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인간 거래
철괴를 팔기 위해 대장간을 둘러보며 무기 가격을 살펴봤다.
중고 무기가 1~2실버, 일반 무기가 5실버 정도 했고, 고급 무기는 10실버를 넘어갔다.
대장장이는 무장도 하지 않은 디아를 콕 집어 물었다.
“진짜가 필요한 거라면 창고로 안내하지.”
디아는 고개를 저었다.
“무기는 단단하기만 하면 족하다. 그러니 진짜든 가짜든 상관없어.”
나는 창고를 구경하고 싶어 대장장이에게 안내를 부탁했으나, 대장장이가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창고는 아가씨에게 어울릴만한 물건이 없습니다. 이쪽 진열장의 레이피어는 어떠신가요? 아가씨의 머리카락 색과 잘 어울리겠군요. 여기 핑크 채찍은 어떻습니까? 손잡이에 박힌 루비는 어떠한 순간에도 아름다움을 잃지 않죠.”
“음…….”
대장장이는 내게 보석으로 치장된 가벼운 장비들만 추천해 줬다.
‘지금 나 맥이는 거 맞지?’
짜증은 났지만, 대장장이에게서 악의가 느껴지지 않았다.
‘창고 구경은 힘들겠어.’
나는 열정을 다해 가며 날 꾸며 주려는 대장장이에게 용건을 말했다.
“철괴를 팔고 싶어.”
“철광석 말입니까?”
대장장이는 화색을 띠며 말했다.
“요즘 광산이 폐쇄돼서 철광석 가격이 올랐죠. 어디서 가져온 건가요?”
“그건 비밀이야.”
디아가 철괴를 꺼내 보여 주자 대장장이가 놀라 외쳤다.
“아니, 이건 철괴지 않습니까!”
“철괴라고 했잖아.”
대장장이는 망치로 철괴를 두드려보곤 외쳤다.
“1실버! 1실버 드리겠습니다!”
마력을 보아 거짓이 섞여 있지 않아 가져온 철괴 100개를 모두 처분했다.
그렇게 1골드를 또 벌었다.
꼬마는 내가 물건을 팔 때마다 벌어진 입을 다물 줄 몰랐다.
“자 그럼 여관으로 가볼까? 기왕이면 깨끗한 곳으로 가자.”
“네! 저쪽으로 가면 깨끗한 여관이 있어요. 가격은 조금 비싸지만…….”
돈주머니를 흔들어 보이자 꼬마는 밝게 웃으며 앞장섰다.
여관은 골목길을 몇 번 꺾어야 나오는 곳이었고, 재건 중인 땅이 많아 치안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이동하던 중, 우릴 뒤따르는 일단의 무리가 느껴졌다.
‘귀찮은 것들이 붙었어.’
디아, 메틴, 베르딘도 눈치챘는지 서로 사인을 보냈다.
‘습격하면 처리할 생각인가?’
나우피어는 루리아만 졸졸 따라다니는 바보가 돼 있었고. 페스트는 인간을 위협이라 생각하지 않아 경계조차 하지 않았다.
여관에 들어설 때까지 놈들은 미행만 할 뿐, 습격해오지 않았다.
딸랑딸랑.
여관 문에 달린 풍종이 맑은 소리를 내자 청소 중이던 여자아이와 소녀가 인사했다.
“어서 오세요.”
카운터의 주인으로 보이는 30대 남성과 여성도 우릴 반기려다 나를 비롯한 개미족을 보곤 당황했다.
“고귀한 분들께서 이런 누추한 곳에…….”
이곳 평민들은 머리카락과 피부가 거칠었고, 누런색 혹은 갈색 누더기를 입고 다녔다.
그러니, 하얀 피부에 잘 관리된 머릿결, 깔끔한 복장까지 갖춘 개미족과 디아를 보면 누구든 귀족 내지는 관계자라 여겼다.
덕분에 인간들은 우리에게 매우 정중했고, 부유층들이 다니는 길도 서슴없이 다닐 수 있었다.
메틴이 나서서 용건을 말하자, 주인의 표정이 밝아졌다.
“2인실 20쿠퍼, 5인실은 30쿠퍼에요. 아침 식사는 수프와 호밀빵이 제공되고, 저녁은 별도예요. 화장실은 밖에 있고, 안에는 요강이 있어요. 세숫물은 1쿠퍼, 목욕물은 5쿠퍼에요.”
2인실은 인당 10쿠퍼, 5인실은 인당 6쿠퍼.
가격만 봐도 2인실이 훨씬 쾌적할 듯했다.
“2인실로 다섯 개 줘.”
2인실 다섯 개를 빌리니 숙박비로 하루 1실버가 나갔다.
‘기척이 없는 걸 보니 방들이 모두 비어 있군.’
한동안 이곳에 머물 생각이었던 나는 20실버를 미리 냈다.
여관 주인과 안주인은 대금이 들어와 기뻐했고, 그들의 딸들도 덩달아 좋아했다.
안내한 꼬마의 눈에 이체가 스쳤는데, 돈의 흐름에 민감한 나는 여관에서 꼬마에게 커미션을 주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래도 수고비는 챙겨 줘야겠지.’
나는 고생한 그에게 수고비로 5쿠퍼를 줬다.
“감사합니다. 다크 님!”
어느새 내 이름을 기억한 꼬마.
나는 다음 손님을 찾아 떠나려던 그를 붙잡았다.
“너도 한동안 우리와 있어야겠다.”
“네?”
여관 밖에 대기 중인 양아치 놈들이 꼬마에게 뭔 짓을 할지 몰라 한동안 보호하며 부려먹을 생각이었다.
“루리아, 이 녀석 좀 씻겨서 데려와. 방에서 쉬고 있을 테니까.”
“네!”
당황한 꼬마가 손사래 치며 거부했지만, 베르딘까지 가세하여 강제 집행에 들어갔다.
방에 올라가 보니 창문은 나무로 돼 있었고, 창밖을 보면 한참 재건 중인 거리와 우릴 주시하는 양아치들이 보였다.
‘노리는 건 돈인가?’
나는 디아와 같은 방을 쓰게 됐고, 나우피어는 루리아와, 페스트는 베르딘과 같은 방을 쓰게 했다.
얼마 후 루리아와 베르딘이 옷과 신발을 새것으로 바꿔 입은 꼬마를 데려왔다.
나는 그에게 악의를 가진 인간들이 밖에 포진해 있음을 말해 줬다.
“분명, 린지가 암흑가 녀석들에게 소문낸 게 틀림없어요!”
꼬마는 잡화점 주인을 욕하며 돌봐야 할 동생들이 있어 가 봐야 한다고 했다.
“부모는?”
“…그런 거 없어요.”
꼬마에게서 거짓의 마력 한 줄기가 보였고, 옆에서 듣고 있던 루리아가 내게 다가와 속삭였다.
“몸에 상처가 많았어요. 아마 부모에게 학대받고 있을 거예요.”
“몸에 상처 없는 아이가 오히려 이상한 건데…….”
베르딘이 설명해 주길 이곳의 가장들은 가부장적이며 폭력적이라, 장남과 차남이 아니면 고달프다고 했다.
“저도 뭐, 그런 일반적인 집에서 태어나서…….”
루리아는 꼬마가 불쌍하다며 안타까워했고, 베르딘은 ‘라떼는’을 시전하며 냉철한 모습을 보였다.
‘부모가 있어도 고아보다 못한 아이가 많다니…….’
낙후된 곳이라 아동 인권이 없을 수 있다지만, 이곳 사회는 아이들에게 너무도 가혹했다.
‘이해가 안 가…….’
개미조차 애벌레의 소중함을 아는데, 이들은 그걸 모르고 있으니.
‘차라리 잘 됐어.’
내게는 인간들 틈에서 움직여줄 일꾼들이 필요했고, 불우한 아이들에겐 의지할 곳이 필요하니.
‘아이들은 선입견이 적고, 다루기도 쉽지.’
나는 꼬마에게 물었다.
“이름은?”
“아제트…….”
“아제트, 내 밑에서 일해라.”
망설이는 그에게 7골드 70실버가 들어 있는 돈주머니를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난 돈을 잘 번다. 그러니 내게도 기회가 많을 거란 말이지… 조금 전 상단에서 일하던 자들을 떠올려 봐.”
“그럼 얼마나 받을 수 있나요?”
“의식주 포함에 월급으로 2실버를 챙겨 줄게, 성과에 따라선 보너스도 있어.”
루리아가 살짝 놀랐고, 베르딘이 인상을 구기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기술도 없는 10살짜리 꼬마에게 월급으로 2실버나 준다니. 의식주면 충분할 텐데…….”
나에겐 비단 한 필 팔면 되는 돈이 아제트에겐 매우 큰돈이었는지, 그는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 것 같은 표정으로 물었다.
“제가 뭘 하면 되죠?”
아제트는 무지막지한 일을 기대한 듯한 눈빛이었지만, 오늘은 이만 쉴 생각이다.
“푹 쉬어야지.”
“네?”
“내일은 네 가족을 만나러 갈 거니까. 그렇게 알아.”
“네?”
의문 가득한 아제트를 메틴에게 맡겼고, 나는 여관 주인에게 말해 침대를 추가했다.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움직일 테니. 각자 쉬도록 해.”
밤이 되니 1층에 인부, 용병, 병사 등등, 다양한 인간군상들이 모여 술판을 벌였는데, 그곳엔 여관 부인과 딸들 외의 여자가 없었다.
‘시끄럽네.’
인간들은 익숙한지 숙면을 취했고, 개미족은 잠을 안 자도 무방했기에 마력 수련으로 시간을 보냈다.
최근 나는 밤마다 마력수를 흡수하여 마력 총량과 신체 능력을 키웠다.
한 방울 흡수하니 해가 떠 있었고, 일행들은 모두 식사를 마친 채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일행을 세 그룹으로 나눴다.
“베르딘, 세바스. 너희는 밖에 있는 암흑가를 정리해.”
양아치 출신인 베르딘과 양치기 출신인 세바스.
아직 미숙한 두 소년만으론 암흑가 정리는 어렵지만, 페스트를 붙여 뒀으니 기사급이 없다면 무난히 해결할 수 있을 듯했다.
“루리아, 존, 월리엄.”
루리아, 마부 출신 존, 여관 주인 출신 월리엄.
나우피어가 보호하는 셋에겐 거점 확보를 맡겼다.
이곳 세계에선 땅은 모두 영주의 것이고, 행정관을 통해 대여할 수 있다.
농지의 대여는 생산량의 절반을 바치면 되고, 다른 목적의 토지는 사용권을 구매한 후 매년 사용료를 내야 한다.
사용권이 있어도 영주가 원하면 언제든 회수해 갈 수 있다.
사용권의 개인 거래는 불법이고, 사용료도 영주가 정하니…….
즉, 토지와 건물의 거래는 영주 마음대로라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제도 속에서 재산을 지키려면 행정관, 병사, 기사 등, 영주의 관계자에게 뇌물을 바쳐 우호 관계를 형성해야 했고, 영주에게 매년 조공을 바치는 것도 잊어선 안 됐다.
‘소득세를 조공이란 형식으로 거두고 있어.’
귀족들은 그렇게 번 돈으로 노예를 사들여 농지를 운영했고, 노예들의 자식을 사고팔아 돈을 벌기도 했다.
지금 바르퀴르 자작령의 땅은 매우 싸게 대여되고 있어, 사방에서 인간들이 몰려오는 중이었다.
지금 내 수중에는 7골드 70실버가 있다.
여섯 명의 인간에게 10실버씩 자유롭게 쓰라고 줬고, 4골드는 루리아에게 주며 북문 인근 토지를 대여하게 했다.
남은 3골드 10실버를 가지고 아제트의 집을 찾아가 봤다.
메틴을 앞세워 찾게 된 아제트의 집.
시장과 가까운 깔끔한 집이었다.
‘슬럼 같은 빈민가에 있을 줄 알았는데.’
똑똑똑.
괜한 짓을 하는 게 아닌가 걱정했지만, 열어 준 문을 통해 집 안을 보니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아제트의 엄마는 제대로 먹지 못했는지 초췌해 보였고, 아버지란 놈은 대낮부터 술에 절어 있었다.
장검을 찬 메틴을 본 부인이 어쩔 줄 몰라 했지만, 메틴이 그녀에게 아제트를 고용하고 싶다고 하니, 부인은 남자를 조심스럽게 흔들어 깨웠다.
남자가 부인을 거칠게 밀쳐 내며 일어나 메틴에게 다가왔다.
“용건이 뭐요?”
덩치가 상당한 게 남자는 부인과 자식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호의호식해 온 것처럼 보였다.
“우리가 당신의 아이를 데려다 쓰려 한다.”
메틴의 말에 그가 답했다.
“묵고 있는 곳을 말해 주면 장남 놈에게 가 보라고 하겠소.”
“장남 얘기가 아니다.”
“앗, 그럼 차남 빌트를 말하는 거군. 그 녀석이라면 지금 성벽을 보수하고 있을 건데…….”
메틴이 고개를 흔들며 아제트 쪽을 가르켰다.
그는 아제트를 자세히 들여다보곤 그가 자신의 자식임을 깨달았다.
“앗! 설마 아제트를 쓰겠다는 거요?”
자기 자식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던 그는 메틴을 위아래로 훑어보곤 말했다.
“데려가 쓰시오. 그런데 임금은 아비인 내게 줘야겠소.”
웃기지도 않은 요구를 메틴이 받아들이려는 것 같아 내가 나섰다.
“왜 그렇게 되지?”
남자는 당연한 걸 왜 묻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 아이는 아직 성년이 아니라 내 소유기 때문이오. 아가씨 정도 되는 부유층이 제국법을 모르진 않을 것 같은데…….”
“…….”
아제트가 불안한 표정으로 내 소매를 잡아당겼다.
남자가 말했다.
“그게 불만이면, 아제트를 사 가시오. 지금 데려가면 50실버에 주지. 5~6년만 지나면 1골드는 족히 받을 테니, 아가씨에게도 남는 장사 아니겠소.”
남자의 말에 아제트가 고개를 푹 숙였고, 메틴은 인상을 찌푸렸다.
디아는 그저 포커페이스로 아무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나는 손가락으로 부인 쪽을 가리키며 물었다.
“부인도 파는 건가?”
모욕을 주기 위한 질문인데, 남자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볼품없는 년이라지만, 1골드 50실버는 줘야겠소.”
“…….”
“잠시만 기다리시오.”
황당해하는 나를 두고 남자는 안쪽에서 비쩍 마른 멍투성이의 아이 둘을 데려와 내 앞에 내동댕이쳤다.
“저 여자도 데려갈 거면 이것도 함께 사 가시오.”
대여섯 살로 보이는 두 아이가 절망에 찌들어 있었다.
이성적으론 분노가 치솟아야 함에도 나의 감정은 그 어느 때보다 평온한 상태로 상황을 분석했다.
‘여자나 아이도 거래 대상이 되는 세상이라…….’
하긴, 이미 남성들은 용병이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의 목숨에 가치를 매겨 팔고 있으니 별다를 것도 없어 보였다.
쓰레기 같은 세상이지만… 내게는 너무 쉬운 세상으로 비쳤다.
‘팔아라. 내가 전부 사 주마!’
무한자원 개미군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