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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자원 개미군단-35화 (34/189)

35화. 전후 처리

여왕이 죽으면 내가 아무리 용을 써도 군체는 망한다.

그나마 우린 복수 군체라 세 여왕 중 한 마리라도 살아있으면 어떻게든 재기할 수 있다.

그렇기에 서둘러 둥지로 복귀했다.

‘서쪽 전선은 소식이 늦을 거야.’

서쪽 녀석들이 센스 있게 복귀하는 건 기대할 수 없다.

말벌족의 침공은 내가 막아야 했다.

“빨리 움직여!”

뒤처지는 포병대와 빅 워커들은 버려 두고, 130기로 줄어든 기의병과 함께 필사적으로 뛰었다.

“헉… 헉… 안 되겠어. 피어레스, 나도 같이 태워라.”

“네!”

자이언트 워커들보다 먼저 지친 나는 피어레스의 등에 올라탔다.

한참을 이동하자, 둥지 상공의 말벌족 부대가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놈들을 주시하니, 놈들도 알아차린 듯 분주해졌다.

먼저 도착해 있던 페스트의 정찰 부대가 상황을 알려왔다.

“말벌족 놈들이 부대를 여섯 개로 나눴어요. 100마리는 상공에 있고, 500마리는 둥지에 들어갔어요.”

“뭐? 500마리가 들어갔다고? 킬러 퀸은?”

“킬러 퀸은 스물다섯 마리가 들어간 것 같아요.”

지금의 둥지 전력으론 도저히 막을 수 없는 물량.

여왕의 생존을 기대하긴 어려워 보였다.

‘끝난 건가?’

나는 고민해야 했다.

‘어쩌지… 이대로 둥지를 버릴까?’

지구의 개미 대다수는 일개미라도 수컷 개미를 낳을 수 있고, 교배가 이루어진다면 일개미를 낳을 수 있었다.

그러나 개미족의 생식 메커니즘은 알지 못했다.

‘세크리를 후발대로 둔 게 실수였어.’

지금 데려온 녀석들은 모두 사냥 개미들이라 물어볼 대상이 없었다.

‘일단 둥지부터 되찾는다!’

둥지에는 알들과 유충들이 있으니, 살아있다면 꿀벌처럼 여왕을 육성할 방법이 있을지도 몰랐다.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서 움직여야 해.’

여왕을 구조하는 게 아닌, 여왕이 죽었다고 가정한 나는 이동 속도를 늦췄다.

“연막탄은 언제든 터트릴 수 있게 준비해. 신중히 간다!”

그런데 이동 중 찰나 간 의식이 끊겼다 회복됐다.

‘몸이 가벼워. 힘도 강해진 것 같아. 더듬이 감각도 예리해졌는걸?’

다른 개미들도 나와 같은 현상을 겪었는지 어리둥절해 하자, 제르피아가 말했다.

“포스 님이 깨어난 겁니다.”

케어의 진화로 지능이 오르고, 페르의 진화로 페로몬 능력이 강화됐듯, 포스의 진화는 신체 능력을 높여 줬다.

포스가 살아있다는 소식은 반가웠지만… 상공의 말벌족을 처리할 때까지 살아 있을 확률은 0에 가까웠다.

‘급하게 움직이다간 이쪽도 당한다. 포스에겐 미안하지만, 군체의 미래는 내게 달렸어.’

최대한 많은 말벌족을 죽여 여왕 육성에 필요한 시간을 벌 생각이었는데, 상공의 말벌족 녀석들은 주력 부대인 우리와 싸울 생각이 없다는 듯 동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뭐지?’

뒤따라오는 빅 워커를 처리하고 다시 돌아오려는 속셈인가?

그렇다고 하기에는 본대 500마리가 둥지에 고립될 텐데?

여러 가지 의문이 떠올랐지만, 일단 둥지 내부로 침입한 말벌족부터 정리하기로 했다.

“가자! 피어레스, 제르피아, 헤르피아!”

둥지 안은 처참했다.

수많은 개미족 사체가 널려 있었고, 의료 개미가 생존자를 찾아다녔다.

생산 기지와 창고는 무사했지만, 미니 워커들이 떼죽음 당한 상태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페어리 워커들이 생존해 의료 개미를 돕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톱밥 생산처 인근 통로에서 100마리에 달하는 자이언트 킬러비 시체를 발견했다.

모두 날카로운 뭔가에 꿰뚫리거나 잘린 상처들.

‘블러리가 돌아왔나?’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죽어 있는 킬러 퀸 시체 세 구도 있었다.

그러고 나서 턱과 다리의 칼날과, 전신 외골격의 내구력을 다한 나우피어를 보게 됐다.

“너도 싸웠구나…….”

겁쟁이 주제에 명장의 최후처럼 선 채로…….

감정 변화가 적은 개미족임에도 슬픔의 페로몬이 뭉게뭉게 흘러나왔다.

“저… 안 죽었어요.”

“살아 있었구나!”

“잠시 잘게요.”

털썩.

날 보고 안심했는지, 나우피어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흑흑, 다크 님!”

“다크 님… 죄송해요 아무런 도움이 안 됐어요.”

숨어 있던 머쉬파와 쿠쿠가 울먹이며 다가왔다.

“미니 워커들이… 팩토리 워커들이…….”

머쉬파에게서 지하 1층에서 벌어진 일들을 듣게 됐다.

“말벌족 녀석들… 작정하고 들어왔어.”

미니 워커도, 시절 워커도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보았다.

한동안 영양 생산에 문제가 생기겠지만, 축적된 영양과 널려 있는 말벌족 사체면 1년은 버틸 수 있다.

여왕이 살아 있다면 도약의 기반이 될 영양이었지만…….

여왕이 살아 있다는 보장이 없으니.

최악의 상황을 그리며 지하 2층 치료실에 방문했다.

“다크 님, 여긴 무사해요! 메가피르 님과 게르피아 님이 몸을 던져 지켜 주셨어요!”

말벌족의 시체 더미에 쓰러져 있는 두 영웅을 향해 묵념하던 중 메디가 말했다.

“죽진 않았어요.”

깨진 외골격을 보아 곧 죽을 것 같은데, 살아 있다니…….

‘역시 영웅 개미야. 목숨이 질겨.’

인간과 고블린의 안전을 확인한 나는 지하 3층으로 이동했다.

중앙 통로에 도착한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곳엔 개미족과 말벌족의 시체로 가득했는데, 죽은 개미들의 모습만 봐도 이곳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 수 있었다.

‘모두 목숨을 버리고 싸웠구나.’

개미족과 말벌족, 비슷한 수가 죽어있지만, 질적으로 월등한 말벌족 사체를 보며 위화감을 느꼈다.

‘어떻게 이 많은 킬러 퀸과 자이언트 킬러비를 죽일 수 있었던 거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의문은 제쳐 두고, 지금까지 사살된 말벌족을 계산해 봤다.

‘여기서 200마리가 죽었어. 1층에서 60마리가 죽었고… 2층에도 80마리 정도 있었지.’

진입한 500마리에서 340을 빼면 남은 건 160마리.

‘킬러 퀸도 여덟 마리 정도만 남아서 4층에 진입했을 거야.’

둥지 최강이란 타이틀을 지닌 포스가 깨어난 지 꽤 됐으니.

어쩌면.

‘반전이 있지 않을까?’

일말의 희망이 피어올랐다.

“피어레스, 속도를 올린다!”

나는 기의병을 돌격시켜 지하 4층에 진입했다.

“있습니다! 살아 있어요!”

통로를 가득 메운 자이언트 킬러비의 사체 너머로 여왕들의 페로몬이 느껴졌다.

“느껴져! 여왕들이 살아 있는 거야!”

우린 속력을 올려 산란방에 들어섰다.

산란방에도 상당량의 말벌족 사체가 있었는데, 그 너머에선 케어, 페르, 포메온, 친위대 등과 함께 단단한 흑색 외골격 갑주를 두른 인간형 개미가 함께 잠들어 있었다.

‘포스도 인간형으로 진화했어!’

무식한 포스는 개미들이 그토록 원하던 거대종인 울트라로 진화할 줄 알았는데…….

“다크?”

의료 개미들을 도와 장내를 정리하던 티아벨이 날 반겼다.

“티아벨 님, 어떻게 된거죠?”

스물다섯 마리의 킬러 퀸과 500마리의 자이언트 킬러비.

나조차도 대비 없이는 상대할 수 없는 전력을 어떻게 막아냈는지 물어봤다.

“그게…….”

티아벨에게서 자초지종을 듣게 됐다.

페르가 치고 나간 것을 시작으로 포스가 깨어나 말벌족을 학살한 이야기까지.

‘장로와 여왕들에게 그런 힘이 있었다니…….’

둥지의 전력은 생각 이상이었지만, 일리아나의 희생은 안타까웠다.

‘전신 근육이 끊겼다고 했지.’

일리아나를 무덤으로 옮겨 주기 위해 티아벨에게 물었다.

“일리아나 님은 어딨나요?”

티아벨이 가리킨 곳을 보니, 고치 두 개가 있었다.

“설마… 이게 일리아나 님?”

“응. 이건 일리아나 님이고, 저건 제르다코 님이야.”

여왕들의 생존만으로 감사한테, 장로가 한 명도 안 죽고 진화 중이라니.

‘전화위복이 따로 없어!’

침공은 막아 냈지만, 지금의 둥지는 방어 체계가 무너진 상태였다.

“출입구부터 지켜!”

산란방의 상황을 파악한 나는 말벌족의 2차 침공을 대비하여 둥지 밖에 기의병들과 정찰 개미를 배치했다.

“페스트는 트라이에게 상황을 전해 줘. 머쉬파는 살아 남은 페어리 워커들을 규합해 생존자를 찾고. 쿠쿠는 빅 워커들을 데리고 의료 개미들에게 영양을 보급해 줘.”

장로들의 공백으로 마비된 둥지를 하루빨리 복구해야 진정으로 위기를 넘겼다고 할 수 있었다.

‘세크리가 없으니 확실히 힘들어.’

수많은 개미를 상대하며 지쳐갈 때, 캐리와 시녀 개미들이 합류했다.

“살아있는 운반 개미들이 있다. 영양과 사체의 운반은 내가 맡지!”

“청소와 정리는 우리에게 맡겨!”

필요할 때 충원된 고급 인력은 너무도 고마웠다.

“고마워요.”

“아니야. 오히려 장로인 내가 고맙군.”

“맞아. 우린 네가 돌아와 줘서 고마워.”

감사 인사를 받으니 양심이 찔렸다.

이번 말벌족의 대침공은 나로 인해 발생한 것과 진배없기 때문이었다.

‘덮어 두자. 영원히.’

어느 정도 둥지가 수습되어 갈 무렵, 세크리와 포룸이 복귀했다.

“다크 님, 죄송해요.”

“나도… 죄송하다.”

오는 동안 말벌족의 공격을 받았는지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지만, 두 녀석이 살아 있는 것만으로 난 기뻤다.

“아냐. 너희들을 마중 가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해 미안하다.”

“다크 님…….”

말 한마디로 천 냥 빚 갚는다고, 두 간부가 감동했다.

‘최악의 상황까지 생각했는데… 예상 이상으로 좋은 상황이야.’

페르는 매달 200~300개의 알을 낳고, 포스와 케어는 50~100개의 알을 낳는다.

즉, 둥지가 정상 가동되면 매달 300~400마리의 스몰 워커가 충원되는 셈이었다.

중급 영양도 넘치니 빅 워커의 보충은 한 계절이면 충분하고, 살아남은 빅 워커들의 진화도 기대됐다.

‘이번 겨울은 도약의 계절이 될 거야.’

말벌족에게 진 빚은 내년 봄에 이자까지 듬뿍 쳐서 갚아 줄 생각이었다.

‘다신 얼씬도 못 하게 멸종시켜 주마!’

* * *

개미족 상공을 지키던 키에라.

시간이 충분히 지났음에도 침공 부대가 돌아오지 않자 미간을 찌푸렸다.

“뭔가 잘못됐어.”

계획이 틀어졌음을 직감한 그는 개미족 부대가 돌아오자 이를 악물곤 퇴각을 준비했다.

빈틈이 보였다면 한 차례 습격해 볼 생각이었지만, 기의병의 태세는 삼엄했다.

“오늘은 물러가마.”

키에라가 퇴각 명령을 내렸다.

빈손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던 그는 회군 중인 빅 워커와 엑시드 워커의 후미를 습격했다.

그러고는 충분히 수를 줄였다고 판단해 회군 명령을 내렸다.

“돌아간다!”

키에라는 둥지로 돌아가며 생각했다.

‘우리의 힘만으론 놈들을 처리할 수 없어.’

키에라는 개미족의 위험성을 퍼트려 인근 연합들을 끌어들일 생각이었다.

‘기다려라. 겨울이 오기 전에 끝장을 내 주마.’

그러나 그 계획은 시작도 전에 삐걱거렸다.

“어이, 키에라. 어딜 그리 갔다 오시나?”

“테라스! 너희들이… 왜 여기에?”

아카시아 숲에서 키에라를 쫓아낸 말벌족 연합 하나가 500의 군세를 이끌고 키에라를 맞이한 것이었다.

“눈엣가시 같던 네가 집을 비웠는데, 털어 줘야 하지 않겠어?”

“네놈, 빈집털이 본능은 여전하군…….”

“그런데… 함께 간 녀석들은 어디 갔냐?”

상대 킬러 퀸들은 지금에야 키에라의 원수가 됐지만, 한때는 힘을 합쳐 개미족을 쓸어 버리기도 한 사이였다.

“개미족에게 당했다.”

“뭐? 개미족에게? 푸하하하!”

비행 중에 배를 부여잡고 뒤집어진 킬러 퀸 테라스가 눈물을 닦더니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키에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키에라, 세력에서 밀리니 이젠 수작질이냐?!”

불신 가득한 테라스를 향해 키에라는 진지하게 말했다.

“거짓말이 아니다. 이곳 개미족은 보통 녀석들이 아니야. 이대로 두면 말벌족의 미래는 없어. 그러니 우리의 앙금은 이쯤에서 푸는 게 어때?”

“흠… 그러니까, 말벌족에게 위협이 될 개미족 토벌부터 먼저 하자?”

“그래.”

“이곳의 개미족을 토벌해서 난 뭘 얻을 수 있는 거지? 네 둥지는 내가 이미 털어서 넌 빈털터린데?”

키에라는 그런 줄 알았다는 듯 한숨을 푹 쉬더니 말했다.

“내가 네 연합에 들어가마.”

킬러 퀸들이 술렁였다.

테라스는 키에라의 전력이 탐났지만, 두려움이 더 컸다.

“우린 오크나무 숲의 개미족보다 네가 더 무서워.”

“후회할 거다.”

“후회는 네놈을 놓쳤을 때 한 번이면 족해.”

맑은 하늘, 500대 100의 싸움이 벌어졌다.

키에라의 부대는 금세 전멸했고, 키에라 홀로 괴력을 발휘해 두 마리의 킬러 퀸과 40마리의 자이언트 킬러비를 쓰러뜨렸지만, 결국 틈을 보던 테라스의 창에 꿰뚫렸다.

키에라는 마지막 순간 폭소를 터트리며 외쳤다.

“잘 들어라! 놈들은 검은 연기를 피워내는 사신. 아카시아 숲의 말벌족이 하나가 되지 않는 한 놈들을 이길 순…….”

테라스를 포함한 킬러 퀸들은 키에라의 마지막 충고를 조롱했다.

“마지막까지 멍청한 소리를 하는군. 개미족 따윈 말벌족의 상대가 아니야.”

그렇게 개미족의 위험성은 키에라와 함께 묻혔다.

무한자원 개미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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