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강철의 보급
납은 약 327도에 녹는다.
알루미늄이 660도, 금은 1,063도, 구리는 1,083도, 은이 1,234도에 녹는다.
그에 비하면 철은 내열성이 좋다.
철이 녹는 온도는 약 1,538도.
나무 장작으로 400~700도를 얻을 수 있다면, 숯은 1,000도 이상의 열기를 얻을 수 있다.
산소를 충분히 때려 박을 수만 있다면, 급조된 화로만으로도 철광석을 녹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엔지를 닦달하여 페달식 풀무도 개발하고, 송풍기도 만들어 내서 철을 얻게 됐으나, 문제는 생산량이었다.
‘너무 느려. 이 정도 양으로는 제대로 활용할 수 없어.’
안 그래도 둥지를 확장하다 보면 나오는 각종 광물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철광석이었고, 둘 곳이 없어 바깥에 버려지는 모습을 보며 혀를 차곤 했다.
‘철광석은 충분한데, 철을 충분히 뽑아낼 수 없단 말이지.’
땅만 파면 나오는 자원을 활용할 수 없다니.
‘용광로를 만들어야겠어.’
용광로를 운영하기에는 인력이 부족한 감이 있지만, 어떻게든 작게 만들어보기로 했다.
철 용광로는 높게 만들어지기 때문에 고로라 불리는데, 일단 고온에도 녹지 않는 내화물이 필요하다.
한국의 선조들은 점토에 모래나 돌을 섞어 내화물을 만들어 사용했다.
‘얼마나 섞어야 하지?’
모를 때는 노가다가 최고다.
엔지와 세크리를 시켜 다양한 비율의 점토를 만들게 했다.
벽돌로 굽는 건 인간들에게 시켰다.
한참 동안 부하들을 굴려 적당한 비율을 찾아낼 수 있었다.
“자, 그럼 벽돌을 양산하고 고로를 만들자.”
진흙 놀이만큼은 스마트 워커와 워커맨들의 특기 분야여서 고로를 만드는 건 쉬웠다.
21세기의 용광로는 내부에 직접 불을 피우지 않고, 외부에서 뜨거운 열풍을 불어 넣는다.
‘외부 화로와 연결하면 되겠어.’
설계가 조금 복잡했지만, 나무 판과 흑연으로 대략적인 설계도를 그린 뒤 작업을 지시했다.
제대로 된 필기구 없이 만든 설계도라 내가 옆에 붙어서 설명해 주지 않으면 알아보긴 힘들었다.
“아니야. 더 작게 만들어. 그건 더 크게. 그쪽이 아니지!”
나는 엔지의 목공 부대와 고블린들을 지휘하여 고로와 연결된 여섯 개의 화로를 만들었다.
“화로의 열풍이 고로에 주입되도록 송풍 장치를 달아 줘.”
“네.”
고블린 전용 페달식 송풍 장치가 여럿 달리고, 발생할 열기를 둥지 난방에 활용할 수 있도록 디그파가 투입됐다.
톱니바퀴가 쓰이며 기계적인 모습의 용광로가 완성됐다.
“휴, 됐어요.”
“다 만들었습니다!”
엔지와 디그파가 보고했다.
“잘했어.”
이제 잘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각 화로에 고블린을 두 마리씩 붙여 페달을 밟게 했고, 여덟 마리가 손잡이 달린 기둥을 회전시켰다.
페달은 송풍기와 연결된 동력 장치였고, 회전하는 기둥은 환풍기를 가동하는 장치였다.
작게 만들었음에도 용광로가 가열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온도가 떨어지면 내부의 쇳물이 굳는다.
그러니 용광로가 식으면 안 돼서 24시간 열풍을 불어넣어야 했다.
동력 유지를 위해 4교대로 굴리니 고블린 80마리가 쓰였다.
고로 위에선 고블린들이 목탄(숯), 철광석, 석회석 등을 때려 부었다.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철광석은 붉은 기가 도는 산화철이다.
그러니 녹과 불순물을 제거해 줘야 제대로 된 쇳물을 얻을 수 있다.
유리 공장에서 들은 내용대로라면, 고로 안에서 화학 반응이 일어나 쇳물과 슬래그를 만든다.
‘석회석이 철광석의 불순물을 제거하고, 탄소가 이산화탄소로 변해 산화철을 철로 만들어준다고 했어.’
이산화탄소가 산소를 떼어 가면 산화철이 철로 환원된다.
21세기에선 환원제로 석탄을 썼지만, 석탄을 구하지 못한 나는 목탄을 썼다.
‘효율은 떨어지더라도 같은 탄소니 문제는 없을 거야.’
시간이 흘러 쇳물이 고로 밑바닥에 고였고, 슬래그는 그 위에 고였다.
고로의 쇳물 층과 슬래그 층에 여닫을 수 있는 문을 달아 뒀다.
고블린들에게 시켜 위쪽 문을 열게 하여 슬래그를 버린 후 아래쪽 문을 열어 쇳물을 얻었다.
철은 탄소 함량에 따라 순철, 강철, 선철 등으로 나뉜다.
뜨거운 열기와 함께 생산된 쇳물은 탄소 함량이 높은 선철이라 할 수 있었다.
선철은 무쇠라 불리기도 하며 단단하지만, 연성이 낮아 충격에 약했다.
즉, 잘 부러진다.
선철은 무기나 장비로 만들지 않는 대신 녹는점이 강철보다 낮아 틀을 이용한 주조에 용이했다.
주조는 복잡한 구조의 물건을 생산할 때 쓰였다.
선철에서 탄소만 빼면 강철이 된다.
‘산소 주입 공정으로 탄소를 제거한 것 같은데.’
다만, 산소 주입 공정은 지금의 기술로 재현할 수 없다.
대량 생산 공정은 어려우니, 고전적인 방식으로도 강철을 얻기로 했다.
‘선철이 있으니, 강철은 단조와 담금질로도 얻을 수 있어.’
단조는 두드려 형태를 잡는 과정이고, 담금질은 가열된 금속을 물로 냉각시켜 금속의 강도와 경도를 올리는 기술이다.
단조와 담금질을 병행하여 탄소 함량을 떨어뜨리면 무기로 쓸 만한 강철을 만들 수 있다.
액체 상태인 선철을 내화물인 주조 틀에 담아 괴의 형태로 만들었다.
“이것이 철괴라는 것이다. 앞으로 너희들이 죽을 때까지 쉬지 않고 이것을 만들면 돼.”
철괴 담당 고블린을 지정한 나는 일단 주조로 모루, 망치, 집게, 펜치를 만들었고, 송풍 장치와 환풍 장치에 쓰이는 톱니바퀴를 만들어 교체했다.
대장간의 도구를 갖춘 나는 고블린들에게 단조와 담금질을 가르쳤다.
집게로 철괴를 잡고, 화로에 넣어 가열한 후 꺼내서 두드리다 물에 담구는 일.
모양이 완성될 때까지 반복하라고 했는데, 나약한 고블린의 힘으론 완제품을 만드는데 너무 오래 걸렸다.
‘겨울 다 가겠어.’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의 시설로는 한계가 있는 듯하여, 몇 가지 장치를 도입하기로 했다.
‘도르래를 쓰자. 도르래로 거중기를 만들면, 단조용 가압 장치로 쓸 수 있을 거야.’
도르래란 홈이 파인 바퀴에 밧줄이 걸린 형태로 힘의 작용 방향을 바꿔 주고, 적은 힘으로 물체를 움직일 수 있게 해 주는 물건이다.
도르래는 고정도르래와 움직도르래로 나뉜다.
고정도르래는 보통 천장에 고정되어 당기는 힘으로 물체를 들 수 있게 해 주고, 움직도르래는 물체에 달린 형태로 줄을 잡아당기면 도르래와 함께 물건이 들린다.
고정도르래는 힘의 방향만 바꿔 주지만, 움직도르래는 당기는 힘을 절반으로 낮춰 주는 대신, 당겨야 할 거리가 배로 늘어난다.
‘중학생 때 배운 걸 개미가 돼서 써먹는군.’
도르래를 만들다 보니, 학창 시절에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어느 왕이 너무 큰 배를 만들어 바다에 띄우지 못해 곤란해하고 있었다.
그때, 왕은 철학자, 수학자, 천문학자, 물리학자 겸 공학자인 아르키메데스의 소문을 듣게 된다.
“나에게 충분히 긴 지레와 지레를 받쳐 줄 땅만 있다면, 지구도 들어 올릴 수 있다!”
광오한 그의 말에 왕은 망신을 주고자 했다.
“여의 배를 바다에 띄워 보아라.”
며칠 뒤, 바닷가에 왕을 부른 아르키메데스는 그에게 줄을 건네줬다.
“당겨 보시지요.”
왕이 줄을 당기자, 배가 서서히 움직여 바다를 향해 나아갔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고정도르래와 움직도르래를 잘 활용하면 뭐든 들 수 있고, 뭐든 옮길 수 있다는 교훈이 담겼는데…….
그래서 나도 아르키메데스를 본받아 엔지를 굴려 묵직한 철 덩이를 들어 올릴 수 있는 장치를 만들었다.
“자, 당겨 보아라.”
줄을 당겨 본 고블린이 당황했다.
묵직한 철 덩어리가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의 계산 착오, 그러나 당황하지 않고 말했다.
“둘이서 당겨 보아라.”
“응차응차.”
“셋이서 당겨 보아라, 넷이서 당겨 보아라!”
인디언의 기우제는 실패하지 않는다.
왜냐면 성공할 때까지 계속하기 때문이다.
고블린 여섯이서 줄을 당기자, 묵직한 철 덩어리가 올라갔다.
나는 자이언트 워커를 시켜 철 덩어리 아래로 모루를 두게 했다.
이제 가열된 철괴 위에 묵직한 철 덩어리를 내려치기를 반복하면, 고블린이 망치로 수백 번 두드리는 것 이상의 효율로 단조가 되는 것이다.
‘아주 좋아.’
용광로에서 선철이 흘러나오고, 대장간에선 단조와 담금질로 강철을 만들었다.
이는 초기 철기 문명을 건너뛰어 강철 문명에 돌입한 격이었다.
“너희는 주조를 맡고, 너희는 단조와 담금질을 맡아라.”
단조 고블린은 강철 도구를 만들었고, 주조 고블린은 둥지에 쓰이고 있는 부품들을 만들었다.
대장간에는 도구를 갈거나 날을 세우기 위한 회전 숫돌을 배치했다.
숫돌은 단면이 거친 돌인데, 그 정도에 따라 용도가 다르다.
매우 거친 돌은 초벌용으로 쓰고, 만졌을 때 부드럽게 거친 느낌이라면 날을 갈 때 썼다.
생산된 철기를 고블린들이 회전하는 숫돌에 가져가 다듬었다.
고블린들은 마찰열이 튀지 않게 물을 뿌려 가며 작업했다.
대장간에 필요한 도구부터 만든 후, 삽과 곡괭이를 생산했다.
이는 공사에 투입되어 고생하고 있을 스마트 워커와 워커맨을 위한 것이었다.
* * *
겨울이 되어 공사에 투입된 스마트 워커와 워커맨.
예전의 그들은 이러한 작업에 낄 수조차 없었지만, 나무로 된 도구가 보급되며 겨우 참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무 도구의 한계로 인해 빅 워커 이하의 작업 능력을 보여 천대받아 왔다,
최약종, 쓰레기, 무능 개미, 잉여 개미…….
고블린 사냥에서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한 것도 있어, 지금 상황은 더욱 난처했다.
“너희들, 작업이 왜 이리 느려? 땅도 제대로 못 파는 거냐? 여긴 빅 워커에게 넘기고 너희는 저쪽에서 작업해!”
“죄송해요, 열심히 할게요.”
공사 지휘를 맡은 하이 워커들은 무능한 그들을 싫어했고, 언더리페 또한 다크와의 관계가 있어 말을 못 할 뿐, 스마트 워커와 워커맨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다.
“빅 워커들이 차라리 도움 된단 말이지. 이 녀석들, 말벌족 사냥 외에 잘하는 게 있긴 한가? 듣기론 다크의 전략이 다 했다고 하던데…….”
겨울은 스마트 워커들이 비굴해지는 기간이다.
그런데 강철 삽과 강철 곡괭이가 보급되기 시작하자 대우가 달라졌다.
“벌써 끝냈다고? 자이언트 워커보단 못하지만, 스마트 워커 주제에 꽤 하는걸?”
“너희들은 여길 맡아라. 할 수 있겠지?”
언더리페 또한 1인분을 해 내는 그들을 보며 만족스러워하기 시작했다.
“지하 7층의 공사가 더 빨라지겠어.”
* * *
강철 도구의 보급으로 스마트 워커들의 작업 능력이 오르자, 바닥을 기던 그들의 평가가 치솟았다.
그렇다 해도 보급종인 자이언트 워커와 생산 특화종인 페어리 워커에 비할 수는 없었다.
쓰레기에서 재활용 쓰레기로 여겨지는 정도.
그럼에도 스마트 워커들은 지금의 대우에 만족하며 내게 감사를 표했다.
“케어 님도 포기한 저희를 이렇게 신경 써 주는 건 다크 님이 유일할 거예요.”
케어는 그들을 포기한 적이 없다.
언제나 챙겨 줬으나, 그녀의 능력으론 상황을 개선할 수 없었을 뿐.
그러니 그녀는 내가 해낸 일을 자기 일처럼 기뻐했고, 자신의 몫인 상급 영양까지 내게 보냈다.
일리아나와 트라이의 호감도도 맥스를 찍었는지, 나만 보면 눈빛이 달라졌다.
“다크! 네 소식은 하나도 빠짐없이 듣고 있어. 또 한 건 했다며? 같은 장로로써 네가 자랑스러워!”
“다크, 네가 반짝이는 걸 좋아한다고 들었어. 최근 그런 게 잔뜩 나오는 장소를 발견했는데… 알려 줄까?”
마치 여동생을 반기는 듯한 일리아나와 어떻게든 친해지려고 노력하는 트라이.
부담스럽게 들러붙는 그들을 겨우겨우 밀어낸 나는 조용한 휴식처로 피신했다.
다들 좋아하니 기쁘지만, 강철을 만든 목적은 따로 있었다.
‘어떤 무기를 만들어야 하지?’
나는 내년 봄을 대비해 서쪽 산맥에 대한 걸 알아봤다.
무한자원 개미군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