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자원 개미군단-56화 (55/189)

56화. 데카이저, 오그르트

고블린 산맥은 넓다.

그곳에는 수많은 고블린 부락이 먹이경쟁을 하며 살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부락에서 새끼 고블린들이 태어났다.

그중 한 명에게는 데카이저란 이름이 주어졌는데…….

데카이저는 형제들보다 월등히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고블린 부락은 언제나 먹이와 여자가 부족했다.

“식량과 여자를 잡아 온다! 데카이저, 너도 간다!”

그래서 고블린들은 매일같이 약탈에 나서야 했고, 죽은 동료와 죽인 사냥감의 고기로 배를 채웠다.

죽은 형제의 고기로 배를 채우던 어느 날, 데카이저는 자신 또한 언젠가 누군가에게 먹힐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지? 아니지…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는 거지?’

포식자로 살아남기 위해선 강해져야 한다는 걸 깨달은 그는 수련을 시작했다.

“뭐 하는 거냐, 데카이저?”

“몽둥이 휘두른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여자들 잡아 둔 곳에 가자.”

“싫다. 나는 몽둥이 휘두른다.”

점차 부락이 커지자 필연적으로 다른 부락과 싸워야 했고, 승리를 거두자 더 큰 부락과의 전쟁으로 이어졌다.

고블린치고 강했던 그는 전쟁에서 전공을 쌓아 갔고, 몇 년이 흐르자 자이언트 고블린으로 진화할 수 있었다.

자이언트 워커와 동급으로 여겨지는 신장 1.8m의 자이언트 고블린.

데카이저는 꾸준한 수련으로 강해져 왔기에 다른 자이언트 고블린들을 압도했다.

인근의 고블린들 사이에서 그의 무력이 알려지자, 그에게 대항하려는 부락이 줄었다.

“여자를 전부 바칠 테니, 살려다오.”

여자는 잡아가 번식의 도구로 쓰고 남자는 모두 먹어 치우는 게 오랜 세월 고블린에게 내려온 방식이었지만, 그날 데카이저는 고블린들의 불문율을 깼다.

“그럼 내게 충성해라.”

“알겠다. 충성하겠다.”

“이제 넌 내 부하다.”

그는 주변 부락을 복속하며 다녔고, 고블린 인재들을 찾아냈다.

“이건… 돌도 아니고 나무도 아니군. 무엇이지.”

“역시 눈썰미가 좋으시군요. 이건 지옥의 화염으로 피의 돌을 녹여 만들어 낸 특별한 단검입니다. 부락에서도 저만이 만들 수 있죠.”

홉 고블린 대장장이가 말한 지옥의 화염은 석탄으로 피운 불을 의미했고, 피의 돌은 산화철, 즉 철광석이었다.

“이걸 만들 수 있는 고블린의 숫자를 늘려라.”

“그, 그건…….”

“불복하면 널 죽이고 다른 녀석을 찾아보겠다.”

“…알겠습니다. 어떻게든 저와 같은 수준의 대장장이를 늘려 보겠습니다.”

철기를 확보한 데카이저의 군세는 무패 전설을 쌓아 갔다.

시간이 흘러 더욱 강해진 그는 자이언트 홉 고블린으로 진화했다.

신장 2.5m인 그는 산맥에서 무적에 가까운 신위를 보이며 영향력을 넓혀 갔다.

“따르겠다면 살려 주마. 그렇지 않으면 몰살이다!”

시간이 흘러 데카이저는 고블린 산맥의 모든 부락을 복속시킬 수 있었다.

“부락끼리의 전쟁을 금한다!”

고블린 산맥이 통일되며 평화가 찾아온 듯했지만 그것도 잠시, 전쟁이 없으니 인구가 늘었고, 굶주린 고블린들은 참지 못해 산맥 밖으로 뛰쳐나갔다.

“데카이저! 네가 가져다준 건 평화가 아니야! 생지옥이지!”

“고블린은 고블린답게 살아야 해! 우리에게 전쟁을 허락해 줘!”

“여긴 땅을 파 봐야 그놈의 검은 돌이랑 피의 돌밖에 없다고! 돌로 무기는 만들어도 배는 채울 수 없어!”

“도대체 뭣 때문에 우리보고 참으라는 거야? 넌 고자라 잘 모르겠지만, 우리에겐 여자가 필요해! 더 많은 여자가!”

퍼억!

데카이저는 선을 넘은 고블린들을 그대로 으깨 버렸다.

‘내가 원한 건 이런 게 아니었어. 나는 그저 평화를 원했다.’

데카이저가 고블린들의 혈기를 억누르며 산맥을 어떻게 통치할지 고민할 무렵, 마의 축복이 시작됐다.

그때 수많은 고블린이 상위종으로 진화했고, 데카이저도 고블린 로드로 진화할 수 있었다.

비록 몸집은 1.8m 정도로 작아졌지만, 오밀조밀한 근육은 이전보다 더욱 강한 힘을 품고 있었다.

“이게, 고블린 로드인 나의 힘인가.”

오거 오그르트, 갑각왕 헤라클레스, 거미왕 나르본드.

“그들과도 자웅을 겨를 수 있는 힘이야.”

데카이저는 당장이라도 숲의 최강자들과 맞붙어 보고 싶었지만, 상위종이 되어 통제 불능이 돼 버린 고블린들을 통치하기 위해 참아야 했다.

수많은 고블린이 데카이저의 말을 무시하고 동쪽으로 흘러갔고, 그들은 개미족과 부딪혀 죽어 갔다.

인구가 줄어드니, 빡빡하던 산맥에 조금의 여유가 생겼다.

순간 데카이저는 깨달았다.

“검은 돌과 피의 돌이 굴러다니는 이곳은 우리에게 너무도 좁다. 그러니 식량도 여자도 부족했던 것이지. 그래… 밖으로 나가자! 산맥 밖에서 진정한 평화를 찾는 거다!”

데카이저는 영역을 넓히기 위한 원정군을 꾸리려 했지만, 그러기엔 군량이 부족했다.

때마침 개미족의 결혼 비행이 시작된 덕분에 원정에 필요한 군량을 확보할 수 있었다.

“참을 만큼 참았다. 그러니 더는 참으라고 하지 않겠다. 가라! 가서 하고 싶은 대로 해라!”

갑작스럽게 변한 데카이저의 방침에 상위종 고블린들은 잠시 의문을 품었지만, 이어지는 말에 흥분하며 함성을 질렀다.

“교배가 가능한 종족의 여자는 모두 번식의 도구로 삼고, 그렇지 않은 건 모두 먹어 치워라! 우리의 본능대로 힘을 키우고 영역을 넓히자!”

“와아아아!”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는 겨울, 산맥에 꽁꽁 갇혀 있던 정예 고블린들이 밖으로 뻗어 가기 시작했다.

그들의 일부는 동쪽으로 진군하여 오크나무 숲을 점령했고, 또 다른 일부는 동북 방향으로 진군하여 인간들의 영역에 발을 들였다.

인간들도 세 개의 달이 뜬 것을 보고 큰 마을을 중심으로 뭉쳐 목책을 세우는 등, 나름대로 대비를 했다.

그러나 용병까지 고용해 마을 방어에 나섰음에도, 예상보다 훨씬 많은 고블린 군세가 밀려오자 당황을 금치 못했다.

“2,000마리는 넘을 거야!”

“…자이언트 고블린도 있어.”

“저건 고블린 주술사 부대야!”

“라이더들도 있다!”

“놈들이 철기로 무장했어!”

약 100명의 용병과 300명의 마을 남자가 2,000의 고블린 군세를 막아야 하는 상황.

튼튼한 목책이 있다지만, 승산이 보이지 않자 용병들이 제일 먼저 도주했다.

“이런 비겁한 놈들!”

“뭐 해! 너도 따라와!”

“그, 그렇지만…….”

잠시 망설이던 남자들도 용병의 뒷모습을 보고 뒤따라 도망쳤고, 버려진 노약자들은 고블린들의 자원이 됐다.

“살려 줘!”

“흑흑…….”

인간 마을들을 점령해 가며 전진한 고블린 군단은 성벽에 가로막혔다.

“돌격! 문을 뚫어라! 저 안에는 여자와 식량이 가득하다!”

고블린들은 성벽을 향해 돌진했고, 화살 세례를 뚫고 성벽에 도달했지만, 튼튼한 문을 부수지 못해 후퇴해야 했다.

물러나는 그들을 향해 통일성 없는 장비로 무장한 기병 200기와 보병 1,000명이 추격하여 고블린들을 학살했다.

“메르디크 준남작님이 홉 고블린 지휘관을 잡았다!”

“와!!”

병사들은 마의 축복을 무사히 넘겼다고 기뻐했으나, 이는 1차 침공에 불과했고, 연이은 고블린의 침공에 병사들은 막대한 피해를 입고서 성안에 몸을 숨겼다.

이러한 전투는 비단 한 곳에서 벌어진 게 아니었고, 클라우드 왕국 남부에 자리한 영지라면 모두가 겪는 공통된 일이었다.

그러던 중 기온이 떨어지며 고블린들이 물러나기 시작했다.

물러난 고블린들은 오크나무 숲에 움막을 지었고, 잡아 온 인간들을 즐기고 맛보며 겨울을 보냈다.

여자와 땅을 확보한 고블린들의 번식력은 엄청났다.

날씨가 풀리자 겨울 동안 충분히 불어난 고블린들은 다시 여자와 먹을 것이 부족해졌다.

이런 상황을 예견한 데카이저는 고블린들에게 군을 일으키게 했다.

“군을 정비해라! 홉 고블린들은 100인대를 이끌고 군량을 준비하라! 군량이 준비되는 대로 성을 점령한다!”

성 하나만 점령해도 그 안에는 수천의 여자와 식량이 있으니, 그걸로 한 해는 풍족할 터였다.

100인대, 1,000인대의 체계가 잡힌 고블린 군단은 다시 한번 결혼 비행으로 늘어난 소규모 개미족을 사냥하며 군량을 비축하려 했는데, 예상치 못한 대군세를 맞닥뜨리며 계획에 차질을 빚게 되었다.

“울트라와 하드 워커들이다!”

“작년부터 산맥으로 침입해 오던 녀석들이야!”

고블린들은 3차 진화종 개미족에게 피지컬로 압도당했으나, 약탈에 이골이 난 만큼 물러서지 않았다.

“겁먹지 마라! 달라붙어서 외골격의 틈을 노리면 충분히 죽일 수 있다! 철 단검을 써라!”

홉 고블린들이 적절한 지휘로 개미족을 몰아붙였다.

개미족들을 둥지 안으로 몰아넣은 홉 고블린들은 고민했다.

“데카이저 님이 올 때까지 놈들부터 토벌한다!”

고블린 군단 일부가 페포케 군체로 골머리 앓을 때, 산맥에 남아 있던 데카이저와 최정예 군단은 서진하여 오거와 대치했다.

5m의 오거와 1.8m의 고블린 로드.

거인과 꼬마가 마주한 듯한 풍경이었지만, 두 존재가 마주하자 공기가 요동쳤다.

“오거로 진화한 자이언트 홉 고블린은 봤지만, 로드로 진화한 고블린은 처음 보는군.”

오거가 거대한 몽둥이를 들어 올리며 말하자, 데카이저는 옅은 초록빛 기운을 두른 대검을 늘어뜨리며 물었다.

“네놈도 자이언트 홉 고블린에서 진화했나?”

씨익.

오거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아니, 난 순혈 오거… 오그르트다!”

쾅!

두 존재가 격돌하자 숲이 흔들렸다.

* * *

전생의 나는 회사의 돈줄을 쥐고 있어 수많은 거래처를 관리해야 했고, 새로운 거래처를 뚫기도 했다.

그 와중에 사업차 중국 항저우의 실크 공장을 방문한 적도 있었는데.

‘기획 상품의 재료로 번데기를 수입한 적이 있었지.’

그곳에서 실크로 만들어지는 다양한 제품의 생산 공정을 참관할 수 있었다.

그들에게 있어 번데기는 제품의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골칫거리였기에 내가 작성한 물품 공급 계약서는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별 탈 없이 계약이 체결되고 상쾌한 마음으로 공장을 한 번 더 둘러보게 된 나는 번데기가 매우 깨끗한 식품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 후로 가끔 개미들에게 특식으로 번데기를 줬고, 누에고치의 동영상을 찾아보기도 했는데…….

지금 둥지에서 뽕나무와 누에고치가 자라는 만큼, 그때의 경험이 도움될 듯했다.

지금 내게는 복합 단궁의 재료인 실이 필요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방적기가 필요했다.

첨단 방적기를 접해 본 나였지만, 지금의 기술력으로 그런 걸 만들 수 없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선사시대부터 실잣기에 쓰이는 물레를 개량해 쓸 생각이었다.

‘물레에서 발전한 형태가 제니 방적기였던가?’

기존에는 한 가닥의 실을 뽑던 물레에서 여덟 가닥의 실을 동시에 뽑을 수 있도록 개량된 물레가 제니 방적기다.

자세한 구조는 기억나지 않지만, 일단 많은 실을 동시에 뽑을 수 있도록 개량할 수 있다는 결과를 알았으니 어떻게든 만들어 낼 수 있을 듯했다.

제니 방적기 이상의 효율을 원한다면 동력 부분을 개선해야 하는데…….

수력을 쓰려면 대공사가 필요하고, 증기 쪽도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간단한 증기기관이야 만들 수 있어. 문제는 에너지 효율이지.’

얼마나 크게 만들어야 하는지, 또 어느 정도의 목탄이 소모될지는 만들어 봐야 알 수 있을 터.

지금의 기술과 활용 가능한 재료들로는 증기기관의 에너지 효율을 기대하긴 힘들었다.

거기다 용광로가 가동되며 목탄의 수급이 빡빡한 상황이라 자원을 아껴야 했다.

‘그럼 페달 동력을 더한 제니 방적기 정도가 적당하겠어.’

동력 부분의 개선은 차차 진행하기로 한 나는 일단 당장에 쓸 수 있는 페달식 방적기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무한자원 개미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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