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자원 개미군단-45화 (44/189)

45화. 아카시아 숲 (2)

나의 작전은 간단했다.

말벌족을 토벌한 후 아카시아 숲을 꿀꺽한다.

그럼 대량의 꿀을 얻게 될 것이고, 스마트 워커를 늘릴 수 있다.

스마트 워커만 있으면 기의병은 얼마든지 늘릴 수 있고, 기의병의 사냥 효율은 매우 높다.

사냥 효율만 개선된다면 외근 개미가 아무리 많아져도 자급자족은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번 작전의 중심은 꿀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이 작전을 듣게 된 일리아나는 한 가지 의견을 냈다.

“스마트를 육성하는 건 시간이 너무 걸려. 그러니 아카시아 숲 개미족을 흡수하자!”

일리아나는 여왕들의 허가가 내려진 상태에서 약소 군체의 동의가 있으면 장로 권한을 발동하여 하위 군체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위성 군체로 삼겠다는 거군.’

곰개미 군체를 키울 때 자주 써먹던 치트키가 떠올랐다.

그건 곰개미를 키울 때 외부에서 고치를 구해 오는 것이었는데, 그럼 군체가 급성장하여 키우는 재미가 쏠쏠했다.

일리아나는 타 군체의 병력을 흡수할 생각으로 나를 따라왔으나, 아르스에게서 개미족 멸망 소식을 듣게 됐다.

“아쉽군요.”

나는 시작도 전에 계획 하나가 무너졌다고 생각했지만, 일리아나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개미족은 그리 쉽게 멸망하지 않아. 분명 지하에 숨어서 힘을 키우고 있을 거야.”

일리아나는 페스트에게 폐쇄된 개미굴을 찾으라고 명하였고, 녀석은 그 임무를 훌륭히 해냈다.

나와 일리아나는 자이언트 워커를 대거 이끌고 폐쇄된 개미굴을 찾았다.

개미굴 내에서의 전투라면 기의병보단 자이언트 워커가 월등할 거란 계산도 있지만, 중요한 건 폐쇄된 개미굴을 복구하는 것이었다.

‘아직 살아 있을까?’

내게는 확신이 없었지만, 일리아나를 믿어보기로 했다.

자이언트 워커 150마리와 빅 워커 150마리가 투입된 복구 작업은 빠르게 진행됐다.

산란방과 유충방이 있는 곳까지 길을 뚫었지만, 이곳 개미족의 흔적은 발견할 수 없었다.

‘정말 없는 건가?’

그때, 아래에서 솟구치는 흑마력이 보였다.

흑마력은 생명체가 있는 곳에서 발생하는 게 일반적.

그러니 미련을 떨칠 수 없었다.

“페스트, 정찰대를 불러 줘.”

마지막 확인을 거치기 위해 정찰병을 투입했고, 페스트는 의외의 보고를 해 왔다.

“지하에서 올라오는 바람이 느껴져요. 좀 더 지하로 내려가는 길이 있을 것 같아요.”

“그래?”

페스트의 말대로 아래로 통하는 길을 발견하게 됐다.

“다크, 나우피어, 함께 가 보자!”

일리아나가 앞장서며 통로 안으로 진입했고, 자이언트 워커들이 뒤따랐다.

깔끔하게 정리된 통로에서 희미하지만 개미족의 흔적이 보였다.

“아직 있는 거야!”

미로와 같은 통로를 한참이나 오가서야 이곳 개미족과 만날 수 있었다.

“워커맨과 자이언트 워커가 여길 어떻게?”

“페로몬이 너무 짙어. 우리의 상대가 아니야. 게다가 저건 3차 진화종인 소드 앤트야.”

무장도 갖추지 못한 스마트 워커 다섯 마리와 빅 워커 스물다섯 마리가 우릴 보며 당황했다.

‘말랐군. 그리고 약해.’

마음만 먹으면 혼자서도 순식간에 쓸어버릴 수 있지만, 우리는 싸우기 위해 온 것이 아니었다.

“너희들의 여왕에게 안내해라!”

나의 외침에 그들은 뒷걸음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페로몬이 생소해요. 어디서 왔나요?”

나는 손가락으로 지상을 가리켰다.

내 대답이 전해지지 않았는지 장내는 적막함이 감돌았다.

일리아나가 침묵을 깼다.

“우린 오크나무 숲의 개미족이다. 페포케 군체라고 하면 알려나 모르겠군.”

“오크나무 숲이라면… 갑각왕 헤라클레스와 무왕 포스가 있는…….”

이곳 개미들이 웅성거렸다.

“너희 여왕에게 전해 주렴. 오크나무 숲의 1장로 일리아나가 왔다고.”

일리아나가 우호 페로몬을 뿌리며 말하자, 몇몇 개미들이 소식을 전하러 갔다.

소식이 전해지는 동안 상대측 개미들이 몰려왔다,

‘스마트 워커가 많아.’

흡수하기에 나쁘지 않은 군체였으나, 다들 몸 상태가 심각했다.

‘아사 직전이군.’

몇 놈이 대치 상황에서 주저앉았다.

나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일단 살려야겠어.’

나는 사교위에 영양을 듬뿍 머금고 있는 빅 워커들을 앞세웠다.

“가라!”

나의 돌발 행동에 일리아나가 말리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조심스럽게 접근한 빅 워커들이 상대 쪽 개미족과 더듬이 인사를 나눴고, 둥지에서 챙겨온 버섯 영양을 주입해 줬다.

영양을 모두 소진한 빅 워커들이 뒤로 빠지면, 또 다른 빅 워커를 전진시켜 그 자리를 채우게 했다.

“모두 만땅으로 먹여라!”

일리아나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확보한 꿀이 많아요. 이 기회에 가져온 버섯 영양을 소진하려고요.”

얼마 후 트라이가 충분히 먹였다며 병력을 물리라고 했지만, 이왕 베푸는 거 화끈한 모습을 보이고 싶던 나는 그의 말을 무시했다.

“앞으로 저희 병력이 될 개미들이니 이 정도는 해 줘야죠.”

트라이는 내 말에 핼쑥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래, 네 생각이 정 그렇다면…….”

빅 워커들이 상대의 배를 채우고 있을 때, 이곳의 여왕이 장로 셋을 이끌고서 모습을 드러냈다.

여왕은 워커 퀸이었고, 장로들은 스마트 워커였다.

위풍당당하게 등장한 여왕은 현장을 보곤 당황하며 급히 무릎을 꿇더니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친절한 내게 감사 인사라도 할 줄 알았는데, 그녀는 목숨을 구걸해 왔다.

“살려 주세요! 항복할 테니 목숨만은 살려 주세요.”

나는 분명 영양을 나눠 주며 우호 관계를 다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여왕은 협박이라도 당하고 있는 듯 다급한 모습을 보였다.

“제발… 고문을 멈춰 주세요. 이대론 저희 아이들이…….”

뭔가 잘못됐음을 깨달은 나는 그제야 현장을 살폈다.

배가 빵빵하게 부푼 개미들에게 빅 워커들이 영양을 주입하고 있었고, 이미 몇몇은 배가 터져 죽어 있었다.

‘엇…….’

쟤들 대체 뭘 하는 거지? 왜 다들 안 말리는 거지?

그런 생각이 잠깐 들었으나, 배를 가득 채우라고 명한 것도 나였고, 주위에서 말리려는 걸 계속하게 한 것도 나였다.

그러니 지금의 상황은 내가 웃으며 상대측 개미들에게 식고문을 진행하고 있던 것이었다.

‘이거, 첫 단추를 잘못 끼웠어.’

식고문을 급히 멈추게 한 나는 빅 워커들을 뒤로 물렸다.

사과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할 때, 일리아나가 나서서 상대측 여왕과 대화를 시작했다,

“오랜만입니다. 무르 님.”

“그래… 오랜만이구나. 워커맨으로 진화한 건 축하한다. 그런데 우릴 괴롭혀도 너희들에게 이익이 없을 텐데. 뭣 때문에 우릴…….”

아는 사이인지 일리아나가 미안해했다.

“저도 평화적인 동맹을 요청하려고 왔는데…….”

일리아나는 나를 힐끔거리며 말을 이었다.

“저희 9장로는 생각이 조금 다른 것 같네요.”

나를 본 상대측 개미들이 두려움에 몸을 떨었고, 여왕인 무르는 동공 지진을 일으켰다.

“원… 원하는 게… 무엇입니까?”

무르가 매우 정중한 태도와 떨리는 음성으로 내게 물었다.

“저희의 요구는 스마트 워커의 지원과 알입니다.”

그 말을 들은 상대측 개미들이 분노했지만, 무르가 그들의 흥분을 가라앉혔다.

“…일리아나, 우릴 하위 군체로 삼으려는 건가요?”

“네.”

무르가 차갑게 가라앉은 금색 동공으로 일리아나를 응시했다.

그리곤 결론을 말해 줬다.

“미안하지만, 지금 당장 스마트 워커를 내줄 순 없어.”

일리아나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날 쳐다보자, 무르가 당황해하며 급히 말을 이었다.

“내주지 않는 게 아니라 줄 수가 없는 거야.”

“그게 무슨 말이죠?”

“그러니까…….”

무르가 사정을 말해 줬다,

말벌족에게 밀려 버린 개미족들은 지하 깊이 숨었다.

지하에는 먹을 게 없으니, 인근 개미족 둥지와 이어지는 통로를 만들어 전쟁을 일삼았다고 한다.

전쟁을 통해 먹이를 확보하다 보니, 지금에 이르러선 아카시아 숲 개미족 둥지가 모두 이어진 상황이었다.

그러니 스마트 워커를 내주면 다른 군체의 먹이로 전락할 거라고…….

이야기를 모두 들은 나는 무르를 안심시켜 주기 위해 한마디 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스마트 워커를 내줘도 다른 개미족의 침공은 없을 거예요.”

무르는 나의 말을 다르게 해석했는지 얼굴의 핏기가 사라졌다.

“다른 아카시아 숲 개미족을 한 마리도 남김없이 죽여주겠다니…….”

한참이나 갈등하던 무르가 결단을 내렸다.

“이렇게 철저히 준비해 왔는데, 항전은 무의미하겠지요. 항복입니다. 우릴 하위 군체로 받아 주면 좋겠어요.”

무르가 우리에게 절대적인 복종을 선언하며 스마트 워커 서른 마리를 지원하기로 했다.

지금 무르의 군체 규모는 500마리 정도로 여겨졌고, 스마트 워커는 100마리 정도 있었다.

“영양이 부족하면 더 드릴게요.”

병력을 더 받아 내기 위해 영양 이야기를 꺼냈는데, 통로의 개미가 영양을 토해 내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본 무르가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스마트 워커 50마리를 내줄 테니, 제발… 선처를 부탁합니다.”

뭐랄까, 자꾸 악역이 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어쨌든 스마트 워커를 50마리나 뜯어냈으니 잘된 일이라 생각할 때, 일리아나가 무르에게 다가가 이마를 맞댔다.

서로의 더듬이가 엮이더니 한참의 시간이 지났다.

의식이 끝나자 머리가 맑아졌다.

‘지능이 높아졌어.’

다른 개미들도 비슷한 감각을 느꼈는지 더듬이를 요리조리 움직여 보고 있었다.

이곳 장로는 자동으로 해임됐고, 무르 군체는 정식으로 페포케 군체의 하위 군체가 됐다.

정식으로 같은 편이 됐으니 개미들이 날 두려워할 이유가 없어졌다.

빅 워커들이 친근하게 다가와 더듬이 인사를 청해 왔다.

인사를 나누며 이제 슬슬 악역에서 벗어나나 싶었는데, 일리아나가 그런 개미들을 물리곤 무르를 데려왔다.

“다크는 9장로로 하프 데몬이에요.”

“하프 데몬?”

무르가 고개를 갸웃하자 트라이가 알려 줬다.

“블랙 계열의 3차 진화종이에요. 특수 진화체라 아무도 그 능력을 모르지만요.”

블랙 계열이란 말에 놀란 무르와 개미들이 나와의 거리를 벌렸다.

“…블랙 계열이라고요?”

무르가 안절부절못하더니 스마트 워커 100마리 전부를 데려갈 수 있도록 배려해 줬다.

무슨 상황인지 일리아나에게 물어보니 그녀가 웃으며 말해 줬다.

“블랙 계열의 악명 때문이지.”

블랙 계열은 동료도 서슴없이 죽이는 존재로 알려진 덕분에 일어난 해프닝이었다.

우린 무르의 안내를 받아 이웃 군체를 방문하게 됐다.

그곳도 무르의 군체와 같은 상황이었고, 빅 워커들이 나서서 영양 고문을 시작했다.

내가 말릴까 싶었지만, 일리아나와 트라이가 눈치를 줬다.

‘뭐. 이용할 수 있는 건 이용해야지.’

이번에도 블랙 계열이란 악명을 이용해 별다른 충돌 없이 하위 군체를 늘릴 수 있었다.

지하 통로로 연결된 군체는 총 열두 곳.

열두 곳 모두 하위 군체로 삼았고, 군체원의 지능도 열두 번에 걸쳐 조금씩 좋아졌다.

애초에 지능이 높았던 워커맨은 그리 티가 나지 않았지만, 무투파 개미들은 확실히 똑똑해졌음을 느꼈다.

꿀을 주 식량으로 삼아서 그런지 열두 곳 모두 워커 퀸을 여왕으로 모시고 있었고, 군체 규모는 300~500마리.

스마트 워커는 각각 50~100마리를 보유하고 있었다.

뜯어낸 스마트 워커는 총 750마리.

150마리를 자이언트 워커에 태워 기의병으로 만들었고, 나머지도 둥지로 보내 기의병이 되는 과정을 밟게 했다.

내가 스마트 워커를 뜯어내며 지하를 맴도는 동안, 지상의 기의병들은 꾸준히 말벌족을 토벌했다.

재밌는 건, 개미족에게 토벌당한 말벌족보다 동족에게 토벌당한 둥지가 더 많다는 것이었다.

그만큼 이곳 말벌족들의 전쟁은 치열했고, 우리가 분탕질 치며 힘을 키우기엔 최고의 환경이었다.

무한자원 개미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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