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자원 개미군단-44화 (43/189)

44화. 아카시아 숲 (1)

피어레스와 제르피아가 각각 100인대 규모의 기의병을 이끌고서 동쪽 숲에 발을 들였다.

“돌격이다!”

페스트가 남긴 표식에 따라 움직인 그들은 말벌족 둥지를 발견한 즉시 연막탄을 피웠다.

연막을 피우면 말벌족의 선택은 둘 중 하나였다.

지상에 내려와 옥쇄하거나, 인근 동족의 둥지로 도망가거나.

간혹 둥지에 남아 버티는 킬러 퀸이 있었지만, 피어레스와 제르피아는 지상에 내려온 말벌족만 작살 낸 후 다음 장소로 이동했고, 둥지에서 존버 하는 킬러 퀸은 후발대인 헤르피아가 맡았다.

“헤르피아 부대, 연기가 흩어지면 말벌족 둥지를 정리한다!”

도주한 녀석들은 정찰 부대가 끈질기게 쫓아갔다.

새로운 둥지를 발견한 정찰 개미는 페로몬 표식을 뿌려 기의병 부대에게 위치를 알렸다.

피어레스와 제르피아의 공세는 파죽지세와도 같았다.

“내려온 녀석들은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킬러 퀸은 나와 피어레스가 상대한다! 나머지를 처리해라!”

얼마 남지 않은 동쪽 영역의 말벌족은 그들의 거친 공세를 막을 수 없었다.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동쪽 영역의 말벌족이 깨끗이 토벌됐다.

“이제부터 아카시아 숲이다!”

“긴장할 필요 없다! 준비한 대로만 한다!”

다크가 사전에 말벌족이 내세울 전략을 알려 줬다.

연막탄을 피우기 전에 몰아친다거나, 대규모 지상전으로 맞선다거나, 물을 구해 와 연막탄 자체를 봉인한다거나, 기습 공격을 가해 온다거나…….

기의병 부대는 각 상황에 대한 공략법도 숙지한 상태였지만, 예상과 달리 아카시아 숲 초입 부근의 말벌족은 별다른 대응이 없었다.

이상함을 느낀 제르피아가 피어레스에게 말했다.

“피어레스, 조금 쉬었다가 움직이자.”

“알겠다.”

잠시 동안 숨을 고르며 한차례 보급을 받기로 한 기의병 부대는 아카시아 숲을 둘러봤다.

그곳은 꿀벌들이 넘쳐나는 곳이었고, 가끔 거대 꿀벌 몬스터인 자이언트 허니비도 보였다.

“자이언트 허니비에요. 달콤한 향이 나는데 사냥할까요?”

부하의 물음에 워커맨인 십인장 하나가 답했다.

“위협이 되지 않으면 건들지 말라는 다크 님의 명령이야.”

제르피아도 한마디 했다.

“공격해 오지 않으면 무시한다! 우리의 목적은 어디까지 말벌족 토벌이다! 꿀의 확보는 후속 부대가 진행할 것이다.”

보급이 이루어지는 동안 몇몇 호기심 많은 십인장이 자이언트 허니비를 추적해 봤다.

“와…….”

자이언트 허니비가 따라간 곳에는 거대한 벌집이 있었고, 주변에는 무수히 많은 작은 벌집이 보였다.

그리고 거대 꿀벌집을 감시하는 듯한 자이언트 킬러비가 여럿 날아다녔다.

“자이언트 킬러비다!”

자이언트 킬러비를 발견한 십인장은 부대원들에게 투창을 지시했다.

푹푹푹!

“거창 돌격! 처리한다!”

기의병들이 손쉽게 자이언트 킬러비를 처리하자, 겁먹은 자이언트 허니비들이 우왕좌왕했다.

꿀꺽.

꿀을 취하곤 싶었지만, 다크의 당부가 있어 일단 물러나려던 십인장에게 자이언트 허니비 하나가 다가와 더듬이를 내밀었다.

“공격…하지 말아 주세요…….”

항복 의사를 밝힌 자이언트 허니비들이 고품질의 꿀을 개미족에게 주입해 줬다.

십인장인 워커맨이 꿀맛에 빠져들자, 그를 태우고 있던 하드 워커가 몸을 들썩였다.

“정신 차려라. 여긴 적진이다.”

거대종의 경고로 정신을 차린 십인장과 스마트 워커들이 날카로운 기세로 다가온 자이언트 허니비들을 내쫓았다.

자신들의 상납이 부족했다고 생각한 자이언트 허니비들은 애벌레를 가져왔다.

“꿀은 다 뺏겨서… 애벌레를 드릴 테니 용서해 주세요.”

개미족은 얼떨결에 꿀과 애벌레를 받게 됐다.

본대에 돌아간 십인장은 자신과 비슷한 일을 겪은 다른 십인장들을 만났다.

“너희도?”

“응.”

십인장들은 이와 같은 상황을 피어레스와 제르피아에게 보고했다.

“그러니까, 다가가면 꿀과 애벌레를 내준단 말이지?”

피어레스가 주변 꿀벌족을 토벌하려 하자, 다크의 당부를 떠올린 제르피아가 피어레스를 막아섰다.

“기다려! 우리의 임무는 말벌족 토벌과 아카시아 숲에 거점을 만드는 거야.”

“다크 님이 올 동안 꿀을 확보해 두면 좋잖아.”

“다크 님이 꿀벌족은 건들지 말라고 했잖아!”

약간의 의견 충돌이 있었지만, 피어레스가 물러서며 합의가 이루어졌다.

‘휴… 다행이야. 하마터면 다크 님의 지시를 어기게 될 뻔했어.’

기의병 부대는 정비를 마치는 대로 아카시아 숲 깊숙이 이동했다.

이동하던 도중 발견된 말벌족을 사살하니, 인근 꿀벌족들이 날아와 꿀과 애벌레를 바쳤다.

“가진 게 없어 죄송해요. 부족하시다면 제 목숨을 드릴게요.”

피어레스는 그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죽여 달라는 건가?”

“살려 달라는 거잖아!”

간혹 바칠 게 부족한 둥지에선 허니 퀸이 직접 나와 목숨을 구걸하기도 했다.

꿀과 애벌레를 잔뜩 얻게 된 기의병들은 적당한 공터에서 헤르피아 부대와 다크의 지원부대를 기다렸다.

* * *

“출격이다!”

나는 스마트 워커 후보로 육성 중이던 빅 워커 150마리와 공사 개미 출신 자이언트 워커 150마리를 챙겨 동쪽 숲으로 출격했다.

이번 작전은 일리아나와 트라이도 함께였다.

“다크, 네 발상은 언제나 훌륭해. 난 개인적으로 네가 세운 첫 번째 작전대로 꿀벌족과의 공생이 가능했으면 좋겠어.”

“걱정하지 마, 일리아나. 이번 작전에는 나도 함께니까, 문제없을 거야.”

세크리도 함께 왔지만, 하녀 부대는 장비 생산을 돕느라 데려가지 못했다.

“다크 님, 여기 물 드세요.”

“마침 목말랐는데, 고마워.”

“아니에요. 하녀 개미들이 없으니 제가 더 신경 써야죠.”

혹시 모를 위협에서 날 지키기 위한 보험으로 나우피어를 데려왔다.

“저… 밖에선 힘을 제대로 못 쓰는데… 너무 기대하지 마세요.”

나우피어의 징징거림은 이동 내내 계속됐고, 세크리가 입의 혀처럼 날 챙겨 주지 않았다면 나우피어를 향해 창을 휘두를 뻔했다.

동쪽 영역을 넘어 아카시아 숲으로 진입했다.

영역 밖으로 나오니 익숙지 못한 페로몬이 많아 감각이 무뎌졌다.

‘이거… 쉽지 않겠는데.’

그나마 인간형 개미에겐 쓸 만한 눈이 있어 다행이지만, 개미형 개체들은 조금 걱정됐다.

‘일단 거점부터 만들고, 영역 페로몬을 뿌려 둬야겠어.’

조심스럽게 이동하여 피어레스와 합류했다.

“다크 님! 기다렸습니다.”

피어레스의 성격상 주변을 휩쓸고 다닐 줄 알았는데, 제르피아와 헤르피아가 잘 제어해 주고 있는 듯했다.

“저건 뭐야?”

내 눈에 자이언트 허니비가 개미들에게 꿀을 먹여 주는 모습이 보였다.

거기다 한쪽에는 팔뚝만한 애벌레들이 꿈틀거렸다.

‘꿀벌족의 유충인가?’

벌써 한차례 약탈을 끝내고, 식민지라도 삼았나?

그런 오해를 했으나, 헤르피아의 보고를 듣곤 오해를 풀 수 있었다.

“그러니까… 자신들의 둥지를 지키기 위해 꿀벌족이 스스로 상납했단 말이군.”

나쁘지 않다.

놈들이 비굴하게 굽혀 오는 만큼, 공생 관계를 이루기 쉽다.

당장에라도 꿀벌족과의 공생 관계를 구축할 수 있을 듯했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협약은 개미족의 힘을 보여 준 후야.’

자이언트 워커들과 빅 워커들에게 기지 건설을 명한 나는 기의병들에게 말했다.

“돌아가면서 한 부대씩 주변 둥지를 공격해! 나머지 기의병 부대는 이곳을 지킨다!”

식량은 충분히 가져왔는데, 현지 조달이 어렵지 않아 괜히 가져온 상황이었다.

피어레스가 인근 말벌족 둥지를 공격하기 위해 떠났다.

나는 이곳 말벌족이 어떻게 반응해 올지 기다렸다.

그런데 생각보다 반응이 없어 심심해진 나는 꿀벌족의 애벌레들을 지켜봤다.

“밥!”

“밥!”

애벌레는 달콤한 냄새가 나는 중급 영양이었기에 전략 자원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지만, 자이언트 허니비의 가치가 더 높다고 판단한 나는 빅 워커들에게 꿀을 먹이게 했다.

그러곤 자이언트 허니비들에게 애벌레를 돌려줬다.

“감사합니다. 여왕님도 무척 고마워할 거예요.”

감격한 그들은 거동이 불편한 여왕, 허니 퀸을 데려왔다.

허니 퀸의 모습은 워커 퀸과 흡사한 인간형 외모.

단지 외골격 대신 꿀벌 특유의 털옷을 입고 있었고, 눈동자와 머리카락 색이 워커 퀸과 조금 다른 느낌의 노란색이었다.

“허니 퀸 아르스입니다. 이렇게 애벌레를 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할 것 없다. 우리도 명령에 따랐을 뿐이다.”

“따로 대장이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제르피아와 헤르피아, 둘 중 하나를 수장이라 생각한 아르스는 주변을 둘러보며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 이곳의 수장을 뵐 수 있을까요? 직접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얼마든지.”

헤르피아가 내게 아르스를 데려왔고, 나를 본 아르스는 살짝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당신은… 워커맨인가요?”

일리아나가 염화로 내게 말했다.

[다른 종족들은 하프 데몬에 대해 알지 못해. 설명하면 귀찮아지니까 그냥 워커맨이라고 해. 그리고 허니 퀸이 놀란 건 워커 계열인 네가 솔져 계열인 가디언을 이끌고 있어서 그럴 거야.]

[그렇군요.]

서로 간 인사를 주고받자, 아르스는 이곳 지역의 사정을 말해 줬다.

“예전에 이곳은 개미족 분들의 영역이었어요. 지금은 보이지 않게 됐지만요.”

이곳은 수십 년간 말벌족과 개미족이 전쟁을 치르던 곳이었다.

그런데 수년 전부터 말벌족이 흥하기 시작했고, 개미족은 망해갔다.

말벌족이 흥하자 두 종족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살아가던 꿀벌족은 그들의 노예로 전락하게 됐다.

공생 관계가 아닌 철저한 상하 관계.

처음에는 적당히 수탈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수탈은 심해졌다고 한다.

“작년 겨울에 많은 동족이 굶어 죽었고, 숲도 예전 같지 않아 꿀의 생산량이 줄고 있어요.”

지금 상황으로 희망이 없다고 판단한 허니 퀸은 서쪽 숲으로 도주하려 했으나, 날개와 다리를 뜯겨 도주조차 불가능해졌다고 한다.

“부탁드립니다. 말벌족을… 말벌족을 몰아내 주세요!”

허니 퀸은 말벌족 토벌 보수로 자신들의 전부를 내주기로 했으나, 그녀에게서 음모의 마력이 느껴졌다.

‘무언가 꾸미고 있어.’

허니 퀸에게 어떤 의도가 있든지 어차피 해야 할 일에 퀘스트가 하나 추가된 격이었지만, 즉답은 피했다.

아르스를 돌려보낸 나는 조금 전 있던 일을 생각해 봤다.

‘특이하군.’

곤충형 몬스터인 개미족과 말벌족은 감정적이지 않다.

그래서 공포와 슬픔 같은 불필요한 감정이 적다.

그런데 꿀벌족은 조금 달랐다.

살려준 것에 고마워하고, 애벌레를 약탈하지 않는 것에 감격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약함을 알고 살아남기 위해 나름의 궁리를 하는 듯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와 말벌족을 충돌시켜 무언가 얻으려는 속셈이 보였는데…….

‘아무래도 아르스는 우리가 말벌족을 처리할 수 있다곤 믿지 않고 있어.’

막대한 보상을 걸고, 우릴 말벌족과 싸움 붙인다.

‘그렇군.’

아르스가 노리는 게 뭔지 깨달았다.

그녀는 우릴 말벌족의 제물로 밀어 넣어 자신들의 상납금을 줄여 볼 속셈이었다.

‘그런데 어쩌나….’

제물이 되는 건 우리가 아니라 말벌족인데.

“다크 님, 완성 됐습니다!”

“잘 했어!”

기지가 완성됐다.

그런데 피어레스가 한참이나 날뛰었음에도 말벌족은 별다른 대응을 해 오지 않았다.

이상함을 느낀 나는 인근 꿀벌족들을 찾아가 정보를 수집했다.

“일곱 개의 말벌족 연합체 중심에는 킬러 퀸 키에라가 있었어요.”

키에라의 세력이 너무 커지자 위협을 느낀 나머지 여섯 개의 연합체는 그녀를 오크나무 숲으로 추방했다고 한다.

“키에라 연합이 사라지고, 남은 여섯 개의 말벌족 연합체가 이곳을 차지하기 위해 연일 전쟁 중이에요.”

“그거야!”

“네?”

나는 아르스를 통해 이곳 말벌족이 여섯 개의 연합체로 나뉘어 전쟁하느라 우리에게 신경 쓸 틈이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이거, 좀 더 쉬워지겠는걸…….’

말벌족이 하나의 덩어리가 아니라는 걸 안 이상, 나는 좀 더 과감하게 움직일 수 있게 됐다.

“다크 님, 일리아나 님이 폐쇄된 개미족 굴을 찾았어요.”

때마침 페스트가 희소식을 전해 왔다.

무한자원 개미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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