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자원 개미군단-77화 (76/189)

77화. 용병 등록

“큭!”

나우피어가 신음을 흘리자 하이 페어리들이 가루를 뿌려 그의 감각을 차단했다.

이곳에 오기 전 나우피어에게 루리아를 잘 지키라고 말해 뒀는데, 더듬이 감각이 무뎌진 나우피어는 불안한 표정으로 루리아의 소매를 잡고서 따라 걸었다.

은발 미소녀와 탄탄한 용병 출신 루리아.

아무리 봐도 루리아가 나우피어를 보호하는 모습이었다.

페스트도 미간을 찌푸렸지만, 공기를 차단했는지 금세 적응했다.

대로를 따라 걸으며 곳곳에 버려진 오물들이 보였다.

‘위생 관리가 전혀 안 돼 있어.’

병이 안 생길 수가 없는 최악의 환경.

오가는 어른들은 우릴 피하는 눈치였고, 골목에 숨어 있던 아이들은 우리를 주시하며 불안해했다.

그러던 중 열 살 정도의 남자아이 하나가 쪼르르 다가와 메틴에게 말을 걸었다.

“기사님이신가요?”

행색이 지저분한 아이의 물음에 메틴이 뒤통수를 긁적이며 답했다.

“용병이다.”

메틴의 말에 꼬마가 가슴을 쓸어내렸고, 골목에서 숨어 있던 아이들이 눈을 빛내며 우르르 모여들었다.

“아저씨, 길드부터 가시는 거죠? 제가 안내해드릴게요”

“식당으로 가시려면 맛있는 곳을 알아요!”

“여관부터 잡으셔야죠! 값싼 여관을 알아요!”

“꽃은 필요 없으세요?”

“여기 예쁜 돌멩이 팔아요!”

재잘재잘.

아이들의 호객 행위에 길이 막혔지만, 다행히도 나를 비롯한 개미족에게는 다가오는 아이가 없어 감춘 엉덩이가 만져질 일은 없었다.

내가 메틴에게 눈치를 주자, 메틴이 최하급 마석 하나를 제일 먼저 달려온 남자아이에게 쥐여 주며 말했다.

“용병 길드로 안내해다오.”

마석을 받은 아이의 입이 귀에 걸렸고, 다른 아이들은 실망감을 드러내며 흩어졌다.

나는 흑기사에게 물었다.

“주변의 시선이 따갑군요. 왜 그런지 아시나요?”

“외부인을 경계하는 거겠지.”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흑기사의 말에 양아치 출신인 베르딘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저희 일행의 복장이 너무 깔끔해요. 그리고 세 분과 흑기사 님의 용모가…….”

베르딘이 볼을 붉히며 말을 잇지 못했다.

“용모가 뭐?”

“그게…….”

루리아가 끼어들었다.

“너무 아름다우셔서 그래요. 세 분 모두 평민이 가질 수 있는 피부가 아니시니, 흑기사님은 귀족 출신의 여기사로 보이고 세 분도 귀족 영애로 보일 거예요.”

인간형 개미들의 용모는 대체로 귀엽다고 생각했는데, 아름답게도 보이는 듯했다.

꼬마를 따라 용병 길드로 이동하던 중 흑기사가 일행에게 말했다.

“갑옷을 벗었을 때는 편하게 디아라고 불러라.”

“그럴게요.”

거리의 상점들은 그림으로 그려진 간판이 걸려 있었고, 우린 곧 검과 방패가 그려진 큰 건물에 들어섰다.

‘여기가 용병 길드인가?’

그곳은 험상궂게 생긴 인간들이 먹고 마시며 즐길 수 있도록 식당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꼬마가 말했다.

“저기가 접수처고, 저쪽이 감정소에요. 음식 주문은 저기 누나한테 하면 되고, 물건을 팔 때는 감정소를 이용하시면 돼요. 저기 있는 아저씨들에게선 돈을 빌릴 수 있어요. 이자가 높으니 급한 경우가 아니면 안 빌리시는 게 좋아요.”

아이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메틴을 바라보고 있어 내가 눈치를 줬다.

“메틴, 마석 하나 더 쥐여 주고 보내.”

“네.”

최하급 마석 하나를 더 받은 아이는 고개를 여러 번 숙여 감사를 표하더니 길드 밖으로 뛰쳐나갔다.

길드 안에서 맥주를 기울이고 있던 아저씨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쏠렸지만, 메틴은 그들을 무시하고 감정소로 다가가 무두질 된 가죽과 마석을 내밀었다.

‘안경이잖아?’

점장으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 단안경으로 물건들을 살폈다.

메틴은 등에 멘 장검 손잡이를 툭툭 치며 말했다.

“후려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큼큼, 걱정하지 마십시오. 길드는 정직합니다.”

“웃기고 있네.”

점장이 가죽과 마석을 살피더니 매매가를 제시했다.

고블린 가죽 ― 8쿠퍼

홉고블린 가죽 ― 16쿠퍼

자이언트 고블린 가죽 ― 32쿠퍼

늑대 가죽 ― 32쿠퍼

회색 늑대 가죽 ― 80쿠퍼

최하급 마석 ― 8쿠퍼

하급 마석 ― 80쿠퍼

중급 마석 ― 8실버

100쿠퍼가 1실버고, 100실버가 1골드다.

기본 단위가 쿠퍼이긴 하지만, 최소 단위가 어느 정도의 가치를 지녔는지는 물가를 알아봐야 한다.

물건 가치는 공급과 수요에 의해 결정되는 것, 그러니 물가를 알면 이곳에서 무엇이 흔하고 귀한지를 알 수 있다.

“다크 님, 인근에 고블린과 자이언트 킬러비가 기승을 부려서 마석 값이 폭락한 것 같아요. 백작령만 가도 두 배는 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할까요?”

메틴의 말에 점장이 얼굴을 붉히며 반박했다.

“백작령에 가도 2할 정도 차이 날 뿐이야. 형씨 말투를 보니 이곳 출신인 것 같은데 아가씨한테 이상한 소리를 하는군. 기왕이면 이곳에서 처분하게.”

디아에게 의견을 물어 보니, 대도시로 갈수록 값을 더 받을 순 있지만, 주머니 공간이 가득 찼으니 팔 수 있는 건 팔아야 한다고 말했고, 양아치 출신의 베르딘도 한마디 했다.

“후려친 거 아니에요. 메틴 아저씨가 생짜 부리는 거예요.”

“그래?”

마석은 개미족에게도 유용한 자원이라 판매하지 않기로 했고, 잉여 물자인 가죽만 처분했다.

내가 가죽 처분을 결정하자 점장의 표정이 밝아졌다.

“현명한 판단이십니다.”

나는 점장에게 궁금한 것들을 물어봤다.

“점장, 마석은 구매 가능한가?”

“가능합니다만, 판매할 때보다 조금 비싼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어느 정도 차이 나지?”

“2할 정도 차이 납니다.”

“가죽은 얼마나 필요하지?”

“저희야 가죽 공방을 따로 운영하고 있으니, 많을수록 좋습니다.”

디아가 공간 확장 주머니에서 고블린 가죽 200장, 홉 고블린 가족 50장, 늑대 가죽 20장을 꺼냈다.

차곡차곡 쌓이는 가죽들을 본 점장이 놀랐고, 우릴 주시하던 용병들도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상당하잖아~”

“귀족 영애나 모시는 허접들은 아닌 것 같군.”

감정소의 직원들이 뛰쳐나와 가죽을 살폈고, 한참 후에 40실버를 정산받았다.

돈을 받은 우린 카운터 여직원에게 고블린 귀 1,000개, 홉 고블린 귀 200개, 자이언트 고블린 200개를 넘겨 토벌 보상금으로 260실버를 받았다.

고블린 귀 ― 2쿠퍼

홉고블린 귀 ― 40쿠퍼

자이언트 고블린 ― 80쿠퍼

자이언트 홉 고블린 ― 2실버

‘홉고블린 귀와 자이언트 고블린 귀가 짭짤하네.’

장내의 용병들이 놀란 눈으로 우릴 보며 수군거리는 게 들렸다.

“운 좋게 살아남은 게 아니었군.”

“고블린 산맥에서 살아나오다니. 실버급 이상이겠어.”

가죽을 판 돈과 합쳐 총 300실버를 확보한 나와 일행은 카운터의 여직원에게 안내를 받으며 용병 등록을 진행했다.

“주 무기가 어떻게 되나요? 나이와 출신지가? 생부의 직업과 이름이? 생모의 이름이? 채집, 운반, 토벌, 호위, 고용 모두 가능하신가요? 과거 용병으로 활동한 경험은 있으신가요?”

데스크에 의한 호구조사가 시작됐다.

사전에 준비한 대로 이름은 다크, 나이 18세, 출신지는 부쉬트니 베르한, 생부 없음, 생모 없음, 용병이 되려는 목적은 돈, 주 무기는 창, 기타 사항은 없다고 말했다.

“부쉬트니 자작령 출신이군요…….”

지어낸 말이라는 게 너무 티가 났는지 안내원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고, 책임자로 보이는 남성을 바라봤다.

책임자가 오케이 사인을 보내 허락하자 안내인은 밝은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우드급 용병패는 10쿠퍼입니다.”

우드급 용병은 브론즈급 의뢰까지 받을 수 있고, 등급을 올리려면 승급 시험을 치러야 한다.

말이 승급 시험이지, 실상 길드가 내주는 의뢰 세 개를 무임금으로 완수하면 승급된다.

‘의뢰 수수료랑 승급 시험이란 명목으로 용병을 착취하고, 몬스터 부산물의 매매 수수료도 챙기면서 식당까지 운영하네…….’

나는 길드 사업이 나쁘지 않다고 느꼈고, 루리아는 등록비가 비싸다며 안내인과 실랑이를 벌이려 했다.

시간이 아까웠던 나는 루리아의 등을 툭툭 두드려 눈치를 줬다.

“됐고, 최대한 고등급 용병패를 받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지?”

안내인이 쩔쩔매서 책임자로 보이는 녀석에게 손짓했다.

책임자가 쪼르르 다가와 물었다.

“무슨 일이신지…….”

“좀 더 높은 등급의 용병패를 받고 싶어.”

“그게, 길드의 원칙상…….”

그에게 1실버를 쥐여 주니 말이 바뀌었다.

“패를 분실한 분들에게 제공되는 서비스로 브론즈급 용병패는 1실버, 실버급 용병패는 10실버에 재발급해 드리곤 있습니다. 다만, 이 경우는 분실했을 때라…….”

말은 그렇게 했으나, 내 마안은 상대의 감정 상태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돈을 더 달라는 말이군.’

“실버급 용병패 열 개… 120실버 내지.”

20실버 정도 더 준다고 하자 책임자가 감사하다며 머리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숙이더니 안내원들을 시켜 실버급 용병패 10장을 급히 발급해 줬다.

“2실버만 더 줘도 됐을 텐데…….”

루리아가 입술을 삐죽이며 한 말은 못 들은 척했다.

발급받은 용병패는 군번줄과 비슷한 형태였고, 발급 날짜와 발급처를 포함한 나에 대한 정보가 쓰여 있었다.

다만, 이곳의 문자를 모르다 보니 읽을 순 없었다.

남은 돈은 180실버.

길드 식당에 앉으니, 종업원으로 보이는 10대 소녀가 다가왔다.

“식사 주문하시겠어요?”

“뭐가 있는데?”

“야채수프와 고기 수프, 호밀빵과 흰 빵이 있어요. 음료로는 물과 맥주가 있고요.”

“다른 반찬은 없어?”

“채소 볶음이 있고, 고기로는 토끼, 돼지, 늑대가 있어요.”

돈이 부족할까 싶어 가격을 물어봤다.

물 한잔이 2쿠퍼, 야채수프, 호밀빵, 맥주가 3쿠퍼.

고기 수프, 야채볶음, 토끼고기가 6쿠퍼.

돼지고기와 늑대고기가 10쿠퍼.

‘흠…….’

비싼 건지 싼 건지 모르겠지만, 루리아가 터무니없이 비싸다며 밖에서 먹자고 했다.

“여기서 먹을 거야.”

일단 돈을 써 봐야 기준이 생긴다고 생각한 나는 모든 메뉴를 충분히 시켰다.

“요리는 5인분씩 주고, 나머지는 10인분씩 줘.”

“네? 모든 요리를 다섯 접시나요?”

종업원이 당황하며 책임자에게 쪼르르 달려가 물어보곤 다시 확인하러 왔다.

“요리는 각각 다섯 접시, 나머지 열 개씩 맞으시죠?”

“그렇게 해 줘.”

결제는 선불이었고, 4실버 90쿠퍼가 나와 10쿠퍼는 팁으로 줬다.

종업원의 당황한 눈치를 보아 이곳에 팁 문화는 없는 듯했다.

‘화폐 단위로만 보면 5만원 인가?’

내가 시원시원하게 돈을 쓰니 옆에 있던 베르딘이 덩달아 좋아했고, 양치기 소년 출신인 세바스는 양 두 마리 값이 나갔다며 동공 지진을 일으켰다.

‘양 한 마리에 2실버 수준인가 보군.’

양의 가치를 보아 이곳 화폐를 현대 화폐 기준으로 생각해선 안 된다는 걸 느꼈다.

주문받은 종업원이 당황한 만큼 무지막지한 양의 요리가 나왔고, 빵도 길쭉한 바게트라 셋이서 나눠 먹어도 충분한 양이었다.

요리에 알 수 없는 향신료와 소금이 들어가 있어 개미족들은 고기를 한 입 먹어 보곤 포크를 놓았다.

“다크 님, 독입니다.”

“독?”

고기를 몇 점 먹어 보니, 개미들이 극혐하는 소금 맛과 박하 향이 났다.

나는 다른 개미족들과 함께 소금과 박하를 싫어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곳의 요리가 맛있지는 않았다.

디아를 포함한 일행은 공격적으로 음식을 먹었으나 요리가 줄지 않았다.

그런 우릴 유심히 지켜보던 소년 한 명이 다가와 내게 말했다.

“저기… 음식이 많이 남을 것 같은데… 조금 나눠 주시면 안 될까요?”

그의 목에는 나무패가 걸려 있고 허리엔 목검을 차고 있었다.

‘목검이라…….’

소년은 부끄러운지 얼굴이 빨개졌고, 그 모습을 본 용병들이 폭소를 터트렸다.

“푸하하, 구걸할 용기가 있으면 고블린이라도 사냥해 보지 그러냐?”

“너희 리더가 구걸에 나섰는데, 파티원들은 뭐하냐?”

장내는 그들을 안주삼아 하하 호호 떠드는 분위기였고, 아다만티움 용병인 디아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약육강식의 용병계에선 강자는 존중받고, 약자는 비웃음거리가 되지. 신출내기가 거치는 신고식에 불과해.”

디아는 이러한 조롱이 어린 용병들에게 자극이 된다고 말했지만, 왠지 모를 불쾌감이 들었다.

이는 용병들의 태도 때문이라기보단 눈앞의 소년이 매우 맑은 영혼의 소유자라 그런 듯했으나, 이유가 어떻든 절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내가 미간을 좁혀 불쾌감을 드러내자 페스트가 마력을 퍼트렸다.

순간 장내의 소음이 사라졌고, 다수의 용병이 목을 감싸 쥐며 괴로워했다.

무한자원 개미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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