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자원 개미군단-81화 (80/189)

81화. 저택

여관의 이용객이 늘어나며 불편했는데, 거점의 완성은 매우 기쁜 소식이었다.

아제트 일가와 일행을 데리고 저택으로 이사하자, 여관 주인과 딸들이 매우 아쉬워했다.

“언제든 식사하러 오세요.”

“너희도 힘든 일 있으면 찾아와도 돼.”

“고마워요.”

벨레삭 백작가는 갈색 장수풍뎅이 문양.

부쉬트니 자작가는 검은 말벌 문양.

이곳 바르퀴르 영지는 갈색 사슴벌레를 문양으로 썼다.

개미를 상징으로 하는 가문이 없다는 걸 확인한 나는 저택 곳곳에 개미 문양을 새겨 달라고 했고, 상징으로 검은 개미를 쓰게 됐다.

저택에 도착해 보니 문고리와 기둥에 개미 문양이 멋들어지게 조각돼 있었다.

‘나쁘지 않네.’

저택 안에는 가구와 사람이 채워지지 않아 썰렁했다.

아제트 일가와 일행들에게 저택을 둘러보게 한 나는 비밀스럽게 만들어진 지하 통로를 찾았다.

지하 기지에는 메디를 비롯한 의료 개미와 공사 담당 간부인 디그파가 있었다.

“들키지 않은 거지?”

“네. 인간들 모르게 왔어요.”

메디를 통해 현재 둥지 상황을 듣게 됐다.

“백인대 규모의 하드 부대 네 개와 궁기병 부대 여덟 개가 영역을 넓히고 있어요.”

내가 있을 때, 장로 회의를 거쳐 사냥 개미가 대거 축소되었다.

그럼에도 사냥감이 부족했던지, 개미족은 영역확장에 열을 올렸다.

“포스 님이 말리지 않았어?”

“상관없다고 하셨어요.”

왕급과 준왕급의 불가침 조약은 그들 한정으로 이루어진 협약이라, 개미족이 타 영역을 침범해도 항의는 없었다고 한다.

“북쪽에는 다크 님이 있으시니…….”

사냥 개미들은 영양가 높은 인간들의 영역에 관심이 많았지만, 이쪽은 내가 담당하고 있어 침공로에서 제외됐다.

아카시아 숲 너머의 황무지는 거대 전갈과 공벌레 같은 강력한 몬스터들이 서식하는 것에 비해 얻을 게 없어 개미족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그래서 서쪽과 남쪽이라고?”

“네.”

고블린 산맥 너머의 울창한 숲.

오거인 오그르트의 영역이기도 한 그곳은 채집 거리가 많으며 오크, 트롤, 고블린, 개미족이 서식했다.

“중급 영양인 오크 고기가 둥지에선 인기에요.”

“그래?”

오크는 녹색 피부에 뾰족한 송곳니를 가진 근육질 몬스터로 매우 호전적인 녀석들이다.

성장 속도가 빠르고 번식력이 좋은 편이라 고블린의 상위 호환처럼 여겨지는 녀석들이지만 우락부락한 근육에 비해 전투 지속력이 떨어졌고, 먹이와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동족 간에 다툼이 잦아 고블린만큼 번성하지 못했다.

“무장은 어땠어?”

“오크들은 몬스터 부산물로 장비를 만들어 썼어요.”

오크는 고블린처럼 주술사가 없고, 불도 다루지 않기에 하드 워커로 어렵지 않게 사냥할 수 있었다.

“상급 영양인 트롤은 사냥하기가 힘들어요.”

나무 몽둥이를 쓰는 트롤은 신장 3미터에 괴이하게 생긴 녹색 괴물이다.

사지를 절단해도 몇 시간이면 재생해 버려서 머리를 자르거나 심장을 뽑아내지 않으면 죽지 않는다.

독도 통하지 않아 약점을 좀처럼 찾을 수 없고, 전투력도 울트라급이라 개미족의 사냥 부대론 쉽사리 처리할 수 없었다.

다행히도 트롤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아, 현재 네 개의 하드 부대가 오거인 오그르트와 트롤 무리를 피해 가며 서쪽 영역을 확장하고 있었다.

“궁기병 800기는 버드나무 숲에서 활동 중이에요.”

여덟 개의 궁기병 부대는 거미족의 영역이라 할 수 있는 버드나무 숲에서 다양한 곤충형 몬스터를 사냥했고, 가끔 발견되는 점성 없는 거미줄을 챙겼다.

“생산량은 여전하고, 쥐의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어요.”

“쥐약 개발이 힘든 거야?”

“그게… 쥐약 개발 자체는 어렵지 않은데…….”

죽은 쥐를 미니 워커가 섭취하여 사망하는 사고가 잇따르며 쥐약 사용이 중단됐다고 한다.

“쥐 문제는 경비 인력을 늘리는 것과 함정을 설치하는 것으로 대체했지만, 완벽히 막아 내진 못하는 것 같아요.”

디그파도 한마디 했다.

“공사 중에 자이언트 레서가 이끄는 쥐 무리와 여러 차례 충돌했어요. 함정도 늘리곤 있지만, 효과는 잠깐뿐이에요.”

약도, 함정도 안 통하는 녀석들과 동거하는 상황.

근본적인 해결은 안 되겠지만, 둥지의 잉여 식량을 덜어 내면 쥐들의 방비도 쉬워질 터였다.

둥지 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한 나는 메디에게 마력수 원액이 담긴 작은 항아리를 받았다.

“마력수는 충분하지?”

“네, 마력수는 줄지 않았어요.”

나는 이곳 술집에서 사용되는 윤활제를 건네며 물었다.

“이게 뭔지 알겠어?”

메디가 손으로 윤활제를 만져 보고 먹어 보더니, 허리에서 촉수 두 개를 뻗어 빨아들였다.

잠깐 사이에 분석을 마친 메디가 말했다.

“저희의 보호액 같은 거네요. 소독과 보호를 목적으로 하고 있고, 상처를 치유하는 기능도 있는 것 같아요.”

메디는 개량을 통해 약효를 증폭시킬 수 있다고 했고, 다양한 향이 나도록 만들 수 있다고 했으나, 숲에서 얻은 재료만으론 이 약을 재현할 순 없다고 했다.

“거기다 조금 이질적인 마력이 느껴져요.”

“그건 흑마력일 거야.”

양산은 어렵다고 하니 아쉬웠으나, 윤활제는 사도와 흑마법사의 실마리임과 동시에 흑마력을 액체에 담아내는 기술이 담겨 있기도 했다.

‘우릴 적대하는 흑마법사라면 처리하고, 아니라면 포섭해서 써먹는 게 좋겠어.’

둥지 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한 나는 하이 페어리 한 마리를 둥지에 보내 복식부기를 습득한 인간들을 데려오게 했다.

둥지에서 인간들이 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니, 그동안 썰렁한 저택을 지켜야 했다.

아제트의 엄마와 두 여동생이 청소를 시작했고, 아제트도 옆에서 도왔지만, 어른 한 명과 아이 셋으로 감당할 수 있는 면적이 아니었다.

‘안 해도 된다니까.’

저택은 총 4층으로 이루어진 건물이었다.

1층에는 파티 홀과 고용인들의 방이 있고, 주방과 하녀들의 휴게실이 있다.

주방 아래로는 서늘한 지하실이 있어 냉장고를 대신했고, 2층도 고용인들의 공간이다.

3층에 이르러서 집무실을 비롯한 나의 공간이 펼쳐졌다.

4층은 저택 주인을 위한 거주 공간이지만, 방이 많으니 일행에게 나눠 줬다.

‘방들이 많네.’

방들이 너무 많아 공간을 어떻게 나눠야 할지 난감했다.

‘그리고 화장실이 없어.’

2층에 화장실이 있긴 했지만, 똥이 아래층으로 떨어지는 형태.

이런 걸 화장실이라 할 순 없었다.

‘리모델링이 필요하겠어. 수관부터 매설하게 하자.’

나는 저택 지하 공간을 확장 중인 디그파에게 저택 어디서든 물을 쓸 수 있도록 설계를 부탁했다.

“접착액으로 코팅된 강철 파이프를 쓰면 좋을 거야. 물탱크는 각층에 설치하고, 물을 퍼 올릴 펌프도 필요할 텐데…….”

페달식 동력을 쓰고 있지만, 펌프든 모터든 지금의 엔지라면 뭐든 만들 수 있다.

“기술적인 부분은 엔지와 상의하도록 해.”

“네, 설계도를 그려 볼게요.”

디그파가 그려온 설계도를 수정하며 둥지에서 만들어 온 파이프와 펌프의 문제점을 짚어 줬다.

어느 정도 공사 방향이 정해졌을 때쯤, 사냥꾼의 아내 출신인 줄리아가 데려올 인원의 선발을 마쳤고, 그들을 데리고 저택 지하 기지로 왔다.

“불러 주셔서 감사해요.”

“잘 왔어.”

이들은 개미족에 대한 충성심이 매우 높은 편이지만, 속내를 숨기고 있던 자도 간혹 있었다.

“너, 그리고 너도! 돌아가!”

그런 녀석은 내가 미리 걸러서 페르의 식탁으로 보내 버렸다.

“너희에겐 직장, 집, 결혼, 양육, 노후까지 모두 보장해 줄 거야. 그러니 끝까지 함께 했으면 좋겠어.”

“다크 님 만세! 개미교 만세! 개미신 키틀레야 님의 축복을!”

개미교의 광신도들이 섞여 있어 한동안 지하에서 머물게 하여 광기를 털어 냈다.

그들의 광기를 털어 낸 나는 내 목적의 일부를 공유했다.

“이곳을 교두보로 삼을 생각이야.”

부유층의 저택으로 위장하여 상단을 만들고, 잉여 물자를 판매하여 필요 물자로 바꿀 생각이었다.

“간단한 일이지만, 중요한 건 개미족과 개미교를 드러내면 안 돼.”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다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다.

‘지금은 개미족에게 우호적인 인간을 늘려야 해.’

인간과 화기애애한 공생은 원하지 않는다.

내가 느낀 인간이란 존재는 그리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21세기.

여전히 전쟁은 끊이지 않았고, 역사 속에서 일어난 오류도 반복됐다.

차별과 갈등은 사라지지 않았고, 이를 부추겨 이익을 취하는 집단이 너무도 많았다.

‘인간의 탐욕을 제어하지 못하면, 개미족이 위험해.’

인간과의 공생은 나와 개미족에게 리스크가 크다.

그래서 나는 이성적인 개미족에 의한 지배를 지향했다.

아니, 개미족을 등에 업은 내가 지배자가 되어 개미족의 안전을 확보하고, 나아가 미개한 인간들에게 좀 더 발전된 사회를 선물하여 그들의 탐욕을 제어해 볼 생각이었다.

‘이게 바로 세계 정복이지!’

그 세계 정복의 시작점이 이곳 바르퀴르 자작령인 것인데.

“그럼 저택 곳곳에 새겨진 개미 문양과 상품에 새겨 둔 건…….”

줄리아는 내가 상징으로 내세운 문양을 우려했지만, 개미를 상징으로 쓴다고 개미족과 연관 짓는 인간은 어디에도 없었다.

당장 부쉬트니 자작가만 해도 말벌족과 닮은 말벌 문양이 가문의 상징 아니던가.

“그건 상관없어. 그냥 우리의 상징으로 여길 테니까.”

나는 줄리아에게 시녀장이란 감투를 씌웠고, 수사 중에 연륜 있어 보이는 자에게 집사장을, 강직해 보이는 자에게 경비대장 자리를 줬다.

집사, 경비 조장, 시녀, 하녀장, 상급 하녀 등은 둥지에서 데려온 인간들로 채웠고, 상급 하녀와 경비 조장 밑으로 이곳 인간을 대거 고용했다.

“월급은 이곳 기준에 맞게 수습은 1실버, 1년 이상 근무하면 2실버로 올려 줘.”

이곳의 사람들이 남의 밑에서 일하는 건, 임금보다는 입에 풀칠하고 잘 곳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정말로 식비가 인당 3실버는 넘게 들어갔고, 입는 것과 위생까지 신경 쓰면 유지비가 상당했다.

뭐, 다른 저택에선 나만큼 음식을 챙겨 주진 않는다고 했다.

“공사 개미들에게 화장실, 샤워실, 목욕탕을 만들어 두라고 할 테니까… 매일 씻겨. 더러운 건 못 참으니까.”

“그… 공사 개미들이 저택을 돌아다니면 위험하지 않나요?”

“공사는 새벽에만 진행할 거니까. 밤에 못 다니게 하면 돼.”

시녀들의 일은 저택 주인인 나의 호위 겸 시중 역이었고, 집사들은 일꾼의 관리를 비롯한 행정 업무를 담당했다.

상급 하녀들에겐 고용한 하급 하녀들의 교육을 맡겼고, 그들과 함께 가사 전반을 담당했다.

경비 조장도 상급 하녀들과 마찬가지로 고용된 경비 인원의 교육과 저택 인근의 경비를 책임졌다.

처음에는 조금씩 삐걱거리던 체계도 차츰 자리 잡게 됐고, 화장실, 샤워실, 목욕탕이 곳곳에 설치됐다.

그리고 주방을 비롯한 정원 곳곳에도 수도꼭지가 달렸는데, 인간들은 이를 마법으로 여겼다.

‘마법이라…….’

뭐든 마법이라고 하면 넘어갈 수 있어 좋긴 하지만, 물탱크에 물을 채우기 위해 안 보이는 곳에서 일하고 있는 개미들의 공로가 마법으로 둔갑하니 안타까운 생각도 들었다.

‘뭐, 걔들은 일하는 거 좋아하니까.’

저택의 크기에 비해 과하게 고용한 면이 있어 유지비로 많은 돈이 빠져 나갔으나, 물건을 팔아 벌어들이는 돈에 비하면 푼돈이나 마찬가지였다.

넘치는 자금으로 저택 인근에 상단 건물을 올렸다.

4층짜리 건물로 개미를 상징으로 쓰니, 개미 상단이라 불리게 됐다,

상단에선 각종 영양액을 고급 꿀로 위장하여 팔았고, 개미 문양이 찍힌 비단, 종이, 잉크 등도 판매하여 막대한 이윤을 거둘 수 있었다.

주 고객은 성내에 거주하는 부유층과 교역 상인들이다.

제르바 상단의 부점장 문트리아와 좋은 관계를 형성한 나는 그녀를 통해 필요한 물건들을 사들였다.

“다크 님께 감사드려요.”

문트리아는 내 덕에 조만간 점장으로 승진한다며 좋아했다.

다음에 올 때는 좋은 소식을 전해 줄 거라고 한 문트리아.

그런데… 약속 일자에 방문한 건 문트리아가 아닌 제르바 폰 바쿠바.

제르바 상단의 상단주였다.

무한자원 개미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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