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자원 개미군단-64화 (63/189)

64화. 고블린 VS 인간

하루빨리 문자를 습득하고 싶지만…….

둥지에 있는 240명의 인간 중 문자를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문맹률이 너무 심하잖아!’

늘어나는 개미들의 관리를 위해 세크리가 행정팀을 꾸렸지만, 종이와 문자가 없으니 효율이 떨어졌다.

‘종이가 있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고블린과의 전쟁을 앞둔 시기라 종이 제작에 인력을 투입할 순 없었다.

‘지하 8층 오크나무 숲 조성이 시급해.’

작업 인력은 모두 지하 8층에 때려 박고 목공소, 대장간, 가죽 공방, 누에 공방 등의 시설에서는 전쟁 물자 생산 체계에 돌입했다.

지렁이, 설탕수, 버섯, 누에, 꿀, 굼벵이 영양도 차질 없이 쌓이고 있고, 3차 진화종은 대부분 마력 훈련에 돌입한 상황이다.

인간을 위한 개미 신전도 반쯤 완성됐고, 데이지를 비롯한 소수의 인간이 기도를 올렸다.

이대로 겨울을 보내고 봄부터 본격적인 병대를 구성할 생각이었다.

사실 겨울 동안의 훈련으로 개미들이 강해질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수련으로 강해지면 진화할 수 있다니, 정말 터무니없는 생각이야.’

그럼에도 훈련에 적극적이었던 건 포스가 깨달은 4차 진화의 실마리가 진짜인지 확인해 보기 위해서였다.

‘외골격의 강화, 무기의 강화, 감각의 강화… 할 수 있는 건 다 해 봐야겠다.’

겨울이 가고 봄이 시작될 무렵, 나는 예상 이상의 결과를 가져다준 마력 훈련에 감사해야 했다.

‘4차 진화의 트리거가 수련이라니…….’

지금까지 그랬듯이 뭔가 특별한 영양을 섭취해야 할 줄 알았는데…….

그런 건 없었다.

그저 수련을 통해 일정한 경지에 도달한 상태에서 최상급 영양으로 만든 진화석을 섭취하니, 신체에 변화가 일어났다.

이 변화로 4화 진화종이 된 건 아니었지만, 4차에 한 발짝 다가간 느낌이었고, 일반적인 3차 진화종을 뛰어넘는 힘을 가지게 됐다.

그래서 개미족은 이 힘을 갖춘 개미를 3.5차 개미로 구분했고, 3.5차에 도달한 개미는 겨울 간 훈련에 매진한 장로들과 소수의 무투파 개미뿐이었다.

* * *

봄이 오자 바르퀴르 성채에서 고블린이 쏟아져 나왔다.

“배고픈 동족들이여! 식량과 여자로 가득한 땅으로 나아가자!”

고블린 로드 데카이저가 2만의 고블린을 데리고 출격했다.

대부분의 고블린은 석기로 무장했고, 정예 고블린들은 인간들의 장비를 노획해 사용하고 있었다.

인간들은 벨레삭 백작을 중심으로 기사 500, 기병 2천, 보병 1만, 용병 3천이 모여 평야에 진을 쳤다.

“우리의 영토를 고블린 따위에게 짓밟히게 하지 마라!”

기사와 병사들의 무장은 모두 제각각이었지만, 기사를 포함한 기병들은 중무장이었고, 보병들은 중무장과 경무장이 섞여 있었다.

“휴~ 짠돌이 백작이 돈을 잔뜩 풀었네.”

“고블린 로드가 발생했으니, 발등에 불이 떨어졌겠지.”

용병들은 급소 부위만 강철로 덧댄 무장이 주를 이루었다.

장검과 판금 갑옷으로 무장한 유리는 그를 지지하는 부쉬트니 자작의 기사단 소속으로 종군했다.

아카시아 숲과 인접한 부쉬트니 자작령은 비옥한 곡창지대를 보유했고, 아카시아 숲의 자원과 양봉업으로 부유해진 영지였으나, 최근 들어 말벌족의 습격이 잇따르며 영지 수입이 크게 줄었다.

이런 상황에서 옆 영지가 고블린에게 점령당했으니, 부쉬트니 자작으로선 상당히 난처한 상황.

그렇다고 고블린 정도에 긴장할 애송이는 아니었다.

“오는군.”

고블린들이 평야에 들어서자, 인간 측도 준비에 들어갔다.

중장 보병이 군의 중앙을 맡았고, 경장 보병이 군의 좌우에 배치됐다.

예비대로 빼 둔 정예 기사를 제외한 기사와 기병이 좌군, 용병들이 우군을 맡았다.

긴장한 유리 또한 소속 기사들 사이에서 말을 몰았고, 그런 유리에게 부쉬트니 자작이 다가와 긴장을 풀어 줬다.

“유리 경, 어떤가? 내가 이끄는 검은 말벌 기사단은?”

“부쉬트니 자작님의 직속 기사는 스무 명뿐이지 않습니까?”

“하하, 너무 그러지 말게, 내 깃발에 모이면 전부 내 기사가 아니겠나.”

스무 명의 직속 기사를 데려온 부쉬트니 자작은 합류한 귀족들과 기사를 더해 총 60명을 이끌고 있었다.

“부쉬트니 자작님, 놈들은 그냥 고블린 무리가 아닙니다. 최상급 몬스터인 고블린 로드가 이끄는 고블린이에요.”

“하하, 알고 있다네. 그런데 지난번에 소개해 준 내 딸들은 어떤가? 맘에 드는 아이는 없었나?”

“자작님, 정치적인 이야기는 살아 돌아간 후에 하시죠.”

“유리 경도 보기와 달리 겁이 많군. 너무 긴장하지 말게.”

둥둥둥둥!

지휘부가 북을 때리며 붉은색 깃발 한 개와 노란색 깃발 두 개를 들었다.

“어이쿠, 진군 신호군. 유리 경, 노파심에서 한마디 하자면 깃발만 잘 따라다니게.”

“알고 있습니다.”

“검은 말벌 기사단, 앞으로!”

“앞으로!!”

군단 대 군단의 격돌.

고블린 쪽이 수는 더 많았지만, 군단으로써의 체급은 인간측이 더 컸다.

좌군의 기사와 기병이 쐐기 대형으로 고블린 진형을 분쇄했고, 중군의 보병과 우군의 보병이 고블린과 충돌했다.

고블린 주술사, 라이더 부대, 자이언트 고블린 부대가 곳곳에 투입됐지만, 기사들과 기병을 막아낼 순 없었고, 보병들도 협동 공격으로 진화체를 쓰러뜨렸다.

“어떤가, 유리! 이게 바로 전장일세!”

장검을 빼 들고 활약하는 부쉬트니 자작은 전장을 즐겼지만, 유리는 죽고 죽이는 광기의 소용돌이에서 여유로울 수 없었다.

“헉… 헉…….”

고블린 지휘부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고블린 로드 데카이저는 자신들의 진영이 무너지고 있자 고블린 사제를 투입했다.

“광기의 축복을 시작하라!”

사제들은 가까이 있는 고블린을 제물 삼아 주술을 발동했고, 잠시 후 일대의 고블린이 광기에 빠져들며 신체 능력이 강화되었다.

공포를 잊고 무작정 달려드는 고블린에 의해 인간 측 보병과 용병들의 진영이 무너지며 난전에 돌입했다.

“나, 엠브라스 부쉬트니가 길을 열겠다! 돌격!”

“자작님을 지켜라!”

양쪽 진영 모두 혼란에 빠져든 상황에서도 인간 측 기병들이 고블린을 쓸고 다니자, 데카이저는 최정예 고블린들로 하여금 기병 부대를 상대하게 했다.

2.5미터 거구를 지닌 자이언트 홉 고블린.

불, 번개, 속박 주술을 사용하는 홉 고블린 주술사.

회색 늑대를 탄 홉 고블린 라이더.

제물을 통해 광범위 강화 주술과 쇠약 주술을 걸 수 있는 홉 고블린 사제.

각 부대에는 고블린 4천왕이라 불리는 대장급 고블린이 있었고, 이들이 나서자 기사와 기병들의 무쌍도 막을 내렸다.

“피의 축복! 피의 저주!”

홉 고블린 사제들이 정예 고블린을 강화하고, 기병들에게 쇠약 주술을 걸자 기사와 기병들이 당황했다.

“놈들의 저주다! 기사들은 오러를 운용해 주술을 떨쳐 내라!”

기사들은 자력으로 주술에서 벗어났지만, 기병들은 무거워진 몸으로 힘겹게 고블린을 죽이며 말을 달려야 했다.

홉 고블린 주술사들이 이어서 전류 공격을 퍼붓자, 감전당한 선두의 말들이 쓰러지며 기병들이 멈췄다.

“키키! 인간들이 멈췄다!”

돌파력을 잃은 그들의 측면을 자이언트 홉 고블린과 홉 고블린 라이더들이 덮쳤다.

적진에서 고립된 기사와 기병들은 강화된 고블린 정예들과 전투를 벌여야 했다.

그러한 전장 속에서 유리는 말을 버리고도 자이언트 홉 고블린 두 마리를 처리하는 쾌거를 거두었다.

“헉헉, 자작님은…….”

상급 기사인 부쉬트니 자작은 자이언트 홉 고블린 부대의 대장과 박빙의 전투를 벌였다.

“호, 고블린 주제에 나를 상대로?”

“인간 주제에 내 공격을 막아 내다니…….”

둘은 서로 다른 언어로 감탄하며 합을 겨루었다.

오러를 두른 장검과 육중한 둔기가 부딪히며 마찰로 인한 불꽃이 튀었다.

“백작님, 예상대로 놈들이 미끼를 물었습니다.”

“그렇군. 슬슬 우리도 출전하지.”

인간측 지휘부의 대장인 백작은 고블린 지휘부의 정예들이 전장에 투입된 걸 확인하고서 최정예로 구성된 별동대를 데리고 출격했다.

“나를 따라라! 고블린 로드를 잡아 전쟁을 끝내겠다!”

백작이 지휘하는 100명의 기사와 200명의 수습기사가 고블린 지휘부를 향해 돌격해 오자, 데카이저는 고블린 4천왕을 급히 불러들였다.

기사들이 고블린 진영을 뚫고서 데카이저와 마주했다.

“전력을 쏟아라!”

적진에서 적장과 마주한 그들에겐 시간이 많지 않았다.

“인간 놈들, 나를 노리다니! 어림없다!”

최상급 기사인 백작을 포함한 100명의 기사를 상대로 데카이저는 온 힘을 다해 맞섰다.

캉! 캉!

백작을 포함한 기사들은 차륜전을 통해 고블린 로드를 충분히 잡아낼 수 있는 전력이었으나, 적진 깊숙이 돌격해 오며 소모된 체력과 더불어 조급함이 묻어났던 탓에 발목을 잡히고 말았다.

‘저놈은 조금 위험하군.’

데카이저가 위협이라 판단한 백작을 집요하게 노리자 기사들은 백작을 지키느라 전력을 쏟지 못했고, 백작 또한 뒤늦게 자신의 자만을 깨닫고 수세를 취했다.

그 결과, 전신에 수십 줄기의 상처를 입었음에도 데카이저는 정예 고블린이 돌아올 때까지 살아남았고, 정예의 지원을 받아 백작에게 큰 상처를 입힘과 동시에 스무 명의 기사를 양단해 버렸다.

“약하군. 이 정도로 날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했나?”

“실패다! 백작님을 챙겨서 물러난다!”

마력을 소진한 데카이저도 과도한 출혈로 서 있기 힘든 상황이었지만, 허세로 백작과 정예 기사를 쫓아냈다.

일부 기사가 남아서 시간을 벌어 줬기에 백작은 무사히 퇴각할 수 있었고, 지휘부에 복귀한 백작은 정예 기사의 빈자리를 보곤 격분했다.

“이… 이……!”

연로한 백작이 화병으로 쓰러지면서 지휘부는 혼란에 휩싸였다.

“해가 저물어 간다. 평야의 전투를 빨리 마무리해야 해!”

해가 저물기 시작하자 지휘부에선 노란 깃발 세 개를 올렸다.

“퇴각이다! 2차 저지선까지 퇴각하라!”

인간들이 물러가기 시작하자, 고블린들은 등을 보인 인간 사냥에 열을 올렸다.

“추격하라! 오늘의 식사를 확보하는 거다!”

이 한 번의 격돌로 고블린은 40%의 병력을 소실했고, 인간 측 또한 20%의 병력을 잃었다.

얼핏 보면 인간 측이 이익을 본 듯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대량의 식량을 확보한 고블린은 병력을 손쉽게 충원할 수 있는 반면, 인간 측은 총지휘관인 백작의 부상과 정예 기사 상당수를 잃어 병력의 보충은커녕 지휘 체계마저 흔들리고 있었다.

“밤이다! 놈들에게 우리의 무서움을 알려 줘라!”

어둠이 뒤덮인 밤에도 고블린의 진군은 멈추지 않았다.

“사수하라!”

인간들은 목책과 횃불에 의지하여 고블린들을 힘겹게 막아 냈지만, 기병이 활약할 수 없는 밤이라 보병과 용병들의 피해가 컸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바르퀴르 성의 탈환을 쉽게 생각했던 유리는 대영주인 아버지가 직접 나서고도 고블린에게 밀린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이대론 백작가를 잇기는커녕… 백작가 자체가 무너질 거야!”

고블린을 숲으로 밀어 넣지 못하면 흑탑의 힘도 빌릴 수 없다고 생각한 유리는 깊게 절망하고 있었다.

그때, 유리의 막사에 부쉬트니 자작이 술병을 흔들며 찾아왔다.

“유리 경, 아직 답변을 못 받아서 이렇게 찾아왔네. 그래, 내 딸 중에 누가 제일 맘에 들던가?”

유리는 여유로운 자작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런 상황에 노망이라도 난 건가?’

자작은 눈치가 빨랐다.

“유리 경, 노망난 노인을 바라보는 눈빛인데… 내 착각이길 바라네.”

“죄송합니다, 자작님. 그런데 무슨 일로…….”

“축하주라도 한잔하자고 이렇게 찾아왔네.”

“그게 무슨…….”

“남부의 까마귀가 쓰러졌으니, 이제 유리 경의 시대가 오지 않겠나?”

“까마귀만 쓰러졌다면 그렇겠죠. 그런데 둥지까지 털릴 마당에 제 시대가 온들 무슨 소용입니까?”

“유리 경은 고블린이 걱정되나 보군.”

“최상급 익스퍼트인 백작이 실패했는데, 고블린 로드는 누가 상대합니까? 이대로 장기전이 되면 남부 영지부터 고블린들에게 먹힐 겁니다!”

“흐흐, 백작이 자만한 거지. 몬스터의 사냥은 전문가에게 맡기면 될 것을.”

“전문가라니요?”

“남부의 겁쟁이라 불린 내가 아무런 대책 없이 여유를 부리고 있다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네.”

부쉬트니가 손가락을 동그랗게 말며 말했다.

“귀족의 힘은 기사와 이것에서 나온다는 걸 명심하게나.”

“돈… 말입니까?”

다음날, 흑기사라고 불리는 용병이 검은 오러를 피우고서 고블린 진영을 휩쓸기 시작했다.

고블린 측은 정예들을 투입해 흑기사를 제거하려 했지만, 판금 갑옷으로 중무장한 흑기사를 잡아낼 수 없었다.

오히려 고블린 로드가 노려지면서 정예 부대의 발이 묶였다.

인간과 고블린 모두 거대한 대검을 온종일 휘두르는 흑기사의 신위에 놀랐고, 유리 또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 사람은 대체…….”

유리의 의문은 선배 기사가 답해 줬다.

“흑기사다. 혼자서 활동하는 아다만티움 급 용병으로 유명하지. 이런 곳에서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

“저 정도 실력이면 어딜 가나 백작 작위는 따 놓은 당상일 텐데, 왜 용병 따위를…….”

“권력에 초연한 초인이거나, 작위를 받을 수 없는 죄인. 둘 중 하나겠지.”

흑기사 덕에 고블린들의 기세가 한풀 꺾였지만, 그렇다 해도 전선이 고착화 됐을 뿐.

전쟁의 장기화는 유리에게도, 부쉬트니에게도 좋지 않았으나, 이를 지켜보던 개미족에겐 어부지리를 노릴 수 있어 유리한 상황이었다.

무한자원 개미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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