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자원 개미군단-70화 (69/189)

70화. 사도

바르퀴르 성을 되찾은 인간 측은 내성의 대전에 모여 고블린의 추격 문제로 회의에 들어갔다.

“지금이 기회입니다! 고블린 로드가 생존했다면 내년에도 고블린 웨이브가 발생할 테니, 지금 놈을 쫓아 제거해야 합니다!”

“방책을 끼고 싸웠는데도 절반의 병력을 잃었습니다. 이대로 숲에 들어가며 군을 유지할 수 없어요! 차라리 현상금을 걸어 용병들에게 토벌 의뢰를 주는 게 낫습니다!”

남부 귀족들은 부쉬트니 자작을 중심으로 추격해서 끝장내야 한다고 주장했고, 북부 귀족은 반젤 자작을 중심으로 숲에 들어가면 피해가 커질 테니, 용병을 통해 고블린 수를 줄이자고 했다.

“용병? 그 돈은 누가 내나?”

“그럼 기사들과 병사의 운용은 공짜인 줄 아나? 성도 찾아 줬으니 더 도와줄 의무는 없네! 남부의 일은 남부 귀족끼리 해결하는 게 맞지 않겠나?”

“고블린 로드의 문제가 남부 귀족만의 문제라는 것이냐?”

“네놈들이 개척을 소홀히 한 탓이잖아!”

“너희들이 전장에서 전공을 세웠더라면 밀릴 싸움이 아니었어!”

“뭐라고? 지금 우리가 대충 싸웠다고 모함하는 거냐?”

“전력을 다했다고 주장하고 싶은 거라면 고블린 귀라도 가져와 비교해 보는 게 어때?”

백작은 두 파벌이 서자인 유리와 3부인의 둘째 아들인 비에타를 대신해 정치적 대립각을 세우고 있음을 알았다.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며 서로를 압박하는 귀족들을 내려다보며 백작은 생각했다.

‘이번에 부쉬트니 자작의 공이 크긴 하나, 그렇다고 서자인 유리를 밀어줄 수도 없는 노릇이야.’

마음 같아서는 하급 익스퍼트인 유리를 소영주 자리에 앉히고 싶은 백작이었다.

그러나 유리를 소영주로 삼게 되면 혈통주의인 귀족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고, 3부인의 친가 쪽인 세야누스 백작과의 연계가 힘들어질 수 있었다.

‘귀족들이야 찍어 누르면 된다지만, 세야누스 백작과의 연계를 포기할 순 없구나.’

영지의 손익을 따져 본 백작은 토벌 명령을 내리지 않았고, 전공을 원하는 귀족들에게만 따로 출전을 허락해 줬다.

“흑기사를 만나봤으면 한다.”

회의를 파한 백작은 부쉬트니를 불러 흑기사를 찾았다.

“입성할 때, 그는 홀로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대단하군. 그렇게 날뛰고도 여력이 남았단 말인가?”

“그런 듯합니다.”

“마스터급이 일인 군단이라고 듣긴 했지만, 한 끗 차이가 이 정도로 클 줄이야.”

부쉬트니는 조심스러운 태도로 말했다.

“외람되오나 흑기사는 일반적인 검사가 아닙니다.”

“일반적인 검사가 아니라니?”

“그는 암흑신전의 사도로 신마력을 사용하는 존재입니다.”

흑기사의 정체를 알게 된 백작의 눈이 커졌다.

“암흑신전의 사도라면… 50년 전에 흑탑 토벌에 앞장선 그들인가?”

백작은 그동안 품고 있던 의문이 해소됐다는 듯 좋아했다.

“그렇군. 아직도 그들은 흑탑의 잔재를 쫓고 있던 것이었어.”

사람들은 암흑신전의 사도들이 흑탑을 쫓는다고 여겼지만, 실상 암흑신전은 특별한 목적을 가진 집단이 아니었다.

* * *

“출진이다!”

전공을 쌓기 위한 귀족들이 두 파벌로 나뉘어 숲에 들어섰다.

북부 귀족들은 남부가 좀 더 피폐해지길 원한 탓에 숲의 초입 부근에 진을 쳤고, 전공에 눈먼 남부 귀족들이 무리하길 바랐다.

그러나 남부 귀족들 역시 고블린 산맥 초입 부근까지만 이동하여 진을 친 후, 느긋이 시간을 때울 뿐.

이는 유리가 남부의 귀족들을 설득하여 전공을 쌓는 시늉만 했기 때문인데…….

“유리 경, 이대로 괜찮은 건가?”

부쉬트니의 물음에 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습니다. 이미 수를 써 뒀습니다.”

“무슨 수를 사용했는지 모르겠다만, 겨울이 오기까지 고블린 로드가 처리되지 않으면 곤란해.”

“걱정하지 마세요. 확실한 자들에게 의뢰해 뒀으니까요.”

부쉬트니는 놀란 얼굴로 물었다.

“설마… 제국과 선이 닿기라도 했나?”

제국.

클라우드 왕국의 왕조차 함부로 할 수 없는 세력들로 가득한 나라.

“그럴 리가요.”

그런 제국을 공포에 몰아넣은 흑탑과 연계한다는 건 유리에게 있어 비장의 카드나 마찬가지였다.

‘흑탑이 대륙의 공적이라지만, 세야누스 백작을 뒷배로 둔 비에타 놈을 상대하려면 그들의 도움이 절실해.’

추후 더 큰 적을 상대하는 한이 있더라도 당장에 살아남아야 했던 유리는 흑탑의 하수인이 될 각오까지 했다.

‘흙탕물을 기어서라도 살아남아 주겠어.’

각오를 다지는 듯한 유리를 유심히 바라보던 부쉬트니는 그가 엮여선 안 될 거대 세력과 선이 닿았다는 걸 직감했다.

‘제국 쪽이 아닌 거대 세력이라… 기왕 하게 된 도박이라면 큰 도박판에 끼는 게 낫긴 하지.’

개미족은 인간들이 좀 더 깊이 들어오면 대응할 생각으로 대기 중이었고, 그 시각 다크는 흑기사를 통해 사도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 * *

나르본느에게서 데몬에 대해, 흑기사에게서는 사도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됐다.

일단 데몬과 사도는 특별한 흑마력을 각성한 존재였고, 서로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고 한다.

“문제는 너야. 넌 반쪽짜리라 한눈에 알아볼 수 없었어.”

나르본느는 하프 데몬인 내가 한 단계 더 진화를 거쳐야 자신과 같은 존재가 되며, 진정한 동료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흑기사가 설명한 사도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나도 예전에는 암흑신전의 사도긴 했어. 한동안 아무도 안 찾아와서 암흑신전이 없어졌다고 생각했지.”

내가 흑기사에게 통역하자 흑기사는 투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아마 50년 전 흑탑과의 전쟁 때 대부분의 사도가 죽으면서 거미왕과의 교류가 끊긴 것 같군.”

나는 흑탑이란 말에 뜨끔했다.

“흑탑은 무엇이고, 전쟁은 왜 한 거죠?”

“흑탑은 금기에 손을 댄 흑마법사들의 집단이다. 그들과 암흑신전이 한통속으로 취급받는 게 싫었던 당시의 사도들이 전쟁을 벌였던 거지.”

그로 인해 흑탑도 암흑신전도 망했다고 한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암흑신전의 사도는 항상 열두 명이다. 그러니 사도가 죽으면 새로운 사도가 태어나거나 적합한 존재에게 권능이 계승되지.”

나는 분명 수련을 통해 공허의 마력을 깨달았고 그 후에 하프 데몬으로 진화했는데, 이들은 그러한 과정이 없었다.

‘힘을 각성한다니… 나와는 뭔가 달라.’

나에 대한 건 최대한 숨기며 그들에게 목적을 물어봤다.

“버드나무 호수 근처에 신기가 봉인돼 있는데, 그걸 가져가 주면 좋겠어.”

“그거랑 제 진화랑 무슨 상관이에요?”

“신기의 주인으로 인정받으려면 지금의 너로는 부족해서 말이지.”

“나르본느가 쓰면 되지 않아요?”

“내 마력과 상성이 맞지 않아서 쓸 수가 없어. 그러니 오랜 세월 골칫거리였단 말이지.”

나르본느의 목적은 뭐랄까…….

말하자면 필요 없는 쓰레기를 내게 처리해 달라는 것 같았다.

반대로 흑기사에겐 나르본느에게 없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다.

“나는 어린 나이에 힘을 각성했다.”

어린 나이에 흑마력을 다루기 시작한 그는 흑탑으로 오해받게 됐고, 가족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에게 목숨이 노려졌다고 한다.

“내 권능이 약했다면 죽었겠지.”

그는 각성한 순간부터 매우 강했지만, 힘이 제어되지 않아 덤벼온 사람들을 모두 죽이게 됐다고 한다.

“만약 선배 사도를 만나지 못했다면 나도 다른 사도들처럼 제국의 공적으로 몰려 목숨을 잃었거나, 흑탑과 현상금 사냥꾼들에게 노려졌을 거다.”

그 이후 흑기사는 선배 사도의 보호 속에서 무사히 자랐다.

“일정한 경지에 오르지 못한 사도들은 그저 신마력을 각성한 존재일 뿐, 자신이 사도라는 걸 자각하지 못해.”

신마력은 특수한 흑마력을 뜻했고, 나의 공허의 마력 또한 흑기사의 기준에선 신마력에 해당했지만, 아직은 반쪽짜리 힘에 불과하다고 했다.

“난 마스터가 되면서 깨달았지.”

흑기사는 마스터급이 됐을 때, 자신에게 힘을 빌려준 존재를 깨닫고 사도임을 자각했다고 말했다.

“암흑신전의 사도에겐 딱히 의무랄 게 없다. 애초에 마신에겐 선악의 개념도 없지. 그러니 사도들은 각자 신념에 따라 행동하게 되더군.”

흑기사의 목표는 사도를 찾아 암흑신전을 재건하는 것.

“사도는 몇 명이나 찾았나요?”

흑기사는 손가락으로 나르본느와 날 가리켰다.

“저희 둘이 전부에요?”

끄덕.

흑기사가 사도를 찾는 방식은 오로지 직감.

드넓은 대륙에서 열두 명의 사도를 직감만으로 찾으려 하니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었다.

“암흑신전에선 사도를 몇 명이나 확보했죠?”

흑기사는 손가락 네 개를 펼쳐 보였다.

“그럼 저희까지 여섯이군요.”

열두 명 중 절반이 모였다고 생각했는데, 이어진 흑기사의 말에 실망하고 말았다.

“아니, 너희까지 넷이다.”

즉, 지금의 암흑신전은 단 두 사람뿐인 조직이란 것이고, 몬스터인 우리까지 포함해야 넷이란 소리였다.

‘이걸 조직이라고 할 수 있는 거야? 차라리 개미교가 조직으론 규모가 더 큰 것 같은데…….’

직감으로 어떻게 여길 찾아왔냐고 물어보니, 흑기사는 흑탑에 대한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가 거미왕을 감지했고, 거미왕을 만나러 와 보니 내가 있었다고 한다.

‘흑탑 소식을 듣고 사도가 왔으니, 다른 녀석도 올 수 있다는 거잖아!’

가령, 자신이 흑탑의 동료라 주장하는 놈들이라던가, 흑탑을 토벌하기 위해 오는 놈들이라던가…….

‘흠, 좋지 않네.’

이번에는 운이 좋았지만, 운이 나빴다면 마스터급 인간이 적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안 되겠다. 암흑신전인지 뭔지를 적극적으로 이용해서 세력을 키워야겠어.’

한동안 흑기사와 나르본느가 이곳에 남아 내 수련을 봐 주기로 했고, 나는 흑기사의 목적에 편승하여 사도란 존재를 끌어모아 내 세력에 포함 시킬 계획을 세웠다.

그럼 거미왕과 흑기사란 거대 전력이 생기는 셈이니까.

‘흥미 위주로 움직이는 나르본느는 다루기 까다로워.’

그에 비해 목적이 분명한 흑기사는 잘 구슬려서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알겠어요. 그럼 이곳에서 잠시 쉬고 계세요. 전 밖에서 일 좀 보고 올 테니까.”

밖으로 나온 나는 고블린 소탕 현황과 인간들의 움직임을 보고 받았고, 하이 페어리를 뿌려 유리의 위치를 확인했다.

‘오케이, 저쪽은 우리랑 관계없는 놈들이란 말이지.’

내게 허락도 없이 숲을 밟다니.

― 개미족의 무서움을 보여 주마!

라고 외치고 싶지만, 솔직히 인간들의 보복이 걱정됐던 나는 차도살인을 준비했다.

지금 둥지 인근에는 토벽이 계속 세워지고 있었고, 그곳에 고블린들을 50에서 100마리씩 쪼개서 가둬 둔 상태였다.

지금도 빅 워커들이 사방에서 고블린을 잡아 왔는데, 그 수가 벌써 5천이 넘어가며 관리가 곤란한 상황이 됐다.

‘암컷도 1천을 넘긴 것 같아.’

나는 둥지 내에서 적응한 고블린 팀장과 부장을 데려와 고블린들을 지휘하게 했다.

팀장은 부장으로 승급시켜 100인대를 지휘하게 했고, 부장은 차장으로 승급시켜 500인대 지휘관으로 만들었다.

그들에게 적당히 가죽 방어구와 단검 등을 지급하여 숲을 침범한 인간들에게 돌격하게끔 했다.

일단 500마리를 돌격시켰고, 인간을 죽이고 그 증표로 왼쪽 귀를 잘라오면 암컷 고블린과 오붓한 하루를 약속했다.

뭐… 그들이 원하는 형식의 오붓한 하루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성욕에 미친 녀석들이라 사기 진작의 효과는 확실했다.

장비가 갖춰지는 대로 보내다 보니, 각개격파를 당할 운명이겠지만, 고블린에게 습격받는 인간들 입장에선 무한 디펜스나 다름없었다.

무한자원 개미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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