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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자원 개미군단-49화 (48/189)

49화.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

이번 말벌족과의 전쟁.

그들의 패인은 전략의 기본을 전혀 모른다는 것에 기인했다.

전략이란 기본적으로 상대에 대해 알아야 하고, 지형과 활용 가능한 자원을 충분히 숙지해야 한다.

그다음은 수읽기의 싸움.

상대의 행동을 예측하여 인적 자원과 물적 자원을 투입해야 하는데.

그들에겐 전략도 전술도 없이 무작정 들이대기만 했으니,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페스트가 일 처리 하나는 잘한단 말이지.’

꿀벌족에게 소식을 전하여 모이게 한 건 페스트의 작품이었다.

하늘에 모여드는 꿀벌족을 본 말벌족들이 분개하여 하나둘 하늘로 올라갔다.

“감히 꿀벌족 따위가 우리를 거역하느냐?”

“살려 준 은혜를 이렇게 갚다니!”

“매가 부족했구나!”

수백의 자이언트 허니비 무리에 뛰어든 자이언트 킬러비들이 그들의 머리를 뜯어냈고, 허리를 끊었다.

“분수를 알아라!”

“노예 주제에 까불지 마라!”

“꿀벌족이면 꿀벌족 답게, 꿀이나 생산해!”

말벌족들이 꿀벌족을 학살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전생 시절에 본 장수말벌이 꿀벌을 학살하는 영상이 떠올랐다.

장수말벌 두세 마리가 치고 빠지며 수만 마리의 꿀벌을 학살하는 영상이었는데.

꿀벌에게는 장수말벌을 따라잡을 기동력이 없었고, 설령 기동력을 갖춘다고 할지라도 그들의 턱과 침으론 장수말벌의 단단한 외골격을 뚫지 못한다.

그러니 적은 숫자의 장수말벌이 수만 마리의 꿀벌을 학살할 수 있던 건데, 모든 꿀벌이 쉽게 당해 주는 건 아니었다.

오랜 세월 장수말벌의 위협으로부터 생존해 온 야생의 토종 꿀벌들은 장수말벌의 페로몬을 감지하면 경계하기 시작한다.

그런 그들은 장수말벌이 둥지를 습격하면, 400마리가 한꺼번에 둘러싸 ‘꿀벌 공’을 형성했다.

공을 형성한 꿀벌들이 날갯짓으로 열을 끌어올리면, 5분 안에 내부의 온도가 46도까지 치솟는다.

46도.

그건 장수말벌을 충분히 쪄 죽일 수 있는 온도였지만, 꿀벌들도 무사할 수 없는 온도였다.

열 방어에 참여한 400마리 중 약 100마리가 죽지만, 살아남더라도 단명했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꿀벌이라도 화나면 무섭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화난 꿀벌족이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었고, 그런 꿀벌을 무시하고 조롱하며 학살하고 있는 말벌족이 보였다.

판은 내가 만들어 줬지만, 남은 건 그들의 몫이다.

그들에게 아무런 힘이 없다면 무의미한 저항이 될 것이고, 그들에게 힘이 있다면 무서운 재앙이 될 터였다.

나는 그들에게 힘이 있길 바랐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그들은 대대손손 개미족에게 구원받은 노예 종족으로 남게 된다.

나는 그들이 전쟁의 마무리를 직접 장식하여 우리의 진정한 우방임을 증명하길 원했다.

그런 역사적 명분이라도 있으면, 우정을 들먹여가며 노예 이상으로 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역시… 뭔가 있을 줄 알았어.’

나의 예측대로 꿀벌족에겐 특별한 힘이 있었다.

날갯짓으로 열을 끌어 올린 자이언트 허니비들이 불덩이가 됐다.

불덩이가 된 그들은 말벌족을 향해 쏘아졌다.

“어딜!”

당연히 말벌족은 빠른 기동으로 피해 냈지만, 자이언트 허니비는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불붙은 자이언트 허니비들을 보고 당황한 킬러 퀸들의 태도가 바뀌었다.

“잠깐만! 너희들 설마 모두 죽고 싶은 거야? 미안해. 이제 안 괴롭힐 테니까, 그러니 진정해. 꿀도 조금은 남겨 줄게!”

킬러 퀸들이 말뿐인 약속을 쏟아 내며 꿀벌족을 진정시켜보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너희들은 몰라… 우리가 어떤 고통 속에서 살아왔는지!”

거기다 그들이 끌어모은 꿀벌들도 몸에 불을 붙인 채, 말벌족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오지마! 살려 줘!”

불타는 덩어리와 함께 불꽃 비가 내리는 듯한 풍경이 펼쳐졌다.

“크악!”

아무리 강한 킬러 퀸도 불바다에선 살아남을 수 없다.

불타는 말벌족이 하나둘 추락하여 분지에 떨어졌다.

분지가 타올랐고, 모여든 말벌족은 몰살당했다.

불타는 이곳에서 멀쩡히 서 있을 수 있는 건 열 내성을 갖춘 나뿐이었다.

‘너무 과했어.’

장기전을 피하고자 그들에게 막타 기회를 줬더니, 예상보다 훨씬 많은 꿀벌족이 희생됐다.

‘꿀 생산이 많이 줄겠는걸.’

물론 일시적으로 꿀의 생산량이 줄어들더라도 말벌족이 사라졌으니 그들은 수년 안에 전성기를 맞이할 것이다.

나는 전장에 가득한 흑마력을 만끽했다.

불이 숲으로 번지지 않게 대비도 해 뒀는데, 때마침 비가 쏟아지며 헛수고가 됐다.

빗물이 대지를 촉촉이 적셨고, 이로써 말벌족 세력은 모두 붕괴했다.

남은 건 부산물 회수와 잔당 소탕.

흑마력을 충분히 흡수한 나는 준비된 땅굴을 통해 임시 기지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곳에서 대기 중인 메디에게 치료를 받고, 한동안 요양하게 됐다.

대부분의 기의병도 나와 함께 요양에 들어갔고, 채집 개미와 운반 개미가 대거 투입되어 전장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왼팔이 부러진 헤르피아는 둥지로 이송되어 전선에서 빠졌지만, 일리아나와 트라이가 있어 그의 공백은 크지 않았다.

충분히 회복한 기의병은 50인대 규모의 부대를 구성하여 페스트가 찾아낸 말벌족 잔당을 토벌하기 시작했다.

나 또한 빠르게 회복하며 기병대를 이끌었다.

“저는 이곳 지역을 대표하는 허니 퀸, 에자르입니다. 개미족 님을 뵈어 영광이에요. 약소하지만 저희가 만든 로열젤리를 가져왔어요.”

어딜 가나 지역 대표 격인 허니 퀸의 접대를 받았고, 그들이 건네는 하얀 액체는 꿀만큼 달콤하진 않았지만, 상급의 영양이었다.

그들이 허니 퀸 육성에 필요한 로열젤리를 내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저희 지역에 말벌족 잔당이…….”

로열젤리를 받으면 퀘스트가 발생했다.

말벌족을 쓸어버리면서 틈틈이 하위 군체의 여왕을 만나 거래망을 다듬었다.

둥지에서 열두 곳의 하위 군체에 설탕수를 보내 주면, 하위 군체가 설탕수를 꿀로 교환하여 둥지로 보내 주기로 했다.

그에 따른 지하 도로와 창고가 만들어지며 운반 개미가 배정됐고, 자이언트 워커가 대거 투입됐다.

꿀의 확보로 스마트 워커가 늘어난 만큼, 자이언트 워커의 비중이 줄어 갔다.

보급종인 자이언트 워커가 특수종인 스마트 워커보다 귀해지는 진귀한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장로들은 이러한 현상을 걱정했으나, 스마트 워커가 늘어날수록 문명 테크를 올리기는 더 좋다.

‘나쁘지 않아.’

잔당 소탕도 마무리될 무렵, 둥지 밖으로 버려진 허니 퀸을 줍게 됐다.

“버려진 거야?”

“…네.”

내 눈을 보곤 몸을 떠는 그녀에게 왜 버려졌는지 사연을 물어봤다.

“나서지 않으려는 동족들을 규합하느라 페로몬을 과하게 썼어요. 산란력이 줄고 차세대 여왕이 준비됐으니 이렇게 버려진 거죠.”

꿀벌족은 여왕이라도 자신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면 버려진다.

그러한 습성은 개미족도 다르지 않지만, 개미족은 차세대 여왕 육성이 쉽지 않고, 산란 외에도 여왕들에겐 각자의 역할이 있었다.

케어의 경우 감정 능력을 활용해 개미들의 상담역을 맡고 있었고, 포스는 강력한 무력으로 둥지를 지켜왔다.

페르는… 그냥 대단한 산란 기계다.

두 여왕이 낳는 알보다 더 많은 알을 낳는 페르는 여왕 중에서도 가장 입지가 탄탄하지만, 군체의 인구가 줄면 제일 먼저 압박받기도 했다.

“이름은?”

“아르모네에요.”

난 버려진 허니 퀸 아르모네를 챙겼다.

산란력이 떨어졌다지만, 완전히 상실한 것도 아니고 말벌족과의 전투에서 목숨 걸고 나서 준 그녀를 홀대해선 안 됐다.

기지로 돌아온 나는 아르모네와 같은 처지의 허니 퀸을 데려오게끔 했다.

그렇게 아르모네를 포함하여 일곱 마리의 허니 퀸을 거두었다.

“네가 이들의 대표를 맡아 줘.”

“그럴게요.”

아르모네에게 그들의 대표를 맡겼다.

나는 몸 상태가 좋지 못한 허니 퀸들을 둥지로 데려가 치료소의 메디에게 맡겼다.

“한동안 네가 맡아 줘.”

인간형 개미인 메딕 엔트로 진화한 메디는 가끔 미친 과학자와 같은 광기를 보이곤 했는데…….

허니 퀸들의 몸을 신기해하며 내게 물었다.

“다크 님, 저… 한 마리만 해부해 보면 안 될까요?”

인간형 워커들은 기본적으로 귀여운 생김새였지만, 가끔 개미형보다 섬뜩할 때가 있었다.

“휴, 기본 치료만 부탁할 테니. 쓸데없이 괴롭히지 마.”

“네…….”

우호 페로몬을 잔뜩 묻혀 뒀으니 먹이로 오해받진 않겠지만, 만약을 대비해 워커맨인 하녀 개미를 몇 마리 붙여 뒀다.

오랜만에 둥지에 돌아왔는데, 내가 이룬 성과에 비해 둥지의 분위기가 이상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왜 이러지?’

세크리에게 둥지 정보를 모아오게 한 나는 회복실에서 쉬고 있는 헤르피아를 찾았다.

그런데 그곳에서 의외의 개미들을 만나게 됐다.

“9장로, 다크인가.”

“면목 없다.”

울트라인 메가피르와 게르피아였다.

경비대에서 꿀이나 빨았을 그들이 회복실에 있다니.

이는 둥지에 큰 이변이 발생했다는 신호였다.

“어쩌다 여기 계신 거예요?”

게르피아에게서 자초지종을 듣게 됐다.

시기상으론 여름, 내가 지도를 만들고 말벌족을 흔들고 있을 무렵 500기의 기의병이 투입된 서쪽 전선이 붕괴했다고 한다.

“홉 고블린 무리가 침공해 오기 시작했어.”

고블린이 빅 워커 수준의 무력을 가졌다면, 홉 고블린은 스마트 워커 수준이었다.

무력으론 자이언트 워커에 비할 수 없으니 기의병으로 손쉽게 상대할 수 있는 녀석들일 텐데.

“놈들은 지휘에 특화된 녀석들이야. 보통 한 놈이 50~100마리의 고블린을 이끌지.”

“그럼 물량에 밀린 건가요?”

“아니.”

우리에게 기의병이 있듯 놈들에게는 늑대를 탄 라이더들이 있었다.

“기의병들이 고블린 산맥에 침공했다가 라이더들에게 측면을 당했어. 피해는 컸지만, 가디언과 하드 워커들이 어떻게든 정리했지.”

진영이 무너진 상태에서 포위까지 당하여 상당한 수의 기의병을 잃게 된 서쪽 전선은 홉 고블린들의 침공을 막아낼 수 없었다.

그리하여 일리아나가 없음에도 장로 회의가 열렸다고 한다.

스마트 계열 없이 진행된 무투파들의 회의에서 울트라 부대의 출격이 정해졌다.

열두 기의 울트라면 전황을 충분히 뒤집고도 남을 전력이라 판단했으나.

이게 웬걸.

절반의 울트라가 죽었고, 남은 절반은 기병대의 도움으로 겨우 살아 돌아왔다.

‘울트라가 패퇴했다고?’

울트라는 강하다.

가디언 중 강한 축에 속하는 피어레스조차 울트라의 상대는 되지 못한다.

한 마리 한 마리가 탱크와도 같은 전략 무기인데.

그런 울트라 부대가 당하다니.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으나, 이어진 게르피아의 말을 듣고 납득할 수 있었다.

“고블린 주술사 부대를 만났어.”

육탄전이라면 무적을 자랑하는 울트라였지만, 불덩이를 쏘는 주술사에겐 단단한 외골격도 의미가 없었다고 한다.

결국, 상성에서 완벽히 지고 들어간 전투였다고.

‘메가피르와 게르피아, 둘 다 운이 안 좋아. 출격했다 하면 어디 한쪽이 망가져서 돌아오니.’

두 개미의 이야기는 충분히 들었다.

정말 운이 안 좋았다고밖에 할 말이 없었다.

지금 서쪽 전선은 홉 고블린과 소모전을 치르는 중이었고, 조금씩 밀리는 상황이라 동쪽 상황에 순수하게 기뻐할 수 없던 것 같다.

‘그놈의 고블린, 지긋지긋하네.’

판타지 세계관 최약체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홉 고블린으로도 진화하고, 주술도 쓴다니.

‘내년에는 고블린을 쓸어버려야겠어.’

이미 우기는 지나갔고, 조만간 겨울이 온다.

홉 고블린과 주술사에 대한 정보를 모아 겨울 동안 대비책을 세울 생각이었다.

휴식처로 돌아와 창고를 확인해 보니, 조잡한 철제 무구들이 보였다.

“철기잖아? 어디서 난 거야?”

“운반 개미들에게 물어보니, 홉 고블린들이 사용한 장비라고 했어요.”

세크리의 말에 살짝 놀랐다.

‘아니, 철기를 다룬다고?’

나는 그제야 기의병이 고전한 이유를 깨달았다.

‘우리보다 문명이 앞서고 있어.’

라이더, 주술사, 거기에 철기까지.

‘어이가 없네…….’

이쪽도 철광석은 넘쳐난다.

단지 철을 다룰만한 인력이 없을 뿐.

‘없으면… 채워야지.’

개미족은 열기에 약해 철을 다룰 수 없다.

그래서 개미족이 아닌 종족으로 채워야 한다.

인간은 그 수가 적고, 모두 여자라 적합하지 않다.

그럼 남은 건 하나다.

‘써먹을 만한 인력은 고블린밖에 없어.’

이번 겨울, 둥지의 문명 수준을 한층 끌어올릴 계획을 세웠다.

‘테크 트리로 압도해 주마.’

철기의 진정한 무서움을 보여 줄 생각이었다.

무한자원 개미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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