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자원 개미군단-63화 (62/189)

63화. 4차 진화의 실마리

“실험용으로 쓰일 테니, 상품은 준비하지 않았다.”

유리가 건넨 노예는 남자 50명과 여자 150명이었는데, 상태가 몹시 안 좋았다.

“부족했다면 잔금은 내년에 치르지.”

“충분하다.”

200명이면 상당히 많은 인원이다.

의료 개미들이 한동안 바빠지겠지만, 개미들이라 좋아할 터였다.

‘인간들의 숙소를 넓혀야 겠는데…….’

데려온 하녀 개미들이 노예 점검을 끝내자, 유리가 본론을 꺼냈다.

“몸값도 오갔으니 빚은 없다. 흑탑에서 어떤 지원을 해줄 수 있는지 말해 줬으면 좋겠군.”

“어떤 지원을 원하지?”

유리는 지도 한 장을 건네며 말했다.

“비에타를 지지하는 영지가 표시돼 있다. 고블린 사태가 안정되면 이곳을 흔들어 줬으면 해. 우린 재원을 지원하지.”

유리는 흑탑을 이용해 경쟁 세력을 압박하려 했고, 흑탑이 가난할 거란 전제로 이야기를 진행했다.

‘돈이라.’

내가 호위로 데려온 궁기병에게 손짓하자 유리의 호위병들이 검집에 손을 가져다 댔다.

유리가 손을 올려 호위병들의 급발진을 저지했고, 나는 궁기병이 가져다 준 자루를 유리에게 건네며 말했다.

“선물이다.”

비단을 받아든 유리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비단이군! 포카이 왕국의 것보다 훨씬 질이 좋아. 이 정도면 상등품이야. 제국에서 들여온 물건인가? 흑탑이 아직도 제국에 발을 붙이고 있었다니… 그런데 여기 구석에 박힌 자수가 맘에 걸리는군. 굳이 개미 문양을 박았어야 했나?”

“브랜드 마케팅이다.”

“그건 무슨 말이냐?”

“그런 게 있다.”

나도 모르는 흑탑의 뜻을 알아서 헤아린 유리가 말했다.

“흑탑의 뜻은 잘 알겠다. 내년 이맘때까지 내가 살아 있다면 제물로 쓸 노예를 충분히 확보해 오지.”

노예를 또 가져다준다니 받기로 했고, 지도에 표시된 곳에 대해선 생각해 본다고 했다.

유리와 헤어져 둥지에 돌아온 나는 인간들의 숙소를 확장하게끔 했고, 남녀 따로따로 관리하며 이들에게 맡길 일을 고민했다.

며칠 후, 최상급 영양을 충분히 섭취한 포스가 장로들을 소집해 충격적인 사실을 전했다.

“인간을 이용한다는 다크의 작전은 나쁘지 않다. 그러나 고블린 로드의 무력을 상정하면 작전대로 흘러가진 않을 거야.”

포스의 말을 들어 보니, 4차 진화종은 이미 생물의 경계를 넘어선 존재 같았다.

“고블린 로드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나 갑각왕과 동급이라면… 이 작전은 성공할 수 없어.”

“포스 님이 직접 나선다면 어떤가요?”

일리아나의 물음에 포스가 고개를 저었다.

“나와 페르가 힘을 합친다 해도 쉽지 않아. 애초에 페르는 둥지 밖으로 나가지 않으니, 그런 가정은 무의미하지.”

포스와 고블린 로드가 일대일로 붙으려면 3차 진화종에 버금가는 정예 고블린을 밀어내야 하는데, 그 수 또한 만만치 않았다.

즉, 지금의 군체 전력으론 고블린 로드를 사냥할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거야 내가 없을 때의 이야기인데…….’

나는 생각이 조금 달랐지만, 포스의 말을 끝까지 들어줘야 했다.

“그렇다고 고블린 로드의 사냥이 불가능한 건 아니다. 인간들이 어느 정도의 힘을 지녔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무투파 개미들이 좀 더 강해진다면 가능성이 있다.”

“더 강해진다니요?”

포메온의 반문에 포스가 입꼬리를 올리고서 말했다.

“언더리페, 울트라들이 날뛰어도 문제없는 훈련장을 만들어라. 그곳에서 무투파 개미의 수련을 봐주겠다.”

포스가 개미들을 훈련시켜 주기로 했다.

대상자는 장로, 울트라, 가디언, 소드 앤트.

울트라들과 가디언은 두말없이 따랐지만, 몇몇 하이 워커 장로들과 하이 팩토리인 네트리는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수련을 거부했다.

“예외는 없다. 이는 너희들의 4차 진화가 걸린 문제기도 해.”

“4차 진화요?”

일리아나의 물음에 포스가 답했다.

“최상급 영양으로 만든 진화석을 섭취한 후로 나의 몸은 몇 차례 변화를 거쳐 4차 진화에 가까워졌다. 그런데 페르와 케어는 아무런 변화를 겪지 않더군.”

포스는 자신의 변화를 관조하며 깨달은 게 있었다.

“3차 진화종은 영양의 축적만으로는 진화할 수 없다. 아니, 애초에 우린 진화에 대해 착각하고 있었어.”

포스는 4차 진화를 위해 필요한 것이 무력이라 주장했다.

“진화를 통해 강해지는 게 아니야. 충분히 강하기에 진화하는 것이지. 즉, 지금의 너희들에게 필요한 건 무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것이다.”

그러한 포스의 주장 덕에 나를 포함한 장로들과 무투파 개미들의 특훈이 시작됐다.

“겨울 동안 특훈을 진행하겠다.”

특훈의 주제는 마력 활용.

“지금 너희들은 마력을 신체 강화에만 쓰고 있을 것이다. 포메온, 앞으로!”

포메온이 불안해하면서 앞으로 나왔고, 포스는 주먹으로 포메온의 머리를 때렸다.

캉!

“이처럼 가드 퀸인 내가 신체 강화만으로 얻은 힘으로 때려 봤자 울트라에겐 간지러울 뿐이지.”

포메온이 한껏 거드름 피우기 시작하자, 포스의 주먹에 갈색 기운이 넘실대기 시작했다.

“마력 활용의 기초 중의 기초라 할 수 있는 기술이다. 나는 이 기술을 마력 발현이라 정했다.”

강렬한 기운에 포메온이 당황하며 외쳤다.

“포스 님, 잠시만요!”

포스는 그런 포메온을 기다려 주지 않았다.

쾅!

갈색 섬광이 터지며 포메온의 두개골이 갈라진 채 뒤로 주르륵 밀려나더니 주저앉았다.

“이처럼 너희들도 가진 마력을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럼 지금보다 몇 배는 강해지겠지.”

포스가 말하는 와중 의료팀이 급히 들어와 포메온을 끌어냈다.

포스의 퍼포먼스를 본 나는 인간 기사들이 사용한다는 오러 소드가 떠올랐다.

‘비슷하단 말이지.’

검에 맺힌 게 아니니 오러 피스트라고 해야 할까?

포스가 각자에게 맞는 숙제를 내주기 시작했다.

“울트라는 마력 발현을 습득해 턱의 살상력을 강화해라! 가디언은 주먹이다!”

“워커맨은 사용하는 무기의 살상력을 높일 수 있어야 한다. 소드 앤트도 마찬가지다.”

숙제를 받은 개미들은 구석에 앉아 명상에 들어갔다.

그리고 내 차례가 왔다.

“다크, 넌… 마력을 갈무리할 정도니 이 정도는 할 수 있겠지. 너는 나와 함께 개미들의 마력 운용을 가르친다.”

뭔가 오해가 있는 듯한데, 포스가 명상에 들어가면서 해명할 기회를 놓쳤다.

포스의 주변으론 마력이 끊임없이 당겨졌다 튕겨나길 반복했다.

‘뭔지는 몰라도 대단해 보이네.’

나는 훈련실 구석으로 이동하여 포스가 다른 개미들에게 내준 과제를 시도해 봤다.

‘마력을 주입해도 포스처럼 고밀도로 뿜어지지 않아.’

주변을 훑어보자 블러리, 나우피어 정도가 실마리를 잡았는지 땀을 뻘뻘 흘리며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저쪽은 재능충이고.’

나머지 워커맨, 가디언, 울트라들은 오리무중에 빠져 있었다.

‘포스는 이쪽 방면으로 천재나 다름없어.’

천재가 경험을 통해 얻은 결과를 보여 줘봐야, 일반 개미들이 따라 할 순 없다.

‘포스가 알려 준 건 절대 쉬운 기술이 아니야.’

나는 포스가 보여 준 기술을 떠올리며 그 과정을 세분화해 봤다.

‘먼저 마력을 주입하고… 방출해서… 유지를…….’

마력 주입까진 어렵지 않았지만, 그 이후의 진행이 원활하지 못했다.

‘주입하며 방출과 유지를 함께 하다니, 병렬 사고로 세 가지를 동시에 할 수 있어야 가능한 거잖아!’

과정을 이해했음에도 따라 할 수 없는 묘기.

그것이 포스가 보여준 기술의 정체였다.

나조차 안 되는 걸 다른 개미들이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얼마 지나지 않아 블러리와 나우피어도 포기했는지, 힘없이 주저앉았다.

이대론 함께 수련하는 의미를 상실할 터라 내가 나서서 수련 방향을 틀어 보기로 했다.

“다들 감을 못 잡는 듯하니, 훈련 방향을 조금 바꿔 볼까 해.”

포스가 나를 보조 선생으로 지목한 것도 있어, 다들 내 말에 집중했다.

“비슷한 수준의 개미끼리 짝지어서 대련해 줘. 대련할 때는 마력 주입을 응용해서 방어력을 올려 보자.”

“마력을 외골격에 주입하는 걸 말하는 건가?”

할 수 없는 것에 시간을 투자하기보다 기존의 능력부터 키워 보자는 취지였는데, 메가피르가 외골격 강화 훈련에 의문을 품었다.

“네. 타격 부위에 마력을 주입해서 막아 내는 훈련을 해볼까 해요.”

“우리의 외골격은 충분히 단단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죠. 우린 충분히 튼튼해서 외골격에 마력을 주입할 생각을 못했죠. 그런데 포스님의 주먹을 받아 내려면 외골격의 방어력만으로 좀 힘들지 않을까요? 포스 님도 시범을 한 번만 보여주진 않을 텐데, 다음 차례는 누구려나… 포메온 님 다음으로 단단해 보이는 메가피르 님일 것 같은데…….”

처참하게 쓰러져 의무실로 실려 간 포메온을 떠올린 울트라들이 몸을 부르르 떨더니 방어력 훈련에 돌입했다.

나 또한 외골격에 마력을 주입한 채 가디언인 헤르피아의 공격을 막아 내는 연습을 했다.

마력 주입이 원활하지 못할 때는 외골격이 박살 났지만, 외골격은 부서질수록 더 단단하게 재생됐다.

‘강해지는 방법은 하나가 아니야.’

이러한 수련은 체력, 마력, 정신력 등의 소모가 컸지만, 마석으로 만든 마력 보충액과 외골격 강화액을 잔뜩 섭취하여 수련 성과를 극대화했다.

* * *

구석에서 개미들의 수련 상태를 확인하던 포스는 오리무중에 빠진 개미들을 보며 답답해했다.

‘지향점을 보여줬음에도 이렇게 헤매다니, 뭘 더 알려 줘야 하는 거지? 그냥 몸에 박아 넣는 편이 빠르려나?’

포스가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고뇌할 때, 다크가 나섰다.

다크의 지도를 본 포스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기초부터 확실하게 다지려 하는군. 얼핏 보면 돌아가는 길처럼 보이지만, 제일 빠른 길이기도 해.’

포스는 다크에게 가르치는 재능이 있다는 걸 알게 됨과 동시에 그의 경지가 궁금해졌다.

‘다크에게선 새어 나오는 마력이 없어. 즉, 나 이상의 마력 제어 능력을 가졌다는 거지.’

몸이 근질근질해진 포스가 다크에게 대련을 청했다.

* * *

“한판 붙자!”

“싫어요.”

포스가 대련을 청했지만, 일방적인 구타로 이어질 게 뻔하니 단칼에 거절했다.

“왜 싫다는 거냐? 너도 궁금하잖아?”

“결과가 뻔히 보이는데 뭐가 궁금하겠어요.”

포스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단정 짓지 마라. 길고 짧은 건 대 봐야 아는 것이지.”

“애초에 저랑 포스 님은 급이 안 맞잖아요.”

나는 워커, 포스는 가드 퀸.

거기다 마력을 다루는 능력에서도 차이가 크니 급이 맞지 않다고 한 것인데…….

“알겠다. 급을 맞춰서 오지.”

“네?”

포스가 옅은 갈색 마력을 벽에다 쏘아 대며 맹훈련에 돌입했다.

‘저거 한 방이면 난 죽겠는걸.’

급발진한 포스를 내버려 둔 나는 외골격 강화 훈련을 주로 했고, 가끔 무기에 마력을 주입한 채 휘두르는 연습을 했다.

‘물질 강화는 신체 강화보다 마력과 체력의 소모가 크단 말이지…….’

마력을 통한 신체 강화와 물질 강화에 익숙해져 갈 때 본격적인 겨울에 접어들었고, 유리에게 붙여둔 하이 페어리 한 마리가 돌아와 가죽 주머니를 전했다.

주머니 속엔 종이로 된 편지가 있었다.

‘읽을 수가 없네.’

문자를 모르니 난감한 일이었다.

무한자원 개미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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