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자원 개미군단-43화 (42/189)

43화. 도약의 계절, 그리고 전쟁의 서막

나는 둥지로 돌아가 목공소를 찾았다.

그곳에선 엔지가 스마트 워커와 시절 워커를 지휘하여 각종 장비를 생산하고 있었다.

“장비 생산은 멈추고, 수레를 만들어 줘!”

“수레요?”

엔지가 수레에 대해 의문을 표했다.

나는 막대로 바닥을 끄적여 그림으로 보여 줬다.

“이런 거야. 자이언트 워커가 끌 수 있도록 만들면 돼.”

엔지는 그림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바퀴는 단단한 목재를 써야겠군요. 바로 만들어 볼게요.”

시험작 몇 개가 만들어졌다.

“흠…….”

그림대로 나오긴 했지만, 뭔가 엉성해 보였다.

“여기는 스마트 워커가 물건을 실어야 하니, 한쪽 턱은 열릴 수 있도록 해 줘. 그리고 바퀴는 더 키워야 할 것 같고. 내려 뒀을 때 앞으로 살짝만 쏠리도록 지지대를 추가해 줘.”

그리고 얼마 후, 자이언트 워커가 턱으로 끌기 좋은 수레가 완성됐다.

“다크 님, 이거 봐요!”

시험적으로 운영해 본 결과.

‘망했네.’

수레 손잡이가 턱 힘을 버티지 못해 금세 부서졌다.

“이게… 왜…….”

실망한 엔지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포기하지 않으면 돼. 실패는 성공을 위한 과정일 뿐이야.”

“포기하지 않으면 과정일 뿐인가요?”

“그래. 그러니까 다시 만들어 보자.”

새로운 물건을 만드는 것을 발명이라 한다.

발명에는 무수한 도전이 필요하다.

인력이 많을수록 도전 횟수가 늘어나니, 현대의 발명이란 노가다의 영역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니 난 엔지를 비롯한 목공 개미들에게 각자 다른 방법으로 수레를 만들어 보게끔 하며, 문제점을 하나씩 개선해 갔다.

‘얼마 걸리지 않겠어.’

개량을 거듭한 결과, 끄는 수레가 아닌 자이언트 워커 등에 걸치는 형태의 수레가 완성됐다.

“드디어 성공이에요!”

“그래, 잘했어. 이제 공정을 세분화한 후 양산을 부탁할게.”

“네? 양산이요?”

온종일 갈리던 엔지가 당혹해하자, 인력을 충원해 주기로 했다.

[소집! 소집! 채집 활동 중인 워커맨과 스마트 워커는 모두 모여라! 목공소로 가서 엔지를 도와라!]

페로몬 표식을 곳곳에 남겨 뒀다.

인력이 보충되면서 수레가 제작되기 시작했다.

‘좋아. 다음 계획으로 넘어가도 되겠어.’

나는 운반 개미의 대장인 캐리를 찾았다.

“그래, 다크. 날 왜 찾은 거지?”

캐리는 숲에 널린 시체를 운반해 오느라 몹시 바쁜 상태였기에 내게 시간을 뺏기는 걸 달가워하지 않았다.

“지금 바쁘니, 용건만 말해라.”

나는 그에게 지금 같은 방식의 문제점들을 짚어준 후, 현대에서 쓰이는 물류 창고에 대한 개념을 알려 줬다.

“그러니까… 주요 지점에 지휘가 가능한 스마트 워커를 배치하고, 빅 워커들로 하여금 식량을 모으게 하라는 것이군.”

캐리는 더듬이를 요리조리 움직여 가며 고심했다.

“확실히 지금 같은 방식으론 겨울까지 운반 일에만 매달려도 모두 회수하는 건 힘들 거야. 거기다 벌써 냄새를 맡고 꼬여 드는 녀석도 있으니…….”

캐리는 고심 끝에 결정했다.

“거점에 모인 식량을 자이언트 워커가 한꺼번에 옮기는 방식이라… 좋아, 한번 해 보자!”

캐리 혼자선 힘들 듯하여 언더리페, 일리아나, 트라이에게도 도움을 청했다.

그들도 곰곰이 생각해 보곤 물류 혁신에 가담하기로 했다.

“일단 시체가 널려 있는 남쪽 영역만 작업할거에요. 각자가 맡은 지역에 물류 창고로 쓸 만한 곳을 지정해 줘요.”

“알았어. 그럼 가 볼게.”

지쳐 보이는 일리아나가 떠나자 언더리페, 캐리, 트라이도 각자 맡은 영역으로 떠났다.

장로들은 물류 창고의 위치를 지정한 뒤, 소수의 스마트 워커와 빅 워커를 배치했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서 만들어진 물류 창고에 식량이 쌓이기 시작하자, 그곳에 모인 식량을 자이언트 워커들이 둥지로 운반했다.

‘흠…….’

이걸로 운반 효율이 세 배 이상 올랐지만, 내가 원하는 수준의 개혁이 아니었다.

‘슬슬 물류 창고도 충분히 만들어졌으니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도 되겠어.’

나는 거리에 따라 1차 창고, 2차 창고, 3차 창고 등을 지정하여, 3차에서 2차로, 2차에서 1차로 식량을 옮겨 두도록 지시했다.

그러고는 3차 창고에 기의병을 열 마리씩 배치하여 운반 개미들의 안전까지 확보했다.

“다크 님, 개미들의 움직임이 달라졌어요!”

비운반 개미들의 숙련된 모습에 세크리가 놀랐다.

“그렇겠지.”

빠르게 숙련공을 얻을 수 있는 것 또한 분업의 장점 중 하나다.

숙련공의 증가로 운반 효율은 또 한층 올라갔지만, 자이언트 워커의 운반량의 한계로 물류 창고에서 미처 옮겨 오지 못한 시체가 쌓여 갔다.

“다크 님! 바로 투입할까요?”

“투입해.”

때마침 충분한 수량의 수레가 확보되며 각 창고에 빈 수레를 공급했다.

처음에는 스마트 워커가 짐의 상하차를 도왔으나, 효율이 너무 떨어지는 것 같아 운반 중이던 자이언트 워커 한두 마리를 상하차에 투입했다.

운반할 자이언트 워커가 줄었음에도 운반 효율은 다섯 배 이상 증가했다.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디그파! 리페파! 페어리들과 미니 워커를 총동원해 길을 닦아 줘!”

수레가 오갈 도로망 건설이 시작됐다.

초기의 도로망이 만들어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 걸리지 않았다.

로커스트 사체의 냄새를 맡은 다른 포식자들이 영역에 모여들 때쯤, 우린 숲 청소를 끝내고 둥지로 철수한 지 오래였다.

어마어마한 양의 중급 식량의 확보.

그리고 갑각충의 상급 영양과 동쪽 숲 토벌로 얻은 킬러 퀸의 상급 영양.

작년보다 더 많은 양의 영양을 확보한 우린 상급 영양을 나누기 위한 논공행상에 들어갔다.

동쪽 숲과 남쪽 숲에서 활약한 피어레스, 제르피아, 헤르피아, 포룸, 페스트가 1등 공로자로 등극했고, 나 또한 운반 개혁의 공로로 1등 공로자가 됐다.

“이번 재앙 속에서 홀로 300마리의 옐로우 로커스트를 죽인 블러리가 1등 공로자임을 밝힌다.”

블러리의 활약을 듣게 된 나는 나우피어를 보며 물었다.

“넌 그때 뭐 했어?”

“그게… 나무를 다듬느라…….”

나우피어는 분명 블러리에 근접한 스펙을 가졌다.

나섰다면 분명 큰 공을 세웠을 테지만, 전투를 싫어하는 소심한 성격은 고쳐지지 않았다.

나를 도왔던 일리아나, 언더리페, 캐리, 트라이는 2등 공로자가 됐고, 나머지가 3~5등 공로자로 지정되며 논공행상이 끝났다.

모두에게 상급 영양이 조금씩 돌아가게끔 됐으나, 대다수 3차 진화종은 자신의 몫을 2차 진화종에게 나눠 줬다.

‘간부들은 모두 진화했으니, 스마트 워커들에게 먹여 워커맨을 더 늘리자.’

전략 자원인 상급 영양의 사용처를 결정한 나는 겨울 간 기의병 육성에 전념할 생각이었다.

겨울이 왔다.

“공사다! 할 일 없는 개미는 지하 공사로 와라!”

언더리페가 날뛰기 시작했고, 풍족한 자원을 바탕으로 2차와 3차 진화종이 급증하고 있었다.

특히 해체에 특화된 시절 워커가 늘면서 자이언트 시절 워커 또한 많아졌다.

공사와 진화 붐이 불곤 있다지만, 정작 내가 원하는 스마트 계열은 예전보다 드물어졌다.

‘큰일이야.’

군체의 개미는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내역 개미와 외역 개미.

내부에서 시중, 청소, 요리, 운반, 공사, 생산 등을 담당하는 개미가 내역 개미고, 외부에서 채집, 사냥, 정찰 등을 하는 개미를 외역 개미라 한다.

특화 개미가 아닌 어린 스몰 워커들은 내역 개미로 시작하여 어느 정도 성장하면 대부분 외역 개미가 됐고, 말년에는 경비대에서 일하게 된다.

‘개미의 습성을 잊고 있었어.’

과거의 개미족에겐 외역 개미가 생산의 주축이었으나, 지금에 이르러선 내역 개미가 생산의 주축이 됐다.

거기다 자이언트 계열의 사냥 개미들은 강력한 무력을 지닌 대신 마이너스 생산성을 보인다.

그러니 내역 개미를 늘려 자이언트 계열을 지원할 필요가 있는데, 이번 옐로우 로커스트와의 전쟁으로 대부분 개미가 외역 개미로 승진하면서 자이언트 워커로 진화했다.

즉,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둥지의 자급자족 상태가 무너진다.

“지금 언더리페 님이 자이언트 워커들을 대동해서 지하 공간을 넓히고 있어요. 저희 쪽 개미들도 동원되면서 창고의 영양이 소진되는 중이에요.”

세크리가 뛰어난 머리로 대략적인 영양 고갈 시점을 말해 줬다.

“이대로 자이언트 계열을 재우지 않으면, 내년 가을이면 창고가 텅텅 빌 거예요. 그러니까 언더리페 님을 말려야 하지 않을까요?”

상황이 웃기다.

역대급으로 풍족한 겨울이 왔음에도 영양 긴축이 필요하다니.

‘긴축? 그런 걸 할 필요가 있나?’

자이언트 워커의 생산성은 스마트 워커가 늘어나면 해결된다.

그러니 스마트 워커를 늘릴 계획을 짜야지, 긴축에 들어갈 이유는 없었다.

“창고 풀어! 내년 봄까지 다 먹어 치워도 좋으니 공사에 올인이다! 이왕 하는 거 제대로 넓히자!”

후임 육성과 도구 생산에 투입된 개미를 제외한 스마트 계열 워커에게 삽과 곡괭이를 보급하여 공사장에 보내 버렸다.

내 행동에 언더리페가 감동하여 다른 장로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이 내게 제동을 가할 때, 확장 공사를 지원해 준 건 다크 뿐이었다. 이번 공사, 난 최고의 공간을 만들어 낼 것이다!”

언더리페의 열기에 감화된 제르다코, 네트리, 포메온, 블러리가 확장 공사에 전폭적인 지원을 시작했고, 그 모습을 본 일리아나, 캐리, 트라이는 급히 내게 뛰어와 따져 물었다.

“다크, 너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계획은 있는 거냐? 이대로 언더리페가 폭주하게 되면 너도 알다시피…….”

“봄까지 식량을 전부 털어먹을 셈이야? 정작 사냥 부대가 필요할 때 부대를 유지할 식량이 부족해진다고!”

셋을 진정시킨 나는 계획의 일부를 알려 줬다.

내 설명을 들은 일리아나와 트라이의 눈이 휘둥그레졌고, 캐리 또한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런 일이라면 나도 도울 수 있을 것 같아.”

“나도 계획에 동참하겠어.”

“괜찮은 계획 같군. 그럼 난 운반 개미들을 공사에 투입하겠다.”

군체의 총력이 둥지 확장 공사에 투입됐다.

공사 중 대량의 광물이 튀어나왔고, 수원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었다.

순식간에 지하 5층만큼 커져 버린 지하 6층을 두고 일리아나는 또 한 번 머리를 짚었다.

“야… 언더리페.”

“미안하다. 조금 흥분했다.”

“에휴, 내가 말을 말지. 다음 층은 여왕님들이 지낼 수 있도록 아늑하게… 아늑하게 좀 부탁할게.”

“노력해 보겠다.”

너무 높고 넓게 만들어진 지하 6층은 내게 맡겨졌고, 언더리페는 지하 7층 공사에 돌입했다.

지하 6층 공간을 확인한 나는 디그파와 리페파를 불렀다.

“디그파, 난방 공사를 부탁해, 리페파는 여길 비옥하게 만들어 줘.”

“네!”

“맡겨 주세요!”

지하 6층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할 동안, 군체의 인구는 3500을 넘어섰다.

겨울이 끝나갈 무렵, 내 개인 창고는 아직 여유가 있었지만, 둥지 창고는 바닥이 났다.

“창고 풀어! 자이언트 워커를 더 늘려 버리자!”

세크리가 걱정스러워했지만, 내 지시에 따라 창고를 활짝 열었다.

‘슬슬 봄이야. 준비해야겠어.’

스마트 계열 개미를 최대한 끌어모아 기의병 300기를 만들었다.

“피어레스, 제르피아, 헤르피아. 너희들을 백인장으로 임명한다.”

봄이 되자마자 셋을 출격시켰다.

“피어레스 부대 돌격! 모두 쓸어 버리자!”

“우리도 간다. 제르피아 부대 돌격!”

“헤르피아 부대는 뒤따르며 보급로를 지킨다.”

고작 300기로 드넓은 아카시아 숲을 점령할 순 없다.

거기다 군체에선 1000마리에 가까운 자이언트 워커를 서쪽 숲에 풀어 뒀다.

사냥 성과에 따라 식량 사정이 달라지겠지만, 일리아나의 추측으론 여름이 될 무렵 내 창고마저 텅텅 빈다.

그러니 동쪽으로 출격한 기의병의 성과가 매우 중요했는데… 내가 그들에게 바라는 건 꿀이었다.

전략 자원인 꿀의 확보.

나는 이번 작전을 ‘스마트 불리기’라 명명했다.

“그럼, 작전 개시다!”

동쪽 숲에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무한자원 개미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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