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자원 개미군단-62화 (61/189)

62화. 마철 무구

며칠 동안 영역 내부의 고블린을 깨끗이 청소한 궁기병, 울트라, 하드 워커, 자이언트 부대들은 서쪽 산맥으로 밀고 들어갔고, 정예가 빠진 그들은 우리의 주력을 막아 낼 수 없었다.

그렇다 해도 드넓은 산맥 전체를 쓸어버리기엔 병력이 부족했다.

“보급 기지에서 너무 멀어지지 마라!”

사냥 부대들이 고블린을 학살하고 있을 때, 나는 이번에 획득한 군마들을 보살폈고 장비들을 연구했다.

‘확실히 전생에 보던 말과는 차원이 달라.’

일반 병사들이 쓰는 무기는 강철제였지만, 기사들이 쓰는 장비는 강철과는 조금 다른 듯했다.

그러나 나를 찾는 개미들이 많아 온종일 연구에만 매달릴 수 없었다.

장로 회의, 무투파들의 긴급회의, 부대장급 모두가 참석하는 대회의 등에 꾸준히 소집된 나는 장로들과 함께 하나의 작전을 수립할 수 있었다.

그건 부족한 병력을 한 방에 뻥튀기할 작전.

일명 하위 군체 불리기였다.

“그럼 이 일은 트라이와 블러리에게 맡길게.”

“네, 그렇게 하세요. 전 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

트라이와 블러리는 사냥 부대와 함께 영역 외곽의 소규모 군체를 만나고 다녔다.

규모가 200이 채 되지 않는 소규모 군체들은 연합을 형성한 경우가 많았는데, 이들의 중심에는 나에게 교육받은 여왕이 있었고, 그들은 트라이를 극진히 맞이하며 일대의 동료 군체들과 함께 하위 군체로 들어왔다.

“저희 연합체 일동은 페포케 군체를 따르겠습니다.”

그렇게 얻은 8개의 연합체는 총 64개의 군체였고, 상납액은 매달 산란량의 절반인 다섯 개의 알이었다.

단순히 알만 뜯어 가면 하위 군체의 성장이 더뎌지니, 진화에 필요한 영양을 지원했다.

하위 군체가 늘수록 개미들의 기본적인 능력이 상승했다.

미미한 상승치라 상위종들에겐 큰 의미가 없었지만, 빅 워커와 미니 워커에겐 이 또한 크게 작용하는 듯했다.

트라이와 블러리가 발품을 파는 동안 나는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여 일리아나에게서 지하 8층의 사용 권리를 받아 냈다.

“알겠어. 그런데 지하 8층에는 뭐 하려고?”

“장작용으로 쓸 오크나무를 심을 거예요.”

이는 고블린 로드를 잡는 데 실패했을 때를 대비하여 목재의 자급자족 체계를 이루기 위함이었다.

‘보험은 들어 둬야지.’

언더리페에게 지하 8층에 대한 용도를 말해 주자, 그가 곤혹스러운 페로몬으로 말했다.

“다크, 지하 8층은 아직 협소하다. 확장 공사를 진행 중이지만, 광물과 수원이 많아 쉽지 않아.”

“그러니 인력이 부족하단 거죠?”

“그렇다고 할 수 있지.”

“그거라면 제가 해결해 줄 수 있어요.”

최근 페르의 식량으로 잡아온 고블린이 천을 넘겼다.

암컷도 100마리를 훌쩍 넘겨 가죽 생산 외의 일에도 동원되고 있었다.

암컷 고블린과 인간은 온순하여 따로 길들이진 않았지만, 수컷 고블린 녀석들은 기본적으로 막돼먹은 성질을 지니고 있어 길들이는 과정을 거쳐야 노동력으로 거듭났다.

처음에는 길들이는데 상당한 인력과 자원을 투입해야 했는데, 이 또한 하다 보면 요령이 느는지, 지금에 이르러선 워커맨들이 체계적으로 고블린을 길들여 노동력으로 투입하고 있었다.

“세크리, 조련실은 잘 돌아가고 있어?”

“네. 송곳니를 뽑고, 채찍질로 할 일을 알려 주고 있어요.”

“…그냥 그렇게 패기만 하는 거야?”

“다른 수단이 있나요?”

“설탕수라 해야 하나… 가끔 잘 하는 녀석들한테 주는 거지.”

“아까운 설탕수를 고블린에게요? 고블린은 흑태만 줘도 잘 살던데…….”

워커맨들의 사전엔 당근은 없었고, 무한 채찍질로 고블린의 포악한 성질을 제거하는 듯했다.

온순해진 고블린들에게 강철 도구를 배급한 후, 작업 현장에 투입했다.

초기에는 이들을 관리하기 위해 많은 인력이 소모됐지만, 지금은 자체 관리 체계를 도입하여 효율을 높였다.

다섯 마리의 고블린 중 한 마리를 팀장으로 선정한 것이다.

고블린 팀장의 역할은 소속 팀의 독려와 채근이며, 통제가 힘든 고블린은 즉결 처형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그 위에는 고블린 부장을 뒀다.

이들은 현장에서 작업 효율이 떨어지는 팀을 찾아내 팀장을 교체하거나 팀 전체를 즉결 처형했다.

그러니 워커맨 감독관은 부장 고블린 열 마리만 관리하면 됐다.

한 마리의 워커맨이 110마리 규모의 고블린 노예를 부릴 수 있는 셈이었다.

고블린 노예들을 공사에 투입하자, 언더리페가 화를 냈다.

“다크! 이런 식의 해결은 용납할 수 없어!”

110마리 고블린 중 관리자를 제외하고 일하는 건 대략 80마리 정도.

거기다 열 마리가 자이언트 워커 한 마리 분의 일을 소화하니…….

확실히 가성비에서 걱정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나는 언더리페를 설득해야 했다.

“일단 고블린에겐 흑태와 같이 우리가 못 먹는 걸 먹이고 있어서 가성비가 좋아요. 그리고 운동을 시켜 줘야 근육이 붙어서 육질도 좋아지고요.”

나의 설득은 먹히지 않았다.

애초에 언더리페가 문제 삼고 있는 건 가성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우리의 일을 고블린에게 넘기다니…….”

언더리페는 즐거운 노동을 가족도 아닌 고블린에게 나눠 준다는 것을 도저히 참을 수 없던 것이다.

‘이런… 또 개미 감성을 깜빡했어.’

“저희에겐 시간이 없어요. 당장 내년에 고블린 로드를 잡지 못하면 둥지는 한동안 출입구를 폐쇄할 거예요. 언더리페도 50년간 잠들기 싫으면 뭐든 이용해서 이곳 8층을 신속히 넓혀 줘요.”

“그렇지만…….”

“그렇지만이고 뭐고 없어요. 결과를 생각하세요. 지금 인력으로 충분한 공간을 확보할 수 있나요?”

“큭.”

“지금은 한가하게 즐길 때가 아니라고요!”

“알겠다. 네 말대로 고블린들에게 일을 나눠 줘서라도 충분한 공간을 만들어 내겠다.”

“고마워요. 고블린은 계속 보내드릴게요. 답답한 녀석이 있으면 간식으로 드셔도 돼요.”

“됐어, 하급 영양인 고블린 따위로는 배가 차지 않아.”

“그럼 부탁할게요.”

공사 문제를 해결한 나는 대장간에서 기사들의 무기를 살폈다.

“확실히 이상하단 말이지.”

판금 갑옷과 사슬 갑옷.

강철로 만들어진 뛰어난 방어구인데, 기사급이 쓰던 무기는 강철이 아니었다.

‘강철보다 잘 부러져. 뭔가 이질적인 게 들어간 거야.’

몇 차례 부러뜨려 봤지만 답을 알 수 없던 나는 무기를 들고 인간들이 있는 곳을 찾아갔다.

‘마흔 명 정도 모였으니 누군가 알고 있을지도 몰라.’

인간들을 위한 신전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유입된 인간 중 적응한 숫자는 절반이 채 되지 않았으나, 빠르게 늘어나는 중이었다.

“세크리, 인간들을 모아 줘.”

“네!”

그동안 루리아만 따로 불러 이야기했던 터라 소집된 여자들은 당황했다.

“이건 기사가 쓰던 검이다. 그리고 이건 기사가 아닌 기병이 쓰던 무기지. 두 무기 중 뭐가 더 단단할 것 같나?”

오래도록 나를 봐온 여자들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고, 나머지 여자들은 바들바들 떨었다.

‘아직 적응을 못했나?’

데이지가 분위기를 환기시키고자 손을 들었다.

“데이지, 답을 알아?”

“그건 아니지만… 틀려도 괜찮나요?”

나는 최대한 상냥하게 고양이와 아이 컨택 하듯 눈을 살포시 맞추며 웃어 줬다.

“괜찮아.”

단지 마안을 제어할 수 없었던 터라 아이 컨택 자체가 미스였다.

“죄송해요. 제가 주제넘게…….”

“됐어, 괜찮으니까. 데이지는 앉고… 그래, 루리아가 말해 볼래?”

“그게… 기사 중에는 마철검을 쓰시는 분이 있어요. 강철보다 몇 배는 비싼 검이니, 병사가 쓰는 것보다 단단할 거라고 생각해요.”

“소재가 다르다는 거군.”

문제는 그 소재 때문에 강철보다 더 무르다는 것이다.

인간들에게서 답을 얻지 못한 내가 한숨을 쉬며 돌아서자, 세크리가 도끼눈을 뜨고서 하녀 개미들에게 명했다.

“다크 님의 질문에 답하지 않은 인간들의 손톱과 발톱을 모두 뽑아버려.”

“데이지는 어떻게 하나요?”

“다크 님의 질문에 답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대답은 했으니 손톱 정도만 뽑아버려라!”

나는 갑자기 급발진한 세크리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세크리, 인간들의 손톱과 발톱을 뽑으면 한동안 아무 일도 못 할 텐데. 그럼 식량 창고행이라고…….”

세크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반문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숯 생산과 난방 가동을 위해 몇 명만 있으면 돼서 마흔 명의 인간 중에는 잉여가 많다.

그렇기에 세크리는 밥만 축내는 인간들을 줄이고 싶어 했는데.

인간들을 늘려 써먹을 곳이 있다고 말해 주자 세크리가 그제야 무언가 깨달았는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확실히 인간은 무력에 비해 영양 등급이 높으니 양식하면 좋겠군요. 그럼 죽지 않게 소중히 다루겠습니다.”

내 의도가 조금 다르게 전달됐지만, 세크리가 잘못을 깨달았다고 하니…….

“일하는 데 지장 없도록 눈알 하나로 대체할게요.”

세크리가 칭찬을 바라는 듯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니 조금 당황스러웠다.

세크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많은 여자들이 동공 지진을 일으키며 손을 들었다.

“기사님의 무기라 생각합니다!”

“기사님이 무기가 더 단단합니다!”

나는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며 답변하는 인간들의 대답을 들어 줬다.

“병사님의 무기입니다!”

나는 병사의 무기가 단단하다고 생각한 여자를 지목해 자세히 물어봤다.

“남편에게 듣기론 기사들의 무기는 기사가 지녔을 때, 그 위력을 발휘한다고… 일반인이 지니고 있으면 강철보다 못하다는 걸 들은 적이 있어요.”

“네 남편이 뭐 하는 사람이었지?”

“농민이었지만, 젊을 때는 용병이었다고…….”

자세히 들어 보니 그녀의 남편은 전직 실버급 용병이었다고 하니.

“마철 무기는 기사가 아니면 위력을 발휘하지 못 한다라…….”

기사와 일반인의 차이.

‘오러 인가?’

인간들은 오러 소드를 발현한 순간부터 기사급이라고 판단했다.

‘설마…….’

나는 병사의 무기와 기사의 무기에 마력을 주입해 보곤 마력 전도율이 다름을 깨달았다.

‘이거였어. 기사들이 강철보다 무른 무기를 지닌 이유가!’

나는 전직 용병의 부인이었다는 여인에게 마철에 관해 물어봤다.

“철광석… 아니, 마광석이 필요하다는 것밖에 몰라요.”

“그 정도면 충분해.”

완성품이 있고, 핵심 재료에 대해 알아냈다.

‘지하로 파 내려갈수록 널린 게 마광석이야.’

비율은 고블린 대장장이들을 굴리면 알아낼 수 있다.

‘그런데 말이야. 제작 여부를 떠나 마철 무기의 유용성은 별개의 문제란 말이지.’

마철 무기에 마력을 주입하여 강도를 올려 쓰는 것보다 마력을 신체 강화에 투자한 뒤, 강철 무기를 쓰는 편이 효율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세크리, 넌 어떻게 생각해?”

“단단한 쪽을 써야죠.”

“나도 그렇게 생각해.”

마철 무기들을 창고에 보관한 나는 인간들의 강철 무기와 갑옷을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판금 갑옷과 사슬 갑옷은 확실히 대단해. 지금의 화살로는 뚫어 내기 힘들겠어.’

궁기병에겐 갑옷이 필요 없으니, 연구 방향은 갑옷을 뚫어낼 수 있는 신무기의 개발이었다.

다만, 이것은 천천히 진행할 생각이었다.

우기에 접어들며 서쪽 산맥 쪽에 진출해 있던 개미들이 돌아왔다.

우린 긴급회의를 통해 확보된 상급 영양과 최상급 영양을 배분하기로 했다.

“상급 영양인 말은 빼 주세요. 이들은 키워서 쓸 때가 있으니까요.”

“알았어! 그럼 갑각충 영양과 인간 영양을 분배할게.”

최상급 영양의 절반은 여왕들에게 주어졌고, 남은 절반은 논공행상을 통해 분배됐다.

그리고 며칠 후, 우기가 끝날 무렵 아카시아 숲 외곽지에서 유리와 접촉하여 200명의 노예를 받았다.

무한자원 개미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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