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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자원 개미군단-53화 (52/189)

53화. 마(魔)의 축복

다크가 철기에 빠져 있을 때, 몸을 회복한 허니 퀸들은 지하 6층에 보내졌다.

그곳은 아직 용도가 정해지지 않은 공터였지만, 풍부한 수원, 천장에 가득한 푸른 마광석, 지렁이가 넘치는 비옥한 토지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이건 대체…….”

“비옥해요!”

“아카시아 숲보다 훨씬…….”

“마력 농도도 짙어.”

흙을 만져 보던 아르모네가 함께한 여섯 허니 퀸들에게 말했다.

“사실 막막했는데, 여기면 우리도 충분히 살 수 있겠어. 우리, 각자 가진 씨앗을 나누는 게 어때?”

의기투합하듯 고개를 끄덕인 허니 퀸들이 각자 챙겨 온 씨앗들을 꺼내 나누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영역을 정해 씨앗을 심었다.

“저기, 설탕수와 버섯 영양을 더 줄 수 없을까요? 내년에 꿀로 갚을게요.”

아르모네의 부탁에 그들의 감시 역이자 시중 역인 워커맨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꿀로 갚겠다면야.”

외상으로 지원을 듬뿍 받은 허니 퀸들은 대지에 축복을 걸며 돌아다녔고, 각자 영역을 정해 둥지를 짓기 시작했다.

허니 퀸들은 곤충 엉덩이 아래쪽에서 분비되는 고형 기름을 떼어내 입에 넣었고, 질퍽해진 그것으로 육각형 둥지를 만들어 갔다.

꿀벌족과 꿀벌은 겨울잠을 자지 않는다.

일벌 계급은 겨우내 둥지 온도를 조절하며 보내는데, 개미족 둥지는 온도와 습도가 맞춰져 있어 일벌들이 온종일 꿀을 생산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이었다.

시간이 흘러 밀랍 집이 완성됐고, 허니 퀸들은 알을 낳기 시작했다.

알들이 깨어나 애벌레가 자라날 무렵 지하 6층에는 풀과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났다.

초록으로 덮인 일대를 바라보던 허니 퀸들은 함께한 꿀벌들의 집을 지어줬고, 로열젤리를 나눠 줌으로 여왕벌 양산에 들어갔다.

* * *

겨울이 깊어갈 때, 말벌족을 토벌하여 얻은 대량의 상급 영양이 풀리면서 3차 진화종이 폭증했다.

자이언트 솔져들은 울트라로 진화하고, 자이언트 워커들은 하드 워커로 진화했다.

스마트 워커들도 하나둘 워커맨이 되면서 3차 진화종 모두에게 십인장 자리를 줄 수 없게 됐다.

인구도 4천을 훌쩍 넘겼고, 이대로 도약의 겨울이 될 줄 알았는데…….

‘어라?’

스몰 워커들의 보충이 끊겨 버렸다.

무슨 일인가 싶어 산란방에 찾아가 봤다.

그곳에는 장로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한동안 산란을 멈추겠다!”

산란만이 유일한 낙인 줄 알았던 페르의 폭탄선언을 듣게 된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미쳤나?’

왜 저러는가 싶어 의문을 가졌고, 장로들의 질책이 쏟아질 줄 알았는데…….

“벌써 그날이 왔군요. 어디 불편하신 곳은 없으세요?”

일리아나가 여왕들의 몸 상태를 살피곤 배정될 영양의 양을 늘렸다.

다들 뭔가 아는 눈치여서 일리아나의 오른팔인 티아벨에게 물어봤다.

“무슨 일이야?”

갓 태어난 시절부터 날 챙겨 준 티아벨은 장로로 대우하기보단 동생처럼 생각했고, 나 또한 직책을 내세워 선을 긋지 않았다.

“하긴, 다크는 처음이겠네. 곧 있으면 세 번째 달이 뜰 거야. 이때 마의 축복이 시작되거든.”

“마의 축복?”

이곳의 달은 두 개다.

그런데 티아벨의 말을 들어 보니, 하나가 더 있는 것 같다.

“마의 축복은 모두를 강하게 해 줘. 그리고 공주들이 태어나게 해줄 거야.”

공주란 단어에 더듬이가 쭈뼛 섰다.

‘결비 시즌이다!’

개미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다리는 결혼 비행 시즌이 개미족에게도 찾아온 것이다.

흥분을 가라앉힌 나는 내가 뭘 준비해야 할지 물어봤다.

“다크는 장로니까 공주들의 교육을 맡겠지. 정말 부럽다.”

“뭘 가르쳐야 하는데?”

짝짓기 하는 법이라도 가르쳐야 하나?

공주에게 뭘 가르쳐야 할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일단 케어 님이 개미족의 역사를 가르칠 거고, 포스 님이 생존법, 페르 님은 페르몬 활용법을 가르칠 거야. 어느 정도 기초 지식을 갖추면 그 다음은 장로들의 몫이지.”

여왕들에게서 기초 지식을 배운 공주는 때가 될 때까지 장로의 보호를 받으며 심화 지식을 습득한다고 한다.

심화 지식으로 뭘 가르칠지는 각 장로의 자유.

‘자유라니. 가장 어려운 주문이군.’

공주 개미에게 국, 영, 수가 필요할 것 같진 않고 사회, 과학, 물리, 화학, 경영, 회계, 산업 공정, 적정기술… 역시 쓸모없다.

‘모르겠네.’

이럴 때일수록 교육의 목적을 정확히 인지하는 게 중요했다.

‘결비 후의 생존을 위한 교육이겠지. 만약 우리 영역 안에 떨어지면 어떻게 되는 거지? 데려와 키우면 되나? 아니면 죽이나?’

개미족의 생태에 대한 정보를 모았다.

개미족은 자신들의 영역에 떨어진 신여왕을 살려 두지 않는다.

그러니 개미족이 없는 곳에 둥지를 틀어야 한다.

실수로라도 개미족의 영역에 둥지를 틀게 되면, 숨어서 힘을 키워 영역 전쟁에 나서야 한다.

영역을 확보한 후, 그곳의 본래 주인과 불가침 조약을 맺는데 성공하면 제대로 생존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험난하네.’

수백 수천 마리 중 제대로 생존할 수 있는 신여왕은 손에 꼽힐 듯했다.

즉, 이곳 남부 대산림에 양질의 먹이를 공급해 주는 개미 뷔페가 열린다는 건데…….

맛있게 먹힐 공주들의 교육이라 생각하니 의욕이 꺾였다.

‘내 수련이나 하자.’

이번 행사는 가볍게 넘기기로 한 나는 궁기병 육성에 전념할 생각이었다.

* * *

겨울이 끝나갈 무렵 지하 7층이 완공됐고, 지하 8층 공사가 시작됐다.

일리아나는 완공된 지하 7층과 지하 4층의 산란방을 비교해봤다.

“마력이 불안정해.”

아래층의 마력 농도가 높긴 했지만, 마의 축복으로 인해 지하의 마력이 불안정하게 들끓고 있었고, 중요한 시기라 산란방 이주를 미룰 수밖에 없었다.

때가 되어 부대장급 개미와 부관급 개미가 참여하는 대회의가 열렸다.

대회의에선 각 부대장이 어디로 갈지, 부대 편성은 어떻게 할지가 논의됐다.

600기의 기의병을 운영한 나였지만, 말벌족과의 마지막 전투로 절반의 병력을 잃었고, 진화에 실패한 스마트 워커가 속출하여 지금 데리고 있는 기의병은 200기 남짓이었다.

200기 모두 3차 진화종이었고, 하드 워커가 100마리 정도 남아 있어 기수 역만 100마리를 뽑으면 100기를 더 보충할 수 있는데…….

작년 서쪽 전선에서 고전한 게아, 네아, 데아, 메르, 베르가 데리고 있던 하드 워커 상당수가 다른 부대에 배속되면서 100마리의 워커맨이 남게 됐다.

“워커맨 100마리가 남아. 누가 데려갈래?”

아무도 워커맨을 부대에 받으려 하지 않았다.

“워커맨은 좀…….”

“어느 정도 쓸모가 있는 건 인정하지만, 지금 데려가기는 좀 그렇지.”

워커맨을 데려간 만큼 하드 워커를 채울 수 없기 때문이었다.

나는 멍청한 부대장들에게 감사하며 손을 들었다.

“저요! 제 부대에 주세요!”

“괜찮겠어? 워커맨 100마리야. 얘들을 받으면 하드 워커는 배정해 줄 수 없어.”

“괜찮습니다. 워커맨은 제가 찜했습니다.”

일리아나가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고마워, 다크. 네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금세 자세를 고친 일리아나가 다음 안건을 꺼냈다.

“아카시아 숲을 포함한 동쪽 영역은 게아, 네아, 데아, 메르, 베르가 맡아 주기로 했어.”

가디언인 다섯은 각각 서른 기의 기의병을 이끌고, 아카시아 숲을 지키기로 했다.

“문제는 서쪽의 고블린 산맥이야. 마의 축복으로 홉 고블린들의 대대적인 침공이 있을 수 있으니, 우리 쪽에서도 정예 개미를 배치해야 해.”

“일리아나, 그건 우리에게 맡겨 줬으면 좋겠어.”

“괜찮겠어?”

“한 번 당한 상대에게 두 번 당할 정도로 어리석진 않아.”

이번에는 내가 서쪽 영역의 고블린 주술사를 상대해 보고 싶었지만, 설욕전을 원하는 게르피아가 메가피르와 함께 서쪽을 맡게 됐다.

둘은 각각 열두 마리의 울트라로 구성된 울트라 부대를 이끌었고, 플라이 워커 정찰대를 운영하여 주술사를 피하기로 했다.

둘의 부대만으로 고블린과 싸울 수 없으니, 뒤를 받쳐 줄 부대장급 개미가 필요했는데.

메가피르와 게르피아가 최근 들어 비난을 받고 있다지만, 모든 추종자가 떨어져 나간 건 아니었다.

“나 카이제르가 돕겠다.”

“우리의 영웅이 또 당하게 둘 순 없지.”

그동안 숨죽이고 있던 네임드 울트라들이 나서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저도 끼겠습니다.”

“게르피아 님, 저도 지원할게요.”

카이제르, 네아피코, 페르디코, 크락세스가 20마리의 하드 워커와 80마리의 자이언트 워커로 구성된 100인대를 이끌고 메가피르와 게르피아를 지원하기로 했다.

“그럼 보급은 내가 맡아야겠군.”

400마리가 넘는 거대종이 투입되는 만큼 탄탄한 보급이 필요하니 이를 운반 대장인 캐리가 맡으려 했으나, 게르피아가 거절했다.

“현지에서 보급할 테니, 병력으로 지원해 줘.”

“울트라의 현지 보급이 가능해?”

일리아나의 물음에 메가피르가 답했다.

“마의 축복 기간이라면 가능하다.”

나머지 부대장들이 남쪽 영역을 담당하기로 하자, 내게 남은 건 전공을 기대할 수 없는 북쪽 숲이었다.

다른 개미였다면 자기 몫을 챙기기 위해 분발하겠지만, 전생에 인간인 나는 일반적인 개미와 조금 달랐다.

‘그래, 너희들이 다 하렴. 나는 궁기병이나 좀 더 업그레이드하고 있을게. 제발 내가 수습하게끔 만들지만 마.’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게 당연한 전생을 보냈던 터라 남이 굳이 나서서 해 주겠다는 일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

봄이 왔다.

세 번째 달이 뜨면서 마의 축복이 시작됐다.

마의 축복으로 인해 대기의 마력이 풍족해지자 개미들의 성장 속도가 빨라졌고, 2, 3차 상위종 개미가 급증했다.

여왕들의 산란량도 폭증하여 페르는 매달 800개에 가까운 알을 낳았고, 나머지 두 여왕도 각각 150개에 달하는 알을 낳았다.

이들 모두 신여왕이 되어 숲에 뿌려질 것이라 안타까울 뿐이었다.

한편, 울트라 부대와 자이언트 부대는 출격한 뒤 압도적인 체격 차를 이용해 서쪽 영역의 고블린을 몰아붙였다.

“전선을 구축하라!”

게르피아의 장담대로 서쪽 전선에선 현지 보급이 이루어졌고, 둥지에선 그들의 승전 소식을 수시로 들을 수 있었다.

강철 농기구의 보급으로 스마트 계열과 미니 계열이 함께 일하는 사탕수수 농장과 지렁이 양식장이 크게 확장됐다.

한동안 식량의 문제는 없을 듯했지만, 미래를 생각해서라도 농기구의 개량은 선택이 아닌 필수 사항이었다.

‘지하의 땅을 넓혀서 더 많은 식물을 심어야겠어.’

무엇을 심던지 지렁이의 먹이가 될 테니, 중요한 건 땅과 물이었다.

“다크 님, 궁기병의 무장을 갖추느라 농기구 보급에 차질이 생겼어요.”

철기 생산량이 부족함을 느낀 나는 세크리에게 말했다.

“사냥 개미들에게 고블린을 잡아 오라고 해.”

“네!”

둥지에서 수련하며 지내다 보니, 간혹 동족을 죽이는 자이언트 워커와 빅 워커의 소식이 들려왔다.

예전 개미를 키울 때 가끔 보이던 모습이라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개미족에게도 미친 개미가 있네.’

미친 개미는 대기하고 있던 경비대가 진압하여 치료실로 보냈다.

메디는 미친 개미를 깔끔하게 해체해 본 뒤 잘 회복시켜 내게 보냈다.

‘아니, 다들 안 죽이고 뭐 하는 거야?’

무늬마저도 붉어진 게 일반적인 개미라곤 생각되지 않아 재빨리 말벌창으로 부숴 버렸다.

미친 개미를 몇 마리 부숴 봤더니, 마안으로 미치기 직전의 개미를 분별할 수 있게 됐다.

“세크리, 저놈 좀 무덤에 데려와 봐. 미치기 전에 제거해야겠어.”

“네!”

미치는 이유에 대해서 확신은 없지만, 제어되지 못한 마력이 뇌에 닿으면 변이가 일어나는 것 같았다.

대장간의 수컷 고블린 중에서도 폭주하는 녀석들이 나왔으나, 하녀 개미들이 철저히 관리하고 있어 빠르게 진압했다.

둥지 내부에서 그런 일을 겪고 있을 때, 피어레스, 제르피아, 헤르피아는 각각 궁기병 100기를 이끌고 북쪽 영역을 휩쓸었다.

“다크 님, 고블린들을 잡아 왔습니다!”

“잘했어, 피어레스.”

생포한 고블린은 약간의 길들이기 과정을 거친 후, 대장간에 투입돼 철기를 생산했다.

가끔 피어레스와 함께 사냥에 나가 보며 궁기병의 사냥 방식을 확인했다.

“돌격!”

접근하며 쏜다.

“후퇴!”

물러나며 쏜다.

“추적!”

따라가며 쏜다.

단순하지만 매우 위력적이었고, 고블린 정도로는 궁기병의 위력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대단하긴 한데, 아쉽단 말이지.’

활을 업그레이드하고 싶던 나는 남쪽에 나간 개미들에게 대나무를 부탁했다.

“여기, 대나무를 구해 왔어요!”

“고마워.”

구해온 대나무는 건조실에 쌓았다.

‘대나무는 쓰임이 많지.’

둥지 내에서 대나무를 기르고 싶어 지하 5층 뽕나무 숲 한쪽에 심게 했다.

며칠이 지나자 무성히 자란 대나무를 볼 수 있었고, 이대로 두면 뽕나무 숲이 대나무 숲으로 변할 것 같았다.

‘지하 7층에 옮겨 심어야겠어.’

나는 지하 7층을 대나무 농장으로 만들고 싶어 언더리페를 찾았다.

지휘 특화종인 하이 워커 언더리페는 꿀을 좋아했다.

뇌물로 로열젤리를 조금 챙겨 줬더니 금세 승낙이 떨어졌다.

“알겠다. 농장으로 쓸 수 있게 벽을 트고 천장을 높여 주지. 수원도 몇 개 더 만들어야겠군. 이참에 작업하던 8층까지 통합해서 쓸 만하게 넓혀 주마.”

몇 개월간 공사가 진행되며 지하 7층의 구조가 바뀌었다.

그동안 나는 대나무와 뽕나무를 붙인 복합궁을 연구했고, 이번에는 직궁이 아닌 만궁의 형태로 만들게 됐다.

수개월에 거쳐 생산된 복합궁은 기존 단궁보다 월등한 사거리와 위력을 선보였다.

무한자원 개미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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