로 병력을 이끌고 말벌족 토벌에 나섰다.
같은 방식으로 밀집지 두 곳을 더 토벌하자, 놈들도 연막탄의 무서움을 알았는지 연막탄이 피워지기 전에 들이닥쳤다.
“포병대, 나서라!”
“드디어 내 차례다!”
이런 상황을 대비한 포병대가 산성액을 분사해 안개를 만들자 말벌족의 날개가 녹으며 땅에 곤두박질쳤다.
“포병대는 빠지고, 기의병 돌격!”
“날 따라라! 돌격!”
지상에서 싸우게 되면 자이언트 킬러비는 기의병의 상대가 아니었지만, 킬러 퀸은 진정으로 무시무시했다.
“비겁한 놈들! 한 놈도 빠짐없이 죽여 주마!”
“거창! 앞열은 접근을 막고, 후열은 그물을 던져 다리를 묶어!”
진형을 겨우 지켜 내며 그물로 킬러 퀸의 다리를 묶었다.
순식간에 포위당한 킬러 퀸은 다수의 거창 돌격을 피하지 못한 채 몸이 꿰뚫렸다.
킬러 퀸 한 마리를 잡는데 최대 여섯 마리의 정예병이 희생됐지만, 말벌족 토벌로 얻는 영양으로 인해 2차 진화종이 급속히 늘어나는 상황이라 큰 피해는 아니었다.
“다음 장소로 이동한다!”
연이은 둥지 토벌 때문에 말벌족은 날 보기만 해도 도망을 택했다.
나는 빈집에 남겨진 애벌레를 포식할 수 있었지만, 이런 상황이 반복되자 불안해졌다.
‘이거… 놈들이 뭔가 준비하고 있는 것 같군.’
그동안 도주한 놈들이 한꺼번에 날 습격할 것 같아 토벌 속도를 늦추며 대규모 습격을 대비했다.
‘와라. 오기만 하면 지하로 숨어서 연막탄을 터트릴 테다. 그러면 놈들은 우리를 찾다가 다 죽게 되겠지!’
도주한 킬러 퀸들의 상황을 살피던 페스트가 급히 날아와 보고했다.
“다크 님! 큰일이에요!”
30마리의 킬러 퀸과 600마리의 자이언트 킬러비가 둥지가 있는 방향으로 일제히 날아가는 게 포착됐다.
“이런! 본진을 노리는 거였어!”
둥지에는 경비대와 친위대가 있다지만.
‘부족해!’
대부분의 부대장급 솔져들과 사냥 개미들이 서쪽에 있고, 말벌족 토벌에 특화된 부대도 이곳에 있으니…….
‘빈집이란 말이야!’
너무 날뛰었다.
여왕을 지켜 내지 못하면 그걸로 끝이란 걸 망각하고 있었다.
‘젠장!’
외통수에 당한 듯했다.
나는 포메온과 제르다코가 버텨 주길 바라며 급히 회군했다.
무한자원 개미군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