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재앙
기의병과 포병대의 본격적인 말벌족 토벌이 시작됐다.
“연막탄을 피우면 놈들이 도망갈 거야. 그러니 우린 연막탄 없이 친다. 피어레스 부대, 돌격!”
말벌창을 든 피어레스는 연막탄 따윈 처음부터 쓸 생각이 없었다는 듯이 달려 나갔다.
“우리도 간다. 제르피아 부대 돌격!”
“헤르피아 부대는 포병대를 지키고, 내려오는 놈을 처리해라!”
“포병대는 자유 포격!”
하드 워커를 탄 피어레스가 킬러 퀸을 압박하는 사이, 나머지 기의병들과 포병대가 자이언트 킬러비를 제거했다.
“울트라도 아닌 녀석들이!”
오만하게 나선 킬러 퀸은 피어레스와 창격을 몇 차례 주고받더니 당황을 금치 못했다.
“큭, 이 녀석…….”
피어레스는 상대 킬러 퀸을 차갑게 내려다보며 말했다.
“약하군.”
힘에서 밀린 킬러 퀸은 쩔쩔매다 도주할 타이밍을 놓쳐 목숨을 잃었다.
포룸의 지시를 받은 캐논 워커는 원거리 사격으로 말벌족이 몰린 곳을 타격했다.
“크악!”
어느 정도 산성 내성을 가진 말벌족이었지만, 캐논 워커의 폭격에 외골격이 녹아내리자 당황을 금치 못했다.
“저놈들부터 제거해야 해! 안 그럼 모두 죽을 거야!”
자이언트 킬러비들이 떼를 지어 포병대를 습격했다.
날개를 희생해 가며 산성 안개를 뚫고 근접해 온 자이언트 킬러비들을 향해 두 마리의 개틀링 워커가 엉덩이를 치켜세웠다.
“학살이다!”
개틀링 워커가 기관총 마냥 산성포 세례를 쏘아 내자 접근해 온 자이언트 킬러비들이 녹아내렸고, 헤르피아의 부대가 무력화된 그들에게 돌격하여 숨통을 끊었다.
“여긴 끝이다! 저쪽 둥지로 돌격!”
“제르피아 부대는 이쪽이다!”
포병대의 지원 아래 피어레스와 제르피아의 부대가 따로 움직이며 인근 둥지를 털었고, 일을 마친 그들은 페스트가 남긴 페로몬 표식을 따라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그들이 떠난 장소에는 운반 개미와 채집 개미들이 모여들어 부산물을 챙겼다.
* * *
동쪽 영역이 빠르게 수복되면서 그쪽으로 향하는 채집 개미와 운반 개미가 급증했다.
‘슬슬 놈들도 대응해 올 거야.’
연막탄과 기의병의 조합을 아는 녀석들이라면, 다시 한번 본진을 노릴 터였다.
‘와라!’
나와 포메온은 무수히 많은 함정을 준비해 뒀으나, 적습은 없었다.
‘어떻게 된 거지?’
물론 적습이 없다 해서 한가하진 않았다.
“포메온 님, 도와주세요!”
“다크 님, 북쪽 고블린이 영역을 넘어와요!”
“남쪽은 로커스트 때문에 채집할 게 없어요.”
북쪽에서 고블린들이 침공해왔고, 남쪽에선 로커스트라 불리는 거대 메뚜기 몬스터들이 기승을 부렸다.
로커스트의 크기는 빅 워커만 했고 전투력은 빅 워커보다 낮은 수준.
지금의 군체에 큰 위협이 되지는 않았지만, 날아다녀서 사냥하기가 매우 까다롭고, 일대를 황폐하게 만들어 개미들의 채집 활동을 망쳤다.
다행히도 로커스트는 갑각충에게 막혀 영역 깊숙이 들어오진 못했다.
그렇다 해도 놈들 때문에 남쪽 영역의 채집을 망쳤으니…….
손해 본 만큼 놈들로 식량 창고를 채우고 싶으나, 기의병과 포병대가 없으니 일리아나가 난감해했다.
“로커스트의 수가 늘면 한꺼번에 진화해 버리는데… 어쩌지?”
지구의 메뚜기 중 풀무치란 녀석이 있다.
놈들은 개체 밀도가 높아지면 스트레스를 받아 호르몬 변화를 일으켰다.
변화한 그들은 보호색인 초록색을 버리고 노란색이 된다.
그러고 나서 개별형에서 집단형으로 변해 일대를 휩쓸어 버린다.
사람들은 그들을 황충이라 부르며 두려워했다.
화학이 발달한 21세기에서도 황충이란 재해는 쉽사리 극복하지 못했다.
황충 떼에게 대량의 약물을 퍼부어도 그들은 무시무시한 번식력으로 이를 극복했다.
“옐로우 로커스트는 재앙 그 자체야!”
자이언트 킬러비가 장수말벌을 닮았듯, 로커스트는 풀무치와 비슷한 습성의 몬스터였다.
북쪽의 고블린은 둥지 방어를 담당하는 자이언트와 빅 워커 중 일부를 차출시키면 해결할 수 있지만, 로커스트의 문제만큼은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내가 직접 나서야 했다.
“로커스트는 제가 맡을 테니, 그동안 둥지를 부탁해요.”
“알겠다.”
“걱정 마라.”
둥지 방어를 포메온과 블러리에게 맡긴 나는 기의병을 긁어모았다.
그리고 기의병 육성을 맡고 있던 3차 진화종 서른다섯 기와 워커맨으로 진화한 하녀 열다섯 마리를 자이언트 워커와 매칭 하여 데려갔다.
“가자, 베슬리!”
“네!”
투창 장비를 잔뜩 챙긴 뒤, 하드 워커 베슬리를 타고 이동했다.
남쪽 영역에 진입했지만 로커스트를 찾는 건 쉽지 않았다.
‘페스트가 있다면 좋았을 텐데.’
탐색 능력을 최대치로 발휘해 한 마리를 찾아냈다.
“투창 준비, 일제 투창!”
놈들은 자이언트 킬러비만큼 크지도 않고, 덤벼들지도 않아 투창으로 맞추기가 매우 어려웠다.
‘50마리가 동시에 던졌는데, 고작 세 개밖에 명중시키지 못했어.’
좋은 점도 있었다.
로커스트 사냥을 계속하니 탐색 능력과 투창 실력이 절로 길러졌다.
‘좋은 훈련이야.’
투창용 창은 회수하여 재활용하는데, 종종 부러지는 경우가 발생했다.
챙겨온 창의 개수가 절반 이하로 떨어지면 둥지로 돌아가 정비를 해야 한다.
여러 차례 둥지를 오가며 사냥했으나 잡은 로커스트는 많지 않았다.
‘이거 적자네…….’
서쪽 사냥터도 하드 워커와 자이언트 워커의 섭취량 문제로 적자 사냥이 이어지는 상황에 적자인 사냥터가 하나 더 늘어난 격이었다.
그나마 연막탄을 최소한으로 사용하며 말벌족을 토벌하는 동쪽 사냥터에서 잭팟이 터져 다행이었다.
대량의 중급 영양과 소량의 상급 영양이 확보되며 둥지에는 2, 3차 진화종이 꾸준히 발생했다.
‘자이언트 워커는 충분해. 스마트 워커를 늘려 보자.’
설탕수를 충분히 공급하여 스마트 워커를 늘리려 해 봤지만, 자이언트 워커 세 마리가 나올 때, 스마트 워커는 한 마리 정도가 나올까 말까였다.
결국 운용할 수 있는 기의병은 스마트 워커의 숫자에 따라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에, 자이언트 워커가 늘어나는 만큼 적자 사냥의 규모가 커지는 셈이었다.
아직까지는 문제가 없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생산 쪽 개미의 부담이 커질 게 뻔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꿀을 확보해 스마트 워커를 늘리고 흑자 사냥 규모를 키우는 한편, 생산 특화 종도 늘려야 했다.
“머쉬파, 하이 페어리들에게 미니 워커 육성을 맡겨.”
“네, 알겠습니다!”
시간이 흘러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사냥 중이던 무력 부대가 둥지로 돌아왔다.
“수고했다.”
여왕과 장로들에게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받은 그들은 각자의 시간을 짧게 보낸 후 부대 정비에 들어갔다.
신병으로 소모된 병력을 보충한 기의병 부대는 우기가 끝나자 다시금 동쪽 사냥터로 출격했다.
자이언트 부대도 마찬가지로 떠나가자, 나는 둥지에 남겨진 기의병을 소집하여 50인대를 구성했다.
신병이지만, 로커스트를 잡는데 숙련병은 필요 없었다.
“우린 남쪽으로 간다!”
남쪽 영역에서의 로커스트 사냥은 놈들의 개체 수 조절과 신병 훈련이 목적이었다.
그런데 우기 동안 놈들의 개체 수가 폭증하여 숲을 뒤덮고 있었다.
‘많네…….’
장로들에게도 이 사실이 전해지며 장로 회의가 열렸고, 그 회의에는 여왕들도 참석하게 됐다.
“로커스트는 그리 위협적이지 않아. 다만 놈들이 진화하면 자이언트 부대로도 막을 수 없단다.”
케어의 설명에 포메온이 반박했다.
“케어 님, 놈들은 우리의 상대가 아닙니다!”
전투력 부분에서 자이언트 워커 하나가 옐로우 로커스트 둘을 상대할 수 있다고 포메온이 주장하자, 그걸 듣고 있던 페르의 얼굴이 붉어지더니 포메온을 향해 도끼눈을 떴다.
“멍청아! 고작 두 마리를 상대할 수 있으면 어쩌라는 거야! 놈들은 수천 단위로 움직인다고!”
포메온이 페르의 지적에 쪼그라들자, 이번에는 블러리가 광기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죽이다 보면 다 죽는 것이지! 크히히!”
그런 블러리를 보며 일리아나가 한숨을 토했다.
“문제는 놈들의 번식력이야. 옐로우 로커스트의 번식력은 진화 전과 격이 다르다고 들었어. 거기다 숲이 황폐해지는 건 순식간일 테고…….”
“그래도 놈들을 사냥해서 창고를 채우면 괜찮지 않나요?”
트라이의 질문에 일리아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숲이 황폐해지면 제일 먼저 이주하는 놈들이야. 그럼 정작 숲에 사냥감이 남아 있지 않겠지.”
장로들이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했을 때 즈음, 트라이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봤다.
“버섯과 설탕수 영양만으로 몇 년은 버틸 수 있을 거예요. 그동안 우리가 숲을 가꾸면 되지 않을까요?”
트라이의 말에 내 표정이 구겨졌고, 캐리 또한 음울한 페로몬을 풍겼다.
장내의 시선이 우리 둘에게 쏠렸다.
캐리는 내게 말하라며 눈치를 줬다.
“일단, 자이언트 워커들이 먹어 치우는 양이 상당해요. 지금이야 고블린 사냥으로 현지 보급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사냥과 채집 등의 외역을 하던 개미가 모두 둥지로 돌아오면 농장 운영만으로는 먹여 살릴 수 없어요.”
포메온은 거대종이 모두 겨울잠을 자면 된다고 했지만, 그렇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숲에 먹을 게 없는 건 다른 녀석들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그렇게 되면 서쪽의 고블린, 남쪽의 거미족, 동쪽의 말벌족, 북쪽의 인간들… 거기다 갑각충까지 상대해야 할 텐데, 거대종 없이 막을 수 있을까요?”
“그럼 큰일이잖아!”
한동안 계속된 회의에서 일리아나는 총력을 다해 로커스트를 사냥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나는 기의병만 로커스트 사냥에 투입하고 자이언트 부대는 고블린 토벌과 둥지 방어를 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게, 작년과 같은 말벌족의 빈집 털이를 경계해야 했고, 고블린이라도 사냥하지 않으면 자이언트 워커 부대를 유지하기가 곤란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자이언트 계열로는 날아다니는 로커스트를 사냥할 수 없어.’
내게 친근한 일리아나의 주장에 정면으로 맞서게 됐지만, 군체와 나의 미래를 생각하면 도저히 물러설 수 없었다.
의견이 갈릴 때는 장로들의 투표로 정해진다.
나를 제외한 여덟 명의 장로 중 네 명이 내게 찬성했다.
그리하여 자이언트 워커 부대는 기존대로 서쪽과 둥지 방어에 신경 쓰고, 동쪽으로 출격하던 정찰대, 기의병 부대, 포병대가 로커스트 사냥에 투입됐다.
그들은 내가 지휘하게 됐고, 나는 200기의 기의병을 다섯 기씩 짝지어 총 마흔 팀으로 만들어 산개시켰다.
부대장급 가디언 셋과 십인장급 스무 기는 지휘부에 남겨 포병대와 보급로를 지키게 했다.
놈들을 사냥하며 나와 기의병의 탐색 능력과 투창 실력은 나날이 발전했으나, 남쪽 영역의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큰일이군. 밀어붙일수록 개체 밀도가 높아지고 있어.’
사냥을 중단하면 불어나는 녀석들을 감당할 수 없고, 그렇다고 지금처럼 밀어붙이면 놈들이 한 곳에 몰려 진화할 환경을 제공하는 격인데…….
‘말벌족처럼 유인 섬멸도 안 되고 말이야.’
답이 안 서는 상황에서 놈들의 밀집지 한 곳을 타격하러 갔는데, 우려하던 일이 발생했다.
수백 마리가 단체로 진화하더니, 자이언트 워커 절반 크기가 돼서는 우릴 덮쳐 왔다.
무한자원 개미군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