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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자원 개미군단-54화 (53/189)

54화. 공주들을 맡다

신무기인 복합 단궁의 사거리는 80m에서 160m.

새로운 단궁이 보급되면서 궁기병의 사냥 능력이 올라갔다.

궁기병이 강화될수록 잡혀 오는 고블린이 늘었고, 덕분에 철기의 보급도 안정될 수 있었다.

여유가 생긴 나는 인간들에게도 강철 농기구를 보급해 줬고, 그녀들은 농기구의 품질에 놀라워했다.

“이 귀한 걸…….”

농기구를 보물 다루듯 하는 그녀들을 보니, 이곳 문명이 도대체 어느 정도 수준인지 궁금해졌다.

“이 정도 강도의 철기가 없어?”

“있어요. 하지만… 이 정도 물건은 명장이 만들어야 해서, 실버급 용병은 돼야 살 수 있어요. 그러니 강철로 농기구를 만들진 않아요.”

‘소규모 대장간에서 철을 다루나 보군. 그럼 강철 제품이 굉장히 귀하겠지.’

간혹 사냥 부대가 북쪽 숲에서 인간 여자를 구조해 오긴 했지만, 적응에 성공한 인간은 극소수였다.

적응에 실패한 유형으로는 자살, 방어 본능에 의한 공격 행위, 탈출 등이 있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자살하는 건 납득이 가지만, 개미족을 공격하거나 탈출을 시도한 인간은 모두 제압당해 페르의 특식으로 바쳐졌다.

‘그렇게 경고했는데 믿질 않네. 이것도 마안 때문인가?’

인간은 고블린처럼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니 희소 인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종교라도 만들어야 하나? 개미 숭배교 같은 거 말이야.’

인간들의 심적 안정과 적응을 돕기 위한 종교를 떠올렸지만, 경전을 만들 종이도 없고, 애초에 개미 숭배를 원하는 인간이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저들이 보기에 개미족은 그저 괴물에 불과하지 않은가.

‘종이 생산에 투입할 인력도 없고 말이야.’

종이의 생산과 종교에 관한 건 인간이 좀 더 많아졌을 때 생각해 보기로 한 나는 정기적으로 산란방에 들러 서쪽 전선의 상황을 물어봤다.

홉 고블린들의 침공에 맞서 울트라 부대와 자이언트 부대가 나서 선전하고 있었다.

그러나 울트라 부대가 한 번 승리를 거두더라도, 고블린들은 그들이 없는 곳으로 계속해서 침투하는 바람에 전체적인 영역은 점점 밀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질은 이쪽이 압도적이야. 문제는 수 싸움에서 밀리고 있어.’

개미족은 공주들의 결혼 비행을 준비하느라 병력 보충이 없는 반면, 고블린 놈들은 마의 축복을 받아 무한정 증식하고 있었다.

게다가 주술사들에 의해 울트라의 피해가 조금씩 누적되고 있으니, 이대론 이겨도 이긴 싸움이 아니었다.

‘슬슬 참전해서 주술사만이라도 처리해 줄까?’

서쪽 전선에 참여할 시기를 재고 있을 때, 여왕들에게 기초 교육을 이수받은 공주 개미들이 둥지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공주는 아직 미진화체임에도 크기가 빅 워커 수준이었다.

외골격의 색은 스몰 워커처럼 연했으며 생김새가 특이했다.

날개도 달려있고, 페로몬도 확연히 달라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장로들은 그런 공주들을 데려가 보호해 주며 교육하기 시작했는데…….

장로들이 뭘 가르치나 궁금한 나는 그들을 찾아가 봤다.

일단 1장로는 산란방 옆에 따로 방을 마련하여 공주들을 가르쳤다.

“처음 태어난 스몰 워커는 자신이 뭘 해야 할지 몰라요. 그러니 해야 할 일을 알려 줘야 해요”

“저희도 잘 모르는데 어떻게 알려 줘요?”

“그걸 지금 알려드릴게요. 먼저 알을 돌보게 하고, 청소를 시켜야 해요.”

일리아나는 공주들에게 잡다한 지식들을 전수하며 시중을 받는 법도 알려 줬다.

‘시중받는 걸 왜 가르치는 거지?’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2장로를 찾아가 봤다.

2장로 역시 따로 방을 마련하여 공주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군체의 여왕이 되려면 무력이 강해야 한다! 더듬이로 적의 움직임을 읽고 몸을 던져 덮쳐라! 절대 측면과 뒤를 보이면 안 된다. 정면 승부만이 승리의 길임을 명심해라!”

저렇게 말이 많은 제르다코는 처음 봤다.

제르다코는 어디서 데려왔는지 하드 워커들을 허수아비로 세워 뒀고, 공주들은 가만히 있는 하드 워커를 공격하며 경험치를 쌓고 있었다.

나는 훈련 중인 공주들에게 말해 주고 싶었다.

‘적을 만난 시점에서 너희는 끝난 거야. 그러니까 적을 만나기 전에 숨어야지.’

3장로인 언더리페는 공주들에게 땅 파는 법과 지휘 페로몬을 가르쳤고, 4장로인 네트리는 하이 팩토리라 그런지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은 채 영양만 듬뿍 먹이고 있었다.

‘언더리페는 잘하고 있고, 네트리는 아까운 영양만 낭비하고 있네.’

5장로 포메온의 교육은 조금 충격적이었다.

‘이런 미친놈이!’

그는 공주들의 맷집을 길러 준다며 거대한 턱을 휘둘러 공주들을 마구 두들겨 패고 있었다.

웬만한 개미들도 잘못 맞았다간 골로 가는 울트라의 공격을 훈련이란 명목으로 어린 공주들에게 퍼붓다니…….

아무리 봐도 공주 학대 같아서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포메온 님, 그러면 죽어요!”

“이 정도로 죽으면 여왕 될 자격이 없다!”

“…….”

할 말을 잃게 하는 포메온의 논리에 놀란 나는 눈을 크게 뜨고서 그를 바라봤다.

그러자 포메온은 뭔가 찔리는 게 있는지 내 시선을 피했다.

‘뭐야? 지금 내 눈을 피한 건가?’

뭔가 찝찝함을 느낀 나는 그에게 대화를 청했다.

“여긴 옥상이 없으니… 우리, 진실의 방에서 이야기 좀 할까요?”

“옥상은 뭐고, 진실의 방은 뭐냐?”

“그런 게 있어요.”

조용한 방으로 이동해서 포메온을 추궁했다.

“조금 전의 방식은 공주들이 견디지 못해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거죠?”

“그건…….”

한참이나 망설이던 그가 말했다.

“잘 들어 다크, 난 울트라야.”

“네, 그렇죠.”

“모두의 우상인 울트라가 교육한 공주들이 허약한 약골로 나가 봐. 그럼 다들 날 뭐라 생각하겠어?”

“예?”

“작년에는 울트라 부대가 고블린 따위에게 패퇴한 일까지 생겼는데, 분명 페포케 군체의 울트라들은 무능한 놈들뿐이라고 소문날 거야.”

가끔 포메온이 이상한 행동을 하는 건 알았지만, 이런 놈이었나?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약에… 내가 교육한 공주가 제르다코에게 교육받은 공주보다 약골이면…….”

포메온은 당장에라도 주화입마에 빠질 것처럼 몸을 부르르 떨더니, 곧바로 괴성을 질렀다.

“안 되겠다. 이럴 시간에 공주들을 더 단련시켜야 해!”

지금 그를 보내 주면 공주들을 다 죽일 것 같아 뒷다리를 잡았다.

그러나 힘 차이로 내 몸이 질질 끌려갔다.

‘괜히 울트라가 아니야.’

불쌍한 공주들을 위해 필사적으로 말했다.

“알겠으니까, 일단 멈춰요! 강력한 공주를 배출하고 싶은 거라면 제가 도와줄 수 있으니까!”

“어떻게?”

포메온이 멈춰 선 뒤, 내가 다음에 할 말을 기다렸다.

“개미족 강화 방법, 그걸 알려드릴게요.”

“그런 게 있는 건가?”

“같은 종이라도 개체 차이가 큰데, 당연히 있죠.”

나는 그동안 사냥 개미들을 지켜보며 깨달은 걸 말해 줬다.

“먼저 개미들의 전투력을 높이기 위해선 세 가지를 강화해야 해요.”

“더듬이 감각, 외골격, 그리고 턱 힘이지. 조금 전에 한 훈련은 외골격을 강화시키기 위한 훈련이었다.”

“아무 이유 없이 외골격을 부수고 있던 건 아니었군요.”

“큼, 힘 조절이 쉽지 않더군.”

“그렇다면 좀 더 안전하면서도 효율적인 방법으로 가 보죠.”

어쩌다 보니 나는 포메온에게 교육 커리큘럼을 짜 주며 하녀 개미들과 의료 개미를 지원해 주게 됐다.

포메온에게 알려 준 더듬이 강화 방법은 스마트 워커들이 던지는 돌을 피하는 훈련이었고, 턱 강화 훈련은 현대의 헬스 트레이닝을 적용시켜 무거운 쇳덩이를 이용해 근력을 짜낸 후, 충분한 단백질을 보충하는 것이었다.

“쇠 질! 쇠 질!”

외골격 강화는 스마트 워커들이 못과 망치를 사용해 외골격에 미세한 균열을 만든 후, 외골격 강화액을 충분히 먹여 회복시키는 방식을 적용했다.

“쇠 질! 쇠 질!”

체계적인 강화법을 도입하자, 포메온이 맡은 공주들은 빠르게 성장하여 뭔가 우락부락한 헬창 공주가 되어 갔다.

그런데 헬창 공주를 육성하는데 들어가는 영양은 모두 내가 부담해야 했다.

‘괜히 나섰나?’

어차피 결혼 비행 후 죽어 나갈 공주들에게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지만, 둥지 안에서 학대받는 걸 지켜보는 것도 고역이라…….

‘됐어. 이 손해는 고블린한테 뜯어 내자.’

나답지 않은 변덕이었지만, 포메온의 주화입마를 막았다고 생각하면 손해는 아니었다.

6장로 캐리는 일이 바빠 공주를 교육하지 않았고, 7장로 트라이는 잡다한 지식과 둥지 삼기 좋은 장소를 선정하는 법을 알려 줬다.

‘그나마 트라이가 제일 낫네.’

8장로 블러리도 공주들에게 관심이 없는지 홀로 해체 작업에 몰두할 뿐.

나를 포함해 아홉 명의 장로 중 여섯 명만이 공주를 가르치고 있으니, 둥지에는 스승을 구하지 못한 공주들이 떠돌아다녔다.

그 수가 점점 많아지면서 케어가 장로들을 호출했다.

“공주들의 교육과 보호에 좀 더 신경 써 주면 좋겠구나.”

우리 군체 출신의 공주가 신여왕이 되어 자리를 잡으면 그만큼 개미족이 번성한다는 설교를 한 시간 동안 듣게 됐다.

‘그러니까 다른 종족이 크는 걸 막기 위해 개미족을 뿌린다는 거군.’

케어의 논지는 알겠지만, 난 나름 빡빡하게 지내고 있었다.

수련으로도 바쁘고, 간부들의 보고를 들어 줘야 하며, 가끔 고블린과 인간도 살펴봐야 한다.

최근 마고트에게 지시한 누에 양식도 봐 줬으며 종종 지하 7층의 대나무 상태도 확인했다.

거기다 서쪽 영역의 전황까지 살피고 있어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지경인데.

“할 일 없는 다크가 좀 더 맡아 주렴.”

케어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나 보다.

“저는 일이 바빠서…….”

내가 정중히 거절하려 하니, 장내의 개미들이 놀란 눈으로 날 쳐다봤다.

“다크… 일하고 있었어?”

일리아나의 말에 살짝 충격을 받았다.

“그럼 내가 놀고 있는 거로 보였나요?”

장로들이 모두 함께 고개를 끄덕였고, 일리아나가 덧붙여 말했다.

“무덤 관리는 고블린이 하고 있고, 사냥은 피어레스가 맡고, 너는 간부들이랑 수다나 떨다가 심심해지면 둥지 안을 배회하다가 산란방에 놀러 오잖아.”

“…….”

나의 노고를 알아주지 않는 개미들의 태도에 살짝 슬퍼지려 했지만, 원래 감정이 옅은데다가 공허의 마력이 슬픔을 모두 먹어 치웠는지 아무런 감정이 일지 않았다.

“그래도 전…….”

거절하려는 나를 케어가 부드럽게 설득했다.

“다크야. 지금 어린 개미들은 널 할 일도 없는 장로라며 불쌍히 생각한단다. 장로 체면도 생각해야 하니 그만 뒹굴고 공주들을 보살펴 주면 안 되겠느냐?”

명령조로 말했다면 거절했을 테지만, 여왕인 케어가 이렇게까지 부탁하니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러죠, 뭐.”

승낙은 했으나, 대충 몇 마리 데리고 있을 생각이었다.

며칠 후, 나는 생각을 바꿔야 했다.

‘공주들이 죽어 가고 있어.’

장로의 교육과 보호를 받지 못한 공주는 개미들의 시중을 받지 못해 죽어 가고 있었다.

이대론 기껏 태어난 공주들이 결혼 비행이 오기 전에 떼죽음 당하게 생겼다.

공주들의 떼죽음을 지켜볼지, 이익이 없는 공주 육성에 참여할지 선택의 기로에 선 나는…….

세 번째 선택지를 만들기로 했다.

‘공주 육성으로 이익을 극대화해 보자.’

나는 지하 3층 중앙 통로에서 간부들과 부하들을 소집했다.

“세크리, 공주들을 데려와.”

“몇 마리나 데려오면 될까요?”

“보호받지 못한 공주 전부.”

“네?”

“전부 데려와.”

중앙 통로에 보호액조차 발려 있지 않은 꼬질꼬질한 공주 500마리가 모였다.

“듬뿍 먹이고, 보호액을 발라 줘.”

세크리가 데려온 빅 워커들이 공주들을 먹이고 닦기 시작했다.

“9장로님? 저희한테 뭘 가르쳐 주실 건가요?”

배불리 먹은 공주 개미들이 재잘거리며 내게 뭘 가르쳐 줄 건지 물어봤다.

“너희들의 생존에 꼭 필요한 걸 가르치려고 한다.”

“그게 뭐죠?”

난 베슬리 위에 올라서서 장내를 훑어봤다.

나의 교육에 관심을 가졌는지, 케어가 중앙 통로 입구 부근에서 날 지켜보고 있었다.

“주목!”

장내의 시선을 집중시킨 나는 공주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에게 무엇이 필요할지 고민해 봤다.”

케어가 장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게 보였다.

“무력? 그런 건 포식자들 앞에선 쓸모없다.”

그러나 나의 말이 이어질수록 케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지혜, 그런 건 써먹기 전에 포식자의 먹이로 전락하겠지.”

공주들이 웅성거렸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고 계속했다.

“좋은 장소를 찾아내는 감각? 너희가 찾았을 정도면 절대 좋은 장소가 아니다! 땅을 파는 능력? 땅속에 숨는다고 포식자들이 못 찾을 것 같나?”

나는 공주들에게 현실을 알려 줬다.

“너희들이 무엇을 배우든 결혼 비행이 끝나면 포식자들의 한 끼 식사에 지나지 않는다!”

현실을 알게 된 공주들이 얼어붙자, 케어가 염화를 보냈다.

[다크여, 네가 생각 없이 그런 말을 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단다. 그러니 이쯤에서 멈추고 교육의 주제를 알려 주면 좋겠구나.]

나는 케어에게 고개를 끄덕이곤 공주들에게 말했다.

“알려 주마. 내가 너희들에게 무엇을 가르칠지.”

공주 중 하나가 물었다.

“그걸 배우면 살아남을 수 있는 건가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모두 살아남을 길은 없다.”

실망하려는 공주들에게 말했다.

“하지만, 이걸 알게 되면 너희 중 대다수는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다.”

나는 공주들에게 선택을 강요했다.

“천운에 기대어 생존할 생각이라면 지금 바로 다른 장로를 찾아가라. 내가 특별히 너희를 받아들이도록 말해 두겠다.”

당연히 모든 공주가 남아 나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알려 주마! 무한 경쟁 사회에서 치트키로 여겨지는 유서 깊은 비결을!”

이어진 나의 말에 케어가 비틀거리며 퇴장했고, 공주들은 불신 가득한 페로몬을 뿜었다.

그리고 다른 장로를 찾아 떠나는 공주들이 속출했다.

무한자원 개미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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