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방적기, 방직기, 재봉틀
“엔지, 일단 원시적인 물레부터 만들어 보자.”
“네!”
지하 5층 목공소에서 엔지와 함께 원시적인 물레를 만들어 봤다.
이론은 빠삭했지만, 막상 만들어 써 보니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한 번 운행해 봐야겠어.’
시범 운행을 위해 우선 누에고치를 끓는 물에 담그자 얇은 실이 풀리기 시작했고, 여러 가닥을 물레에 걸었다.
물레가 돌아가자 여러 가닥의 얇은 실이 하나로 꼬이더니 뽑혀 나왔다.
뽑힌 실은 나무 막대기에 감겨 완성품이 됐는데…….
문제는 실이 끊어지거나 뭉치는 경우였다.
‘실을 강화할 풀과 뭉치지 않도록 하는 분가루가 필요하겠어.’
강화용 풀은 개미족의 접착액을 물에 희석해서 썼고, 분가루는 루리아에게서 밀가루를 받아와 사용했다.
시행착오를 겪어 가며 성공적으로 실을 뽑았으나, 몇 가지 과제가 생겼다.
‘최적의 꼬임을 주기 위한 가닥의 수를 알아내면 품질을 올릴 수 있을 거야.’
실을 풀어내는 물의 온도도 연구해 보면 좋을 듯했다.
‘이거, 개미족만으로는 만들기 어렵겠는데…….’
물을 끓일 때 불을 다뤄야 하니, 열기 내성이 없는 개미족에겐 조금 가혹한 일이었다.
불 때우는 일은 고블린이나 인간에게 맡겨야 한다.
누구에게 맡길지 고민됐다.
일단 나는 목공소의 워커맨들을 소집하여 개량된 물레, 즉 방적기 제작에 들어갔다.
도전한 만큼 발전하는 게 기술인만큼 인력을 투입하여 다양한 도전을 해 봤고, 실패작이 쌓인 만큼 제작 기술도 발전했다.
시간이 흘러 여덟 가닥의 실이 동시에 뽑히는 페달식 방적기가 만들어졌다.
불을 지피는 일은 인간들이 돌아가며 맡기로 했다.
“실을 조금만 주신다면… 더 열심히 할게요.”
인간들은 임금으로 실뭉치를 원했다.
방적 일에 투입된 인간들은 명주실을 뽑아내는 방적기의 효율을 보곤 입을 다물지 못했다.
“헤…….”
일이 끝나고 명주실 뭉치 다섯 개를 주니, 인간들은 고개를 꾸벅 숙이곤 도망가듯 돌아갔다.
‘생각한 것보다 많이 줘서 당황했다는 표정이었어.’
이곳 인건비는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나중에 이곳 물가를 좀 더 연구해 봐야겠네.’
인간과 워커맨을 굴리니, 복합 단궁 제작에 쓰일 실은 금세 모였다.
“계속 생산하나요?”
“음… 누에고치를 버리긴 좀 그러니 계속 생산하자.”
창고를 따로 만들어 명주실 뭉치를 쌓아 놓았다.
‘나중에 쓸 일이 있겠지.’
명주실을 확보하면서 본격적인 복합 단궁 양산에 들어갈 수 있게 됐다.
‘내년까지 궁기병을 최대한 늘려 보자.’
오가는 길에 인간들이 명주실로 손수건을 만드는 모습을 보게 됐다.
그때는 무시하고 지나쳤는데, 며칠 후 루리아가 목재를 요청해 왔다.
“뭐하게?”
“그게… 천 짜기를 할 베틀이 필요해요.”
가죽은 넘치도록 많지만, 천이 없던 둥지.
그녀들에겐 천이 필요한 듯했다.
“베틀은 만들 줄 알아?”
“직접 만들어 본 적은 없지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흠…….”
베틀에 대한 건 책에서나 봤는데.
이곳 베틀이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궁금해진 나는 목재와 목공에 능한 워커맨 두 마리를 인간들에게 보내 줬다.
며칠 후, 베틀이 완성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지구의 것과 같은 형태려나?’
구경을 간 나는 인간들의 매우 들뜬 모습을 보게 됐다.
이윽고 그녀들은 돌아가며 천을 짜기 시작했다.
“천 짜기 싫어했다고 하지 않았어?”
“그렇긴 하지만… 천은 돈이나 마찬가지거든요.”
대한민국도 조선 때까지 무명으로 물물교환을 한 것처럼 이곳도 쿠퍼, 실버, 골드라는 화폐가 있으나 천, 가죽, 마석, 소금 같은 자원으로도 거래가 가능했다.
즉, 천은 실용적인 면에서도 뛰어나고, 화폐의 기능도 갖춘 셈.
다만, 그녀들이 만든 베틀에는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
‘효율이… 효율이 떨어져.’
천을 짜는 기본 원리는 교차하는 실들 사이에 실을 통과시킨 후 교차 위치를 바꿔 다시금 실을 통과시키는 행위를 반복하는 것인데.
이를 돕는 게 베틀이다.
물레가 방적기의 초기 형태이듯, 방직기(직조기)의 초기 형태는 베틀이라 할 수 있었다.
루리아가 워커맨들의 도움을 받아 만들어 낸 베틀은 매우 원시적인 형태였다.
‘기본 작용은 역사책에서 본 것과 같아.’
세로로 끼워진 날실과 가로로 오가는 씨실이 있다.
이곳의 베틀은 세로 실인 날실이 펼쳐지듯 끼워진 상태에서 날실 사이로 굵은 실(잉아)이 들어가 있었다.
베틀에 앉은 인간이 발로 장치를 밟으면 실판처럼 생긴 잉앗대가 위로 올라가고, 힘을 빼면 잉앗대가 내려왔다.
그러한 작용으로 잉아에 걸린 날실이 고정 날실의 위아래를 오갈 수 있었다.
‘원시적이지만 정교하게 만들어지긴 했어.’
내가 베틀에 관심을 가지자 말이 많고 호기심도 많은 비안느가 옆에 붙어 설명해 줬다.
“저건 씨실을 쉽게 통과시키기 위해 쓰는 북이에요.”
북은 씨실이 담긴 배 모양의 나무통이었다.
“저건 바디집이에요. 통과된 씨실을 치는 데 쓰여요.”
바디집이란 물건은 날실들이 한 가닥씩 통과된 나무틀로 날실들을 정돈하고 씨실을 당겨온 후 북이 지나갈 길을 만들어 주는 역할을 했다.
‘저건 천을 감아 내는 장치인가?’
천을 감아 내는 장치로 날실들을 당겨온 뒤, 천을 길게 짜낼 수 있는 듯한데.
‘꽤 머리를 썼네.’
베틀의 구조를 파악한 나는 한동안 천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봤다.
교차 된 날실에 북을 통과시키고, 나무틀을 당겼다 밀어낸 후, 발로 잉앗대를 움직이는 일련의 동작을 반복했다.
‘너무 욕심부렸어.’
천의 폭을 넓히기 위해 베틀을 크게 만든 듯한데, 인간들은 북을 통과시키는 것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좀 더 작게 만들면 두 배는 빠르게 짜낼 수 있는 건 알고 있어?”
나의 물음에 비안느가 답했다.
“네. 알고 있어요. 하지만 천도 같이 작아져서…….”
“그럼 천의 가치도 하락한다는 의미네.”
“다크 님은 그걸 어떻게 아신 거예요?”
폭이 큰 천일수록 만들기가 어렵고 쓰임이 좋으니, 높은 가치를 형성하는 건 당연했다.
“다크 님이 주신 실은 부드럽고 질겨서 좋아요. 이 정도면 귀족들에게도 팔릴 것 같은데…….”
“명주실이라는 거야. 그리고 너희가 만든 천은 비단이라 하고.”
“그렇군요. 이건 정말 좋은 거 같아요.”
거대 누에고치에서 뽑은 명주실은 인간들에게 있어 매우 진귀한 물건이었다.
‘숲에서도 뽕나무는 드물긴 했어.’
짜인 비단을 보물 다루듯 만져 보며 행복해하는 인간들을 보고 있자면 솔직히 조금 답답했지만, 이 또한 그녀들의 행복인 듯하니 존중해 주기로 했다.
“비단도 좋지만, 충분히 쉬면서 만들라고 해.”
“네~”
대답은 잘했지만, 비안느는 쉬지 않고 일할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비단이 쌓였고, 인간들의 눈 그늘은 짙어졌다.
“다크 님, 요즘 난방 상태가 안 좋은지 온도가 일정치가 못해요.”
세크리의 보고에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인간들이 너무 많은 일을 맡게 된 결과였다.
난방시설 관리, 명주실 생산, 이제는 비단 짜기까지…….
‘난감하군.’
당장 비단 짜기를 그만두게 할 수도 있지만, 넘쳐 나는 명주실을 처리하긴 해야 했고, 비단 쪼가리에 행복해하는 그녀들을 생각하면 몹시 고민됐다.
‘힘든 비단 짜기를 좋아하진 않을 테고, 결국 저 천의 부드러움이 좋은 거겠지? 그렇다면 비단만 쥐여 주면 되잖아!’
아무래도 희소한 자원인 인간의 집단 폐사를 막기 위해서는 방직기를 만들 필요가 있을 듯했다.
‘기본적으로 플라이 셔틀만 탑재해도 효율은 네 배 이상 증가할 거란 말이지.’
사람의 손으로 움직이던 북을 나무로 쳐내 반대 방향으로 보내 버리는 장치.
이를 플라이 셔틀, 혹은 나는 북이라 했다.
1733년 영국의 존 케이가 발명했고, 이로 인해 실이 부족해져 1764년 제니 방적기가 만들어졌다.
그 후 영국에선 방직기와 방적기가 경쟁하듯 개량됐다.
천이 남아도니 바느질 기계인 재봉틀에 관한 연구도 가속되는 건 당연한 일.
시간이 흘러 효율 다섯 배의 재봉틀이 보급됐고, 바늘 끝에 실이 달리며 효율 스무 배의 재봉틀이 등장했다.
이러한 역사를 알고 있으니, 방직기 제작에 도전해볼 생각이 든 것인데…….
그래서 엔지에게 플라잉 셔틀의 원리와 형태를 알려 주고 방직기를 만들게 했다.
‘왠지 이럴 때마다 엔지가 갈려 나가는 듯한 기분이네. 뭐, 개미니까 괜찮겠지?’
당연히 실패작이 무수히 나왔지만, 어려움에 부딪힐 때마다 더 많은 인력을 갈아 넣어 기술을 축적해 갔다.
결국, 축적된 기술은 혁신을 불러왔다.
플라잉 셔틀이 탑재된 방직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구조가 단순해졌어.’
인간들이 만든 것보다 두 배는 큰 천을 두 배 이상의 속도로 뽑아낼 수 있지만, 이조차 느리다고 느낀 나는 페달식으로 돌아가게끔 개량에 들어갔다.
슬슬 엔지도 기계공학의 기초를 깨달았는지 나의 도움 없이도 문제를 해결해 나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페달식으로 천을 만들어 내는 방직기가 완성됐다.
세팅된 방직기는 워커맨의 규격에 맞춰져 있어, 두 명의 워커맨이 양쪽에서 페달을 밟아 가동해야 했다.
이곳의 베틀로 스무 명이 생산해야 할 양을 두 마리의 워커맨만으로 생산하고 있으니, 효율은 열 배라 할 수 있었다.
생산 효율이 뛰어난 건 물론이고, 품질도 월등히 좋았다.
나는 생산된 비단을 이곳 규격에 맞게 접어서 보관하게끔 했다.
그러곤 인간들에게 비단 짜기를 중지시켰다.
“앞으로는 명주실을 가져오면 비단으로 바꿔 줄게.”
“정말요!”
대략적인 교환비는 5대 1.
“저도… 도울 일이 없을까요?”
어린 데이지를 포함해 인간들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일감을 요구해왔다.
나는 그런 그녀들에게 열처리해야 할 목재를 늘려 줬고, 숯의 생산량도 늘리게 했다.
시간이 흘러 비단을 얻게 된 인간들은 의복을 만들기 시작했다.
역시나 비효율적인 모습에 답답함을 느꼈다.
‘안 되겠다. 재봉틀까지 만들어야겠어.’
나는 그들 중 바느질을 제일 잘하는 줄리아를 목공소에 데려갔다.
“줄리아, 여기 엔지와 재봉틀을 만들어 줘야겠어.”
그곳에서 엔지를 소개해 주며 재봉틀의 작동 원리와 구조에 대해 가르쳤다.
“바늘 끝에 구멍을 내서 실이 끼워진 형태야. 실이 내려가면, 아래쪽엔 회전하는 장치가 있어. 바늘에 딸린 실은 회전 장치에 세팅된 실과 엮이면서 이렇게 매듭이 만들어지는 거야.”
재봉틀의 바늘이 찔렀다 나오면 내부 장치에 세팅된 실과 엮이고, 매듭이 지어져 한 칸 전진하게 되는 시스템이었다.
“동력은 밟는 힘으로 작동되도록 해 줘. 그래야 손이 자유로울 수 있으니까.”
내가 설명을 마치자 사냥꾼의 아내였던 줄리아가 당황해하며 물었다.
“다크 님, 전 무슨 말인지… 제가 뭘 해야 하는 거죠?”
개미족인 엔지도 알아듣는 걸 인간이 못 알아듣자 살짝 답답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지능 특화 개미들이 인간들보다 학습력 자체는 월등히 좋았다.
“넌 그냥… 만들어진 물건을 써 보고, 불편한 점을 이야기해 주면 돼.”
“그거라면…….”
며칠 후, 인간들의 신체에 맞는 재봉틀이 보급됐고, 인간들은 기존의 스무 배 효율로 옷을 만들 수 있게 됐다.
규격화를 통한 양산 공정까지 도입하면 효율을 더욱더 뻥튀기할 수 있지만, 팔 곳이 없다 보니 대량 생산이 필요한 건 아니었다.
‘흠…….’
나는 내 몸을 한번 훑어본 후, 워커맨 다섯 마리를 줄리아에게 붙여 재봉 기술을 배우게 했다.
‘외골격이 가려 준다지만, 언제까지 벗고 다닐 순 없지.’
가죽과 비단이 넘쳤다.
철도 생산되고 있다.
‘갑옷이라도 만들어 볼까?’
역사책에서 나온 두정갑 정도는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두정갑이 총알도 막는 동양 갑옷의 최종 테크라 했는데…….’
아쉽게도 기동력으로 승부를 봐야 하는 궁기병에겐 무거운 갑옷이 필요 없었다.
‘그냥 적당한 옷이나 보급하자.’
복합 단궁과 화살이 충분히 생산되는 동안, 나와 세크리는 영양과 진화의 관계성을 연구하며 자원 분배 체계를 마련했다.
무한자원 개미군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