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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자원 개미군단-74화 (73/189)

74화. 제국창법 칠식

움직일 수 있게 된 고블린 로드 데카이저는 제사장인 키카에게 인계됐고, 키카는 그가 불편함 없이 지낼 수 있도록 암컷 고블린 다수를 붙여 줬다.

힘 잃은 로드의 최후치곤 너무도 호사스러운 생활에 데카이저는 곤혹스러웠으나, 고블린은 적응력이 우수한 몬스터.

차츰 암컷 고블린들에게 곁을 내주기 시작한 데카이저는 그동안 억눌렀던 욕정이 폭발하게 됐다.

‘식량도 여자도 부족한 게 없구나… 이게 내가 바라던 평화인가…….’

수백의 암컷 고블린과 생활하게 된 데카이저는 매일같이 욕정에 굴복한 자신을 뒤돌아보며 한탄했고, 로드와 동침한 암컷 고블린들은 하나둘씩 홉 고블린으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홉 고블린 암컷들은 한층 성숙해진 모습으로 로드를 리드했고, 연이어 로드의 아이를 품게 됐다.

* * *

머리통만 한 특급 마석 트롤 킹의 심장이 손에 쥐어졌다.

‘흡수되지 않아!’

괜히 특급 마석이 아닌지, 최상급 마석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마력이 단단하게 뭉쳐 있었다.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마력 출력을 높이기 위해서 공허의 심상에 빠져들었고, 명경지수를 거쳐 무아지경에 들어선 나는 시간을 잊었다.

다이아몬드급으로 단단한 사탕이라 할지라도 그게 사탕인 이상 입안에 넣어 두면 녹아내리기 마련.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지만, 단단히 뭉쳐 있던 마력이 조금씩 내게 흡수되기 시작했다.

흡수량은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났고, 특급 마석이 지닌 마력은 질적으로 달랐는지 나의 수용 한계치를 수차례 깨부쉈다.

어느 순간, 육신과 마석에 과부하가 걸렸다.

더 흡수했다간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

하지만 무아지경에 빠져 있던 나는 말 그대로 아무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다.

물이 아래로 흘러가듯.

자연의 섭리에 따라 부하를 견디지 못한 육신과 마석이 부서져 갔다.

깨진 그릇은 주변에서 재료를 모아 더욱 튼튼하게 만들어졌고, 그 또한 전과 같은 과정을 밟아 깨지고 말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육신과 마석이 안정되고, 더는 흡수할 게 없어졌을 때쯤, 나는 무아에서 벗어나 눈을 뜰 수 있었다.

‘준왕급에는 못 미치지만, 그 바로 아래 단계까지 온 것 같아.’

주변을 둘러보니 수련장은 거미줄로 한껏 꾸며져 있었고, 내가 깨어났음을 감지한 나르본느와 흑기사가 해먹 위에서 내려와 내게 다가왔다.

“며칠이나 지났죠?”

익숙한 마신어로 질문했더니 나르본느가 답했다.

“몰라.”

나는 대룩어로 흑기사에게 물어봤고, 흑기사는 20일이 지났음을 알려 줬다.

“반쪽짜리 권능으로 특급 마석을 흡수할 정도면, 네 권능엔 한계점이 없다는 걸 의미한다.”

그가 말하길 나는 대륙의 재앙이 될 수 있는 존재라고 했다.

“네 존재가 밝혀지면, 제국에선 널 제거하려 할 거다.”

영원한 비밀은 없다.

“제국뿐만이 아니야. 네 힘은 마법사들과 신관들에게도 치명적으로 작용할 테고, 사도인 내게도 예외는 아니지.”

들키면 대륙 공적.

“신경 쓰지 마라. 강해져야 할 이유가 추가됐을 뿐이다.”

제국, 마탑, 신관, 흑탑까지 모두 내 적이라니.

“혹시 절 노릴 만한 다른 세력도 있나요?”

혹시 몰라 물어봤는데, 의외의 답변이 나왔다.

“…용사라 불리는 존재와 덜떨어진 사도.”

“네?”

대륙에는 항상 열두 명의 암흑신전의 사도와 용사가 각각 존재했다.

자신이 사도 혹은 용사란 걸 자각한 자도 있고, 그렇지 못한 자도 있다.

이들은 대륙이 혼란스러울수록 성장 속도가 빨랐고, 마력을 품은 존재를 죽여 강해질 수 있다고 한다.

“사도가 마신의 권능을 이은 존재라면, 용사는 천신의 권능을 이은 존재들이다.”

마력 중에서도 흑마력과 백마력은 특별한 위치에 있고, 신마력과 신성력은 더욱 특별했다.

사도와 용사들에게 있어 특별한 존재일수록 사냥했을 때 좋은 양분이 된다고 하니…….

지금의 난 나르본느와 흑기사에게 있어 경험치를 잔뜩 품은 이벤트 몬스터라 할 수 있었다.

내가 나르본느와 흑기사를 의심의 눈초리로 보자, 나르본느가 폭소를 터트렸다.

“다크, 왕급인 내가 사도 하나 잡는다고 강해질 순 없어.”

“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모든 사도가 우리와 같진 않다.”

대륙 역사로 볼 때, 언제나 성장에 미친 사도와 용사가 존재했고, 암흑신전과 교단에선 그런 존재를 제거해 왔다고 한다.

“흡수, 포식, 축적의 사도가 특히나 위험하지. 네가 어느 쪽인지 몰라도 아직 어떤 사도인지 모르는 이상, 한동안 함께 다녀야겠다.”

공허라고 밝히면 혐의에서 벗어날지도 모르나, 그럼 흑기사란 호위를 잃게 될지도 모르니…….

‘숨겨야 할 이유가 늘었군.’

사도와 용사의 특성을 보면 그들은 전쟁에 특화된 존재.

이들과 어떻게 관계를 쌓고 이용할지 고민할 때, 흑기사가 한마디 했다.

“네가 할 일은 경지를 높여 권능을 완성하는 것. 그 후에 무엇이 될지는 네가 정하면 돼.”

나는 흑기사에게 물어봤다.

만약 내가 인간에게 있어 재앙이 된다면…….

“절 막을 건가요?”

고민하던 흑기사가 고개를 저었다.

“사도와 용사는 언제나 재앙임과 동시에 대륙을 지켜낸 영웅이기도 했지.”

흑기사는 어느 국가에도 소속되지 않은 존재였고, 전장을 떠돌며 수많은 인간을 학살해 왔기에 인류애 같은 건 없었다.

나르본느도 자신에겐 일족에 대한 애정이 없다며, 오히려 날 괴짜 취급했다.

“내 목적은 하나다.”

흑기사의 목적은 사도들을 모아 암흑신전을 재건하는 것.

“그러니 사도 사냥만큼은 용납하지 못해!”

“저도 사도를 사냥할 생각은 없어요.”

애초에 드넓은 대륙에서 몇 없는 사도를 찾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니, 착실하게 수련을 쌓는 편이 효율적이다.

내가 암흑신전 재건에 힘써 보겠다고 말하자 흑기사가 멈칫했다.

뭔가 쑥스러워하는 듯한 그가 다음 수련에 대해 알려 줬다.

“주로 다루는 무기는 뭐지?”

“지금까지 창을 썼어요.”

“창이라…….”

흑기사가 왜 창을 쓰는지 물어봐서 그냥 쓸 만해서 썼다고 하니, 나의 안일함을 탓했다.

“그럼 흑기사는 왜 대검을 쓰는 거죠?”

그가 말했다.

“크고 단단하니까.”

“…….”

이유가 매우 안일하다고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내뱉진 않았다.

“몬스터는 기본적으로 인간보다 강한 신체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동급의 인간에게 밀리는 경우가 많지. 왜 그렇다고 생각하나?”

“몸뚱어리만 믿고 까불어서?”

“…정답이다.”

흑기사는 말벌창을 쥔 내게 창을 잡는 파지법을 시작으로 찌르고 휘두르는 일곱 가지 동작을 알려줬다.

“제국 병사의 입문 창술인 제국창법 칠식이다.”

개미족의 기억력과 이해력은 매우 뛰어나다.

한 번 본 것만으로 완벽히 재현해 냈지만, 흑기사는 호흡법이 틀렸다며 숨을 들이쉴 때와 뱉을 때를 자세히 알려 줬다.

그 또한 한 번에 클리어 하니, 마력과 호흡이 따로 논다며 한 소리 듣게 됐다.

“각 동작 2,000회 실시!”

반복 중에도 흑기사가 자꾸 태클을 걸어와서 시간 소모가 컸다.

과거의 나는 한 시간 정도 격렬히 움직이면 체력이 고갈됐지만, 지금의 나는 특급 마석의 섭취로 인해 지치지 않는 체력을 얻었다.

‘할 만해.’

다음날, 일곱 개의 동작을 연속해서 천 번을 펼쳤고, 그다음 날은 동작의 순서를 거꾸로 하여 천 번을 반복했다.

“익숙해진 것 같군. 이제 내가 불러 주는 대로 식을 펼쳐라.”

순서가 바뀌면 연결 동작도 바뀌니, 손발이 꼬일 수밖에 없다.

한번 익힌 패턴은 곧잘 할 수 있어 모든 패턴을 외울 생각이었다.

‘순서를 무작위로 섞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패턴은…….’

7×6×5×4×3×2=5,040개

라고 생각했는데…….

“일식, 일식, 이식, 일식, 사식, 일식, 이식.”

이렇게 중복 값이 발생하면 계산이 달라진다.

일곱 개의 동작을 무작위로 뽑아서 일곱 자리를 채웠을 때 발생하는 패턴은 7의 7제곱.

약 82만 가지 패턴.

‘흠….’

생각을 멈춘 나는 흑기사가 하라는 대로 동작을 펼쳤다.

15일간 이어진 수련으로 몸에 입문 창법인 제국창법 칠식을 확실히 새겼다.

“입문 창법 다음은 뭐죠?”

“아직 멀었다.”

마스터했다고 생각한 제국창법에는 다음 단계가 존재했다.

“창법은 순서대로, 보법은 역순으로 펼쳐라!”

“그게 되나요?”

“되도록 해라!”

일곱 개의 동작이 보법 조합에 따라 마흔아홉 개의 동작으로 늘어났다.

‘하, 아무리 기초가 중요하다지만, 입문 창법을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가?’

“힘내~”

해먹 위에 엎드린 채 날 응원하는 나르본느를 보면 의욕이 더욱 떨어졌지만, 이상한 놈에게 걸려 객사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창을 그러쥐었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왔다.

나는 초월적인 학습 능력으로 흑기사가 가르친 제국창법 칠식을 마스터했다.

입문 창술을 익혔으니 좀 더 고급 창술을 알려줄 거라 생각했는데, 흑기사가 충격적인 고백을 해왔다.

“사실 난 창술을 모른다. 기본기는 확실히 알려 줬으니, 기회가 되면 제대로 된 스승에게 배워라.”

뭐랄까… 사기당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수영장 원장님에게 큰돈을 줘 가며 수영을 배웠는데, 알고 보니 원장님은 맥주병이라 수영을 못한다는 사실을 졸업하며 듣게 된 상황.

나르본느가 간만에 해먹에서 일어나 한마디 했다.

“그럼 권능도 확인했고, 창 잡는 법도 배웠으니 수련을 시작해 볼까?”

나르본느에겐 지금까지의 수련이 아무것도 아니었나 보다.

본격적인 수련에 앞서 식사 시간을 가졌다.

나는 세크리가 먹여 주는 영양액으로 끼니를 때웠고, 나르본느는 초록 피가 뚝뚝 흐르는 홉 고블린 고기를 뜯었다.

흑기사는 수프를 해 먹었는데, 분명 신선한 재료들이 들어간 수프임에도 기름기와 역한 냄새를 보아 개미족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아니었다.

‘흑기사 녀석, 용케 저런 걸 먹고도 괜찮네… 위장이 무적인건가?’

흑기사는 투구를 열어 음식을 집어넣지만, 그 속이 전혀 보이지 않아 정말 인간인지가 의심될 때가 있었다.

이어진 수련은 대련.

“네 수준에 맞춰 싸울 테니 마음껏 덤벼라!”

말은 그렇게 했지만, 흑기사는 압도적인 힘으로 날 압박했다.

나는 공허의 마력을 최대 출력으로 발현하여 맞섰고, 몸에 새겨진 제국창법으로 공방을 이어갔다.

“신마력마저 무력화할 수 있다니!”

흑기사는 대검과 갑주에 넘실대는 오러가 뭉텅이로 깎여 나가자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나 또한 놀랐다.

흑기사의 오러를 아무리 지워도 전혀 약화될 기미가 안 보였기 때문이다.

말벌창은 십여 분 만에 깨져버렸고, 나는 만신창이로 널브러졌다.

“헉… 헉…….”

단시간에 전력을 쏟아부은 터라 마력과 체력을 모두 소진하여 탈진 상태.

그에 비해 흑기사는 멀쩡했다.

마력과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 먹고 마시고 휴식을 취했다.

“이번에는 내 차례야!”

그러곤 나르본느와의 대련이 이어졌다.

흑기사와의 대련은 힘과 힘의 대결로 나의 모든 걸 쏟아내야 했다면, 나르본느와의 대련은 조금 달랐다.

분명 눈앞에 있음에도 아무런 기척 없이 그녀의 손끝이 내게 닿아 있었다.

‘더듬이 감각에 잡히지 않았어!’

“난 거미족이고, 넌 개미족이야. 몬스터인 우린 부여된 특성만 갈고 닦아도 더욱 강해질 수 있어.”

그녀는 흑기사처럼 정형화된 움직임이 없고, 기괴하다 싶을 정도로 몸을 꺾거나 방향 선회가 가능했으며, 심지어 등에 달린 여덟 개의 다리가 공방 일체의 무기가 되니…….

세 합을 받아낼 수 없어 격렬한 전투로 이어지지 못했다.

싱겁게 마무리되는 전투를 무한 반복하는 와중, 나의 마안은 그녀의 움직임을 예측하기 시작했고, 더듬이 감각 또한 예리하게 다듬어졌다.

“개미족의 감각은 예리해. 정면의 적에게 당할 정도로 무디지 않아.”

나르본느는 내게 종족 특성을 일깨우라 했고, 덕분에 인간형으로 진화하면서 잊고 있던 전투 페로몬과 개미의 힘을 쓸 수 있게 됐다.

전투 페로몬은 일시적인 가속 능력이었고, 개미의 힘은 말 그대로 근육 강화 능력이었다.

나르본느와의 대련은 내가 지칠 때까지 이어졌고, 회복을 위한 휴식 시간을 가지게 되면 흑기사와의 대련으로 넘어갔다.

둘과 번갈아 가며 대련하며 나의 회복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했고, 가끔 트롤 킹의 특성인 급속 재생이 발현됐다.

무한자원 개미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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