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자원 개미군단-42화 (41/189)

42화. 재앙을 먹는 대재앙, 그리고 어부지리

“연막탄 피워!”

하늘을 가득 메운 습격에 당황했지만, 연막탄이란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이걸로 놈들을 무력화시킬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큰 오산이었다.

옐로우 로커스트에겐 독 내성이라도 있는지 연막탄이 통하지 않았고, 오히려 놈들의 모습이 가려지며 기피하던 난전 상황에 돌입했다.

“학살이다!”

두 마리의 개틀링 워커가 엉덩이를 치켜들고서 초당 수십 발의 산성액을 연사하여 접근한 옐로우 로커스트들을 무력화시켰다.

“포병대, 일대를 정리해라!”

캐논 워커와 액시드 워커들의 산성 포격으로 일대를 안정시켜 보려 했지만, 한발 늦고 말았다.

적과 아군이 섞이며 포병대의 액시드 워커들이 무력해졌고, 워커맨들의 장창도 금세 부러졌다.

퍽! 퍽!

상당히 단단한 녀석들이었지만, 내가 휘두른 말벌창은 놈들을 깨부쉈다.

‘확실하게 보여. 차근차근 처리하면 내겐 위협이 되지 않아.’

차분히 한 마리씩 제거하며 소집 페로몬을 뿌렸다.

“밀집대형! 흩어지지 마라!”

소집 페로몬을 맡은 기의병들이 몰려왔으나, 적아가 섞인 백병전에선 투창도, 거창 돌격도 쓸 수 없었다.

이어지는 난전에선 나와 세 가디언이 무쌍을 찍었고, 근접학살이 가능한 개틀링 워커가 일대를 휩쓸었다.

회피기가 있는 액시드 거너인 포룸도 산성포를 쏘아 한 마리씩 제거했고, 기수(騎手)를 내린 하드 워커와 자이언트 워커들도 잘 싸웠다.

문제는 워커맨, 스마트 워커, 캐논 워커, 액시드 워커가 백병전에 취약하다는 점이었다.

“워커맨과 캐논 워커는 안쪽으로!”

어떻게든 3차 진화종을 살릴 생각으로 움직이며 적들을 사냥했다.

한 시간 정도가 흘러 마지막 옐로우 로커스트를 내 손으로 박살 냈다.

“이 녀석들, 진화하더니 도망도 안 치는군.”

300마리의 옐로우 로커스트 시체 사이에는 스마트 워커, 액시드 워커, 심지어 자이언트 워커들의 시체까지 섞여 있었다.

‘피해가 상당해.’

3차 진화종인 워커맨은 어떻게든 살렸지만, 백병전에 취약한 2차 진화종은 전멸이었다.

‘자이언트 워커도 절반이나 당했어.’

피해는 컸지만, 소득은 있었다.

대량의 중급 영양의 확보.

그리고 나와 포룸이 생각보다 잘 싸운다는 걸 알 수 있었고, 개틀링 워커의 화력도 재확인했다.

거기다 옐로우 로커스트로 진화한 녀석들이 저돌적으로 변한다는 것과 놈들 상대론 기의병보단 자이언트 부대가 효과적이란 사실도 파악했다.

‘이 습성을 잘 이용하면 유인 섬멸도 가능하겠어.’

앞으로 어떤 식으로 상대해야 할지 전략을 떠올릴 때, 남쪽 숲이 흔들리며 하늘이 노랗게 덮였다.

‘미쳤다.’

수천의 옐로우 로커스트가 비상(飛翔)하는 모습에 경악한 나는 급히 베슬리의 등에 타며 개미들에게 외쳤다.

“튀어! 빨리 튀어!”

‘개체 수 조절에 실패했어! 너무 늦은 거야!’

로커스트의 개체 수 조절에 실패한 대가는 컸다.

나는 재앙을 보게 됐고, 재앙에 맞설 전력이 개미족에겐 없었다.

결단은 빨랐지만, 뛰는 놈이 나는 놈들보다 빠를 순 없다.

‘늦었어. 이대론 따라잡힌다.’

서서히 덮쳐 오는 노란 재앙에 휩쓸릴 운명에 처한 나는 살아남은 부대를 멈춰 세웠다.

‘…….’

절체절명의 순간임에도 내 마음은 고요한 호수처럼 차분했다.

‘흑마력은 절반 정도 남았다. 하드 워커 스물다섯 마리와 나를 포함한 인간형 전투 개미가 다섯. 놈들은 인해전술을 꺼내 들었고, 이쪽은 소수의 정예병으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해.’

21세기 군대에 있던 시절, 군사 오타쿠 동기와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6·25 전쟁을 분석한 군사 전문가들이 다리 위에서 중국의 인민해방군과 싸우면 어떠한 군대라도 필패라고 했어.’

‘왜?’

‘놈들에게 변변찮은 무기도 없었지만, 밀려오는 붉은 병사들은 총알과 폭탄으로 막을 수 없었다고 해.’

인해전술에 밀린 미군은 부득이하게 다리를 끊었다.

과거 미국이 인해전술을 상대로 길을 끊어야 했다면, 날아오는 놈들을 상대론 뭘 해야 할까?

‘어떻게 싸우던 필패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절대 맞붙어선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땅이다! 땅으로 피해!”

하드 워커와 자이언트 워커가 특기를 살려 땅을 파기 시작했다.

시간이 부족하여 모두가 숨을 만한 공간은 만들 수 없었다.

“일단 워커맨과 캐논 워커를 숨겨!”

취약한 녀석들부터 굴속으로 보내고, 자이언트 워커들도 들어갔다.

최정예를 남기고 모두 대피를 마쳤을 때쯤, 놈들의 날갯소리가 굉음처럼 크게 들려왔다.

“우린 밖에서 입구를 덮고 지켜야 한다.”

조금 전 싸워 본 결과, 옐로우 로커스트 정도로는 내게 위협이 되지 않았다.

단단한 갑주로 무장한 가디언과 하드 워커들에게도 그들의 공격이 통하지 않았고, 포룸도 꽤 잘 싸웠기에 이들과 함께 놈들이 지나갈 때까지 버텨 볼 생각이었다.

“다크 님은 내가 지키겠다!”

“뒤는 제게 맡기십시오.”

“이하 동문!”

피어레스, 제르피아, 헤르피아가 긴장한 채 날 지키려 했고, 포룸은 광기 가득한 시선으로 다가오는 노란 폭풍을 노려보며 외쳤다.

“모두 죽인다! 학살이다!”

수천의 떼거리를 직접 상대한다면 지금 내 행동은 자살 행위에 가깝겠지만, 숲을 먹어 치우며 개미족 영역을 향해 북상하고 있는 옐로우 로커스트들은 우리에게 큰 관심이 없었다.

즉, 실제로 우리가 상대하는 건 수천이 아니라 수백이 고작일 것이고, 놈들이 지나칠 때까지만 버티면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버텨라! 버티면 살아남을 수 있다!”

재앙에서 살아남더라도 그 여파가 군체에 들이닥치겠지만, 지금 신경 쓸 문제는 아니었다.

노란 재앙이 우릴 덮쳤다.

사위 가득 메운 놈들을 쳐 내며 공간 확보에 신경 썼다.

놈들은 하드 워커의 단단한 외골격을 뚫지 못했으나, 전신에 붙어 관절 이음새, 더듬이, 엉덩이 등을 집요하게 공략했다.

우린 분명 무쌍을 찍고 있음에도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개미처럼 절망스러운 상황이었다.

‘가디언들은 어떻게든 버티겠지만, 하드 워커와 포룸이 위험해.’

나 또한 조금 벅찬 감이 있어 누굴 도울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뿌직.

나의 말벌창에 금이 갔다.

가디언이야 단단한 갑주형 외골격이 있어 맨몸으로도 문제없이 버티겠지만, 난 아니었다.

다행히도 내 상황을 눈치챈 헤르피아가 자신의 말벌창을 내게 건넸다.

“이걸 쓰십시오. 전 맨손으로도 충분합니다.”

“고맙다!”

1분 1초가 너무도 길게 느껴지던 그때, 남쪽에서 섬뜩한 포식자의 시선이 느껴졌고, 신체 강화로 소진되던 흑마력이 급속도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이건!’

대기의 마력이 내게 알려 줬다.

뭔가가 다가오고 있고, 그건 무수한 죽음을 몰고 오는 대재앙이라는 것을.

‘저거다!’

그 존재가 시야에 잡혔을 때,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얀 실 옷으로 몸을 가린 흑발의 여성체.

꼬리뼈 쪽에는 실을 뿜어 대는 곤충 배가 있고, 등에 돋아난 여덟 개의 매끈하면서도 단단해 보이는 거미 다리가 옐로우 로커스트들을 찢고 있었다.

‘인간형 거미, 거미족의 상위종이야!’

그녀는 사방에 거미줄을 치더니, 그걸 밟고 날아다녔고, 레슬링 선수가 로프 반동을 이용하듯 거미줄 반동을 이용해 미사일처럼 쏘아졌다.

그러고는 거미 다리를 펼쳐 수십의 옐로우 로커스트를 작살냈고, 거미줄에 착지하여 다시금 쏘아졌다.

‘빨라!’

거미줄을 오가며 가속된 그녀의 움직임은 눈으로 따라가기 힘든 수준이었다.

‘저 속도와 움직임… 소드 앤트인 블러리 수준이야.’

재앙이 대재앙에 휩쓸리더니, 노란 쓰레기 비가 내렸다.

우릴 공격하던 놈들은 동족의 떼죽음을 보곤 당황을 금치 못했고, 북쪽으로 급히 날아갔다.

순식간에 일대를 정리해 버린 그녀는 우릴 내려다봤고,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하얀 흰자위에 검은 눈동자를 가졌고, 이마 선을 따라 보조 눈으로 여겨지는 빨간 보석 여섯 개가 박혀 있었다.

“개미족?”

날 보며 한차례 고개를 갸웃거린 그녀는 두 팔을 높이 치켜들었다.

개미족은 그 행동에 위협을 느껴 방어 태세를 취했지만, 나는 왠지 그 행동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저건…….’

거미에겐 더듬이가 없고, 더듬이 다리가 있다.

간혹 거미는 멀리 이동하기 전에 더듬이 다리를 치켜들고 바람을 계산했다.

그러한 사전 지식을 가진 나는 그녀의 행동이 주변을 탐색하는 행동으로 여겨졌다.

뭔가를 감지했는지 그녀가 거미줄을 박찼다.

펼쳐진 거미줄 사이를 고속으로 오가는 그녀가 우리를 지나쳤다.

그녀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을 메운 노란색이 조금씩 지워지기 시작했다.

‘덕분에 살았어.’

갑작스럽게 등장한 거미족 여인의 조력으로 위기를 모면한 나는 자이언트 워커들에게 땅굴을 넓히게 했다.

임시 휴식처가 만들어지는 동안 주변 일대에 널린 사체를 확인했다.

‘엄청나군.’

중급 영양이 지상 가득 채우고 있지만, 기뻐할 순 없었다.

희생도 컸고, 개미족인 나로선 거미족의 무력이 껄끄러웠다.

‘숲에서 붙으면 기의병 부대도 순식간에 당할 거야.’

고속의 입체 기동이 가능한 거미족 여인.

저런 상대가 적이라면 블러리와 나우피어가 움직임을 막는 사이 가디언과 울트라로 찍어 눌러야 한다.

말로는 쉽지만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래서 거미족 영역을 금지로 여기는 거였어.’

개미들을 시켜 거미족 여인이 쳐 둔 거미줄을 회수하게 한 나는 한동안 하늘을 지켜봤다.

거미족 여인에게 당하곤 있다지만 그건 일부일 뿐이고, 놈들은 이미 개미족 영역 남부를 먹어 치운 후 더욱 깊숙이 파 들어가고 있었다.

‘난감하네.’

황폐해진 오크나무 숲에서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떠올리던 나의 눈에 개미족 영역 상공으로 치솟는 검은색 덩어리들이 보였다.

검은색 덩어리들이 노란 해일과 부딪혔고, 노란색에 섞여 사라지는가 싶더니, 노란색을 지워가기 시작했다.

그걸 본 헤르피아가 말했다.

“갑각충들이군요. 저렇게 함께 싸우는 종족이 아닌데… 아무래도 갑각왕이 나선 것 같습니다.”

해가 질 때쯤 노란 해일이 잘게 쪼개져 서쪽과 동쪽으로 떠나갔다.

‘끝났군.’

개미족 영역의 남쪽은 초토화됐지만, 갑각충의 노력으로 그 이상의 피해는 없었고, 지상에는 옐로우 로커스트와 갑각충 사체로 가득했다.

둥지로 돌아가 보니, 개미족 전체가 일대에 널린 사체를 회수하고 있었다.

“저쪽부터 정리해!”

“저기 인원이 부족하다 지원해 줘!”

“자이언트 워커들은 갑각충 사체를 운반해라!”

일리아나, 캐리, 언더리페가 밖으로 나와 있지만, 그들의 지휘만으론 영역 전체를 커버할 수 없었다.

자이언트 워커는 가벼운 사체를 옮기느라 시간을 낭비했고, 미니 워커와 빅 워커는 무거운 사체에 매달려 동료가 모일 때까지 기다렸다.

그런데 사방에서 지원 요청 페로몬을 뿌리고 있다 보니…….

운반 파티가 결성될 때까지 무한 로딩에 걸리기 일쑤였다.

‘흠…….’

돌아다니며 파티 결성을 도왔으나, 이것만으로 운반 효율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들 뭐부터 옮겨야 할지 제대로 판단을 못 내리고 있어.’

오류가 난 듯한 개미들을 지켜보던 나는 물류 혁신을 결심했다.

‘도저히 못 봐주겠군. 똥파리들이 꼬이기 전에 쓸어 담을 방법을 찾아야겠어.’

이번 겨울은 개미족 역사상 두 번 다시없을 풍족한 겨울이 될 것 같았다.

무한자원 개미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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