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업그레이드
말벌족 연합체들이 무너진 후, 킬러 퀸들은 개미족에게 소탕당할 운명에 처했다.
몇몇은 끝까지 버티며 개미족과의 일전을 치렀지만, 대부분의 말벌족은 이주를 택했다.
서쪽의 말벌족은 오크나무 숲 깊숙이 들어가 개미족 영역 안으로 숨어들었다.
그들은 등잔 밑이 어둡다를 실천하는 중이었는데…….
‘개미족들에게 들키면 안 돼. 채집할 때는 조심하자.’
개미족을 피해 다니느라 제대로 먹지 못한 그들은 나무 수액에 눈독을 들이게 됐고, 그로 인해 갑각충들의 분노를 샀다.
“여기 수액은 내 거다.”
갑각충은 개미족도 건들지 않는 울트라급 몬스터.
그런 존재의 영역을 침범했으니, 말벌족들의 둥지는 금세 철거당했다.
둥지를 잃은 킬러 퀸들은 다시금 긴 여정을 떠나게 됐고, 극소수가 살아남아 고블린 산맥에 안착할 수 있었다.
고충을 겪어 온 말벌족은 예전 같은 패기가 없었다.
“흐힉! 개미족이다!”
말벌족에겐 개미족 트라우마가 심어졌고, 나무속이나 벽 속에 둥지를 지어 살게 됐다.
남쪽으로 이주한 킬러 퀸들도 있었다.
거미족의 영역에 발을 들인 킬러 퀸들은 저공비행으로 거미줄을 치워 가며 이동했다.
“거슬리게 이런 걸…….”
거미족도 개미족과 마찬가지로 진화를 한다.
태어날 때는 모두 스몰 웹이지만, 진화를 통해 계통이 갈렸다.
빅 웹, 자이언트 웹, 울트라 웹과 같이 거미줄을 잘 다루는 종이 있고, 타란튤라, 자이언트 튤라, 울트라 튤라와 같이 육탄전에 능한 종도 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종이 있겠지만, 대부분이 웹과 튤라였고, 튤라보단 보급종인 웹이 더 많았다.
킬러 퀸들은 튤라보단 웹을 더 경계했다.
특히 자이언트 웹과 울트라 웹을 경계했는데, 그들이 경계한다며 치워 낸 거미줄 때문에 위치가 발각되고 말았다.
포식자들의 전투에선 먼저 발견된 쪽이 사냥당한다.
자이언트 웹이 엉덩이로 거미줄을 쏘아 킬러 퀸을 붙잡았고, 신속히 접근하여 거미줄로 고치를 만들어 버렸다.
몇몇 킬러 퀸은 웹의 공격을 피해 내며 그들의 영역에서 벗어났지만, 숲의 암살자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자이언트 튤라에게 목덜미를 물렸다.
반항할 새도 없이 마비독을 주입 당한 킬러 퀸은 자이언트 튤라에게 끌려가는 신세가 됐다.
이처럼 거미족은 강했다.
그러니 단체로 행동하지 않았고, 각자의 영역에서 먹이가 오길 기다렸는데, 어디에나 예외는 있다.
“뭔가 해서 와 봤더니, 킬러 퀸이네.”
계통 불명의 인간형 거미인 나르본드.
갑각왕 헤라클레스와 비등한 존재로 옐로우 로커스트 사태에서 다크를 도와준 게 그녀였다.
거미왕이라 불리기도 하는 그녀는 당시 다크에서 친숙한 느낌을 받았던 터라 확인해볼 게 있었지만, 헤라클레스가 부담스러워 오크나무 숲으론 넘어가지 못했다.
“보라 개미, 나와 닮았어.”
그녀에겐 직접 가지 않더라도 다크를 알아볼 방법이 있었지만, 그건 매우 귀찮은 일이었기에 관두기로 했다.
“오면, 그때 보자.”
동쪽으로 이주한 말벌족은 절벽 넘어 황무지에 도달했지만 척박한 환경에서 적응해야 했고, 북쪽으로 이주한 말벌족은 인간 마을을 습격하여 배를 채웠다.
인간들은 횃불을 휘둘러 말벌족을 쫓으려 했지만, 배고픈 자이언트 킬러비들은 그대로 돌진하여 횃불을 쳐냈다.
“살려 줘… 죽고 싶지 않아! 크악!”
남자들을 모두 학살한 말벌족들은 숨어 있는 여자와 아이를 찾아 먹었다.
최남단의 마을들이 말벌족에게 점령당하자, 인근 마을에선 도시로 사람을 보냈다.
“도와주세요. 말벌족… 말벌족이…….”
“말벌족? 그따위 일로 평민이 영주성을 찾아? 죽고 싶은 거냐!”
영주가 기사들을 보내 주지 않자, 남쪽 마을에서 온 사람들은 용병 길드를 찾았다.
“돈은 있어요?”
카운터 여직원의 물음에 꼬질꼬질한 농민 청년이 가죽 주머니를 내밀며 말했다.
“저희 리티무라 마을의 전 재산입니다.”
주머니를 받아 쿠퍼 동전을 살피던 여직원이 말했다.
“다른 곳에서도 의뢰가 들어오고 있으니, 어느 정도 맞겠네요. 의뢰서 작성에 따른 비용은 20쿠퍼예요.”
“네? 20쿠퍼요?”
“비싸다고 생각하시면 직접 양피지와 잉크를 사 오셔서 작성하시면 돼요.”
“아니에요. 부탁드립니다.”
용병 길드 벽보에 의뢰서가 붙여지고, 돈벌이가 필요했던 용병들이 말벌족 토벌에 나서기 시작했다.
* * *
날씨가 쌀쌀해지며 사냥 개미들이 모두 돌아왔다.
둥지의 영양 사정상 이번 해도 겨울잠은 없을 것이다.
사냥 개미들은 지하 7층 공사와 각층의 확장 공사에 투입될 예정이었다.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기 전, 확보한 상급 영양을 나누기 위해 논공행상이 진행됐다.
부대장급과 부관급 개미들이 모이자 산란방이 비좁게 느껴졌다.
논공행상을 주관하는 건 1장로인 일리아나였다.
“우린 아카시아 숲의 열두 개 군체를 하위 군체로 삼았어, 그리고 말벌족을 토벌한 후 꿀벌족과의 거래 계약을 맺었지. 모두 다크가 계획한 일이었지만, 세부 진행에선 나와 트라이가 많이 도왔어.”
나를 띄워 주며 자신을 당당히 일등 공로자로 만들어 버리는 일리아나.
살짝 어이가 없었지만, 다른 개미들은 개의치 않는 듯했다.
‘이건 자화자찬밖에 안 되잖아.’
그러한 흐름으로 나는 말벌족을 멸망시킨 잔혹한 영웅이 됐고, 아카시아 숲에서 활약한 부대장급 개미는 일등 공로자가 됐다.
덕분에 우린 상당량의 상급 영양을 분배받을 수 있었다.
분배받은 영양은 스마트 워커들에게 먹여 워커맨으로 진화시킬 계획이었다.
의료 개미인 메디는 많은 개미를 치료하여 이등 공로자가 됐고, 치프 앤트인 쿠쿠와 하이 팩토리인 네트리가 영양의 질을 높여 삼등 공로자로 인정받았다.
서쪽 영역에서 고생한 부대장급 가디언 다섯 마리는 이등 공로자로 등극했다.
“게아, 네아, 데아, 메르, 베르… 모두 고생 많았어.”
몸 성한 곳 없이 버텨 온 그들을 보면, 일등 공로자로 인정해 줘도 될 듯하지만, 식량 사정상 출격하지 못한 울트라들의 반응이 차가웠다.
“고블린 따위에게 밀린 솔져라니.”
“이래서 근본 없는 가디언들에게 부대를 맡기면 안 되는 거였어.”
가디언은 애초에 울트라가 되지 못한 실패자라 여겨져 그럴 수 있다지만, 그들의 비난은 기의병에게도 쏟아졌다.
“워커맨과 스마트 워커 따위를 전선에 보내니 저런 결과가 나오지. 기의병은 어느 바보가 만든 거야?”
간부들이 발끈하려는 걸 내가 급히 저지했다.
[괜찮으니까 나서지 마.]
패전에 가까운 서쪽 전선으로 인해 기병대는 오점을 남겼고, 스마트 계열 개미에게 불만을 품고 있던 개미형 개미들이 비난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고블린이 상대라면 자이언트 부대가 더 적합했어! 왜 굳이 스마트 워커들을 데려가는 거야?”
한때, 기의병을 인정한 그들이 스마트 워커와 앤트맨에게 차가워진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로는 로커스트 사태와 서쪽 전장에서의 난전 때문이었다.
“난전에선 아무런 힘도 못 쓰잖아!”
“우리가 있었다면 그리 쉽게 쓸리지 않았어!”
“이 녀석들, 창을 던지거나 들고 있는 것 외에 할 줄 아는 게 뭐야?”
두 번째로는 둥지 내에서의 작업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
“요즘 늘어난 스마트 워커들 좀 봐. 쟤들은 땅도 제대로 못 판다고.”
“차라리 빅 워커가 낫지. 앞으로의 확장 공사가 걱정이군.”
스마트 계열에게 나무 삽과 곡괭이를 보급해 주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개미형 개미들의 작업 능력을 따라갈 수 없었다.
세 번째 문제는 스마트 워커가 늘면서 둥지의 생산력이 급감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다만, 위의 세 가지 이유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조금 전 일리아나의 발언으로 생겨났다.
‘그동안의 기병대가 세운 업적이 모두 내 업적으로 둔갑됐잖아!’
일리아나가 날 너무 띄워 줬다.
덕분에 나는 잔혹한 학살자가 됐지만, 기병대는 나의 곁다리로 전락했다.
물론 동쪽과 서쪽 전선에 비슷한 숫자의 기의병을 투입했음에도 너무도 다른 성과가 나왔으니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었다.
다만, 상황이 좀 이상했다.
‘…….’
내가 만든 기의병이 욕을 먹으며 기껏 얻은 명성마저 추락할 위기에 놓인 것이다.
비슷한 이유에서 패잔병이나 다를 바 없는 메가피르와 게르피아를 포함한 울트라 여덟 기를 향한 비난도 쏟아졌다.
“무패의 전설도 옛말이군. 고작 사등 공로자라니.”
“제르피아와 헤르피아가 없으니 게르피아도 별것 아니군요.”
“살아 돌아온 걸 부끄럽게 생각해라!”
“이제 은퇴하고 경비대에 박혀 있으시죠.”
둥지에서 입지가 좋던 메가피르와 게르피아도 두 번의 패전으로 신용을 잃었다.
장내의 분위기를 보아하니, 고블린들의 위협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듯하여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쟤들, 지능이 오른 건 맞나?’
이런 상황에서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만을 보고 있다니.
‘멍청해… 멍청하다고! 이건 능력적인 문제가 아니야, 너희들이 나섰다 해도 별수 없었을 거라고!’
공로는 5등급까지 있고, 일리아나는 모든 2차종 개미들에게 상급 영양이 돌아갈 수 있도록 배려했다.
최약종인 스마트 워커가 너무 많아졌다며 배려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개미형 개미들이 있었지만, 일리아나가 가볍게 찍어 눌렀다.
논공행상이 끝나고 짧은 회의에서 개미들은 스마트 워커가 늘어나는 걸 우려하며 꿀의 유통을 엄격히 관리하게끔 요청해왔다.
“더는 최약종인 스마트 워커를 늘려선 안 돼. 쓸모없는 개미가 늘지 않게끔 꿀의 관리가 필요하다고!”
포메온을 중심으로 한 개미형들의 의견에 일리아나가 난감한 표정으로 내게 사과했다.
“미안해, 다크. 다들 너의 공로를 무시하는 게 아니야. 쟤들 나름 둥지를 위해서 저러는 거지. 너무 탓하지 말아 줘.”
하위 군체 덕에 스마트 계열이 모자랄 일은 당분간 없었고, 멍청한 개미들 덕에 꿀을 독점 관리할 수 있게 되어 오히려 잘된 일이라 원망할 이유도 없었다.
산란방에서 휴식처로 돌아온 나는 간만에 간부들과 모임을 가졌다.
간부들은 회의에서 느낀 자신들의 입지에 씁쓸해했다.
“죄송합니다, 다크 님. 제가 울트라로 진화했어야 했는데…….”
피어레스, 제르피아, 헤르피아가 죄송스러워했다.
워커맨들을 제외한 특수 종들은 둥지에 충분히 공헌하고 있어 그리 큰 상처는 받지 않았지만, 세크리, 엔지, 마고트는 이번 회의에서 상처를 받은 듯했다.
하드 워커인 베슬리가 그들을 위로해 줬지만, 가진 자의 위로는 기만에 불과했다.
나는 고민하고 걱정하며 미안해하기도 하는 간부들을 보며, 전생 시절 부하 직원들과 함께한 풍경이 겹쳐 보였다.
피식.
뭐랄까…….
지금의 상황이 매우 재밌었고, 내일이 기대됐다.
“세크리, 엔지, 마고트. 우울해할 필요 없어. 내게 있어 개미형이든 인간형이든, 모두 뛰어난 녀석들이니까.”
“하지만… 저희 때문에 다크 님이 만드신 기의병이 무시 받는 건…….”
나는 세크리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개미족의 방식으로 놈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자.”
“개미족의 방식으로요?”
“그래.”
“저희가 어떻게…….”
겨울이니, 다들 공사에 투입될 테고.
‘스마트 워커들의 작업 능력부터 개선해 주자.’
할 일이 있는 간부들을 보낸 후 세크리의 하녀 부대를 이끌고 가죽 공방을 찾았다.
그곳에서 암컷 고블린 대표 키카의 안부를 물어본 뒤, 제사를 허락해 줬다.
‘암컷 고블린은 50마리인가? 수명이 짧으니 일 년간 거의 늘지 않았어.’
고블린 제사가 끝나고 흑마력을 듬뿍 흡수한 나는 난방 시설로 갔다.
그곳에서 루리아를 비롯한 인간들을 만났다.
브론즈급 용병 출신 루리아.
인근 마을 소녀들인 비안느와 세리카.
사냥꾼의 아내였던 줄리아와 탈주 노예인 비앙카.
그리고 숲에 버려진 아이 데이지.
여섯 모두 건강히 잘 지내고 있었고, 며칠 못 보던 사이 서먹해졌는지, 나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흠칫거리며 눈을 깔았다.
예전에는 내가 개미족이라 그런 줄 알았지만, 말벌족 잔당을 소탕하며 확실히 깨달았다.
나의 마안은 상대의 공포감을 일깨우는 능력이 있다는 걸…….
그러니 내 보랏빛 동공을 오래도록 응시할 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
인간들의 건강 상태를 확인한 후 감옥을 방문했다.
그곳에는 서쪽 영역에서 잡아들인 고블린들로 가득했다.
‘300마리 정도인가?’
그들은 겨울 동안 페르의 배를 채워 줄 신선 식품들이었다.
이대로 썩히는 것도 아까우니 내가 데려가 쓰기로 했다.
문제는 워낙에 흉포한 녀석들이라 한 마리의 하녀 개미가 세 마리를 관리하기가 어려웠다.
‘지금 데려온 하녀 개미는 워커맨만 스무 마리야.’
300마리를 관리하려면 턱없이 부족했다.
‘80마리 정도 더 필요하겠어.’
“세크리, 하녀 개미의 인력을 충원해 줘.”
“네.”
부족한 하녀 개미를 남아도는 스마트 워커들로 채웠다.
감독관이 될 하녀 개미들에게 몽둥이를 쥐여 줬고, 일단 고블린들이 순둥해질 때까지 패도록 했다.
충분히 고분고분해진 녀석들부터 데려가 대장간을 만들게 했다.
마음 같아서는 용광로를 만들어 선철을 대량으로 뽑아내고 싶었지만, 고블린 300마리로 용광로를 유지하는 건 쉽지 않았기에 담금질이 가능할 정도의 시설만 갖추기로 했다.
그러나 막상 작업에 들어가니 그리 쉽게 풀리진 않았다.
‘숯과 페달식 풀무만으론 비효율적이야.’
이대론 겨울 동안 원하는 수준의 철을 얻을 수 없다.
그러니 좀 더 시설을 업그레이드 해 보기로 했다.
무한자원 개미군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