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최강 병기, 최강 병종
서쪽 산맥은 오크나무 숲보다 다섯 배는 넓다.
그곳은 고블린들의 영토였지만, 작은 개미족 군체가 상당히 많았다.
“그쪽의 개미족들은 고블린에게 완전히 밀려 버려서 낮에만 돌아다녀요.”
가끔 서쪽 산맥으로 나가 고블린의 숫자를 줄이곤 있지만, 그건 산맥 초입 부근에서 깔짝거리는 것에 불과했다.
실상 우리 군체에는 그곳을 점령할 생각도, 능력도 없었다.
그저 영역을 지키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을 뿐.
어떻게 보면 대산림의 주인은 고블린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번성한 일족이었다.
그런 종족의 정예라 할 수 있는 홉 고블린과 고블린 주술사들이 침공해 왔으니…….
‘곤란한 상황이야.’
이대로 밀려 버리게 되면 이곳도 서쪽 산맥처럼 고블린으로 가득 차게 되고, 밤 활동은 금지당할 것이다.
거기다 먹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채집과 사냥이 어려워질 테고, 놈들과 끝없는 소모전을 치른 후 규모가 축소될 터였다.
‘말벌족보다 훨씬 까다로워.’
심지어 말벌족은 단일 병종이었지만, 이놈들은 무식한 번식력과 철기 등, 다양성까지 갖추고 있었다.
이대론 개미족 군체가 밀리는 것도 시간문제.
이만큼 발전시켜 뒀으니, 망하는 꼴은 볼 수 없다.
그러니 대 고블린 전략을 세워야 했다.
전략에 앞서 놈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다행히도 내게는 정보를 제공해줄 키카가 있다.
“키카, 고블린에 대해 알려 줘. 네가 아는 것 전부!”
“고블린에 대해서요? 그럼 먼저 저희가 따르는 고카구카에 대해서 말씀드릴게요.”
“그건 예전에 들은 것 같은데…….”
“고카구카 님은…….”
내 말을 듣지 못했는지, 키카는 광기 어린 표정으로 설명을 이어 갔다.
고블린 제사장이란 직책을 가진 키카는 고카구카라는 악신을 섬기고 있고, 세상에 끼친 해악만큼 신에게서 힘과 지혜를 하사받는다고 했다.
“저희가 여기 있는 것도 고카구카 님의 뜻일 거예요.”
키카가 나를 위해 제를 올려 주는 것 또한, 이 몸이 악신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어서라는데… 아마 흑마력과 관련이 있는 듯했다.
고블린 신앙에 대한 건 아무래도 좋다.
내가 궁금한 건 고블린들의 전력이었다.
그러니 인내심을 가지고 신앙 이야기가 끝나길 기다렸다.
그런데 끝이 없었다.
조치가 필요하다고 느낀 나는 손을 뻗어 키카의 입을 살포시 막았다.
놀란 키카가 내 눈을 바라보곤 광기에서 벗어났다.
“음음음음!”
막고 있던 손을 떼 주니, 키카가 급히 무릎 꿇고서 용서를 빌었다.
“죄송해요! 살려 주세요!”
마안의 효능 때문에 안 죽인다고 해도 믿어 주지 않는 실정이다.
그러니 다음 이야기로 넘어갈 수 있게 적절히 압박해 줬다.
“그래서, 고블린 전력은?”
“그게… 일단 고블린은…….”
내 눈치를 보며 말을 못 잇지 못하는 키카.
그녀에게서 생성되는 흑마력을 흡수해 주자, 차분히 말을 이었다.
“일반 고블린은… 빅 워커를 사냥할 수 있어요.”
“그건 알아. 계속해 봐.”
고블린은 뛰어난 번식력을 지니고 있고, 뭐든 먹어 치우며, 원시적인 도구를 만들어 쓴다.
이는 일반 고블린들의 이야기고, 좀 더 특별한 고블린들이 있는 듯했다.
“일반 고블린 말고도 있는 거야?”
“네.”
오크나무 숲에는 서쪽 산맥에서 쫓겨난 떠돌이 고블린이 대부분이고, 진짜 우수한 고블린들은 서쪽 산맥 깊은 곳에 있다고 했다.
“우수한 개체로는 자이언트 고블린, 주술사, 라이더, 사제, 홉 고블린 등이 있어요. 우린 이들을 진화체라고 불러요.”
주술사는 불덩이를 쏠 수 있다.
1.8m까지 성장하는 자이언트 고블린은 육탄전에 능하여 자이언트 워커와 비등하다고 했다.
라이더는 동물을 조련할 수 있고, 사제는 악신 고카구카와 소통하여 지혜를 얻는다.
홉 고블린은 뛰어난 지휘능력을 가졌다.
“일반 고블린 사이에서 태어난 개체는 진화체가 될 확률이 거의 없어요.”
“그건 무슨 말이야?”
“대부분의 진화체는 진화체의 자식이에요.”
그러한 이유에서 암컷 진화체 고블린은 수컷 고블린과 맺어지지 않고, 수컷 진화체 고블린은 많은 수의 암컷 고블린을 거느려 우수한 유전자를 퍼트렸다.
“진화한 고블린의 아이를 품으면 대우가 달라져서, 암컷 고블린들은 홉 고블린과 관계를 맺고 싶어 하죠.”
“그럼 제사장은 뭐야?”
“제사장은 고카구카 님에게 선택받은 특수한 진화체예요.”
제사장인 키카는 일반 고블린들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운 좋게 진화할 수 있던 케이스였다.
“진화체들은 수명이 어떻게 돼?”
“3년에서 5년 정도에요. 한 번 더 진화하면 20년 정도고요.”
자이언트 고블린, 주술사, 라이더, 사제, 홉고블린까지.
‘적어도 다섯 개의 병종에 대응해야 해.’
하나하나 특화 병종을 만들어 매칭시키는 건 힘들 듯하니, 이들 모두에게 유용한 병종을 준비해야 했다.
고민을 하다가 일단 강철 무기부터 보급하기로 했다.
“세크리, 대장간에 가 보자.”
“네.”
대장간에선 하녀 개미들이 고블린에게 채찍질을 해가며 닦달하고 있었다.
길들이기 위한 과정이라 잔혹해도 해야 할 일이었고, 선을 지키도록 가이드라인을 확실히 정해 줬다.
“상하지 않게 때리고, 완장으로 고블린을 다섯 등급으로 나눠 봐.”
전생에 대표가 평등을 추구하여 복지와 워라밸에 신경 쓰던 시기가 있었다.
워라밸을 위해 고용 인원을 늘렸고, 복지를 위해 많은 돈이 쓰이면서 오히려 직원들에게 돌아갈 상여금이 줄게 됐다.
‘시기상조였지.’
Work and Life Balance, 통칭 워라밸.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벌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가치였지만, 성장하고 있던 회사에는 악영향을 미쳤다.
성공의 욕구를 지닌 사람들이 회사를 떠나게 된 것이다.
다수의 인재를 잃고서 뒤늦게 문제점을 깨달은 나는 복지에 나가는 돈을 막고, 인센티브를 최대한 키우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전생의 경험을 살려 고블린들에게도 이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제일 우수한 등급에겐 양질의 영양을 제공하고, 충분히 쉴 수 있도록 배려해 줘.”
“네! 다크 님.”
능력에 따른 차등 대우를 이용해 치열한 경쟁 관계를 조성했다.
노력하는 녀석은 나의 옆자리까지 다가올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나락으로 떨어질 터.
고블린 길들이기는 순조롭게 진행됐고, 조만간 감독 역을 우수 고블린으로 대체하게끔 말해둔 나는 고블린들을 시켜 각종 병장기를 만들어 봤다.
일단 양날검은 다루기도 어려워 폐기.
대도는 무겁기도 하고 휘두르기도 어렵다.
단검 종류는 짧아서 사냥에 쓰기에는 적합하지 않았고, 직도가 휴대성이 좋았으나, 2m가 넘는 말벌창을 다루는 내겐 너무 가벼웠다.
“세크리, 이건 어때?”
“소드 앤트의 검과 비슷한 형태의 무기네요. 제가 써도 될까요?”
안 될 건 없지만, 세크리가 다루는 모습을 보니 그리 위력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좀 더 강력한 게 필요해!’
고블린들을 굴려 직도를 개량했고, 무게 중심이 칼날 끝으로 치우친 도끼 검을 만들었다.
‘이걸 뭐라고 하더라? 코피스?’
찌를 수가 없고, 무조건 내려찍기로 승부를 봐야 하는 검.
단순하면서도 위력적이라 매우 멋졌다.
‘일단 근접 무기는 이걸로 하고.’
다음으론 돌격용 마상창을 만들었다.
금속으로 만들어 보니, 무게가 상당하여 나무 심에 강철을 박아 넣고 강철 촉을 씌웠다.
근접용 무기와 돌격용 무기를 갖췄으니, 원거리 무기가 남았다.
투창용 창을 업그레이드하던 중, 역사에서 증명된 최강의 부대가 떠올랐다.
‘징기스칸의 궁기병!’
뛰는 말 위에서 활을 쏜다는 건 매우 어려우나, 안장과 등자를 갖춘 개미의 위라면…….
‘말보단 쉬울 거야.’
워커맨들은 의외로 팔 힘이 강하다.
활을 당기는 것도 잘할 터였다.
활을 만들기로 정한 나는 어떻게 만들지 고민했다.
‘일단 궁기병으로 운영해야 하니 장궁은 아니야.’
조선 최강의 복합궁인 각궁.
만드는 방법은 알지만, 재료가 없었다.
‘뽕나무는 있고, 대나무는 남쪽 숲에서 찾아보면 있을 것 같은데, 물소 뿔은 본 적이 없단 말이지… 토끼 뿔을 써 볼까?’
겨울이라 나가서 나무를 구해다 줄 개미도 없으니, 각궁을 만드는 일은 포기했다.
‘철궁은 좀 아닌 것 같고.’
선택지가 없었다.
지하 5층에 심어둔 뽕나무만으로 활을 만들어야 했다.
‘뽕나무도 탄성 하나는 좋으니, 나쁘진 않을 거야.’
간만에 지하 5층을 찾았다.
일 년 사이 나무들은 더욱 울창해져 있었고, 머리통만 한 누에나방들이 날아다녔다.
“세크리, 나우피어를 불러 줘.”
“네!”
나는 나우피어를 기다리며 엔지의 목공소에서 누에 영양을 대접받았다.
‘중급 영양이군. 나쁘지 않아.’
“양식한 거야?”
“아니요. 자연산이에요.”
“그럼 내년부터 양식해 보자.”
“제가요?”
“아니, 마고트에게 맡길 거야. 네가 많이 도와줘.”
엔지가 살짝 실망한 음성으로 답했다.
“네…….”
나우피어가 왔다.
“다크 님, 무슨 일이시죠?”
사냥하는 것만 아니면 뭐든 적극적인 나우피어에게 적당한 가지를 잘라 오게 했다.
잠깐 휴식을 취하니 뽕나무 가지가 모였다.
생나무를 그대로 활의 재료로 사용할 수는 없었다.
그늘진 곳에 자연 건조를 시켜야 하는데, 그럼 너무 오래 걸린다.
다행히도 지하 1층에는 고온 저습한 장소가 있었다.
그곳을 건조실 삼아 나무를 말리는 한편, 어떻게 단궁을 만들지 고민했다.
“민어 부레풀 대신 개미족의 접착액을 활용한다 치고, 소힘 줄 대신에는…….”
로커스트 사태 때 루팅 해 둔 거미줄을 쓰면 될 듯했다.
‘나무의 형태만 제대로 잡으면 되겠어.’
단궁에는 두 가지 형태가 존재한다.
직궁과 만궁.
직궁은 탄력이 좋은 나무를 적당한 형태로 잘라 양쪽에 줄을 걸어 약간 휘게 한 것이다.
따라서 줄을 풀면 반듯한 직선 모양을 가지게 된다.
그에 반해 만궁은 평소에는 동그랗게 말려 있었다.
만궁에 시위를 걸면, 말려 있는 반대 방향으로 휘게 되면서 강력한 장력을 얻었다.
작고 강력함으로 따지면 만궁이긴 하지만, 제작이 까다롭다보니 직궁부터 만들어 보급하기로 했다.
건조실에 둔 나무가 마르려면 시간이 걸린다.
나는 나무가 마르는 동안 주조로 화살촉을 생산할 고블린을 배정했다.
화살촉은 순조롭게 생산됐고, 적당한 나무 화살에 붙여 강철 화살이 만들어졌다.
화살의 깃대로는 깃털이 없어 빳빳한 식물의 잎으로 대체했다.
시간이 흘러 건조실의 뽕나무가 말랐다.
나는 엔지와 함께 활 제작에 들어갔다.
나무를 적당히 다듬자 1.3m의 활이 만들어졌다.
너무 작게 만들어서인지 시험 사격 때 절반이 부러졌다.
‘그래도 절반은 건졌어.’
부러진 이유는 나무의 결과 관계가 깊었고, 시간과 공을 들여 나무의 형태를 잡는다면 내구도를 높일 수 있을 듯했다.
‘업그레이드는 다음에 하자.’
시험적으로 쏘아 보니, 사거리는 60m에서 120m까지 날아갔다.
그리 대단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화살은 창보다 휴대가 편했고, 관통력이 좋았다.
‘대단해.’
이 정도면 뚜벅이인 고블린이 뛰어오는 동안 서너 발은 쏠 수 있을 듯했고, 이동하면서 쏘면 상대가 라이더라 해도 두세 번은 당길 수 있다.
고블린 주술사가 사용한다는 불덩이의 사거리는 모르지만, 비슷한 사거리만 되도 충분히 견제할 수 있다.
엔지에게 활의 양산을 맡긴 나는 지하 5층에서 가디언과 워커맨들을 불러 활의 사용법을 가르쳤다.
“이건 근접해 온 적을 향해 쏘는 직사야.”
시범을 보여 주자, 대기를 가르며 날아간 화살이 표적에 명중했다.
“이건 멀리 있는 적을 타격하기 위한 곡사야.”
위쪽으로 쏜 화살이 포물선을 그리며 땅에 꽂혔다.
몇 차례 시범을 보여 준 나는 그들에게 궁기병 육성을 떠맡겼다.
“메디, 허니 퀸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어?”
페르에게 잡아먹히기라도 했는지, 아르모네가 보이지 않아 물어봤다.
“허니 퀸들은 워낙에 달콤한 냄새를 풍기는 상급 영양들이라 다들 눈독 들여서 지하 6층에 보냈어요.”
내가 철, 활, 궁기병 등을 만드느라 바빠 챙겨 주지 못한 게 살짝 미안해졌다.
‘그래도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야.’
꿀은 충분하여 워커맨이 대량 발생 중이라 지금은 그녀들의 처우보단 궁기병 육성이 우선이었다.
‘궁기병이 완성되면 지하 6층에 양봉할 환경을 만들어 줘야겠어.’
개미족에게 배신이라는 개념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혹시라도 하위 군체와의 관계가 틀어질 때를 대비하여 꿀의 자급자족 체계를 만들어 두면 좋을 것 같았다.
그런 계획이 있었으나… 꿀벌족의 능력은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대단했다.
무한자원 개미군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