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자원 개미군단-66화 (65/189)

66화. 멸망하는 고블린

패닉에 빠져 도주하거나 숨어버린 고블린을 찾아 죽이는 건 매우 귀찮은 일이었지만, 어차피 해야 하는 일.

성안에 쌓인 흑마력을 흡수하는 기연까지 얻게 되자 내 말벌창은 지치지 않았다.

‘슬슬 흑마력을 축적하는 것도 한계에 도달했어.’

몸안에 가득 쌓인 흑마력을 전신에 주입했다.

그러자 마력의 응축 현상이 일어나며 몸에서 연기가 피어 올랐다.

마력 발현.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인 마력이 실체를 갖게 된 순간이었다.

3.5차의 경지에 도달한 개미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비기.

나는 겨울 동안의 수련으로 이 경지에 도달했고, 흑마력을 다루는 개미답게 칠흑색 연기를 피워 올렸다.

칠흑의 연기는 모든 걸 집어삼키듯 주변의 흑마력을 포식하더니 더욱 커져 나의 무기와 갑옷이 됐다.

이 상태라면 과거에 고전한 킬러 퀸 메르바도 한 방에 처리할 수 있으나, 마력과 체력의 소모가 커서 오래도록 유지하기는 쉽지 않았다.

‘주술사와 사제들부터 제거하자.’

나는 눈과 더듬이에 마력을 주입하여 감각을 끌어올렸다.

열 감지, 진동 감지, 마력 감지 등등, 광범위한 다중 감지 능력으로 진화체를 찾아 죽였다.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어.’

성채 안에는 수만에 달하는 고블린이 있었지만, 진화체만 찾아 처리해 두면 서로 뭉치지 못하여 군으로 움직이는 개미족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고블린의 토벌은 수일간 진행됐고, 인간들이 산 채로 먹히는 식당과 인간 여자가 갇힌 곳을 발견했다.

“챙겨라!”

운 좋게 구해진 남자 50명과 여자 500명.

남자들은 공포에 질려 있었고, 여자들은 고블린 땀샘에서 분비되는 마비독에 노출돼 눈이 풀려 있었다.

고블린 독은 일종의 최음제로 인간에게나 통하지, 개미족에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다크 님, 고블린들의 주력 부대가 돌아오고 있어요!”

소모전을 통해 인간들을 밀어붙이던 놈들이 뒤늦게 성이 털리고 있다는 걸 알고 군을 돌렸다.

놈들의 군세는 2만이 넘고 질적으로도 뛰어났지만, 기병이라 할 수 있는 라이더는 우리의 궁기병에게 미치지 못했다.

‘수성전에선 궁기병의 기동력을 살릴 수 없어.’

성이 포위되면 곤란하니, 후퇴를 결정했다.

‘인간들이 좀 많네. 두고 갈 수도 없고.’

데려가지 않으면 고블린의 자원이 되니, 부하들에게 먹어 치우라고 명령해야 한다.

양심이랄 게 마모된 지 오래여서 인간들을 처리하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그러기엔 인간은 귀중한 노동력이었다.

‘수용 문제는 영역 내에 마을을 만들어 주면 해결돼. 문제는 장로들이 반대할 거란 말이지.’

장로들을 어떻게 설득할지 고민하며 인간들을 챙겼다.

* * *

쓰러졌던 벨레삭 백작은 사제들의 도움으로 체력을 보충하고 지휘부를 지켰다.

“목책이 뚫렸습니다.”

“다음 목책이 있는 곳까지 물러난다!”

끝도 없이 밀려오는 고블린들의 물량전에 밀린 인간 측은 후퇴를 거듭하다 결국 최후의 저지선까지 물러나게 됐다.

만일 여기서도 밀려 백작성까지 물러나게 되면, 병력을 데려온 가신들의 영지와 백작령의 절반 정도가 고블린에게 짓밟힐 터라 더는 물러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병력 절반이 소실되며 탈영병까지 발생하는 상황에서 버틸 수가 없었다.

백작이 퇴각을 고려할 때, 바르퀴르 성채가 개미족에게 함락됐음이 데카이저에게 전해졌다.

“맛도 없는 녀석들이 날뛰는군. 그놈들부터 쓸어서 군량으로 삼아야겠다.”

병력을 보충해 주고 있던 성채 없이는 전쟁을 지속할 수 없다고 판단한 데카이저는 급히 퇴각을 결정했고, 성채를 안정시킨 후 서쪽 산맥의 고블린을 끌어와 개미족을 소탕할 계획을 세웠다.

인간 측 지휘부에 연락병이 달려와 외쳤다.

“물러납니다! 놈들이 물러나고 있습니다!”

“정말이냐?”

백작은 반신반의하며 생각했다.

‘이상하군. 이렇게 물러날 이유가 없는데… 설마 함정인가?’

함정일지도 모른다고 판단한 백작은 군을 정비하려 했지만, 아다만티움급 용병인 흑기사를 필두로 용병들과 기병들이 추격에 나서며 군을 물릴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전공을 쌓을 시간이다!”

“죽여라! 한 놈도 살려 두지 마라!”

유리와 부쉬트니 자작 또한 지금이 기회란 생각에 필사적으로 내달리며 고블린을 죽였다.

데카이저는 언제든 보충이 가능한 고블린 1만을 남겨 추격자들을 저지했고, 그 사이 성채로 무사히 회군했다.

“…….”

성채에 들어선 데카이저와 그를 따르는 사천왕은 할 말을 잃었다.

개미족은 이미 떠나가고 없었고, 갈가리 찢긴 고블린 사체만이 널려 있었기 때문이다.

“감히… 개미족 따위가……!”

분노한 데카이저는 서쪽 산맥에 연락병을 보내 고블린을 모아오게 했으나, 개미족에게 본진이 점령당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전해 들었다.

“뭐라고? 산맥마저 당했다는 것이냐! 당장 돌아가 봐야겠다!”

“데카이저 님, 지금 산맥 쪽에는 개미족이 포진해 있습니다. 방벽까지 만들어 둬서 진군이 어렵습니다.”

“놈들이 산맥에 포진해 있다면 놈들도 본진이 비었겠군. 개미족 놈들은 여왕만 잡으면 끝나는 종족이다. 놈들의 둥지로 간다!”

“그럼 인간들은…….”

“무시해라! 개미족이 먼저다!”

데카이저는 북문 쪽 평야에 인간들이 모여들고 있음에도 남문으로 빠져나와 개미족의 본진이 있다고 알려진 오크나무 숲으로 진군했다.

“모두 쓸어 주겠다.”

* * *

둥지로 돌아온 나는 잡아 온 인간들을 남쪽 영역에 토벽을 세워 가뒀고, 고블린은 서쪽 영역에 몰아넣었다.

살아 있는 인간은 활용하기 좋은 노동력임과 동시에 흑마력을 생산해 줘서 나의 성장을 가속해 주는 자원이 되고, 죽더라도 영양 가치가 높아 개미족에게 인기가 많았다.

‘버릴 곳이 없단 말이지.’

이러한 가치로 장로들을 설득해 낸 나는 추후 남쪽 영역에 인간들의 마을을 만들어 관리하기로 했다.

‘신전을 크게 짓고,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땅을 내줘야겠어.’

이런저런 일로 바쁘게 보내며 산맥 쪽 길목을 점검하고 있을 때, 고블린 군세가 오크나무 숲으로 밀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미끼를 물었군.’

일부러 산맥 쪽에 기동력이 좋은 궁기병을 배치하여 본진이 비어 있는 것처럼 위장했는데, 고블린이 속아서 다행이었다.

“페스트, 각 궁기병 부대에게 지정한 장소로 이동하라고 전해.”

“네!”

숲 밖에서 대회전을 치렀다면 모를까 내가 완성한 전장에서 맞붙는 이상 패배는 고려하지 않았다.

‘놈들 하나하나는 말벌족보다 약하단 말이지.’

고블린은 병력을 보충해 가며 밀어붙이는 걸 선호했는데, 이는 압도적인 번식력으로 산맥과 성채에서 인구를 불리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런데 어쩌나? 내가 암컷이랑 인간 여자를 다 잡아들였는데…….’

놈들의 생산 기지를 모두 파괴한 이상, 소모전에서 유리한 건 개미족이 됐다.

‘너희들은 집을 잃고 떠도는 고블린에 불과해.’

물론 그렇다고 소모전으로 끌어갈 이유는 없다.

‘숲으로 들어온 이상, 너희는 우리의 밥이다.’

뭉쳐 있어도 시원찮은데, 좁은 숲길에 의해 쪼개질 그들은 개미족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뭉쳐라! 흩어지지 마라! 남쪽으로 진군해 개미족을 처리하라!”

고블린들도 그걸 아는지 최대한 뭉치려 노력했지만, 가만히 두고 볼 내가 아니었다.

“궁기병! 놈들의 진영을 깨트려라!”

여덟 개의 궁기병 부대가 각각 다른 장소에서 치고 빠지는 스웜 전술로 고블린 군단을 타격하자, 참다못한 고블린들이 궁기병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다크 님, 놈들이 흩어지고 있어요.”

이러한 상황을 페스트를 통해 듣고 있던 나는 실소를 머금었다.

“1만이나 되는 군대가 쉽게 통솔되겠어?”

고블린 지휘부는 군단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했고, 흩어진 고블린 부대는 개미족의 손쉬운 먹잇감으로 전락했다.

“궁기병들이 고블린을 몰고 온다. 하드 부대, 준비하라!”

궁기병을 쫓던 고블린들은 하드 부대가 배치된 길목을 지나쳐야 했다.

“지금이다! 하드 부대 돌격!”

하드 부대가 궁기병을 추적하느라 길게 늘어진 고블린 진영의 허리를 잘랐다.

“큰 개미! 많다!”

“도망가야 해!”

이러한 상황이 오크나무 숲 전역에서 벌어지자, 고블린 피로 이루어진 초록 냇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마력안을 통해 한 덩어리였던 고블린 군단이 산산조각이 난 채 몰살당하고 있는 상황을 감지한 나는 피어레스가 이끄는 궁기병과 함께 고블린 주술사, 고블린 사제 등을 찾아다녔다.

마력을 흡수해 버리는 공허의 마력은 주술을 지워버린다.

그러니 개미족의 천적이라 할 수 있는 주술사와 사제의 천적은 내가 되는 것.

마안과 더듬이라는 탁월한 색적 능력까지 갖춘 나는 주술사와 사제를 손쉽게 찾아내 제거할 수 있었다.

“다크 님, 대단하십니다.”

“뭐, 이정도야.”

주술사와 사제들을 어느 정도 정리한 나는 슬슬 뭔가 잘못됐음을 깨닫고 군을 정비하려는 고블린 본대를 치기 위해 움직였다.

“페스트, 울트라 부대와 하드 부대를 모아 줘!”

“궁기병들은요?”

“더 휘저으라고 해!”

고블린 로드를 상대할 정예 맴버로 메가피르, 게르피아, 블러리, 나우피어 등을 모은 나는 울트라 부대와 하드 부대를 앞장세워 적의 본진을 분쇄하며 나아갔다.

“개미족이다!”

“강하다! 피해!”

일반 고블린이나 자이언트 고블린으론 하드 부대를 막을 수 없고, 자이언트 홉 고블린 부대로도 겨울 동안 훈련을 거쳐 성장한 울트라 부대를 저지할 순 없다.

개미족의 돌진을 막기 위해 홉 고블린 주술사들이 나섰고, 그에 맞춰 내가 선두에 나서서 적들이 쏘아 내는 전기 공격을 공허의 마력을 뿌려 지워버렸다.

“주술은 신경 쓰지 말고 쐐기 대형으로 돌진이다!”

얼마 후, 잡몹들을 몰아낸 나는 정예 멤버들과 함께 고블린 로드를 마주할 수 있었다.

* * *

“쫓지 마라! 그대로 둥지의 여왕을 치면 된다!”

“데카이저 님, 틀렸습니다. 이미 홉 고블린 백인장들이 추격에 나섰어요.”

1만의 군세로 오크나무 숲에 진입한 고블린 로드 데카이저는 치고 빠지는 궁기병들에 의해 와해되는 군을 보며 당황했다.

“젠장! 왜 말을 들어 처먹지 않는 거야!”

잠시간 격분한 데카이저였지만, 금세 화를 가라앉히고 서쪽 산맥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이번 원정은 실패다.”

고블린 산맥은 넓다.

기동력이 좋은 궁기병이라도 모든 고블린 촌락을 꼼꼼히 토벌하려면 몇 년은 걸린다.

“아무리 개미족이라도 산맥의 모든 고블린을 죽일 순 없다. 지금 돌아가면 구석진 곳에 있는 촌락들은 구할 수 있겠지.”

설령 산맥이 초토화됐어도 산맥을 넘어가 암컷을 구해 오면 되고, 데카이저는 암컷을 확보해 피해를 복구한 후 개미족에게 복수할 생각이었다.

“좋은 경험이었다.”

데카이저가 살아 돌아간다면 그의 말대로 좋은 경험이 되었겠지만, 진군 방향을 서쪽으로 튼 고블린 본대를 향해 다크가 이끄는 울트라 부대와 하드 부대가 들이쳤다.

본대의 고블린이 쓸려 나가는데도 데카이저는 담담했다.

그도 그럴게 데카이저가 믿는 존재가 있었다.

“클클… 개미족의 천적인 제가 나설 차례군요.”

“그래, 하르카도. 개미족에게 짜릿한 맛을 보여 줘라!”

“다녀오겠습니다.”

100인대 규모의 홉 고블린 주술사 부대를 이끄는 사천왕 하르카도가 나섰다.

기세 좋게 나선 홉 고블린 주술사 부대는 다크란 천적을 만나 아무런 성과 없이 쓸려 나갔다.

“데카이저 님, 하르카도 님이 전사했습니다!”

“뭐라고? 그럼 주술사 부대는?”

“…그게.”

당황한 데카이저는 급히 명했다.

“베이탄, 카샨, 크락치! 너희들이 나서서 놈들을 막아라!”

“네! 놈들에게 우리의 힘을 보여주겠습니다.”

“회색 늑대들의 식사 시간이군요.”

“고블린에게 피의 축제를! 개미 놈들에게 피의 저주를!”

데카이저가 나머지 사천왕들을 투입해 개미족을 막아 보려 했지만, 자이언트 홉 고블린 부대를 이끌던 베이탄은 턱과 직도에 마력을 피워 올린 메가피르와 블러리의 합공에 의해 순식간에 썰려 버렸고, 홉 고블린 라이더 부대를 이끄는 카샨 또한 게르피아에 의해 압사당했다.

“데카이저 님, 베이탄님과 카샨님이…….”

홉 고블린 사제들이 고블린들을 제물로 바쳐 개미족에게 저주를 퍼부었지만, 이 또한 다크의 공허의 마력에 흡수되어 사라졌다.

다크는 고블린 사이에 숨어 있는 홉 고블린 사제들을 찾아내 제거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데카이저는 사제들의 전멸 소식을 듣게 됐다.

“어떻게 이럴 수가… 나의 대업이…….”

사천왕이 무너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데카이저는 다크를 필두로 한 메가피르, 게르피아, 블러리, 나우피어를 마주했다.

“네놈들이냐…….”

다크를 포함한 넷은 정찰대 소속의 하이 페어리들의 버프를 받으며 데카이저와의 일전을 준비했다.

무한자원 개미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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