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자원 개미군단-46화 (45/189)

46화. 아카시아 숲 (3)

봄이 끝나기 전, 일리아나, 트라이, 그리고 나까지 100인대 규모의 기의병을 이끌게 됐다.

‘100기씩 여섯 부대라… 나쁘지 않아.’

말벌족 영양은 플라이 워커와 액시드 워커 육성에도 도움이 되어 정찰대가 200마리 규모로 커졌고, 포병대 또한 200마리 규모를 갖췄다.

그동안 말벌족 연합과 체급이 맞지 않아 아카시아 숲 초입 부근에서 놀았는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거기다 고블린 산맥 쪽에도 기의병 500기가 투입되면서 군체의 영양 사정이 좋아졌다.

‘후방은 신경 쓸 게 없겠고…….’

보급도 원활하니 좀 더 과감하게 말벌족을 토벌하고 싶었지만, 둥지가 밀집된 곳은 방어 체계가 잘 잡혀 있어 쉽사리 공략할 수 없었다.

‘저긴 조금 위험하네. 다른 곳부터 처리하자.’

다른 부대들도 방비가 허술한 둥지 위주로 말벌족을 토벌했다.

‘어디 보자… 저기가 괜찮겠네.’

100인대를 이끌고 둥지를 털면서 나의 무력을 확인해 봤다.

하프 데몬인 나는 가디언보다 힘과 방어력이 약했지만, 가디언 이상의 동체 시력과 더듬이 감각이 있었다.

‘어떻게 움직이는지 전부 보인단 말이지.’

나는 주로 적의 공격을 피하거나 막은 후 카운터를 치는 방식으로 싸웠는데, 1대 1이라면 킬러 퀸도 어렵지 않게 처치할 수 있었다.

‘환경에 따라선 난 무적이 될 수도 있어.’

연막 속에선 홀로 무쌍도 가능했지만, 직접 나서서 창을 휘두르는 건 지치는 일이었다.

‘중노동이 따로 없군.’

어차피 내가 직접 나서지 않아도 방어력이 약한 킬러 퀸 정도는 집단 투창, 그물 투척, 포병 포격 등으로 처리할 수 있다.

로커스트와의 전투로 정교한 투창 능력을 얻게 된 십인장급 워커맨은 매우 강했다.

창만 충분하다면 서너 마리만 모여도 킬러 퀸 한 마리 정도는 찜 쪄 먹을 수 있었다.

‘직접 싸우는 건 내 적성에 맞지 않아.’

공적을 무식한 가디언들에게 양보한 나는 지휘관 역할에 전념했다.

“돌격! 쳐부숴라!”

피어레스는 언제나 저돌 맹진.

이 녀석은 연막탄도 잘 쓰지 않는다.

부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피어레스는 가디언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강했지만, 언제 어디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무식한 방식을 선호했다.

‘이 녀석… 지능이 오르긴 한 건가?’

피어레스가 지금까지 살아 있는 건 그가 이끄는 십인장들이 유능했기 때문이고, 제르피아와 헤르피아 덕도 컸다.

제르피아는 전장에서도 주변을 잘 살폈고, 헤르피아는 그림자처럼 두 부대를 지원해 줬다.

‘피어레스와는 확실히 달라.’

하프 데몬인 나는 기감과는 또 다른 감각이 있었는데, 그건 마력을 보는 눈이었다.

나는 이 능력을 ‘마안’이라 칭했다.

전장에서 경험을 쌓다 보니, 마안으로 상대의 무력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었고, 적의 위치나 규모도 파악할 수 있게 됐다.

덕분에 지휘 능력이 좋아졌지만, 기의병 600기를 동시에 운영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너무 바빠. 이대론 전략을 짤 시간이 부족해.’

일을 덜고자 각 부대가 일정 영역에 머물며 빈틈을 보이는 말벌족 둥지를 소탕하게끔 했다.

가끔 대규모 적습이 있을 때는 인근 부대끼리 연합하여 막아냈고, 습격자들의 빈집은 다른 부대가 털어 버렸다.

그렇게 말벌족의 수를 줄였더니, 아카시아 숲 한쪽 귀퉁이를 차지할 수 있었다.

슬슬 놈들의 대규모 습격이 올 때라 생각했으나, 말벌족 연합체는 여전히 우릴 무시하고 있었다.

이는 매우 고마운 일이었다.

‘달달하네.’

토벌로 얻는 말벌족 영양과 인근 꿀벌족이 제공하는 꿀.

거기다 하위 군체에서 매달 다섯 개의 알을 상납했으니, 둥지는 매우 빠른 속도로 발전하게 됐다.

군체의 무력은 단시간에 두 배 이상 성장했지만,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었다.

지금의 전력으론 한 개의 연합체도 감당하기 힘들었고, 여섯 개의 말벌족이 연합해 온다면 600기의 기의병은 눈 녹듯 사라질 터였다.

‘정공법으론 힘들단 말이지.’

슬슬 제대로 된 작전을 세울 때가 됐다.

그러기 위해선 정보가 필요했다.

일리아나, 트라이, 그리고 부하들에게 정보를 모아 오게 한 나는 이곳 여섯 개 연합체가 사용하는 페로몬 신호를 분석해 봤다.

“흠… 공통점과 차이점을 중심으로 이렇게 나눠 보면…….”

각 세력의 페로몬 구분법을 알아낸 나는 부대장과 십인장들에게 알려 줬고, 목판에다 주변 지도를 그려 오게 했다.

워커맨은 손재주가 좋아 그림을 잘 그렸고, 조각 실력도 뛰어났다.

대부분 십인장은 식물과 과일에서 색소를 얻어 지도를 그려왔는데, 소수의 십인장은 나무판을 조각하여 지도를 만들었다.

‘흠, 정성이 과하네.’

종이와 필기구를 만들어 주고 싶었지만, 지금은 고블린과 말벌족을 토벌하느라 그럴만한 여유 인력이 없었다.

몇 장의 지도만으로 이곳 아카시아 숲 전체를 파악할 순 없다.

한동안 지휘부에서 지도를 수집했다.

나의 행동을 단순히 게으름이라 생각하는 개미들이 많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둥지 몇 개를 더 토벌한다고 이곳을 차지할 순 없어.’

아카시아 숲을 차지하기 위해선 대국적인 전략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한 달이 지나고 여름이 왔다.

한 달이란 시간 동안 개미족의 전법이 드러났고, 말벌족은 어느 대응책을 갖췄다.

더는 재미를 보지 못한 기의병들은 기지에 모여 채집 활동에 힘쓰고 있었다.

이때, 나는 세력 분포도를 겸한 아카시아 숲 지도를 완성했다.

개미들에게는 무수한 지도를 하나로 합친 한 장의 지도에 불과할 테지만, 마안으로 놈들의 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던 내게 있어 이 지도는 답안지와도 같았다.

“페스트, 부대장급 개미와 부관급 개미를 불러 줘.”

“네!”

“작전 회의를 할 테니, 세크리가 준비를 맡아 줘.”

“알겠습니다.”

일리아나, 트라이를 비롯한 부하들이 모였다.

나는 준비한 테이블에 지도를 펼쳐 보이며 말했다.

“테라스, 제라크, 메르스, 베르크, 메르바, 자이네로… 각 연합체의 수장들이야.”

나는 그동안 모은 정보를 정리하여 말해 줬다.

“먼저 테라스는 오크나무 숲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을 정도로 강성한 연합체의 수장이야.”

이 녀석은 우리가 패퇴시킨 키에라 연합을 처리한 놈이기도 했다.

“테라스 연합의 주력 부대에는 약 50마리의 킬러 퀸과 1200마리의 자이언트 킬러비가 있어.”

질에선 우리가 앞서고 있지만, 놈들의 병력은 주력 부대만이 아니었다.

“주력 부대와 비슷한 규모의 예비대도 있어.”

언제든 지원 가능한 예비대로 인해 그들이 구축한 방어선을 뚫으려면 지금의 전력으론 턱없이 부족했다.

웅성웅성.

각 연합체의 전력을 알게 된 부하들이 동요하자, 침울하게 가라앉은 회의 상황이 맘에 안 들었던 일리아나가 나섰다.

“놈들은 강대하지만 한 덩어리가 아니야. 지금처럼 놈들을 식량 삼아 부대를 키우면 돼.”

일리아나는 각 연합체의 관계를 설명해 줬다.

“여기 중앙에 테라스, 동쪽에 메르바, 남쪽에 자이네로, 그리고 북쪽에 세 연합이 있어. 3강 3약 체제라 보면 되겠지. 이들은 서로가 크지 못하게 견제하는 관계로…….”

일리아나는 복잡한 그들의 관계를 적절히 이용하면 장기전이 가능하다고 주장했고, 트라이는 일리아나의 말에 반박했다.

“놈들도 바보가 아니에요. 이 이상 설쳤다간 여섯 개 연합의 주력 부대를 동시에 상대해야 할 수도 있어요. 전 이쯤에서 퇴각하고 좀 더 힘을 키웠으면 해요.”

둘은 날 바라보며 자신의 편을 들어 주길 원했지만, 말벌족의 관계도를 유심히 살펴본 나는 독자 노선을 걷기로 했다.

난 지도 중앙 테라스의 영역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한 놈 먼저 패 보죠. 제일 강성한 연합체 수장인 이 녀석부터!”

놈들은 뭉쳐지지 않은 여섯 개 덩어리다.

그러니 한 덩어리만 패면 다른 덩어리는 나서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거기다 놈들의 능지 수준으로 봐선… 조금만 흔들어 줘도 큰 효과가 있을 듯했다.

‘지금 절묘한 균형으로 평화가 유지되고 있을 거야. 우린 그 균형만 깨트려 주면 돼.’

내 생각까지 알 수 없던 일리아나와 트라이.

둘은 황당해하며 설명을 요구했다.

길게 설명해 줘 봐야 모를 것 같아, 해야 할 일만 간단히 말해 줬다.

“일단 여기까지 쓸어버리고, 뒤로 빠집니다.”

“그게 끝이야?”

“쓸어버릴 때 한 번에 쓸어 내야지. 이건 벌집을 들쑤시는 것과 다르지 않잖아!”

총력전으로 옥쇄할 생각이 없던 나는 트라이의 비유가 맘에 들었다.

“트라이, 이번 작전명은 들쑤시기로 하죠.”

일리아나와 트라이는 끝까지 반대했지만, 부대에 대한 장악력이 부족하여 내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럼 다들 맡은 구역에서 힘껏 들쑤셔 주세요. 그렇다고 너무 무리하진 마시고요.”

각 부대를 떠나보낸 나는 지도를 각인하듯 바라보다 출격 준비를 서둘렀다.

* * *

“테라스 님! 오크나무 숲의 개미족이 넘어왔어요!”

“그래?”

처음 개미족이 아카시아 숲으로 들어왔을 때, 테라스를 비롯한 연합체 수장들은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우리가 놈들을 쓸어버리지 않는 건 갑각왕 때문이지. 고작 600마리 규모의 개미가 아카시아 숲에서 뭘 할 수 있겠어?”

테라스는 조만간 자멸할 개미족을 무시한 채 휘하 킬러 퀸을 움직였다.

그의 목적은 아카시아 숲 서쪽 영역을 한 줌이라도 더 차지하는 것.

다른 연합체 또한 테라스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개미족이 아카시아 숲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개미족이 설치며 만들어낸 파장은 거대했다.

“이 녀석들, 꽤 하는군.”

테라스는 운 좋게도 개미족이 정리해준 영역을 꿀꺽할 수 있었다.

어부지리에 맛을 들인 테라스는 개미족의 행보를 유심히 지켜봤다.

‘3차 진화종도 꽤 있군. 키에라가 애먹을 만해.’

600마리 규모라곤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개미들이었지만, 그뿐.

연합체의 주력 부대를 투입하면 가볍게 정리할 수 있는 수준의 병력이었다.

“그러고 보니 키에라가 죽기 전에 뭐라고 했더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던 테라스는 생각을 떨쳐 내곤 휘하 킬러 퀸들을 불러들여 개미족에 관한 걸 전했다.

“수비를 공고히 해라! 놈들이 연막을 쓰면 일단 피하고, 지상전으로 밀어낸다.”

적절한 전법을 내세운 테라스는 개미족이 정리한 영역을 차지하는 방식으로 아카시아 숲 서쪽 영역의 지배력을 키워 갔다.

순조롭게 영역을 넓혀 가던 테라스는 개미족이 엄청난 속도로 불어나고 있음을 알았지만, 그들이 타 연합체의 킬러 퀸을 제거해 주고 있어 지켜보기만 했다.

언제든 제거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 때문이었는데, 어느 순간 그런 자신감이 사라졌다.

‘두 배로 불어났잖아! 어쩌지… 그냥 서쪽 구석을 내줘야 겠다. 그래도 내가 얻은 게 많았으니 손해는 아니야.’

테라스는 서쪽 영역 일부를 개미족에게 내줬지만, 그 덕에 상당히 넓은 영역을 안정시킬 수 있었다.

개미족과의 영역 경계선을 분명히 한 테라스는 방어 체계를 공고히 다졌다.

‘놈들도 미치지 않는 이상 이 선을 넘어오진 않겠지.’

영역을 크게 확장한 테라스는 타 연합을 압도하게 됐고, 기세를 몰아 연합들을 통합할 생각이었다.

‘중앙 길목은 내가 차지하고 있었으니… 이대로 동쪽 영역의 메르바와 힘을 합친다면, 남쪽 영역의 자이네로를 정리할 수 있을 거야.’

남쪽의 자이네로가 정리되면 북쪽 영역의 제라크, 메르스, 베르크는 그의 상대가 아니었다.

‘놈들을 정리하면 동맹인 메르바만 남게 되겠군. 한 나무에 킬러 퀸 둘은 필요 없지.’

테라스는 아카시아 숲의 유일한 지배자가 되기 위한 계획을 세웠지만, 그의 계획은 시작도 전에 삐꺽거리기 시작했다.

무한자원 개미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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