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자원 개미군단-69화 (68/189)

69화. 뜻밖의 조력자

숲의 절대자급 몬스터들이 모인 이곳에 인간이라니.

그런데 나만 과민하게 반응할 뿐, 다들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인간치곤 꽤 강하군. 상당히 맛있겠는걸.”

“오그르트, 이곳은 내 영역이다. 배가 고프면 네 영역으로 돌아가서 사냥하도록.”

다양한 몬스터가 각축전을 벌이는 숲속의 존재들에게 있어 인간은 하나의 종족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인간의 왕급은 오랜만에 보는 걸… 그런데 어쩌지? 인간들의 말은 안 쓴지가 꽤 됐는데. 오그르트는 어때?”

“난 비명만 들어봐서 말이야. 인간의 언어라면 헤라클레스가 제일 많이 듣지 않겠어?”

“나도 알아듣기만 할 뿐, 직접 말해 본 적이 없다.”

흑색 갑주와 말이 통하지 않는 걸 걱정하던 그들에게 포스가 말했다.

“우린 인간들을 사육하며 그들의 언어를 익혔다. 통역이 필요하면 내 아이들을 붙여 주지.”

“호오~ 개미 놈들, 인간 농사를 짓고 있었나? 그거, 나도 해 봐서 아는데 조금만 실수해도 부서지는 데다 고블린처럼 아무거나 먹여도 안 돼. 그뿐인 줄 알아? 번식력도 떨어지고 살이 오르려면 십 년은 넘게 기다려야 하지.”

오그르트의 말이 길어지자 포스가 말을 끊었다.

“네 경험담 따윈 필요 없다. 이미 내 아이들이 잘하고 있으니.”

포스의 지시로 하이 페어리 한 마리가 흑색 갑주에게 날아갔다.

통역이 붙자 흑색 갑주가 내뿜는 흑마력이 커졌다 작아졌다 하며 반응을 보였다.

“오그르트, 네놈부터 용건을 말하고 꺼져라.”

헤라클레스의 재촉에 오그르트가 인상을 찌푸리곤 포스에게 말했다.

“진화하면서 세상이 달라 보이겠지만, 벌레인 너와 오거인 내가 같은 급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내게 도전하고 싶은 것 같은데… 나는 헤라클레스와 나르본느보다 훨씬 강하다!”

오거는 모여든 최강자들을 벌레 취급하며 광역 도발을 시전했다.

“할 말이 아직도 남았나?”

“무식한 무투파가 부지런하면 아무 데나 시비를 걸고 다닌단 말이지…….”

헤라클레스는 담담하게 받아넘겼고, 나르본느는 귀를 파며 흘려들었다.

포스 또한 수행이 깊은지 차분하게 듣고는 간혹 한마디씩 더할 뿐.

“그래서 붙자는 거냐, 말자는 거냐?”

포스가 도발에 넘어가지 않아 다행이었지만, 나는 흥분한 채 돌진하려는 개미들을 저지하느라 고생해야 했다.

결국 도발에 실패한 오거가 어깨를 늘어뜨리곤 서쪽으로 돌아갔다.

코끼리보다 더 무거울 것 같은 놈의 움직임은 가벼웠고, 품고 있는 마력을 봤을 때 자칭 최강이란 말이 허언으로 생각되진 않았다.

그 다음으로 강할 것이라고 추측되는 헤라클레스와 나르본느.

그런데 둘에게선 포스와 마찬가지로 강렬한 마력을 느낄 수 없었다.

그 의문은 헤라클레스의 한 마디에 해소됐다.

“불청객이 사라졌으니 본론으로 들어가지. 포스라고 했나? 갓 진화한 것치곤 마력을 잘 숨겼군.”

“네놈도 상당하군. 어때? 한판 붙어 보겠나?”

“우리가 왜 모였는지 모르는 건가?”

“싸우기 위해 모였거나, 싸우지 않기 위해 모였겠지.”

“내 영역에서 나온 준왕급 몬스터가 멍청하지 않아 다행이야.”

나르본느가 숲의 절대자들이 이곳에 모인 이유를 한마디로 정리해 줬다.

“우리의 용건은 후자 쪽이야, 서로의 영역에 침범해서 분탕질 치지 말자는 이야기를 하러 온 거지.”

말하자면 강자들끼리 서로 건드려 봐야 피곤하니 평화롭게 지내자는 건데…….

‘하긴, 걸어 다니는 재앙과 같은 놈들이 멋대로 설쳤으면 숲이 남아나지 않았겠지.’

오그르트의 마력이 충분히 멀어지자, 인간형 잠자리와 사마귀가 다가왔다.

“네우라 킹, 네론이다.”

“블레이더, 크라스다.”

네론은 머리 부분은 통째로 잠자리였지만, 몸통은 인간 형태였다.

그리고 개미족의 인간 형태와 비슷하게 잠자리 엉덩이가 꼬리처럼 길게 뻗어 있었다.

‘잠자리니까 비행 능력이 상당하겠어.’

방금 전, 오그르트의 위협에 두 쌍의 날개가 각기 다른 방향으로 움직여 정지 비행까지 수월하게 해내지 않았는가.

‘비행 속도에 자신 있어 보이는데, 날 수만 없게 하면 고블린 로드 수준일 거야.’

크라스는 얼굴 아랫부분은 인간의 것이고, 코 윗부분으로 사마귀 투구를 덮어쓴 듯한 외형에, 양어깨에 사마귀 앞발이 돋아 있었다.

‘어깨에 공격용 팔이 있군. 어디까지 뻗을 수 있는지 감이 안 잡히는걸.’

크라스의 신체는 외계인 같은 초록 피부와 극소 부위에 초록색 외골격이 섞여 있어 날렵한 느낌이 났고, 허리 쪽에는 앞으로 휘어진 낫 모양의 칼이 두 자루 붙어 있었다.

‘날개와 사마귀 엉덩이는 약점이 될 거고, 블러리 이상의 살상력을 가졌다 해도 궁기병으로 충분히 공략이 가능한 형태야.’

포스에게 다가간 네론은 이곳 숲속 지형에 관해 이야기를 해 주며, 왕급과 준왕급 몬스터의 영역을 알려 줬다.

“이곳에서 서쪽 고블린 산맥을 넘어가면 왕급 중에서도 최강이라 할 수 있는 오거의 영역이고, 남쪽으로 가면 버드나무 호수가 있다.”

서쪽 ― 고블린 산맥, 오거 산림

남쪽 ― 버드나무 호수, 거미족 영역

동쪽 ― 아카시아 숲

북쪽 ― 클라우드 왕국

고블린 산맥과 아카시아 숲까지 먹었으니, 오거 산림과 맞닿게 됐고, 버드나무 호수를 중심으로 거미족, 잠자리 몬스터인 네우라, 사마귀 몬스터인 맨티스, 그 외에도 다양한 몬스터가 서식했다.

“나와 크라스는 거미족 영역에서 자란 준왕급 몬스터다. 우린 각각 버드나무 호수와 맞닿은 서쪽과 동쪽 귀퉁이를 영역으로 삼고 있지.”

네론과 크라스는 나르본느와 헤라클레스에 미치진 못하는 준왕급 몬스터로 숲에선 적수가 없다고 했다.

그런 네론이 포스를 왕급 몬스터로 인정했다.

“개미왕. 나의 힘은 네놈에 미치지 않지만, 나는 그 어떤 왕급 존재보다 빠르다. 그러니 동족을 아낀다면 날 건드리지 않는 게 좋을 거야.”

크라스도 포스에게 경고했다.

“조금 전, 고블린 로드와의 전투는 잘 봤다. 우릴 녀석과 같은 수준으로 착각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군. 그놈은 준왕급조차 되지 못한 하자투성이의 몬스터였다.”

“하자?”

나의 의문에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지만, 날 유심히 지켜보던 나르본느가 나를 대신해 네론에게 물었다.

그러자 군기가 바짝 든 네론이 말했다.

“놈은 자이언트 홉고블린에서 로드로 진화한 존재입니다.”

“아~ 그거. 가끔 무투파가 지휘종으로 진화해서 어중간한 개체가 되는 경우잖아.”

내가 그 말에 관심을 보이자, 나르본느가 친절히 설명해 줬다.

“고블린 로드는 지휘 특화종이라서 고블린 킹이 수련을 쌓아 진화하게 돼. 그런데 가끔 무력 특화종이 수련도 쌓지 않고 고블린 로드가 되는 경우가 있어. 그런 녀석들은 마강기도 제대로 못 다루고 갓 진화한 준왕급 몬스터에게도 당할 수 있는 거지.”

“저희 여왕님은 준왕급인가요?”

“애매한 걸… 준왕이라 하기에는 마강기 다루는 게 너무 능숙해. 그렇다고 왕급이라 하기에는 부족해 보인단 말이지. 원래 눈으로 봐선 모르는 법이야. 그래도 뭐, 네론과 크라스가 왕급이라고 인정했으니, 왕급 아니겠어?”

이상하게 친절한 나르본느가 부담스러웠지만, 그녀가 있어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경우를 피할 수 있었으니, 살짝 고마운 마음은 들었다.

‘하지만 고마운 건 고마운 거고… 문제는 그녀의 목적이야.’

네론과 크라스를 떠나보낸 헤라클레스가 포스에게 오크나무 숲에서 날뛰지 말 것을 부탁하며 영역을 공유하기로 했다.

“왜 내가 이런 부탁을 하는지 알겠나?”

“알고 있다. 집을 잃고 싶지 않은 것 아닌가?”

“알고 있다니 다행이군.”

용건을 마친 헤라클레스는 포스를 걱정했다.

“난 용건을 마쳤다. 가 봐도 문제없겠나?”

“무엇을 걱정하는지 모르겠군.”

“불필요한 걱정이었나 보군.”

헤라클레스가 떠나면서 나르본느와 흑색 갑주에게 주의를 줬다.

“너무 오래 있지 마라.”

포스가 남은 둘을 쳐다보며 물었다.

“아직 용건이 남았나?”

그러자 흑색 갑주는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고, 나르본느도 내게 용건이 있음을 밝혔다.

“나도 이 녀석에게 용건이 있어서 말이야. 내게 잠시 빌려주지 않겠어?”

“다크를?”

보호자 없이 왕급들과 함께 있는 건 내게 리스크가 너무 컸기에 나는 포스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싫다는군.”

“저번에 보니 내가 쳐 둔 거미줄을 회수해 갔던데, 필요하다면 나눠 줄 수 있어.”

거미왕이 주변에 쳐 둔 거미줄을 회수하고는 실뭉치를 만들어 내게 건넸다.

물질로 낚으려 하는 나르본느가 의심스러웠던 나는 정중히 거절했다.

“지금 제가 많이 지쳤는데, 다음은 안 될까요?”

“갑각왕 놈이 워낙에 깐깐해서 자주 오지 못하는데…….”

나도 그녀와 흑색 갑주에게서 친숙함을 느끼고 있어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그래도 안전을 우선하려 했다.

그때, 침묵하고 있던 흑색 갑주가 끼어들어 인간의 언어로 말했다.

“데몬 튤라, 하프 데몬. 너희와 할 이야기가 있어 이곳까지 왔다. 보시다시피 난 대화를 위해 무기를 내려놓았으니 안심해도 좋다.”

나와 거미왕의 종족 명칭을 알다니.

확실히 우리 셋은 대화가 필요할 듯했지만, 존재 자체가 흉기 같은 흑색 갑주가 흉흉한 살기를 흩뿌리고 있어 조금 걱정스러웠다.

나는 그들에게 자리를 옮길 것을 요청했고, 둘은 흔쾌히 승낙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궁기병들에게 흩어진 고블린의 정리를 지시했고, 하드 부대는 남진해 올 인간들을 대비해 언제든 출격할 수 있도록 준비시켰다.

오그르트에게 걷어차인 고블린 로드의 생사를 확인해 보니, 간신히 숨이 붙어 있는 상태.

살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로드까지 했던 놈이니 살려 두기만 하면 쓸 곳은 많았다.

“한번 메디에게 보내 보자.”

지원 부대를 불러 장내를 정리하게 한 나는 나르본느와 흑색 갑주를 데리고 인근의 지하 기지로 갔다.

지하 5층 깊이의 이곳은 내가 강적을 끌어들여 매몰시킬 작정으로 만든 함정 중의 하나로, 수틀리면 위층에 대기 중인 울트라를 시켜 무너트린 후 개미족만이 통과할 수 있는 미로를 통해 빠져나갈 수 있도록 설계했다.

당연히 이들도 바보가 아니니 내게 따라붙을 텐데, 그럼 나와 함께 미로 지옥, 용암 지옥, 연무 지옥, 열탕 지옥, 산액 지옥, 인내 지옥 등 여섯 개의 관문을 거쳐야 한다.

즉, 내성 특화종인 나를 제외하곤 빠져나올 수 없는 감옥이고, 설령 나와 함께 마지막 인내 지옥까지 도달하게 되더라도 내가 밖의 개미에게 구조를 청하지 않는 이상 탈출할 수 없다.

그러니 내가 존버에 들어가면 아무도 나갈 수 없는 곳.

‘혹시 몰라 만들어 둔 곳이지만, 내가 이곳을 이용하게 될 줄이야.’

나는 지하 깊숙이 그들을 안내하며 확인 차 그들의 내성 능력을 물어봤다.

“왕급과 준왕급은 기본적으로 내성이 강해. 나는 그중에서도 특별히 강한 편이지.”

포스의 외형만 봐도 웬만한 약점은 모두 외골격에 덮여 있었고, 그곳도 마력 문양에 의해 더욱 강화된 느낌이었다.

“흑기사라고 불러라, 사람들은 그렇게 부르니까.”

흑기사란 놈은 오만했다.

“지금의 난 무적이다.”

“그렇군요.”

목적지에 도착하자 나르본느는 이곳이라면 헤라클레스에게 간섭받지 않을 거라며 좋아했고, 나는 그들에게 용건을 물어볼 수 있었다.

둘은 각기 다른 언어로 같은 대답을 들려 줬다.

“널 진화시켜야겠어!”

“널 진화시켜야겠다!”

“진화?”

공짜 호의는 없다.

그들이 날 진화시키려는 이유, 그리고 목적을 물어봤다.

“이유? 네가 반쪽짜리 데몬이기 때문이지.”

“네가 암흑신전의 사도이기 때문이다.”

어째서인지 둘은 날 동료라 생각하고 있었다.

무한자원 개미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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