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자원 개미군단-58화 (57/189)

58화. 고블린 디펜스

‘굳이 애벌레부터 고등급 영양을 먹일 필요는 없어.’

애벌레 때 최하급 영양인 지렁이를 충분히 먹이면 튼튼한 스몰 워커로 자랐고, 설탕수를 먹이면 똑똑한 스몰 워커가 됐다.

‘지렁이는 무력, 설탕수는 지력이야.’

버섯 영양은 그 둘을 함께 올려 줬고, 꾸준히 먹이니 미니 워커로 진화할 확률을 조금 높여 줬다.

‘하급 영양인 고블린 영양으로는 빅 워커를 효과적으로 늘릴 수 있어.’

빅 워커는 중급 영양인 굼벵이와 누에 번데기 영양을 통해 자이언트 워커로 진화할 수 있었고, 중급 영양인 꿀을 먹으면 스마트 워커로 진화했다.

‘갑각충이 꾸준히 찾아와 줘서 다행이야.’

무력이 강한 자이언트 워커에게 상급 영양인 갑각충을 먹이면 하드 워커로 진화했다.

스마트 워커는 꿀만 충분히 먹여도 워커맨으로 진화하지만, 상급 영양인 로열젤리를 먹이면 좀 더 쉽게 진화할 수 있었다.

중급 영양인 자이언트 킬러비 영양도 2차 진화에 큰 도움을 줬고, 킬러 퀸 영양은 3차 진화에 도움을 줬지만 진화의 방향성을 결정하진 않았다.

정리하자면 각 등급의 영양은 크게 세 분류로 나눌 수 있었다.

무력을 올려 주는 영양과 지력을 향상시키는 영양.

그리고 버섯, 고블린, 말벌족 영양처럼 성장 방향성을 특정하지 않는 영양.

그러한 이론을 토대로 영양 배급을 체계화하자 개미들의 성장 속도가 빨라졌고, 상위종 발생률도 높아졌다.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다.

‘꿀이 너무 많아.’

겨울임에도 허니 퀸인 아르모네가 꿀을 충분히 제공해 주고 있어 스마트 워커가 폭증했다.

스마트 불리기 작전을 실행할 때가 엊그제 같은데, 격세지감을 느꼈다.

이로 인해 자이언트 워커가 부족해질 것을 우려한 나는 누에 양식, 즉 양잠 규모를 키웠다.

“세크리, 양잠 쪽에 신입 스마트 워커를 투입해 줘.”

“네, 그럴게요.”

양잠 규모가 커지자 자이언트 워커와 스마트 워커의 비율이 어느 정도 맞춰지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스마트 워커는 생산 쪽에 투입했고, 자이언트 워커는 공사와 운반 일을 맡았다.

봄이 다가오며 인구는 6,000을 넘겼다.

나의 노력 덕에 2차 진화종의 수도 많아졌다.

페로몬 표식들로 가득한 영역 내에서 사냥한다면 스마트 워커로도 쓸 만하지만, 페로몬이 옅은 곳에선 벅찬 감이 있었다.

특히 궁기병은 기동전술을 주로 사용하는 만큼 페로몬 표식에만 의존할 수도 없는 노릇.

‘궁기병으론 워커맨과 하드 워커가 적합하겠어.’

나는 숙련된 십인장급 궁기병들로 하여금 훈련장을 운영하게 했다.

“여긴 너희들에게 맡기마.”

“알겠습니다!”

훈련장에선 워커맨과 하드 워커를 키워냄과 동시에 궁기병을 육성하는데 주력했다.

그런 나를 벤치마킹하듯 메가피르가 울트라를 육성하는 훈련장을 만들었고, 블러리는 소드 앤트를 단련하는 훈련장을 만들었다.

“저도 허브 워커를 키워야 할 것 같아요.”

메디 또한 하이 포션 워커의 진화종인 허브 워커를 키워 내기 시작했다.

“포룸, 넌 어떻게 안 되겠냐?”

포룸에게도 포병대의 정예화를 요청해 봤지만…….

“먹고 죽이다 보면 진화한다!”

지능 순으로 간부를 나열한다면, 아마 포룸이 꼴찌가 아닐까 싶었다.

“저는 스카이 워커를 육성할게요.”

페스트까지 훈련장을 운영하기로 하자, 워커맨 간부들이 시무룩해 했다.

“엔지는 목공 기술을 연구해 줘, 마고트는 솎아내기를 통해 굼벵이, 지렁이, 누에의 우량화에 힘써 주고.”

워커맨 간부 둘에게는 연구 과제를 던져 줬고, 세크리에겐 워커맨들을 모아 행정 단체를 만들게 했다.

“머쉬파는 사탕수수의 육종 개량에 힘써 줘.”

“네.”

시간이 흘러 650기의 궁기병을 확보한 나는 기존에 쓰이던 무장을 아카시아 숲의 개미들에게 보내 자체적인 방어 체계를 갖추도록 했다.

“감사합니다, 다크 님. 언제든 불러주신다면 한 창 보태겠습니다.”

“상납만 제대로 하고 꿀벌족이나 잘 지켜 줘.”

650기의 궁기병 중 250기는 가디언인 게아, 네아, 데아, 메르, 베르에게 양도했다.

“고맙습니다, 9장로님.”

이들은 내게 예를 표했고, 필요하면 언제든 나의 부관이 되어 힘을 보태 주기로 했다.

남은 400기는 나를 포함해 피어레스, 게르피아, 헤르피아가 각각 100기씩 맡기로 했다.

정찰대는 스카이 워커 50마리와 플라이 워커 200마리.

포병대는 캐논 워커 50마리, 개틀링 워커 10마리, 엑시드 워커 200마리를 갖췄다.

포션 워커는 2차 진화 때 생산 특화종과 의료 특화종으로 나뉜다.

각각 포션 팩토리와 하이 포션 워커다.

메디는 3차 진화종인 자이언트 팩토리를 중심으로 치유액 생산 체계를 갖췄고, 전선에 허브 워커를 지원하기로 했다.

메가피르, 게르피아는 각각 열두 기의 울트라.

카이제르, 네아피코, 페르다코, 크락세스는 각각 50마리의 하드 워커를.

나머지 울트라들도 100인대 규모의 자이언트 부대를 데리고 대기 중이었다.

“출격이다!”

때가 되어 울트라 부대가 출격했다.

그 뒤를 하드 워커 부대와 자이언트 워커 부대가 뒤따랐다.

“다크 님, 슬슬 저희 차례입니다.”

“그래, 가자. 놈들에게 지옥을 보여 주자고!”

궁기병들의 차례가 왔을 즈음, 개미들이 나갔던 순서대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뭐야? 왜 돌아온 거야?”

둥지로 돌아온 게르피아가 바위로 입구를 막곤 말했다.

“틀렸다. 포위당했어.”

“네?”

“지금 밖에는 고블린 천지야. 이대로 나가면 울트라도 오래 버틸 수 없다.”

“그게 무슨…….”

고블린이 지상을 점령했다는 건 알고 있지만, 울트라들이 퇴각해올 정도라니.

‘심각한 상황이야.’

캉! 캉! 캉!

그때, 출입구를 막아 둔 바위에서 굉음이 들렸다.

“놈들이 출입구를 뚫으려 하고 있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고블린들이 바위를 뚫고 들어왔다.

울트라 몇 마리가 침입자들을 막아 내곤 있으나, 출입구는 한 곳만 있는 게 아니었다.

“울트라와 하드 워커는 내 지휘에 따라라!”

회군한 부대들의 지휘권이 포메온에게 넘어가며 방어 체계가 구축됐다.

‘둥지같이 좁은 곳에서 궁기병이 활약하기는 힘들어.’

입구 막기에 도움을 줄 수 없던 나는 궁기병을 비롯한 포병대를 훈련장으로 보냈고, 정찰 부대는 둥지 외곽과 이어지는 출입구로 보냈다.

“페스트는 밖의 상황을 파악하고, 너희들은 병력을 대기시키고 산란방으로 와라.”

“네!”

내가 산란방에 도착할 때쯤, 일리아나에 의한 부대장급 개미의 긴급 소집령이 떨어졌다.

“다크, 밖의 상황은 어때?”

먼저 도착한 내게 일리아나가 밖의 상황을 물어봤지만, 나 역시 아는 바가 적어 말을 아꼈다.

뒤이어 도착한 메가피르, 게르피아, 그리고 각 부대장들이 밖의 상황을 보고했다.

보고를 들은 일리아나가 턱을 괴며 말했다.

“마의 축복이 끝날 때마다 고블린 침공을 받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어.”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일리아나가 포메온에게 방어 상황을 물었다.

“지금 둥지 상황은 어때?”

“들키지 않은 출입구는 경비병을 충분히 배치했고, 고블린 놈들의 주요 침공 루트는 울트라와 하드 워커가 막고 있다.”

“얼마나 버틸 수 있겠어?”

“식량만 충분하면 100년도 막아 낼 수 있다.”

울트라, 하드, 자이언트 등의 운영에는 식량 자원이 받쳐 줘야 한다.

즉, 지금의 병력으로도 고블린을 충분히 막을 수 있지만, 자원이 부족해지면 병력을 유지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다크, 지금 같은 생산 체계를 유지할 수 있겠어?”

일리아나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다른 건 몰라도 버섯 농장과 난방 시설에 소모되는 나무가 부족해요.”

그동안 숲에서 죽은 나무, 썩은 나무, 병든 나무, 쓰러진 나무, 나뭇가지 등을 채집해 쓰고 있어, 갑각충과의 관계도 돈독한 편이었다.

“얼마나 부족한 거야?”

“강철의 생산을 멈춰도 한 달밖에 못 버틸 거예요.”

“한 달 안에 고블린을 쓸어 버릴 수 있을까?”

밖의 상황을 보고 온 메가피르가 말했다.

“무리다. 지금까지 우리가 상대하던 고블린은 정말 일부였다. 지금 일대에는 못 해도 수만의 고블린이 있을 거야.”

천 마리만 넘겨도 재앙인데.

만 단위라니…….

‘아무리 울트라여도 인해전술에는 어쩔 수 없어.’

일리아나가 해답을 찾지 못하자, 회의를 지켜보던 페르가 답답한지 한마디 했다.

“놈들도 잠은 잘 테니, 그때 나무를 캐 오면 되는 거 아냐?”

일라아나를 비롯한 인간형 개미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페르를 쳐다봤고, 개미형들도 놀란 눈치였다.

“뭐야? 내가 이상한 말 했어?”

“아뇨… 좋은 생각 같아요.”

“그렇지!”

야행성인 고블린이 잠을 자는 낮에 나무 자원을 확보해 보려 했으나, 밖으로 출격한 울트라들만 몰매를 맞고 퇴각해야 했다.

“경비가 심하다. 한가하게 나무나 캘 분위기가 아니야.”

다시금 긴급회의가 열렸다.

“다크, 아카시아 숲에서 나무를 캐 오는 건 어때?”

“아카시아 숲 쪽은 장작으로 쓸 만한 나무도 적고, 꿀벌족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건들지 않는 게 좋아요.”

나와 일리아나가 말을 주고받던 중 페르가 또 한 번 발작했다.

“지금 꿀벌족 따위를 신경 써야 해? 문제 삼는 군체는 장작으로 써 버리면 되잖아!”

케어가 꿀의 전략적 가치를 말해 주며 페르를 진정시켰다.

뾰족한 수가 없어 탁상공론이 이어졌고, 별 수 없이 내가 나서야 했다.

“모루와 망치로 가죠.”

“모루와 망치?”

“그건 뭐지?”

트라이와 케어의 물음에 나는 모루와 망치 전술에 대해 알려 줬다.

“아무리 강한 쇠도 모루에 대고 망치로 두들겨 대면 꺾이는 게 자연의 이치예요.”

모루란 적의 공격을 버텨 내는 역할이었고, 망치는 모루가 버티는 동안 뒤나 옆을 쳐서 적의 진영을 무너뜨리는 역할이었다.

모루와 망치 전술은 응용할 수 있는 폭이 넓으며 어디에나 쓰이는 전술이지만, 모루가 적의 공격을 버텨 내지 못하거나 망치가 충분히 강하지 못하면 의미 없는 전술이었다.

그런 면에서 군체의 모루는 굉장히 강했다.

‘울트라와 하드 워커가 입구에서 버티면 고블린의 물리 공격으론 절대 뚫을 수 없어.’

주술사가 투입된다 해도 둥지 안이라면 한 방 이상 쏘진 못할 터였다.

‘잘해 봐야 한두 마리의 희생이면 잡는다.’

메가피르가 내게 다가와 물었다.

“알겠다. 그런데 망치는 어느 부대가 담당하지?”

망치를 담당하려면 고블린들 틈에서 종횡무진 할 수 있는 부대여야 하는데, 그런 부대는 궁기병뿐이었다.

“망치는 제가 맡을게요.”

“기의병으로 말이냐?”

아직 궁기병에 대한 정보가 공유되지 않은 상황이라 메가피르가 석연치 않아 했고, 울트라인 카이제르가 비웃음 섞인 페로몬으로 말했다.

“우리 최연소 장로님께서 알로 바위를 치겠다는군.”

네아피코와 페르디코도 한마디씩 했다.

“말벌족 토벌의 공로는 인정해. 하지만, 고블린과 말벌족은 달라.”

“밖으로 나가면 분명 포위된 상황일 겁니다. 난전에 들어가면 아무리 하드 워커라도 기수를 지키지 못합니다.”

두 울트라의 태도는 카이제르와 달리 정중했으나, 그 내용은 다르지 않았다.

위의 셋과 달리 크락세스는 조금 이상한 발언을 했다.

“기의병 650기로는 힘들겠지만, 다크 님이 일당 천은 하실 테니… 얼추 되지 않을까요?”

어느 나라의 계산법인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의 능력 중 지휘에 쓸 만한 능력이 있다.

그건 바로 마력을 보는 눈, 마안이다.

‘마안으로 적의 위치와 무력을 파악할 수 있지.’

이는 레이더나 마찬가지였고, 게임으로 치면 맵 핵이라 할 만큼 대단한 능력이었다.

“그럼 우리 보고 놀고 있으라는 거냐?”

내게 궁기병을 지원받은 가디언들이 나서며 울트라와 가디언의 자존심 싸움이 시작됐다.

“망치는 당연히 울트라가 맡아야 한다!”

“하, 그 말은 둥지 방어를 우리에게 맡긴다는 얘기겠지?”

“무능한 네놈들에겐 둥지 방어는 맡길 수 없다!”

망치를 게르피아의 울트라 부대가 담당할지, 내가 담당할지 갑론을박이 오갔고, 결론적으로 둥지 방어에 쓸모가 없는 궁기병이 채택됐다.

나는 불안해하는 개미들을 위해 상세 작전을 밝혔다.

“그러니까… 활이란 무기로 무장한 기의병 650기로 영역 외곽에서 유격전을 벌이겠단 말이구나.”

궁기병의 위력을 모르는지, 케어가 걱정하는 듯했다.

“네. 제가 밖에서 흔들면 둥지에서 호응해서 놈들을 몰아내고 나무를 확보해 줬으면 해요. 출격해야 할 때는 페스트를 보내 알려드릴게요.”

나의 작전 내용을 들은 부대장급 개미 반수는 석연치 않아 했지만, 일리아나를 비롯한 몇몇 개미들은 맹목적인 믿음을 보여 줬다.

“9장로 다크, 이번에도 깜짝 놀랄만한 전공 기대할게.”

“기대하는 건 자유지만, 저번처럼 너무 과대평가만 말아 줘요. 전 어디까지나 지휘관으로 가는 거지, 적들과 싸우는 건 어디까지나 궁기병들이니까요.”

“겸손하긴.”

포룸이 서운해 했지만, 나는 기병대를 이끄는 대장들만 데리고 영역 외곽으로 이어진 출구를 통해 출격했다.

무한자원 개미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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