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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자원 개미군단-33화 (32/189)

33화. 둥지의 저력 (2)

비전투원인 가죽 공방의 고블린과 인간들은 메디가 무덤으로 대피시킨 상황이었다.

“무덤과 치료실에 가려면 이곳 통로를 지나야 해.”

통로 하나만 막으면 된다고 생각한 메디였지만, 가용할 병력이 없었다.

‘여긴 부상자와 전투력이 낮은 개미들뿐이야.’

거기다 거동이 가능한 자이언트들은 포메온의 호출에 반응하여 3층 최종 방어선으로 가려 했다.

“잠깐 기다려 줘! 여길 지켜야 해!”

“여긴 요충지도, 격전지도 아니다. 우린 포메온 님에게 가 보겠다.”

자이언트들이 떠나갈 때, 메가피르와 게르피아를 발견한 메디가 둘을 막아섰다.

“멈추세요!”

“왜 막는 거지?”

부대장급 이상의 강렬한 페로몬이 메디를 압박해 왔지만, 메디는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다크 님이 말했어요. 치료실의 존재는 실패를 시련으로 바꾸는 힘이 있다고. 그러니 꼭 지켜 내야 해요.”

“여기가 요충지란 말이냐?”

메가피르의 물음에 메디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서 회복한 개미들은 모두 정예병이 될 거에요. 반대로 이곳을 버리시면, 미래의 정예병을 잃는 거라고요!”

메가피르는 자신 앞에서도 당당한 메디를 한참이나 내려다보더니 게르피아에게 물었다.

“게르피아, 네 녀석의 생각은 어떻지?”

“의료 개미의 말대로 이곳을 지키는 건 중요해. 하지만, 이곳의 개미들을 끌어모은다 해도… 힘든 싸움이 될 거야.”

게르피아의 말에 장내는 긴장감이 흘렀지만, 어째서인지 메가피르와 게르피아는 웃고 있었다.

“힘든 싸움? 네놈과 내가 언제 그런 걸 따졌지?”

“하긴… 우린 목숨을 내놓고 살아왔지.”

뭔가를 결심한 메가피르가 지휘 페로몬을 방출해 주변 개미들을 끌어모으며 말했다.

“메디라고 했던가?”

“네.”

“이 통로는 내가 사수하마. 그러니 안심해도 좋다.”

메가피르의 확답에 메디는 고개를 깊숙이 숙여 감사를 표했다.

메디는 중상자의 치료실로 돌아가며 개미들에게 한 가지 약을 나눠 줬다.

“이건?”

“개량 중인 광폭환이에요. 먹으면 일시적으로 강한 힘을 얻겠지만, 목숨을 장담하진 못합니다. 그러니 만약을 대비해 사교위에만 담아 두세요.”

“알겠다.”

“그럼 전 치료실로 가볼게요. 무운을 빕니다.”

“그래.”

통로에 방어선이 만들어지자, 킬러 퀸 네 마리와 80마리의 자이언트 킬러비가 들이닥쳤다.

“꽝이라 생각했는데… 충분히 즐길 수 있겠어.”

“죽어가는 자이언트 솔져가 둘이고, 워커가 스무 마리 정도인가? 나머지는 빅 워커 40마리는 신경 쓸 것 없겠군.”

“그럼 빨리 끝내고, 다른 녀석들과 합류하자고!”

“알겠어!”

킬러 퀸 두 마리가 나서자 개미족 쪽에선 메가피르와 게르피아가 나서며 목숨을 담보로 삼아야 한다는 광폭환을 즉시 복용했다.

“여긴 통행금지다!”

“우릴 다른 솔져들과 같다고 생각하면 오산일 거야.”

서로 간에 한차례 도발이 오가더니, 킬러 퀸들이 비릿하게 웃으며 바닥을 박찼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창을 휘두르려고 하던 킬러 퀸 하나가 창이 벽에 부딪히자 혀를 차며 찌르기 자세로 전환했다.

“죽어라!”

창의 표적이 된 메가피르는 뒤로 물러서며 공격 범위에서 벗어났고, 그 틈에 게르피아가 앞서 온 킬러 퀸의 측면을 노렸지만, 뒤따라 온 킬러 퀸의 견제공격에 소득 없이 물러나야 했다.

“이 녀석들, 반응이 빠르잖아? 2차 진화종 맞아?”

“네가 저 녀석을 맡아. 난 이 녀석을 맡을 테니.”

메가피르와 게르피아의 반응 속도에 놀란 킬러 퀸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창을 찌르거나 짧게 휘두르며 맹공을 퍼부었다.

쏟아지는 공격 속에서 두 솔져는 아슬아슬하게 피하거나 외골격으로 흘려 받았다.

킬러 퀸들은 두 솔져의 외골격이 조금씩 깨지고 있어 승리를 의심치 않았지만, 개미들 중 그 누구도 두 솔져가 밀린다곤 생각지 않았다.

“게르피아, 놈들의 움직임은 파악 끝냈다.”

“나도 마찬가지야!”

메가피르와 게르피아가 수세에서 공세를 취하자, 그동안 맹공을 퍼붓던 킬러 퀸들은 카운터를 맞아 턱에 몸통을 꿰뚫려 버렸다.

“이게… 대체, 어떻게…….”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의 킬러 퀸에게 메가피르와 게르피아가 한마디씩 했다.

“가볍군. 가죽도 얇아. 고작 한 방을 못 버티다니.”

“밖에서 싸운 네놈들의 공격은 읽기도 힘들고 강력했다. 그렇지만 좁은 통로에선 우리들의 상대가 아닌 것 같군.”

두 킬러 퀸을 처리한 메가피르와 게르피아는 지체하지 않고 나머지 두 킬러 퀸을 향해 돌진했다.

선봉의 두 솔져가 목숨을 불태우듯 다수의 공격을 받아 내며 킬러 퀸의 목을 뜯어냈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자이언트 워커들과 빅 워커들도 광폭환을 먹고서 가세했다.

“놈들이 당황했다!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마!”

“약효가 다하기 전에 모두 죽이자!”

상처를 도외시한 개미족의 맹공에 자이언트 킬러비들은 물러서기 일쑤였고, 기세에서 밀린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전멸당했다.

“게르피아, 아직 살아있나?”

“아직은…….”

광폭환까지 복용해 전력 이상을 쏟아낸 메가피르와 게르피아는 통로의 안전을 확인하고선 조용히 쓰러졌다.

“피곤하군. 조금 있다 깨워 줄 수 있겠나?”

“나도 피곤해. 만약 널 깨우는 개미가 있다면, 그건 내가 아닌 의료 개미일 거야.”

“그렇군…….”

나머지 개미들도 모두 쓰러지자 의료 개미인 포션 워커들이 다가왔다.

“메디 님, 전멸이에요.”

“알아.”

죽은 개미들은 광폭환의 부작용으로 죽은 게 아니었다.

전투 중에 치명상을 수차례 입고서도 마지막 적을 쓰러뜨릴 때까지 버텼던 것뿐.

하나같이 처참한 주검들 속에서 미약하지만 생의 기운을 느낀 메디는 직접 응급처치에 나섰다.

“조금이라도 숨이 붙어 있으면 응급처치를 해 둬!”

“네!”

몇 없는 중상자의 응급처치를 끝낸 메디는 의료 개미들을 불러모았다.

“전투의 주역은 그들이지만, 전투가 끝난 후의 주역은 우리야! 한 마리라도 더 살릴 생각으로 움직여!”

“네!”

메디가 보낸 의료 개미들이 둥지를 돌아다니며 부상 개미들을 치료했다.

* * *

지하 3층, 중앙 통로의 최후 방어선.

개미족 전력과 말벌족 전력이 모여들었다.

개미족 측은 부관급 자이언트 솔져 세 마리와 전투 경험이 없는 자이언트 워커 서른 마리, 마찬가지로 전투 경험이 없는 빅 워커 200마리가 모였고, 그에 반해 말벌족은 살기 등등한 킬러 퀸 열 마리와 자이언트 킬러비 200마리가 모여 개미족과 대치했다.

포메온의 계산상으로 전력 차는 네 배 이상이었다.

이대론 승산이 없어 보여 페르에게 대피를 종용했으나, 돌아온 답변은 여전했다.

“나 없이 어떻게 싸우려고?”

“아니, 페르 님이 있어도…….”

포메온은 차마 페르의 심기를 건드릴 수 없었다.

“너! 지금 승산이 없다고 말하려 했지?”

“여기서 킬러 퀸을 상대할 수 있는 건 장로인 저뿐입니다. 제가 막는 동안 지하 4층 출입구를 폐쇄해 시간을 벌어야 합니다. 정예만 돌아온다면 말벌족 따위는…….”

폐쇄란 말에 페르가 팔짱을 끼며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포메온, 멍청한 네놈에게 한 가지 사실을 알려 주마. 너희는 날 단순한 생산 특화종으로 여기는 듯한데, 서큐 퀸으로 진화한 난 페로몬 특화종이기도 해.”

포메온은 오히려 그게 더 걱정이었다.

“진화하시고 나서 단단한 외골격을 잃었지 않습니까?”

“단단한 외골격? 그게 내게 왜 필요하지?”

“그거야 당연히…….”

“애초에 케어와 포스, 그리고 내가 함께할 수 있던 건, 어디까지나 셋의 힘이 절묘한 균형을 이루었기 때문이야.”

“페르 님과 케어 님이 포스 님과 힘의 균형을 이루었다고요?”

포메온이 의문을 표하자 페르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치며 자신을 가리켰다.

“내가 가진 페로몬의 힘과! 케어가 가진…….”

페르는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말벌족이 충분히 준비됐는지 전투 페로몬을 한껏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놈들의 여왕이 있다! 놓치지 마라! 돌격!”

말벌족이 돌격해 오자, 포메온이 페르에게 다급히 말했다.

“도망치기에는 늦었습니다. 놈들이 옵니다. 등에서 떨어지지 마십시오!”

“포메온! 넌 닥치고 내 의자로 있으면 돼!”

페르가 흩뿌리고 있던 페로몬이 짙게 피어오르기 시작하자, 말벌족의 전투 페로몬을 상쇄하여 무효화시켰다.

신경 가속에 실패한 말벌족들은 잠시간 당황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돌격했다.

“개미족! 전투 페로몬 발동! 모두 돌격해!”

페르의 외침에 개미족도 말벌족을 향해 돌격했는데, 수는 비슷했지만, 질의 차이는 극심했다.

순식간에 쓸려 버릴 줄 알았던 개미족은 페르가 지원하자 의외로 선전하기 시작했다.

“잘 봐 둬라, 이게 바로 나의 능력이다!”

페로몬을 한 가닥, 한 가닥 컨트롤 하던 페르가 개미족과 말벌족을 향해 능력을 펼쳤다.

“몸이 가벼워! 힘이 넘쳐! 자이언트 킬러비가 느리게 보여!”

“뭐지? 몸이 무거워! 힘이 안 들어가! 왜 이리 재빠른 거야?”

강화 페로몬과 쇠약 페로몬의 작용으로 개미족과 말벌족은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어떠냐! 싸울 만하지?”

약화된 말벌족을 상대로 개미족이 선전하는 듯했지만, 킬러 퀸이란 번외의 존재에겐 큰 의미가 없었다.

“신경 쓰지 말고 쓸어 버려! 어차피 놈들은 우리 상대가 아니야!”

별다른 소득 없이 삼분의 일 정도의 병력이 쓸려 나가자 포메온이 초조해했다.

“페르 님, 내리십시오. 제가 나서야겠습니다.”

포메온이 선봉에 서려 하자, 페르가 짓궂은 미소를 흘리며 그를 말렸다.

“기다려 봐. 이건 쓰고 싶지 않았는데… 광화 페로몬!”

페르가 비장의 수로 남겨둔 광화 페로몬이 발동되자, 포메온을 제외한 개미들의 몸에서 붉은 증기가 넘실거리더니 광기에 빠져들었다.

“크흐흐, 죽여! 죽여!”

광기 가득한 개미들이 목숨을 도외시하고서 몸을 던졌다.

일반적인 상태였다면 아무리 온몸을 내던진 공격이라도 유효한 타격을 주진 못하겠지만, 페로몬 덧칠로 잠력을 밑바닥까지 끌어낸 개미들은 한 마리의 목숨을 내주는 대가로 목숨을 받아 갔다.

빅 워커 두세 마리가 자이언트 킬러비를 쓰러뜨리는 상황에 포메온은 경악을 금치 못했고, 킬러 퀸들도 당황을 감출 수 없었다.

“물러서지 마! 물러서면 다 죽는다!”

말벌족들은 자신들이 압도적인 전력으로 밀어붙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포를 느꼈고, 그 원인이 페르라는 걸 알아차렸다.

“여왕을 잡아! 안 그럼 개미들이 계속 강해질 거야!”

개미들이 강해지는 게 아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말벌족들이 쇠약해지고 있을 뿐.

킬러 퀸들이 무리하게 전진하며 혼전 상황에 빠지자 페르의 미소가 짙어졌다.

“포메온, 날 죽이겠다고 필사적인 저들을 봐. 우습지 않아?”

페르는 웃고 있지만, 포메온은 웃을 수 없었다.

“왜… 자기들끼리 죽이고 있는 거죠?”

“그야 내가 페로몬을 교란하고 있으니까. 적이 아군으로 보이고, 아군이 적으로 보이겠지.”

페르가 네 번째로 선보인 능력은 교란 페로몬이었다.

“이런 능력이 페르 님에게 있을 줄이야… 이 능력이라면 포스 님보다 페르 님이 더 강한 거 아닙니까?”

“그건 아니야. 발동 조건도 까다롭고, 포스에겐 안 통해. 장로급 중에서도 내성이 강한 녀석들에겐 안 통할 거야.”

“그렇군요.”

페르와 포메온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중앙 통로를 가득 채운 개미족이 전멸했고, 말벌족 또한 공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이걸로 끝이다!”

교란 페로몬을 극복하고 살아남은 다섯 마리의 킬러 퀸이 페르를 죽이기 위해 다가왔지만, 처음의 기세등등한 모습은 이미 없었다.

페르가 포메온의 등에서 내려서며 말했다.

“포메온, 네 차례다!”

“알겠습니다!”

강화 페로몬을 충분히 흡입한 포메온과 쇠약 페로몬에 노출된 킬러 퀸 다섯 마리가 충돌했다.

그 결과, 포메온의 괴력에 킬러 퀸 다섯 마리가 잡몹 마냥 쓸려 나갔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도대체… 이게 무슨…….”

자신들의 패배를 끝내 받아들이지 못한 킬러 퀸들은 페르를 저주하기 시작했다.

“비겁한 놈! 어차피 네놈들은 끝이다! 우리 동료가 절반이나 샛길로 내려갔다! 지금쯤이면… 유충들을 모두 죽이고 올라오고 있겠지!”

절반이란 말에 포메온이 당황했지만, 페르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쪽은 여기와 달리 둥지 최강으로 꼽히는 장로가 둘이나 있어서 말이야.”

페르의 말에 포메온은 살짝 기분이 상하여 더욱 맹렬히 킬러 퀸을 몰아쳐 한 마리씩 제거해 나갔다.

“크흐흐… 그 녀석들이 우리 수준의 킬러 퀸이라 생각하지 마라.”

“놈들은 진정한 전쟁광! 우리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하다!”

킬러 퀸들의 저주 어린 유언에 페르가 살짝 불안해하던 중, 페르와 포메온의 의식이 잠시 끊겼다 돌아왔다.

“이건…….”

신체 능력이 증폭된 걸 느낀 포메온이 의아해할 때, 페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잠꾸러기가 일어났네.”

무한자원 개미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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