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빈집 털이
장로 대표로 고블린 토벌의 총지휘관이 된 나는 겨울 간 전쟁 물자를 충분히 쌓았고, 오크나무 숲 곳곳에 지하 보급 기지를 만들게 했다.
“다크, 외곽의 지하 기지 공사는 끝났다. 통로도 정비를 마쳤어. 언제든 쓰면 된다.”
“수고하셨어요. 언더리페 님.”
기지와 연결된 지하 보급로가 뚫리며 오크나무 숲 전체를 전장화했고, 개미족은 언제 어디서든 출격할 준비를 마쳤다.
다만, 지하의 전장화는 어느 정도 완성됐지만, 지상은 지금부터 작업에 들어가야 했다.
나는 아카시아 숲의 하위 군체 열두 곳에서 워커맨과 스마트 워커를 뜯어 냈고, 마찬가지로 블러리가 하위 군체로 삼은 일대의 소규모 군체에 자이언트 워커를 요구했다.
식량이 부족한 소규모 군체에선 자이언트 워커를 유지할 수 없어 흔쾌히 내줬다.
군체의 병력이 증가했으니, 부대장급 개미 모두가 참석하는 대회의를 열어 부대 구성을 새롭게 편성했다.
울트라 부대 ― 울트라 20기.
하드 부대 ― 하드 워커 100, 자이언트 200기.
궁기병 부대 ― 워커맨과 하드 워커 100기, 스마트와 자이언트 200기.
정찰대 ― 스카이 50, 하이 페어리 50, 플라이 200기.
포병대 ― 개틀링 20, 캐논 80, 액시드 200기.
메가피르와 게르피아가 블러리와 나우피어를 태운 채 울트라 부대를 이끌었고, 카이제르, 네아피코, 페르디코, 크락세스가 하드 부대를 이끌었다.
나머지 부대장급 울트라는 포메온과 함께 둥지 방어에 투입됐고, 궁기병은 나를 따르는 가디언 여덟 명이 각각 부대장이 되어 총 2,400기에 달하는 궁기병 부대가 준비를 마쳤다.
공격조는 하드 부대와 궁기병 부대지만, 하이 워커들이 이끄는 빅 워커와 의료 개미들 역시 보급 기지를 중심으로 일대의 부대를 지원하기로 했다.
준비를 마친 나는 날이 풀리자마자 정찰대를 북과 서로 퍼트린 뒤, 고블린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병력은 어느 정도 갖췄다지만, 이대로 고블린들이 남하해 오면 물량에 밀리는 개미족은 잘 싸워도 공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는다.
‘인간들이 잘해 줘야 할 텐데.’
인간들은 성채 탈환을 위해 속속들이 모여들어 어느 평야 지대를 채우기 시작했다.
고블린 측도 비슷한 병력을 성채에서 쏟아내 북진했고, 그 모습을 확인한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행이야. 고블린들이 인간에게 신경이 쏠렸어.’
고블린들이 인간을 상대하는 동안 오크나무 숲을 요새화할 생각이었다.
나의 계획대로 흘러간다면 인간들이 고블린을 격파한 후 성채를 탈환할 것이고, 패전한 고블린이 오크나무 숲으로 돌아왔을 때 놈들의 수장인 고블린 로드를 찾아내 제거하면 된다.
그러니 고블린들이 이동해 올 만한 경로에 주력 부대들이 활약하기 좋은 사냥터를 만들었다.
중갑 부대라고 할 수 있는 하드 부대는 협소한 지형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했고, 궁기병은 그와 상반된 지형에서 유리하다.
그러니 지원 부대를 동원하여 지형을 다듬었고, 각 부대가 싸울 전장을 마련해 줬다.
“다크 님! 인간들이 밀리고 있어요!”
“인간이 밀린다고?”
오크나무 숲이 요새로 변해 가던 때, 고블린과 인간의 전투 상황이 정찰대를 통해 전해졌다.
조금 의외인 상황에 살짝 놀랐지만, 개미족의 특성과 공허의 마력 덕에 금세 차분해졌다.
‘이대로 고블린이 북진한다면…….’
성채 하나를 차지했을 뿐인데 무한정 불어나고 있는 고블린을 생각해 보면, 결코 좋은 방향이 아니었다.
지금이라도 북진하여 인간들을 도울까 싶었지만, 성채에는 아직도 많은 고블린이 남아 있는 상태.
고블린을 쏟아 내는 성채를 무시하고 진군했다간 보급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생길 게 분명했다.
‘식량이야 고블린으로 채우면 된다지만, 화살과 치유액을 보급받지 못하면 피해가 클 거야.’
이처럼 원정이란 매우 큰 리스크를 가지고 있어 거점을 하나씩 점령해 가며 나아가는 게 정석.
그러나 정석을 따르기엔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다.
‘인간들이 무너지면 놈들의 전력이 이쪽으로 향할지도 몰라.’
당장 합류하지 않더라도 인간들이 버틸 수 있게 후방을 흔들어 줘야 할 상황.
“부대장들은 출격 준비에 들어가라!”
성채 공략을 위해 출전 준비에 들어갔는데, 인간 측에서 고블린 로드 급의 강자가 등장했다.
그로 인해 전선이 고착화 되어 급하게 성을 칠 필요가 없어졌다.
‘됐어!’
속으로 환호성을 지른 내게 모든 준비를 마친 피어레스와 카이제르가 물어왔다.
“다크 님, 언제 출격하나요?”
“9장로, 놈들의 주력을 노리는 것인가?”
이왕 준비도 마쳤으니 어디든 공격해야 하는데, 나는 가성비가 좋은 빈집 털이를 좋아했다.
“놈들의 본진, 고블린 산맥을 친다! 무력 부대만 쓸어버리고 이동을 계속해라! 전군 출격!”
속전속결을 원한 나는 하드 부대와 궁기병 부대 모두를 서쪽 산맥에 몰아넣었고, 빅 워커 부대로 하여금 보급, 사체 수거, 고블린 생포 등을 맡겼다.
궁기병 부대 여덟 개와 하드 부대 네 개가 산개하여 고블린을 학살했고, 하루에도 수백의 고블린이 잡혀 와 둥지의 수용소를 가득 채웠다.
그러자 언더리페가 둥지 밖에 토벽을 쌓아 그곳에 고블린을 몰아넣기 시작했다.
나는 무력 부대와 함께 움직이며 고블린을 사냥했고, 산맥 일대에 싸여 있는 흑마력을 흡수했다.
‘지금이라면 3.5차 가디언도 내 상대는 아니지.’
그동안 많이 강해진 나는 무력에 자신감이 붙었고, 정예가 빠진 고블린 부대 정도는 하찮은 미물로 보일 정도였다.
그래도 사냥이란 귀찮은 것이라 종종 쉬고 싶기도 했다.
‘지금은 분발할 때야. 이런 기회는 흔치 않으니, 한 줌이라도 더 많은 흑마력을 흡수해서 진화를 노리자.’
서쪽 산맥의 고블린을 정리해 가며 산맥 깊숙이 들어온 나는 개미족 군체들을 만나고 다녔다.
이곳의 여왕들은 대체로 생산 특화 종인 팩토리 퀸이었고, 인구 1,000마리 규모의 중소 군체들이었다.
월 100개의 알을 낳는 팩토리 퀸.
그들의 군체는 소수의 자이언트 워커로 둥지를 방어하며 빅 워커로 구성된 채집 개미를 운영했는데.
그동안 고블린과 먹고 먹히는 관계였지만, 로드의 등장 이후 그들의 경험치와 식량이 되어 주고 있었다.
‘지금은 1,000마리 규모지만, 이대로 고블린을 쓸어버리면 개체 수는 폭증하겠지.’
앞으로 번성할 개미족들에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산맥을 돌아다녀 봐도 그들이 식량으로 삼을 만한 게 고블린 외에 없다는 것이었다.
‘이대론 하위 군체로 삼아도 모두 아사하겠어.’
그런 군체 24개를 하위 군체로 받아들인 나는 버섯 재배 인력을 지원해 줬고, 매달 40개의 알을 상납받기로 했다.
‘팩토리 퀸이 속한 군체를 하위 군체로 삼으니, 페로몬 능력과 생산 개미들의 생산력이 늘었어.’
소규모 군체나 워커맨 군체에선 다섯 개의 알만 받는데, 이들에게 마흔 개씩 받아가는 건 그들의 식량 사정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이 정도 받아 주면, 버섯 농장으로 차근차근 성장할 수 있을 거야.’
서쪽 산맥에서 매달 960개의 알, 동쪽 아카시아 숲에서 매달 60개의 알.
그리고 영역 외곽의 소규모 군체 예순네 곳에서 보내오는 320개의 알.
둥지 자체적으로 생산되는 400개의 알까지 더하면 합계 1,340개가 된다.
매달 1,340개의 알을 키워 내는 건 지금 군체의 생산량으로는 부담됐지만, 이들이 성장해 농장을 넓혀 주면 해결될 문제였다.
‘문제는 농장이 커지는 만큼 목탄의 수요가 급증한다는 거야.’
아무래도 철기 문명에 들어서며 목탄 소모량이 급증했고, 갑각충, 꿀벌족 등과 공생 관계를 맺고 있어 무분별한 벌목도 불가한 상황.
이대로 농장을 확장하려면 철기 생산부터 멈춰야 했다.
목재의 자급자족을 위해 노력해 보곤 있지만, 이 또한 쉽지 않은 일.
그렇다고 철기 생산을 멈추면 워커맨과 스마트 계열의 작업 능력이 하락하니…….
‘도구의 발전도 포기할 순 없어.’
목재 부족의 해답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이건… 석탄인가?”
“석탄이요?”
“파이어 피스톤 좀 줘 봐.”
궁기병에게 파이어 피스톤을 받아 불을 붙였다.
불이 잘 붙지 않는 점과, 불이 붙은 후의 연기 발생 여부를 보아 석탄 중에서도 불순물이 적은 무연탄으로 보였다.
‘화력이 나쁘지 않아.’
고블린 산맥을 돌아다녀 보니 이러한 무연탄과 각종 광물이 대량으로 매장돼 있어 개미족이 둥지를 틀기에 적합한 장소가 적었다.
즉, 고블린 산맥은 자원의 보고인 셈.
잘만 활용하면 둥지의 생산량을 극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 터였다.
‘석탄만 확보되면 벌목에 투입되는 인력 일부를 식량 생산에 투입할 수 있어. 그동안 목탄 부족으로 미뤄둔 동력 개발도 가능하겠지.’
석탄을 활용하려면 증기기관도 필요한데, 이는 내가 가진 지식을 토대로 엔지를 굴린다 해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전쟁이 끝나면 연구 기관을 만들어야겠어.’
아카시아 숲 녀석들에겐 설탕수 영양으로 약초를 채집하게 했으니, 산맥 쪽 개미들에겐 석탄을 지렁이 영양으로 교환해 줬다.
당연히 산맥에서 석탄은 흔하고, 영양은 귀하니 그에 따른 교환비가 적용됐다.
“다크 님, 인간들이 저지선을 조금씩 뒤로 물리고 있어요.”
고블린 산맥의 개미족을 안정시키던 내게 페스트가 인간들이 슬슬 힘에 부친다는 소식을 전했다.
“오래 버텨 줬네. 슬슬 뒤에서 흔들어야겠어.”
전쟁이 좀 더 오래가길 원했던 나는 인간들이 힘을 낼 수 있게 도와주기로 했다.
고블린 산맥 쪽 잔당 소탕은 두 개의 궁기병 부대와 하위 군체들에게 맡긴 나는 하드 부대와 나머지 궁기병 부대를 이끌고 성채 공략에 들어갔다.
정예병은 인간과의 전쟁에 동원됐다곤 하나, 제2의 본진이 돼 버린 성채에는 아직도 많은 고블린이 있었다.
‘너무 많은데.’
통상 성을 공략하기 위해선 수성 병력의 세 배는 필요하고, 공성 병기를 갖춰야 하는 법.
‘쉽지 않겠는걸…….’
성벽 위에 고블린이 빼곡히 차 있어 쉽게 뚫릴 것 같지 않았다.
‘그래도 견제 정도는 해 줘야겠지.’
나는 궁기병 중 절반을 이끌고 성벽에 다가갔다.
“개미족이다! 활을 쏴라!”
고블린이 쏘는 조잡한 화살의 사정거리 밖에서 성벽을 따라 오른쪽으로 도니, 성벽 위의 고블린도 우르르 움직였다.
‘저 녀석들, 뭐 하는 거지?’
놈들 사이에 지휘관이 부족하다는 걸 느낀 나는 대기 중인 궁기병 부대 대장들에게 출격을 지시했다.
나와 마찬가지로 900기가 성벽에 접근하여 왼쪽으로 돌자, 고블린들이 우르르 움직이며 빈틈이 드러났다.
그 틈으로 카이제르, 네아피코, 페르디코, 크락세스가 하드 부대를 이끌고 돌진했다.
“돌격!”
고블린과 인간들에게나 성벽이지, 벽 타기에 능한 개미족에게 성벽은 문제되지 않았다.
중갑 기동대인 하드 부대가 고블린의 화살 공격과 무기 투척을 가볍게 받아 내며 성벽을 넘어 버렸다.
고블린은 믿던 성벽의 배신에 당황했고, 성벽 위로 올라온 하드 부대가 압도적인 피지컬로 고블린을 쓸어버렸다.
“성문이 열린다! 우리도 들어가자!”
궁기병은 하드 부대가 열어 준 성문을 통해 여유롭게 진입했다.
“피어레스는 북쪽, 게르피아는 서쪽, 헤르피아는 남쪽 문을 지켜라! 고블린이 한 마리도 빠져나가지 않게 해! 게아, 넌 이곳 남문을 지켜!”
궁기병 1,200기를 성문 봉쇄에 쓰고, 남은 600기와 하드 부대 1200마리로 성안의 고블린을 학살했다.
무한자원 개미군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