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날아오르는 공주들
어느 사회나 치열한 경쟁이 있다.
그곳에는 언제나 치트키로 존재하는 비결이 있었다.
그건 바로…….
“인맥이다!”
낙하산이 괜히 낙하산인가?
학연, 지연, 혈연으로 똘똘 뭉쳐 있다면 뭐가 됐든 되는 게 사회였다.
지인들의 삶만 봐도 그랬다.
30대가 넘으니 결국 집안 따라, 친구 따라 사회적 성취가 갈렸다.
나 또한 혼자 잘나서 성공할 수 있던 게 아니다.
받쳐 주는 집안이 있었고, 친구가 있었으며, 사회에서도 충분한 인맥을 다져 역량을 키웠다.
형성된 인맥이 다양한 정보와 기회를 제공해 주니, 노력 이상의 결과가 나왔던 것이다.
“즉, 너희들이 둥지에서 갈고 닦아야 할 건 인맥이다!”
장내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케어는 황당해하며 떠나갔고, 공주들도 하나둘 이탈했다.
100마리 정도의 공주가 떠나가고, 남은 공주들이 내게 다른 장로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해 왔다.
사전에 말해 둔 게 있어서 다른 장로에게 보내 주기로 했다.
“세크리, 무력을 원하는 공주를 포메온, 제르다코, 블러리에게 데려가 줘.”
무투파 장로에게 맡기면 원하는 무력을 갈고 닦을 수 있을 것이고.
“지식을 원한다면 일리아나, 트라이에게.”
지력 하면 워커맨이니, 일리아나와 트라이에게 맡기도록 했다.
통솔 페로몬에 재능이 있으면 하이 워커 언더리페와 캐리에게 맡겼고, 매력적인 페로몬을 가진 공주는 하이 팩토리 네트리에게 맡겼다.
하이 워커와 하이 팩토리.
각각 지휘와 생산에 특화돼 있고, 팩토리 계열은 매력적인 페로몬을 갖추고 있으니…….
‘알아서들 잘 가르치겠지.’
떠날 공주를 모두 떠나보내니, 100마리가 남았다.
이들은 기본적인 능력치가 낮아 다른 장로들에게 퇴짜를 맞은 공주들이었다.
갈 곳이 없으니 보호라도 받기 위해 있는 것.
‘너희들은 운이 좋아.’
개미족의 습성이든, 숲의 생태든, 나와는 관계없다.
“자… 그럼, 우리 함께 인맥을 다져 보자.”
유전자에 박힌 습성을 뜯어고치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그들을 살려서 써먹을 생각이었다.
지능이 높은 케어와 일리아나조차 인맥이 무엇인지 왜 필요한지를 몰랐다.
당연하다.
그들에게 있어 군체원을 제외한 모든 존재는 식량이다.
가끔 식량과 공생하기도 하고 경쟁하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식량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식량과 친분을 형성하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요구였다.
‘인맥을 이해시키기가 이렇게 힘들 줄이야.’
개미족들의 눈높이에 맞춰 인맥을 해석해 줬다.
“잠재적 식량과 우호 관계를 폭넓게 맺는 게 인맥이야. 잘 형성된 인맥은 더 많은 식량을 확보하는 데 도움을 주지. 협력 관계는 아주 다양한 형태로 존재해.”
군체 간에 상하 관계나 동맹 관계를 맺어 상생한다거나, 꿀벌족과 거래 관계를 맺어 안정적인 꿀 수급처를 만든다거나, 갑각충과 불가침 조약을 맺어 영역을 확보하고 산란처를 제공해 굼벵이 영양을 얻는다거나…….
“혼자서 해낼 수 없는 걸 관계를 통해 얻어 내는 거지.”
이해가 부족한 공주들은 내 말을 그리 신뢰하지 않았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교육이란 말이지…….’
북한이든 중국이든 독재 국가에서 사는 사람들은 의외로 행복하게 잘 지냈다.
그들은 의무교육을 세뇌의 수단으로 써먹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의무교육에선 공부를 통해 형성되는 사회적 계급에 대해 주입받고, 일류대에 들어가면 자신이 들어간 대학이 얼마나 대단한 대학인지 주입받으며 군대에 가면 군인 정신을 주입받는다.
회사에 들어가도 교육과정이란 명목 하에 회사 내의 상하 관계와 룰을 주입받는데…….
이처럼 우린 태어나서 무수히 많은 개념을 주입받아 인격이라는 걸 갖추게 된다.
환경에 의해 만들어진 자신.
그걸 깨달은 사람 중에 일부는 지금의 나는 정말 나인가? 같은 의문을 품고 해답을 찾으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처럼 이를 어떻게 활용할지 연구하는 사람도 있다.
‘회사 규모가 작을 때는 채용과 교육도 담당했지. 나중에는 교육 자료를 만들어 넘겼지만.’
무수히 많은 신입 직원을 교육해 본 나는 백지와도 같은 공주들의 사고방식 정도는 뜯어고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럼 수업을 시작하겠다.”
나는 공주들에게 둥지의 상위종에게 인사하며 다니게 했고, 동기들과 조를 이루게 하여 친하게 지내게 했다.
“인사만큼 쉽게 우호 관계를 보이는 수단은 없다. 상위종들에게 잘 보일수록 떨어질 콩고물이 많을 테니, 무조건 더듬이 인사부터 해라!”
간혹 수업을 거부하는 녀석들도 있었지만, 100마리를 교육하는 만큼 소수의 낙오자까지 챙길 순 없었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
그렇지 않다.
이는 선택과 집중의 영역이었다.
따라오지 못하는 공주를 버림으로써 나머지 공주들에게 자원을 집중할 수 있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너희 다섯 마리는 결비 후에도 이웃 관계를 유지하며 서로를 도와라!”
“그럼 영역을 넓히기도 힘들고, 먹이 경쟁도…….”
“과거, 우리는 말벌족에게 밀린 적이 있었다. 놈들이 강해서가 아니었지.”
나는 말벌족 연합체를 사례로 들어 관계의 중요성을 알려 줬다.
“너희도 뭉쳐라. 뭉치면 혼자서 이기지 못할 적도 쉽게 물리칠 수 있다.”
“…….”
다른 장로들이 하루에 반나절 정도만 가르치는 반면, 나는 열다섯 명의 간부와 돌아가며 공주들을 가르쳤다.
간부들은 각자의 특기를 공주들에게 주입했고, 나는 주로 정신 개조를 담당했다.
“강자에겐 숙이고 약자는 밟아라!”
“여기 모여 있는 공주 외에도 많은 동료를 만들어라!”
“공주끼리 전략을 공유하고, 연합을 형성해라!”
“연합끼리는 전략을 공유하고, 충돌을 피해라!”
“강한 군체가 옆에 있으면, 하위 군체가 되어 빌붙어라!”
“약한 군체가 있다면, 우호 관계를 형성한 이웃들과 함께 쳐라!”
“내가 심어 준 행동 지침만 잘 따른다면, 어엿한 군체의 여왕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스파르타식 교육에 견디지 못한 공주들이 탈주하기도 했지만, 나의 알찬 교육을 받아 보고자 찾아오는 공주도 많았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자 내가 맡은 공주들은 정치력 만렙에 지력과 무력도 뒤처지지 않는 엘리트 공주가 돼 있었다.
‘슬슬 기본은 된 것 같아.’
수개미들이 태어나기 시작했고, 조만간 결혼 비행이 시작된다는 걸 감지한 나는 영역 변두리에 신여왕들이 안착할 수 있는 둥지를 무수히 마련해 뒀다.
이것으로 결혼 비행 후의 생존율을 0에서 1로 끌어올려 준 것이지만, 그것만으로 이들이 군체의 여왕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한 마리의 여왕이 군체로 거듭나기 위해선 무수히 많은 위험이 존재한다.
그 모든 위험을 제거해 줄 순 없으니, 식량 치트키 정도만 알려 줬다.
“머쉬파, 버섯 종균은 모두 나눠 줬어?”
“네. 모두 나눠 줬고, 재배하는 방법도 알려 줬어요.”
“잘했어.”
내게서 제대로 배운 공주들은 자신들의 연합체를 꾸려 가며 나와의 친분을 다지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우기가 끝나고 갑각충의 산란 시기와 사탕수수의 수확 시기가 맞물릴 무렵, 마력이 요동치자 개미족의 결혼 비행이 시작됐다.
“다크 장로님, 잊지 않을게요. 그동안 고마웠어요.”
“가르침, 잊지 않을게요.”
“꼭 성공해서 인사드릴게요.”
마지막까지 내게 깍듯한 공주들에게는 특별한 선물을 하나씩 줬다.
“이 페로몬 표식을 기억해 둬.”
“이건…….”
“내가 준비해 둔 최고의 장소 중 하나야. 그곳에 숨어서 군체를 키워 봐.”
“…감사합니다. 이 은혜 잊지 않을게요.”
“은혜는 잊어도 되는데, 우리 군체를 공격했다간 싹 쓸린다는 것만 알아 둬.”
“네…….”
공주와 수개미가 나무 위로 올라가 비행을 준비했다.
몇몇 수개미가 같은 둥지에서 나온 공주에게 추근거리자, 빅 워커들이 수개미를 떼어내 다른 나무 위로 보냈다.
공주와 수개미들이 날아올랐다.
다른 영역에서도 개미들이 무수히 날아올라 일대를 검게 물들였다.
우리 둥지에서만 약 1,000마리가 넘는 공주와 2,000마리가 넘는 수개미가 결혼 비행에 나섰고, 다른 영역에서도 만만치 않은 수가 날아올랐다.
공주들은 하늘에서 여러 수개미와 맺어지고, 충분한 정자를 획득하면 지상으로 내려와 빅 퀸으로 진화한다.
일회용 정자 셔틀이라 할 수 있는 수개미의 생식기는 짝지기 도중 터졌고, 그로 인해 즉사하여 땅에 추락했다.
‘워커로 태어나 정말 다행이야.’
이날만큼은 고자가 된 현생에 감사할 수 있었다.
숲의 포식자들의 뷔페 시간이 왔다.
하늘에는 거대한 새들이 날아다니며 공주와 수개미를 포식했고, 지상에서도 식량 파티가 열렸다.
모든 종족이 싸우지 않아도 배불리 먹고 즐길 수 있는 날이었지만, 나는 한 명이라도 더 많은 공주가 살아남길 바라며 궁기병을 이끌고 포식자들의 사냥에 나섰다.
“50기씩 여섯 개 부대로 찢어져 신여왕들의 위협 요소를 제거해라!”
“네!”
궁기병의 장점은 뚜벅이를 상대로 일방적인 타격이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끝났군. 많이들 살았으면 좋겠어.”
결혼 비행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날이 추워졌다.
사냥 개미들이 복귀하면서 각 전선의 성과를 듣게 됐다.
메가피르와 게르피아의 울트라 부대.
카이제르, 네아피코, 페르디코, 크락세스의 자이언트 부대.
이들은 홉 고블린들이 이끄는 고블린 군단을 압도했고, 고블린 주술사 부대마저 함정에 빠트려 처리했다.
물량 차이로 조금씩 영역이 줄어들 무렵, 내 식고문에서 힌트를 얻은 건지 고블린 산맥 인근의 개미족을 협박하여 병력을 보충해 싸웠다고 한다.
“고블린과의 전투는 정말 끝이 없더군.”
오랜 전투로 피해가 누적되긴 했지만, 그들이 학살한 고블린에 비하면 정말 적은 피해였다.
‘게르피아가 울트라치곤 머리가 돌아가는걸.’
무투파는 모두 돌머리인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게 증명된 사례였다.
서쪽 전선에도 꽤 많은 영양을 확보하긴 했지만, 고블린은 하급 영양이었고, 자이언트 고블린, 고블린 주술사, 고블린 라이더, 고블린 사제, 홉 고블린 등은 중급 영양이라 상급 영양의 확보는 없었다.
올해 확보한 상급 영양은 산란처에서 죽은 갑각충 영양과 꿀벌족과의 거래로 얻은 로열젤리가 다였다.
서쪽 전선의 부대장들이 1등 공로자로 인정받아 상급 영양을 분배받았고, 지원 나간 의료 개미들도 2등 공로자로 인정받았다.
동쪽의 아카시아 숲에서 사냥한 게아, 네아, 데아, 메르, 베르의 기병대는 무장한 인간 무리와 접전이 있었고, 희귀한 영양을 확보한 공로로 2등 공로자가 됐다.
‘인간들이라…….’
아카시아 숲 북쪽은 인간들의 영역과 맞닿아 있어 충돌은 불가피했다.
게아가 가져온 인간들의 무장을 확인해 보니, 주로 가죽 방어구와 철제 무기를 쓰는 듯했다.
‘무장으로 봤을 때, 용병들이 넘어온 거야.’
아직 이쪽에는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인간들은 꾸준히 넘어와 꿀을 탐할 터였다.
‘대비는 해 두는 게 좋겠지.’
나는 활과 화살의 생산 체계를 안정시킨 뒤, 기존 기의병 모두를 궁기병으로 업그레이드하여 아카시아 숲 방비를 강화할 생각이었다.
남쪽의 거미족 영역 부근에서 사냥한 자이언트 부대들은 피해가 컸기에 5등 공로로 치부됐다.
북쪽에서 활약한 피어레스, 제르피아, 헤르피아의 궁기병과 포룸의 포병대도 사냥 실적은 좋았지만, 대규모 전투가 없었던 터라 3등 공로에 그쳤다.
전공자에 대한 분배가 끝나고, 겨울을 맞이했다.
마의 축복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나, 여왕들은 정상적인 산란 체계로 돌아갔다.
페르가 매달 300개의 알을 낳았고, 포스가 50개, 케어가 50개의 알을 낳았다.
총합 400개.
솔져가 태어나는 비율은 해마다 다르지만, 지금은 5%로 급증한 상태.
그리 좋은 현상은 아니었지만, 마의 축복 기간이 끝나면 1~2%대로 조정될 터였다.
허니 퀸들이 지내는 지하 6층 환경을 개선해 주기 위해 찾아갔다가 급변한 그곳을 보곤 깜짝 놀랐다.
‘1년 사이에 어떻게 된 거지?’
물길과 흙바닥만 있던 그곳이 어엿한 숲이 돼 있었고, 꽃으로 가득한 생태계는 자이언트 허니비들과 꿀벌들의 낙원이 돼 있었다.
“다크 님, 어서 오세요.”
허니 퀸의 대표인 아르모네의 대접을 받게 된 나는 그녀에게서 자초지종을 듣게 됐다.
‘식물의 성장을 촉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구나.’
페어리 워커에게도 비슷한 능력이 있어 농장의 생산량을 늘렸는데, 숲을 가꾸는 데는 꿀벌족이 한 수 위인 것 같았다.
아르모네를 통해 설탕수를 꿀로 교환할 수 있게 되면서 워커맨의 발생률이 하드 워커 발생률을 따라잡았다.
강철 도구가 보급되기 전이었다면 갖은 비난이 쏟아졌겠지만, 지금은 일꾼이 부족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정도였다.
지하 7층은 대나무 숲으로 변모해 있었고, 뽕나무 숲도 울창해졌다.
그동안 쌓인 복합궁 제작 노하우를 살려 목재 조직이 파괴되지 않을 정도의 고온 저습한 건조실을 만들었고, 목재의 모양을 잡는 시설도 갖춰졌다.
대나무 철촉 화살의 대량 생산 체계도 갖췄기에 궁기병을 더 늘리고 싶었지만, 활 제작에 필요한 거미줄이 떨어졌다.
‘어쩌지?’
가끔 인간 무리와 전투를 벌이는 게아, 네아, 데아, 메르, 베르에게 복합 단궁을 보급해 주기로 했는데…….
겨울이라 거미줄을 구해올 수도 없을 뿐더러, 설령 구해 온다고 해도 거미 여인의 것처럼 점성이 없으며 질긴 거미줄은 구할 수 없을 듯했다.
결국 대체품을 찾아야 해서 거대 누에고치에서 명주실을 뽑기로 했다.
‘물레부터 만들어야겠군.’
물레는 어떻게 만들고, 또 생산 공정을 어떻게 해야 효율적일지 고민할 때, 지상에서 발생한 진동이 둥지에 전해졌다.
한참이나 이어진 진동에 개미들이 불안에 떨었고, 장로 회의에 소집된 나는 그 정체를 듣게 됐다.
“고블린들에게 지상이 점령당한 거야.”
서쪽 영역을 지키던 부대가 자리를 비웠다고 바로 몰려오다니, 고블린은 정말 끝이 없었다.
“항상 이맘때면 놈들이 불어나거든.”
일리아나는 결혼 비행이 끝나면 꼭 있는 일이라고 했다.
마의 축복은 약 5년마다 발생한다고 하니…….
‘5년에 한 번 있는 정기 퀘스트 같은 거군.’
우린 내년 봄에 총력을 기울여 고블린을 몰아내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 각 부대장급 솔져들은 겨울 동안 병력을 보충하기로 했고, 나 또한 최강 병종인 궁기병의 규모를 키워 선보일 생각이었다.
‘고블린 진화체들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단 말이지.’
이어진 회의에서 겨울 공사 이야기가 나왔고, 나의 주장으로 이번 공사 방향은 둥지 확장이 아닌 영역 변두리로 이어지는 길을 뚫기로 했다.
이는 영역 외곽의 보급로를 견고히 하고, 내부로 들어온 고블린을 섬멸하기 위한 공사였다.무한자원 개미군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