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자원 개미군단-78화 (77/189)

78화. 자금 확보

몇몇 용병은 숨을 참으며 침착하게 일어나 우릴 향해 무기를 뽑았다.

쭉 둘러봐도 강자라 할 만한 존재는 없어 보였으나 유혈 사태를 일으켜 내게 좋을 건 없었다.

“페스트, 바람을 거둬라.”

“네!”

내가 화를 내며 말하자 페스트가 허둥지둥 마력을 거뒀고, 용병들은 그제야 숨을 몰아쉬었다.

호흡을 고른 용병들이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우릴 봤다.

‘불필요한 어그로를 끌어버렸어.’

금색 용병패를 지닌 용병 다수가 다가와 경고했다.

“마법사인 것 같은데, 길드에서 무력행사는 자제해 줬으면 좋겠군.”

“한 번 더 해보라고, 모가지를 날려 줄 테니까!”

“이쪽도 참는 데는 한계가 있어!”

이건 메틴의 선에서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과했다.

“미안하게 됐군, 일행이 실수했다.”

말뿐인 사과만으론 진심이 닿지 않는다.

나는 사과의 의미로 테이블의 요리를 용병들에게 나눠 줬고, 5실버를 종업원에게 건네 맥주 100잔과 요리들을 시켰다.

“쳇, 이번만큼은 넘어가 주지.”

“큼, 일행 간수 잘하도록.”

“아가씨, 용병 업계는 생각보다 거칠다는 걸 알아두게.”

종업원이 각 테이블에 맥주와 요리를 날랐고, 맥주가 인당 서너 잔씩 돌아가게 되자 용병들의 경계심은 금세 풀렸다.

‘웬만한 일은 돈으로 해결되는군.’

내게 요리를 나눠 달라던 소년도 자리에서 요리와 맥주를 받게 된 건 덤이었다.

용병들이 환호하며 맥주를 마실 때, 나는 디아와 함께 벽보에 붙어있는 의뢰서를 살폈다.

“누구든 길드에 돈을 내면 의뢰할 수 있다.”

의뢰는 길드가 받고, 수행은 용병이 한다.

“의뢰를 완수한 용병에게 길드가 보상금을 지급한다.”

그 과정에서 길드가 의뢰비의 1할을 수수료로 챙겼다.

“그렇군요.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있을까요?”

디아가 의뢰서를 하나하나 읽어 줬다,

그중에는 벌목, 성벽 보수, 청소, 심부름 같은 의뢰도 많았다.

‘아니, 연인 대행 의뢰도 있고, 아이 봐주기도 있네.’

우드급과 브론즈급 의뢰의 태반이 사냥과 관계없는 잡무들…….

‘그냥 인력 파견 회사잖아.’

나는 디아가 읽어 준 의뢰서를 분석해 용병들의 일당을 계산했다.

우드급의 일당은 10쿠퍼, 브론즈는 20쿠퍼, 실버는 40쿠퍼, 골드는 1실버.

이는 기본 수당에 해당했고, 거기에 위험수당이 합산되어 보상액이 산정됐으며 토벌로 얻는 부산물의 권리는 용병에게 주어졌다.

“브론즈는 무장한 일반인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고블린 토벌 의뢰에서 많이들 죽지. 실버급 정도면 전문가라 할 수 있어.”

옆에서 듣고 있던 실버급 용병 출신인 메틴이 어깨를 들썩였다.

디아는 브론즈를 스마트 워커 수준이라 했고, 실버급을 미숙한 워커맨에 가깝다고 했다.

“워커맨의 신체 능력은 인간보다 월등히 좋다. 만약 무기술을 제대로 익힌다면 골드급 이상의 성취를 보이겠지.”

디아는 워커맨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다.

“벽보에 골드급 의뢰는 적군요.”

“골드급 의뢰 정도가 되면 길드에서 따로 관리할 거야.”

용병은 비정규직이라면 정규직은 얼마나 받을까 싶어 디아를 비롯한 일행에게 물어봤다.

디아는 도시마다 임금이 다르다 했고, 메틴은 이곳 물가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자작령의 임금은 대체로 2실버 정도예요. 전문성에 따라선 5실버까지 받는 사람들도 있어요. 뭐, 내성에서 근무하는 기사들은… 어마어마하게 받죠.”

하급 기사만 되어도 20실버 이상은 받았고, 마구간이 딸린 저택이 주어진다고 했다.

“그런 부유층들이 사는 곳은 내성 근처에 따로 마련돼 있어요.”

용병 길드에서 수프, 빵, 물만 먹어도 10쿠퍼, 하루 세 끼를 먹으면 30쿠퍼.

한 달이면 9실버가 필요한데, 정규직의 최저 임금이 2실버라니.

밖의 음식점이 훨씬 저렴하다고 해도 2실버로는 생활할 수 없을 터였다.

“의식주는 고용주가 해결해 주는 게 원칙이에요.”

이곳 세계의 인간은 고용주를 잘 만나면 좀 더 좋은 곳에서 배불리 먹을 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마구간 같은 곳에서 지내며 배불리 먹지 못한다고 한다.

‘임금과 비교해 음식 가격이 너무 비싸.’

굴욕을 무릅쓰고 내게 찾아온 소년이 이해됐고, 1실버의 가치가 매우 크다는 걸 깨달았다.

벽보를 둘러본 나는 맥주를 마시느라 정신없는 용병들을 뒤로하곤 일행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죄송합니다. 제가 괜한 짓을 해서 인간 따위에게… 인간 따위에게 사과를…….”

페스트가 충격받은 포인트가 조금 이상했지만, 나는 살포시 그를 안아 줬다.

“괜찮아. 네가 나선 덕에 남은 음식을 처리할 좋은 구실이 됐어.”

오가는 인간들의 주목 아래 자상함을 어필하니 디아와 루리아가 평소답지 않은 내 모습에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밖에 나오니 조금 전의 꼬마가 기다리고 있었다.

“여관 찾으시나요? 제가 좋은 곳을 알아요.”

아직 인간으로 위장할 수 있는 시간이 남았던 터라 좀 더 둘러볼 생각이었다.

“아니, 여러 곳을 가봐야 할 것 같아.”

“제가 안내할게요!”

“그럼, 식료품을 파는 곳부터 알려 줘.”

“네!”

채소를 파는 곳에선 추를 이용하는 원시적인 저울을 사용했다.

‘무게 단위가 있군.’

채소는 대체로 1~2쿠퍼. 비싸 봐야 3~4쿠퍼였고, 양도 많이 줬다.

곡물을 파는 곳에선 밀가루나 호밀 가루를 자루에 담아 팔았고, 그 무게는 약 10킬로 정도였다.

‘호밀이 밀가루의 반값이군.’

다양한 고기 상인을 만나서 가격을 물었다.

토끼가 5쿠퍼, 오리가 15쿠퍼, 양이 2실버, 늑대가 3실버, 돼지가 5실버…….

닭, 소, 말… 그 외의 고급품은 영주가 있는 내성에 납품되고 있어 시중에선 구할 수 없고, 다른 고기들도 항상 있는 건 아니라고 했다.

‘몬스터 고기는 먹지 않는군.’

과일을 보지 못해 꼬마에게 물어 보니, 메틴이 대신 말해줬다.

“과일은 부유층들의 거주지 인근에서나 구할 수 있습니다.”

과일은 고기만큼이나 귀해서 평민들이 쉽사리 접할 수 없었고, 부유층으로 여겨지는 사람들은 내성 인근에 모여 살았다.

“그쪽은 다음에 가보고, 생필품을 파는 곳에 가보자. 기왕이면 고급품이 많은 곳으로.”

“잡화점이요?”

꼬마는 주저하며 길을 안내했다.

잡화점에 들어서니 주인이 도끼눈으로 꼬마를 노려보며 화를 내려다 우릴 발견하자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어서 오십시오! 점장인 린지 폰 비고입니다.”

비고 혈통의 린지.

몰락 귀족이거나, 귀족의 자녀일 수 있다는 건데.

“귀족의 자녀는 평민들의 구역에서 일하진 않습니다.”

메틴이 그가 몰락 귀족임을 알려 줬다.

잡화점에는 각종 생필품과 용병들에게 필요할 법한 캠핑용 물품을 팔았는데, 제대로 정제되지 않은 소금 한 주머니가 1실버나 했다.

‘천도 있고, 꿀도 있군.’

그리 크지도 않은 유리병에 담긴 꿀이 2실버로 상당히 비쌌고, 천은 한 필에 20쿠퍼로 매우 저렴한 편이었다.

‘유리병도 있어.’

잡화점 주인에게 비단을 보여 주니, 그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곤 손을 비비며 말했다.

“이토록 아름다우신 분께서 가져온 물건인 만큼 고급품이 틀림없겠지요. 보시다시피 일반 천은 20쿠퍼밖에 하지 않지만, 물건의 주인이 미의 여신을 축복을 듬뿍 받으셨으니 그 가치는 매우 높겠죠.”

불쾌할 정도로 날 찬양하던 놈은 날 무시하는 건지, 세속적인 건 고귀한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며 메틴에게 가격을 말하여 내게 전하게끔 했다.

“다크 님, 주인의 말로는 어딜 가나 80쿠퍼는 할 고급품이나, 지금 이만한 물건을 250필씩 취급해줄 곳이 없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처분하면 손해를 보더라도 20쿠퍼씩 더 쳐주겠다고 하는데… 처분할까요?”

메틴이 상점 주인에게 완전히 넘어간 모습에 우릴 이곳에 안내해준 꼬마가 입술을 삐죽였다.

“딴 곳에 팔자.”

“네? 하지만, 다른 곳에 가면…….”

“메틴, 넌 사업하지 마라.”

내가 메틴을 끌고 나가자 주인이 당황했고,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며 외쳤다.

“언제든 오시면 최고의 대우를 약속드리겠습니다.”

밖으로 나와 꼬마에게 물었다.

“다른 잡화점은 없어?”

꼬마는 기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해요. 다른 곳은 린지만큼 돈이 많지 않아요.”

“그래?”

일행은 내가 비단을 처분하지 않은 걸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디아는 당연하게 여겼다.

그도 그럴 게, 놈에게선 거짓의 냄새… 아니, 음침하면서도 친숙한 마력이 물씬 풍겼기 때문이다.

“잘 들어 메틴, 난 사기꾼과 거래하지 않아.”

잡화점에 팔 수 없다면 옷 가게에 팔면 그만.

“귀족들이 주로 가는 옷 가게로 가자.”

“옷 가게요?”

“없어?”

“네…….”

“그럼 옷은 어디서 사는데?”

“그거야. 집안의 여자들이 만들어야죠.”

이곳 여자들은 천을 짜고, 옷을 만드는 게 기본이다.

부유층들도 재봉에 능한 하녀들을 다수 데리고 있어 옷에 대한 수요가 없었다.

“옷 가게를 찾는 거라면 백작령에 있을 거다.”

디아가 말하길 백작령에 옷을 제작해주는 곳이 있다고 했으나, 당장 쓸 자금을 확보할 생각이라 거기까지 가서 팔 순 없었다.

‘옷 가게가 없다니…….’

디아가 고민 중인 날 대신해 꼬마에게 물었다.

“천만 취급하는 포목점은 없나?”

“아직, 포목점을 여신분이 없어요. 그래서 고가의 천을 취급해줄 곳이 린지의 잡화점 밖에......”

판로가 없으면 만들면 그만.

“마을에서 제일 부자가 누구야?”

“부쉬트니 자작령을 오가는 제르바 상단의 주인 제르바 폰 바쿠바에요.”

“어디 사는지는 아니?”

“그건 잘 모르지만… 제르바 상단 건물이 어딨는지는 알아요.”

거리가 좀 먼 것 같아 메틴에게 꼬마를 안게 했다.

“아니에요. 뛸 수 있어요.”

꼬마의 해진 신발을 보면 설득력이 없었다.

“꼬마야, 넌 방향만 말해. 뛰어갈 거니까.”

은닉이 깨지지 않는 속도로 이동하여 부유층이 주로 다니는 거리에 도착했다.

“이쪽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4층 건물인 상단에 들어서니 하녀들이 정중한 태도로 우릴 안내했고, 우린 화려한 실내에서 다과와 홍차를 즐기게 됐다.

‘아무것도 묻질 않네?’

디아는 그 이유를 알려 줬다.

“귀족의 허락 없이 평민이 용건을 물어보는 건 예의가 아니다. 그것 때문에 용건을 말해줄 때까지 기다리는 것 같군.”

“그렇군요.”

귀족으로 오해받은 상황이었지만, 애써 오해를 풀 생각은 없었다.

“비단을 팔러 왔어.”

직원들이 살짝 놀랐지만, 애써 표정을 감추며 말했다.

“상단주님과 점장님이 부재한 관계로 부점장님과 감정사를 불러오겠습니다.”

비단을 본 감정사가 2실버 50쿠퍼 가치가 있다고 했지만, 물량을 확인한 부점장이 난처해하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지금 영주님의 지시로 식량을 사들이느라 본 상단에선 비단을 사들일 순 없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제가 다른 상단을 소개해드려도 될까요?”

흑마력에 친숙함을 느끼는 내게 부점장인 여인은 불쾌할 정도로 정직한 인간이었다.

‘뒤가 없는 사람이야.’

그녀가 알려 준 상단까지 가려면 시간이 걸릴 테고, 가서 또 퇴짜를 맞으면 골치가 아프다.

거기다 오랜만에 보게 된 정직한 사람과 거래하고 싶기도 했다.

가진 물량도 많으니, 이 기회에 이곳 상단과 우호 관계를 맺어 둘까 싶었다.

“2실버에 팔 테니까, 전부 사 줘.”

“네?”

“내가 가지고 있는 물량이 좀 많아. 그런데 아무하고 거래하고 싶지 않단 말이지. 난 너랑 거래하고 싶은데… 넌 어때?”

부점장이 잠시 당황하며 나를 살펴보더니 큰절을 했다.

“감사히 따르겠습니다.”

바닥에 물방울이 떨어졌지만, 고개를 든 그녀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250필의 비단을 팔아 5골드를 벌었다.

거래가 성사된 후 잡화점에서 1실버에 사려 했다고 하니, 부점장이 어색하게 웃어 줬다.

“린지 폰 비고의 잡화점에 가셨나 보네요. 안타깝게도 그분은 자신의 가문이 왜 몰락했는지조차 모르는 것 같아요.”

부점장은 다음에도 자신을 찾아달라며 비싸 보이는 황금패를 내게 줬다.

“제르바 상단의 골드 카드입니다. 5골드 가치를 지닌 물건이에요.”

“이름은 왜 알려 주지 않는 거지?”

“말씀드려도 괜찮을까요?”

“거래 상대는 알아야지.”

“제 이름은 문트리아입니다.”

“기억해 둘게.”

밖으로 나와 상단에서 받은 골드를 확인할 때, 꼬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긴, 평민이 20년은 모아야 할 거액이 눈앞에 있는 것이니, 연봉 3천만 원 기준으로 보면 6억을 보고 있는 감각일지도 몰랐다.

‘비단 한 필로 한 달 치 월급이라니.’

물가는 비싸고, 인건비는 바닥인 세계.

‘장사할만한 세상이군.’

골드, 실버, 쿠퍼 등 동전을 자세히 살펴보니, 앞뒷면으로 정교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문양을 통해 흐르는 마력이 보였다.

‘이거 보통 문양이 아닌데?’

동전의 테두리 쪽은 톱니 모양으로, 테두리를 갈아 금속 가루를 얻지 못하게 방지한 형태였다.

‘발상만 있으면 톱니 테두리 정도야 가능한 거지만, 이 문양을 새기는 기술은… 중세의 기술력이 아니야.’

내가 동전을 유심히 살펴보자 디아가 말했다.

“동전은 모두 제국의 마법사 집단인 금탑에서 만든다. 그렇게 뜯어본다고 복제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야.”

뜨끔한 나는 동전을 주머니에 챙겼다.

“이제 뭐가 남았죠?”

“철괴가 남았지.”

아직 은닉 가능한 시간이 남아 철괴를 처분한 후 여관에 가기로 했다.

“실력 좋은 대장장이한테 안내해 줘.”

무한자원 개미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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